산과바다
반야산 관촉사(盤若山 灌燭寺)에 가보다.
2024. 12. 18. 담음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관촉리 반야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 문화재로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일명 은진미륵; 국보 제323호)과 석등(보물 제232호) 등
* 관촉사는 서기 968년(고려 광종 19)에 혜명 화상에 의해 창건되었고, 혜명 화상은 1백 여명의 장인과 함께 970년 석조관음보살상의 조성 공사를 시작하여 37년 후인 1006년(목종 9) 완성했다.
관촉사에 현존하는 건축물로는 미륵전과 대광명전, 삼성각, 명부전, 반야루, 해탈문, 사천왕문, 일주문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일명 은진미륵; 국보 제323호)과 석등(보물 제232호), 배례석(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 석문(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 오층석탑, 사적비 등이 있다.
968년(고려 광종 19) 혜명에 의해 창건될 때 조성된 석조미륵상이 발산하는 빛을 좇아 중국에서 명승 지안이 와서 예배했다고 하여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법당은 1386년(우왕 12) 건립해 1581년(선조 14)과 1674년(현종 15)에 중수했으며 1735년(영조 11) 다시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관음전·삼성각·사명각·해탈문·현충각 등의 당우가 남아 있으며,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국보 제323호로 승격)과 석등(보물 제232호)을 비롯해 사리탑·연화배례석·사적비 등이 있다.
은진미륵 앞에 석등이 있고 그 앞에 미륵전이 있는데, 마치 적멸보궁처럼 이 건물에는 불상이 없는 대신 그 너머로 통유리창을 내어 법당 안에서 은진미륵을 볼 수 있게 해두었다.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국보 제323호 로 승격)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218호였던 것이 2018년 4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323호로 승격되었다.
높이 18.2m. 거불로 예로부터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 널리 알려진 불상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 18 은진조와 1744년(영조 20)에 세워진 사적비(寺蹟碑)를 보아 광종 연간(950~975)에 승려 혜명이 조성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이 상의 특징은 우선 크기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으로 불상 예배의 경외심을 돋우어주는 신앙적인 효과가 크다. 이러한 위압감은 얼굴과 손이 신체의 다른 부분에 비해 크게 표현되어 그 효과가 더욱 강조되었다. 상의 크기에 비해 불신의 표현은 소홀하여 어깨가 좁고 가슴이나 허리의 구분이 별로 없는 원통형이다.
천의(天衣)의 표현이나 옷 주름도 매우 단순하다. 이마 위에 늘어진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나 두 귀의 가운데로 걸쳐 있는 보발(寶髮)의 표현, 허리 밑으로 늘어진 앞치마처럼 생긴 둥근 옷자락의 표현 등은 고려초 보살상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들이다.
이러한 특징은 강릉 신복사지석조비로자나불상(神福寺址石造毘盧遮那佛像)이나 연산의 개태사석조삼존불(開泰寺石造三尊佛)의 협시보살상과 같은 고려 초기의 불상들에서도 볼 수 있는데, 관촉사 불상은 보다 도식화된 면을 보여준다.
높은 원통형의 관(아마도 금속관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없어짐) 위에 다시 사각형의 이중 보개를 얹고 있는 것이라든지 연화 가지를 들고 있는 수인(手印) 등은 도상면에서도 매우 특이한 요소이다. 보개는 중국의 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요소로, 아마도 상을 보호한다는 의미 또는 상의 위용을 강조 하기 위한 의도로 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독특한 모습의 보살상은 이후 고려에서 유행하여 비슷한 상이 여럿 조성되었는데, 그중에 부여 대조사(大鳥寺)의 석조보살입상이 대표적이다. 백호를 수리할 때 발견된 묵기(墨記)에 "正德十六年辛巳四月十五日"이라고 적혀 있어 조성시기의 파악에 참고가 된다.
석등(보물 제232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論山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
국보 제323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높이가 18m에 이르는 국내 최대 석불로서 보통 ‘은진미륵’이라고 한다. 미륵불은 석가모니가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56억 7천만 년이 지난 뒤에 나타난다는 부처이다.
절의 역사를 적은 사적비에 의하면 고려 광종 때 반야산에서 큰 돌을 발견하였고, 970년(광종 21)에 혜명대사가 석공 100명과 공사를 시작하여 37년이 지난 1006년(목종 9)에 불상을 완성했지만 너무 커서 이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가 두 명의 동자가 강가에서 흙장난을 하는 모습을 보고서 불상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동자들은 평지에 불상의 아랫부분을 먼저 세운 다음 그 주변에 모래를 높이 쌓아 불상의 가운뎃부분을 위로 밀어 올리고, 다시 그 주변에 모래를 높이 쌓아 불상의 윗부분을 밀어 올리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훗날 이 마을은 모래 사다리라는 뜻으로 사제촌(沙梯村)이라고 불렸다.
불상의 모습은 머리와 손을 강조한 표현 양식으로 인해 자비로운 보살이라기보다 토속적인 신의 모습을 보는 듯 위압적이며, 강한 메시지와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이 불상은 이상적인 우아함을 추구한 신라 불상과 전혀 다른,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을 보이는 새로운 양식으로 불상 전체에서 느끼는 원초적인 힘은 고려 초기에 널리 유행한 불교 예술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10세기 후반 충청도에서 조성된 석조 불상의 모델로 부여 임천의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함께 지방적 특색을 잘 드러내는 불상으로 평가된다.
Stone constraction of the standing statue of Maitreya Bodhisattva in Gwanchoksa Temple, Nonsan
National treasure No. 323
It is the largest stone Buddha in Korea, which is 18 meters tall. It is also called 'Eunjin Maitre'. Maitreya is the future Buddha that will appear 5.94 billion years after the birth of Buddha Shakyamuni, in order to save lives after the teaching of Buddha Shakyamuni perished. According to the historical records, a large stone was found in the mountain of Banya during the Goryeo Dynasty. In the 21st year of the Ming Dynasty (970), the Myeong Dae-jae started construction with 100 stone masons and completed the construction in 37 years (1006). However, they could not figure to erect the Buddha after its completion because of its size, until they got inspired by children from the village playing in the mud. They saw the children setting up the base part of the statue and using piles of mud to put another piece on top of the base statue.
The form of expression of the head and hands is not like a merciful Bodhisattva but is more like a folk pagoda, which is overpowering and bearing strong message and mystery. The aesthetic of this Buddha is distinctively new, completely different from the Shilla dynasty's which pursued the idealistic elegance. The original power felt in the whole Buddha is characteristic of the Buddhist art which is popular in the early Goryeo period. It is a model of a stone Buddha statue that was built in Chungcheong province in the late 1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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