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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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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 普門社西樓(박효수)외 백광훈 백대붕 백문절 백원항 백이정 변중량 박용성 서거정 서경덕 서기 선조대왕 선탄 설문우

by 산산바다 2006. 12. 14.

산과바다

 

 

        普門社西樓 보문사서루   

        보문사 서쪽 누각에서

                                                        朴孝修 박효수

 松間喝道遠尋師 송간갈도원심사   

 春盡山花半存枝 춘진산화반존지   

 簿領堆邊身自老 부령퇴변신자노   

 水雲鄕裏夢常馳 수운향이몽상치   

 祖禪每倚將向心 조선매의장향심   

 民 那堪放手醫 민막나감방수의   

 徒倚未能題勝景 도의미능제승경   

 俗塵環繞下樓時 속진환요하누시   

 

소나무 사이로 길을 물어 멀리 선사를 찾으니

봄이 다하여 나무 가지에 꽃이 반이나 떨어졌네.

장부더미 속에서 스스로 이렇게 늙었고

물과 구름 아득한 고향 꿈속에서 찾아가네

마음은 항상 도력 높은 선사을 향하니

백성이 고통스러운데 어찌 치료를 그칠까

잠깐 들려 이 절경에 시도 쓰지 못하고

루대를 내려올 땐 세상의 풍진에 다시 얽혔네. 

 

 參考事項- 지원되지 않는 글자 "막(병들다 막)자는 부수글자 병들어 기대다 녁 + 莫 (없을 막, 저물 모, 고요할 맥)자임

 

 

 

         弘慶寺 홍경사  

                                                                 白光勳 백광훈

 

 秋草前朝寺 추초전조사     가을 풀 우거진 곳에 옛 절이 묻혀있고

 殘碑學士文 잔비학사문     깨진 비석엔 선비들의 글귀만 남았네

 千年有流水 천년유류수     천년 세월을 두고 시냇물은 흐르고

 落日見歸雲 낙일견귀운     석양에 서서 떠나는 구름만 바라보네. 

 

 參考資料- 前朝(전조) ; 지난 세대의 조정.

 

 

 

 

 

             九日 구일             

             중양절

                                                 백대붕 白大鵬

 

 醉揷茱萸獨自娛 취삽수유독자오  

 滿山明月枕空壺 만산명월침공호  

 傍人莫問何爲者 방인막문하위자  

 白首風塵典艦奴 백수풍진전함노  

 

취기에 수유꽃을 꽂고 홀로 스스로 즐기다가

산에 달빛이 가득하면 빈 술병을 베고 누웠네.

곁을 있는 사람들아 나를 보고 어떤 놈이냐고 묻지 마라.

이 때묻은 세상에서 백발이 된 전함의 노예니라.       

 

 參考事項- 典艦 (전함)은 전함사(典艦司)를 가리킴.  전함사(典艦司)는 전투에 사용할 배들을 관리하고, 선박재료들을 배양하며,  배를 새로 만들거나 수리하는 등의 일을 담당하였다.  초기에 선박관리를 위해 두었던 사수감(司水監)이 1403년(태종 3) 사재감(司宰監)에 합쳐졌다가 1432년(세종 14) 사수색으로 복구하여 도제조(都提調) 1명,  제조(提調) 2명, 별감(別監) 2명, 녹사(錄事) 2명 등을 두었다. 1436년 수성전선색(修城典船色)으로 바뀌면서 별감 4명을 더했으며, 1465년(세조 11) 전함사(典艦司)로 이름을 고쳤다.

 

백대붕 白大鵬 ? - 1592

전함사(典艦司)의 노복(奴僕)으로서 시에 능하였다. 그의 시에는 굴하지 않는 호협(豪俠)한 기상이 있다. 1590년(선조 23) 황윤길(黃允吉)이 일본에 통신사로 갈 때 서장관 허성(許筬)을 따라 다녀왔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을 따라 상주(尙州) 싸움에 참가했다가 전사하였다. 이때 순절한 사람들에게 매우 후한 상이 내려졌는데 백대붕만 남들과 같이 못해 사람들이 애석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方山寺 방산사       

          방산사에서

                                                      白文節 백문절

 

 樹陰無극小溪流 수음무극소계류  

 一炷淸香滿石樓 일주청향만석루  

 苦熱人間方卓午 고열인간방탁오  

 臥看初日在松頭 와간초일재송두  

 

나무 그늘 울창하여 실개천이 흐르고

타오르는 맑은 향 석루에 가득 하네

괴로운 인간 세상 이제 한낮이고

소나무 위 붉은 해 누운 채로 바라보네.

 

 參考事項- 一炷(일주) : 한 심지, 한번 분향하거나 그 향.

 

 

 

          祖江 조강             

          조강에서

 

 小舟當發晩潮催 소주당발만조최   

 駐馬臨江獨冷  주마림강독냉치   

 岸上世情何日了 안상세정하일료   

 前人未渡後人來 전인미도후인래   

 

작은 배로 건너려니 저녁 조수가 밀려들고

말 세우고 강에 서서 쓴웃음 지어보네

언덕 위의 세상 인심 언제나 풀려나

앞사람도 건너지 못하는데 뒷사람이 또 오네.

 

 參考事項- 冷치(냉치) ; 차갑게 눈 여겨 봄. 냉치에서  (치)자는 目(목) + 台(태) 임. 前朝(전조) ; 지난 세대의 조정.

 

 

 

         燕都秋夜 연도추야      

         연도의 가을 밤

                                                       白元恒 백원항

 

 思家步月未成歸 사가보월미성귀  

 庭樹秋深錦葉飛 정수추심금엽비  

 故國三千八百里 고국삼천팔백리  

 夜 雙杵 寒衣 야란쌍저도한의  

 

집 생각에 달빛을 거닐며 돌아가지 못하고

뜰에 가을이 깊어 낙엽이 날리네.

고국은 삼천팔백 리 머나먼 곳이니

밤새 쌍 절구 방아찧고 겨울옷을 다듬이질하네.

 

參考事項- 錦葉 (금엽)은 누렇게 물든 단풍잎을 이름

 

白元恒 백원항 본관(本貫) 수원. 1279년 국자감시(國子監試)에 장원급제하였다. 1311년(충선왕 3) 지언부사(知妗部事)로 별감사(別監使)를 지냈다. 이후 전교령(典校令)· 밀직사(密直使)· 첨의평리(僉議評理) 등을 지냈다. 밀직사로 있을 때 행궁(行宮)의 여비를 착복하였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별감사로 있을 때는 사복영사(司僕令史)를 장살(杖殺)한 죄로 영흥도(靈興島)로 귀양가기도 하였다. 1314년에는 《자치통감》을 진강하였으며, 왕의 구타로 복구장공주(플國長公主)가 죽었다는 소문이 옹인(甕人) 한만복(韓萬福) 등의 무고임을 밝히는 글을 원나라에 올리는 등 충선왕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燕居 연거          

            한가한 생활

                                             白(턱이+頁)正 백이정

 

 矮屋蕭條十 餘 왜옥소조십주여 

 焚香靜讀聖人書 분향정독성인서 

 自從人爵生天爵 자종인작생천작 

 情欲秋林日漸疏 정욕추림일점소 

 

적막한 오두막은 좁기도 하나

향불 피워서 성현의 글을 읽네

사람의 벼슬이 생기면 하늘에서 덕을 내리나니

가을 숲을 보고자 하나 해는 점점 저물어 가네.

 

 參考事項- 十(십주) ; 1주( )는 인도의 자로서 우리나라의 1척 5촌 남짓함.

 지원되지 않는 글자 주(팔꿈치, 척도의 명칭 주)자는 月(肉 부수) + 寸(마디 촌)자임.

 天爵(천작) ; 자연히 세상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날 때부터 갖추고 나온 덕.

 

白(턱이+頁)正 백이정 1247-1323

본관(本貫) 남포(藍浦). 호(號) 이재(彛齋). 1298년(충렬왕 24) 왕을 호종하여 중국 연경(燕京: 베이징)에 가서 10여 년간 체류하며 주자학(朱子學)을 연구하였다. 돌아와 이제현(李齊賢)· 박충좌(朴忠佐) 등 제자를 가르침으로써 한국에 성리학(性理學)을 전파하는 데 공헌하였다. 충선왕 때 상의회의 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가 되었고 나중에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졌다.

 

 

 

            松山 송산          

                                                                    卞仲良 변중량


 松山료繞水영回 송산료요수영회    산은 둘러있고 물은 돌아 흐르는데

 多少朱門盡綠苔 다소주문진록태    기와에 이끼 낀 큰 돌이 있네.

 唯有東風吹雨過 유유동풍취우과    봄바람 비를 몰고 지나간 뒤에

 城南城北杏花開 성남성북행화개    이 마을 저 마을에 살구꽃 피네. 

 

參考事項-繞(요요) : 둘려 있음.

 

 

 

         過落東江 과낙동강

                                                                 박용성

 

 金烏千秋月 금오천추월    금오산에는 변함없는 달뜨고

 落東萬里波 낙동만리파    낙동강에는 끝없는 파랑이 이네

 漁舟何處去 어주하처거    고기 잡는 배여 어디로 가는가

 依舊宿蘆花 의구숙노화    옛날처럼 갈대꽃 속에서 잠드네.

 

박용성

본관 수원(水原). 법명(法名) 진종(辰鍾). 속명 상규(相奎). 속성은 백(白)씨

용성은 법호(法號). 1864.5.8 전라북도 남원(南原) 출생. 16세 때 해인사(海印寺)에 들어가 수도생활 1885 대오, 이후 전국의 명찰(名刹)을 돌면서 심신 연마 1907 중국 불교 순례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불교종단의 정화를 위하여 힘쓰고 대처승의 법통계승(法統繼承)을 인정하는 일본의 종교정책에 반대 1922.9 대각교 선포 한편 불교의 대중화운동을 촉진하기 위하여 저술에 진력하면서 대각사(大覺寺)를 창건하였다. 1940.2.24(음력) 세수 76, 법랍 61세로 입적 저서로 《수심론(修心論)》《귀원정종(歸源正宗)》《용성선사어록(龍城禪師語錄)》 등이 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獨坐 독좌      

         나 홀로 있으면서

                                                              서거정 徐居正

 

 獨坐無來客 독좌무래객    찾는 이 없어 홀로 앉아 있으니

 空庭雨氣昏 공정우기혼    빈 뜰은 고요하고 비 올 듯이 어둡네.

 魚搖荷葉動 어요하엽동    못에 물고기가 요동치니 연잎이 흔들리네

 鵲踏樹梢飜 작답수초번    나무에 까치 앉으니 가지가 너울거리고

 琴潤絃猶響 금윤현유향    거문고 눅어도 소리는 여전히 울리네

 爐寒火尙存 로한화상존    화로는 차가워도 불기는 남아 있고

 泥途妨出入 니도방출입    진흙길에 집 출입이 어려우니

 終日可關門 종일가관문    종일토록 빗장을 걸어두었네.          

 

 

 

        次尹洪州梅花詩韻兼東吳君子 차윤홍주매화시운겸동오군자

        매화시의 운에 맞추어

                                                                서거정 徐居正

 

 梅花如雪雪如梅 매화여설설여매  매화는 눈 같고 눈은 매화 같으니

 白雪前頭梅正開 백설전두매정개  흰 눈이 내리면 곧 매화도 피네.

 知是乾坤一淸氣 지시건곤일청기  천지에 맑은 기운 눈 매화 하나이니

 也須踏雪看梅來 야수답설간매래  모름지기 눈 밟으며 매화 보러오네.

 

서거정(徐居正,1420-1488) 

본관 달성(達城). 자 강중(剛中). 호 사가정(四佳亭). 시호 문충(文忠).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급제, 사제감직장(司宰監直長)을 지냈다.

1451년(문종 1) 사가독서(賜暇讀書) 후 집현전박사(集賢殿博士) 등을 거쳐

1456년(세조 2)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 1457년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 공조참의 등을 역임했다. 1460년 이조참의 때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에 올랐으며, 1464년 조선시대 최초로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이 되었다. 1466년 다시 발영시(拔英試)에 장원한 후 6조(曹)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1470년(성종 1)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으며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이 되고 달성군(達城君)에 책봉되었다. 45년간 여섯 왕을 섬겼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경국대전(經國大典)》《동국통감(東國通鑑)》《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편찬에 참여했으며, 또 왕명을 받고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국역(國譯)했다. 성리학(性理學)을 비롯, 천문 ·지리 ·의약 등에 정통했다. 문집에 《사가집(四佳集)》저서에 《동인시화(東人詩話)》《동문선(東文選)》《역대연표(歷代年表)》《태평한화(太平閑話)》《필원잡기(筆苑雜記)》《골계전(滑稽傳)》이 있으며, 글씨에는《화산군권근신도비(花山君權近神道碑)》(忠州)가 있다. 대구(大邱) 귀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 되었다.

 

 

 

           讀書 독서

                                                     서경덕(徐敬德

 

 讀書當日志經綸 독서당일지경륜   

 歲暮還甘顔氏貧 세모환감안씨빈   

 富貴有爭難下手 부귀유쟁난하수   

 林泉無禁可安身 임천무금가안신   

 採山釣水堪充腹 채산조수감충복   

 영月吟風足暢神 영월음풍족창신   

 學到不疑知快活 학도불의지쾌활   

 免敎虛作百年人 면교허작백년인           

 

큰 뜻을 지니고서 날마다 책을 읽으니

세모가 돌아와도 안씨의 가난이 즐겁네.

부귀는 더러운데 어찌 손댈 것인가

임자 없는 자연에 몸을 의지하리

나물 캐고 고기 낚아 배를 채우고

자연을 노래하며 마음을 맑게 하리

이제 학문이 트여 즐겁기만 한데

헛된 인생살이 편한 듯 하여라.

 

 參考事項- 林泉無禁 (임천무금) ; 자연을 접하여도 금할 사람이 없음.

 

서경덕(徐敬德;1489-1546)

본관 당성(唐城). 자 가구(可久). 호 화담(花潭)·복재(復齋). 시호 문강(文康). 부위(副尉) 서호번(徐好蕃)의 아들. 화담은 그가 송도의 화담에 거주했으므로 사람들이 존경하여 부른 것이다. 가세가 빈약하여 독학으로 공부를 하였고, 주로 산림에 은거하면서 문인을 양성하였으며,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조식(曺植)·성운(成運) 등 당대의 처사(處士) 들과 지리산 ·속리산 등을 유람하면서 교유하였으며, 1544년 김안국(金安國)이 후릉참봉(厚陵參奉)에 천거하였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학문경향은 궁리(窮理)와 격치(格致)를 중시하였으며, 선유의 학설을 널리 흡수하고 자신의 견해는 간략히 개진하였다. 또한, 주돈이(周敦燎)· 소옹(邵雍)·장재(張載) 등 북송(北宋) 성리학자의 학문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단편 논저로는〈원리설(原理說)〉〈이기설(理氣說)〉〈태허설(太虛說)〉〈귀신사생론(鬼神死生論)〉등 네 편이 있는데, 이들 논저에는 ‘이(理)’보다는 ‘기(氣)’를 중시하는 주기철학의 입장이 정리되어 있다. 〈태허설〉에서는 우주의 근본원리를 태허 또는 선천(先天)이라 하고 태허에서 생성 발전된 만상(萬象)을 후천(後天)이라 하였으며,〈귀신사생론〉에서는 인간의 죽음도 우주의 기에 환원된다는 사생일여(死生一如)를 주장하여 기의 불멸성을 강조하고, 불교의 인간 생명이 적멸한다는 논리를 배격하였다. 대표적 문인으로는 허엽(許曄)· 박순(朴淳)·민순(閔純)· 박지화(朴枝華)· 서기(徐起)· 한백겸(韓百謙)· 이지함(李之函) 등이 있으며, 그의 학문은 남북분당기에 북인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황진이 ·박연폭포와 함께 개성을 대표한 송도3절(松都三絶)로 지칭되기도 하며, 황진이의 유혹을 물리친 일화는 시조작품으로도 전해질 만큼 유명하다. 노장사상으로 대표되는 도가사상(道家思想)에도 관심을 보여 도가의 행적을 기록한《해동이적(海東異蹟)》에는 그의 도가적인 성향이 소개되었다. 그의 학풍은 조선 전기의 사상계의 흐름이 주자성리학 일색만이 아니었던 분위기를 보여주며, 그의 문인들 중에서 양명학자나 노장사상에 경도된 인물이 나타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한편, 북한에서는 그의 주기철학을 유물론의 원류로 평가하여 그의 철학을 높이 평가한다. 개성의 숭양서원(崧陽書院)과 화곡서원(花谷書院)에 제향 되었으며, 문집으로는 《화담집(花潭集)》이 있다.

 

 

 

       傷懷呈鄭困齋 상회정정곤재

       아픈 마음으로 정곤재에게 드림

                                                              서기 徐起

 虞韶聞盡淳風去 우소문진순풍거  

 岐鳳鳴殘好事非 기봉명잔호사비  

 天地不回生物意 천지불회생물의  

 凍표何處見春暉 동표하처견춘휘  

 

태평성대 음악소리, 미풍양속은 다 사라지고

성군이 사라지니 좋은 일도 좋은 일 아니구나

세상은 생명의 참된 마음 되살리지 못하고

얼어붙고 굶주린 세상 어느 곳에서 봄볕을 찾을까

 

서기(徐起;1523-1591)

본관 이천(利川).자 대가(待可). 호 고청(孤靑) ·구당(龜堂). 시호 문목(文穆). 제자백가(諸子百家)와 기술이론에도 통달했다. 서경덕(徐敬德) ·이지함(李之驪) 등에게 사사, 이지함과는 각지를 유랑하며 민속과 학문을 연구했다. 그 후 지리산(智異山)과 계룡산(鷄龍山)에서 후학양성에 힘썼다. 지평(持平)에 추증되고, 공주(公州) 충현사(忠賢祠)이 제향되었다. 문집에 《고청유고(孤靑遺稿)》가 있다.

 

 

 

       龍灣書事 룡만서사

       용만에서 짓는 글

                                                     선조대왕 先祖大王

 

 國事蒼黃日 국사창황일   

 誰能郭李忠 수능곽이충   

 去빈存大計 거빈존대계   

 恢復仗諸公 회복장제공    

 痛哭關山月 통곡관산월   

 傷心鴨水風 상심압수풍    

 朝臣今日後 조신금일후   

 寧復更東西 녕부경동서    

 

나랏일이 다급한 오늘날

누가 당나라 곽자의, 이광필의 충성을 해 낼까

나라 찾을 큰 계책을 품은 채 서울을 떠났지만

다시 찾을 무기는 그대들뿐

변방의 산에 뜬 달보고 통곡을 하고

변방의 산에 뜬 달보고 통곡을 하고

압록강에 부는 바람에 마음 상하네

조정 대신들 오늘 이후로는

어찌 다시 동서분당 싸움질 고쳐하겠소.

 

선조대왕(先祖大王;1552-1608) 

초휘는 균(鈞), 휘는 공(伊), 시호 소경(昭敬).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초(楫)의 셋째 아들. 어머니는 하동부 대부인(河東府大夫人) 정씨(鄭氏), 비(妃)는 박응순(朴應順)의 딸 의인왕후(懿仁王后), 계비(繼妃)는 김제남(金悌男)의 딸 인목왕후(仁穆王后)이다. 처음에 하성군(河城君)에 봉해졌는데, 1567년(명종 22) 명종이 후사(後嗣)가 없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처음에는 이황(李滉)· 이이(李珥) 등 많은 인재를 등용하여 국정 쇄신에 노력하였으며, 《유선록(儒先錄)》 《근사록(近思錄)》 《심경(心經)》 《삼강행실(三綱行實)》 등의 전적(典籍)을 간행하여 유학(儒學)을 장려하였다.

한편 조광조(趙光祖)에게 증직(贈職)하는 등, 억울하게 화를 입은 선비들을 신원(伸寃)하였으며 남곤(南袞) 등의 관직을 추탈(追奪)하여 민심을 수습하였다. 그러나 1575년(선조 8) 이후의 동서분당(東西分黨)과 동인(東人)의 남북분당 등 치열한 당쟁 속에 정치기강이 무너져 치정의 방향을 잡지 못하였고, 북변에서는 1583년과 1587년 두 차례에 걸쳐 야인(野人)의 침입이 있었다. 남쪽에서는 왜세(倭勢)가 위협적으로 팽창하여 통신사 황윤길(黃允吉)· 김성일(金誠一)을 왜국에 보내어 사정을 살피게 하였으나 당파를 달리하는 두 사람의 보고가 상반되어 국방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허송하다가 임진왜란을 당하게 되었다. 그는 의주(義州)에까지 피란을 하여야 하는 시련 끝에 명나라의 원조와 이순신 등의 선전(善戰)으로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으나, 전후 7년에 걸친 전화로 서울을 비롯한 전 국토는 유린되고 국가재정은 파탄 직전에 이르렀다. 전후의 복구사업을 할 겨를도 없이 다시 당쟁이 일어 그는 재위 41년간의 태반을 당쟁과 미증유의 전란에 시달리다 그 위를 암군(暗君) 광해군에게 물려주었다.

 

 

 

           臥病 와병            

           병으로 누워

                                                                     禪坦 선탄

 

鞍馬紅塵半白頭 안마홍진반백두    이 세상 살아 온지 반 백년에

楞伽有病早歸休 릉가유병조귀휴    절에서 병이 생겨 내려 와 쉬고 있네.

一江煙雨西山暮 일강연우서산모   해는 저물어 온 강에 안개비 자욱하고

長捲疏簾不下樓 장권소렴불하누 긴 발을 말아 걷고 트인 누각에 있었네.

 

 

 

         驪興淸心樓次韻  여흥청심누차운

         여흥 청심루에서 차운하여 시를 짓다

 

                                                        설문우 薛文遇

 

 萬景森林指點端 만경삼림지점단 

 登臨不覺屢回顔 등림불각누회안 

 長江西去赴滄海 장강서거부창해  

 複嶺北來圍淺山 복영북래위천산 

 透網魚跳寒雨裏 투망어도한우이 

 忘機鷺立瞑煙間 망기로입명연간 

 一生脫却功名累 일생탈각공명루 

 

여기 저기 온갖 숲을 가리키며

누대에 올라 몇 번을 다시 보는지 모르겠네.

긴 강물은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고

봉우리는 북에서 뻗어 작은 산을 에워 쌓네.

내리는 비는 찬데 투명한 그물에 물고기 뛰고

어둑한 안개 속에 시름 잊은 해오라기 우뚝 서 있네.

한 평생의 부귀공명 얽매임을 다 털어 버리고

 

參考事項- 指點(지점) ; 어느 곳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켜 보임. 請約(청약) ; 푸른 도롱이.

 

출처-http://www.ok-hanmun.net/newhome/main-hansi.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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