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ㅌ- 2 태산홍모~ )
8. 태산홍모(泰山鴻毛) 泰山鸿毛
泰山과 기러기의 깃털. 泰山처럼 무겁고 기러기 깃털처럼 가볍다는 뜻으로, 輕重의 差異가 매우 큰 것을 比喩하거나, 사람에게는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떻게 죽느냐가 더 重要할 수도 있다는 것을 比喩
漢武帝 때 太史令 職責을 가진 司馬遷이란 史官이 있었다. 亦是 太史令으로 武帝를 모셨던 그의 아버지 司馬談은 中國 古代부터 當時까지의 歷史를 記錄할 計劃을 하고 많은 資料를 蒐集했다. 하지만 이를 完成하지 못하고 죽게 되자, 아들 司馬遷에게 《史記》의 完成을 懇曲히 付託하는 遺言을 내렸다. 司馬遷은 아버지의 遺志를 받들어 著述에 着手했다. 하지만 그가 歷史 執筆에 沒頭한 지 7年이 經過한 어느 날, 淸天霹靂과 같은 災殃을 當하게 된다.
當時 漢武帝는 自己가 寵愛하는 李夫人의 오빠인 李廣利에게 匈奴 征伐의 戰功을 세우게 해 주기 爲해 名將인 李陵에게 補給을 맡아 李廣利의 뒤를 돕도록 命했다. 그런데 李陵은 武帝의 命을 받들지 않고 스스로 別動隊 5千 步兵을 이끌고 匈奴의 땅에 깊숙이 侵入하여 匈奴의 精兵과 獨者的으로 싸웠다. 李陵은 匈奴 單于의 3萬 精兵과 맞서 무려 數千 名을 射殺했다. 匈奴의 單于는 左賢王과 右賢王의 精兵 8萬을 불러들여 都合 11萬의 兵力으로 李陵을 攻擊했지만 勇敢無雙한 李陵의 軍士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匈奴의 單于는 攻擊을 그치고 撤軍을 決心했다. 그런데 李陵의 部下 中 하나가 잘못을 저지르고 匈奴로 逃亡하여, 李陵 軍隊에는 援兵이 없고 화살도 거의 다 떨어졌다는 軍事機密을 알려 주었다. 이를 안 匈奴의 單于는 말머리를 돌려 大大的으로 李陵을 包圍하고 猛攻을 퍼부었다. 화살과 食糧이 다 떨어지고 戰死者가 半이 넘었으며, 退路를 遮斷當한 데다가 援軍도 오지 않자 李陵은 할 수 없이 降服을 하고 말았다. 部下들의 大部分은 戰死하고, 이리저리 逃亡을 쳐 艱辛히 漢나라로 돌아간 사람은 4百如 名에 不過했다. 匈奴의 單于는 捕虜로 잡힌 李陵의 勇猛함을 높이 사 自己 딸을 아내로 주는 等, 李陵을 厚待하였다.
武帝는 이로 因해 大怒하여 李陵의 老母와 妻子를 誅殺하고 李陵의 罪를 問責하는 御前會議를 열었는데, 어느 누구도 李陵을 庇護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司馬遷은 武帝의 노여움을 暫時나마 누그러뜨려 주기 爲해 李陵의 過去의 戰功과 人品을 들어 그의 投降에 對해 辨明하고 나섰다가 그만 武帝의 震怒를 사, 罪人의 몸이 되어 投獄되고 말았다. 罪目은 ‘誣上罪’, 卽 없는 事實을 꾸며 皇帝를 冒瀆한 罪로서, 死刑에 該當하는 重罪였다.
司馬遷 앞에는 첫째, 死刑을 當하는 것, 둘째, 贖錢 50萬 兩을 물고 풀려나는 方法, 셋째, 腐刑 (宮刑)을 當하고 풀려나는 方法 等 세 가지의 選擇이 놓여 있었다. 司馬遷은 苦心 끝에 腐刑을 選擇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 아버지의 遺志를 받들기 爲해서였다. 司馬遷이 47歲 되던 해였다. 이 事件으로 因해 司馬遷은 더없는 恥辱을 當하고 人生의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司馬遷은 이때의 心情을 〈報任少卿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사람은 언젠가 한 番은 죽는데, 어떤 죽음은 泰山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기러기 털 하나보다 더 가볍기도 한 것은 살아가면서 推求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훌륭한 죽음은 先祖를 辱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自身을 辱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理致에 어긋나거나 얼굴(體面)을 辱되게 하지 않는 것이고, 그다음은 言事에 辱됨이 없게 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몸이 차꼬에 채워져 辱을 當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罪囚服을 입고 辱을 當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罪人이 되어 刑틀을 쓰고 밧줄로 묶여서 棍杖을 맞으며 辱을 當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머리를 깎이고 목에 쇠사슬을 두르고 辱을 當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살갗을 毁損당하고 몸을 잘리는 辱을 當하는 것입니다. 가장 나쁜 것은 宮刑을 받는 것입니다.
(人固有一死, 或重於泰山, 或輕於鴻毛, 用之所趨異也. 太上不辱先, 其次不辱身, 其次不辱理色, 其次不辱辭令, 其次詘體受辱, 其次易服受辱, 其次關木索, 被箠楚受辱, 其次剔毛髮, 嬰金鐵受辱. 其次毁肌膚, 斷肢體受辱. 最下腐刑極矣.)」
이는 〈報任少卿書〉의 一部로, ‘泰山보다 무겁고 기러기 털보다 가볍다.’는 말에서 ‘泰山鴻毛’가 由來하여, 가볍고 무거움의 差異가 매우 큰 것을 比喩하거나 사람에게는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떻게 죽느냐가 더 重要할 수도 있다는 것을 比喩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 報任少卿書〉의 全文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의 부림을 받는 소나 말과 다를 바가 없는 賤한 사람 太史 司馬遷이 삼가 少卿足下에게 再拜하며 말씀드립니다. 지난番에 悚懼스럽게도 書信을 보내셔서 交友 關係를 愼重히 하고 賢明한 사람을 推薦하는 데 힘쓰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懇曲한 뜻을 가지고 제가 따르지 않음을 責望하시는 듯했는데, 世上의 平凡한 사람들의 말을 좇아 제가 어찌 敢히 그렇게 하겠습니까? 저는 비록 才주는 없으나 長者(德望이 있는 사람)의 遺風을 어렴풋이나마 들었습니다. 돌아보면 스스로 몸이 殘敗가 되고 더럽힘에 處해 움직이면 허물을 입고 잘하려고 하면 도리어 損害를 봅니다. 그러니 혼자 愁心에 잠길 뿐,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俗談에 이르기를 ‘누구를 爲해 일하고 또 누구보고 귀를 기울이라고 하겠는가?’ 라고 했습니다. 鍾子期가 죽자 伯牙는 죽을 때까지 거문고를 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선비는 自己를 알아주는 사람을 爲해 忠誠을 다하고, 女子는 自己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爲해 容貌를 꾸밉니다. 저처럼 몸이 亡가지면 비록 才能이 隋侯珠나 和氏璧을 품고 있고, 許由와 伯夷처럼 行하여도 끝내 榮譽롭지 못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 當해 스스로 더럽혀질 뿐입니다. 書信에 回答을 드렸어야 했는데, 工巧롭게 皇上을 따라 東쪽에서 長安으로 오게 되고 또 雜多한 일도 생겼습니다. 만나 뵐 機會도 적었고, 또 매우 바빠 暫時의 틈도 없어 저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없습니다. 只今 少卿께선 앞을 豫測할 수 없는 罪를 지으신 지 한 달이 지나 12月이 가까이 왔습니다. 저는 또 皇上을 따라 雍으로 가게 되었는데, 少卿께서 뜻밖의 不幸한 일(죽음)을 當할까 걱정됩니다. 이렇게 되어 저의 마음속에 있는 憤怒와 苦悶을 끝내 周邊에 알리지 못하게 되면 저世上으로 간 當身의 魂魄에 限없이 遺憾스럽게 될 것입니다. 이제 저의 固陋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랫동안 消息을 끊고 答狀을 하지 않은 것을 허물로 여기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修身이란 智慧가 發現된 것이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은 仁의 發端이며, •주고받는 것은 義의 表現이고,
•辱됨을 羞恥스럽게 여기는 것은 勇敢함의 先決條件이며,
•이름을 세우는 것은 行함의 끝이라고 들었습니다.
선비는 이 다섯 가지를 갖춘 後에 世上에 나갈 수 있고 君子의 行列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災殃 中에서 利益을 貪하는 것보다 더 慘澹한 것이 없고, 슬픔 中에서 喪心하는 것보다 더 甚한 것이 없으며, 行動 中에서 祖上을 辱되게 하는 것보다 더 羞恥스러운 것이 없고, 부끄러움 中에서 宮刑을 받는 것보다 더 甚한 것이 없습니다. 刑을 받고 살아남은 사람이 普通 사람과 比較될 수 없는 것은 只今 世上뿐 아니라 오래 전부터 그랬습니다. 옛날 衛나라 靈公과 宦官인 雍渠가 같이 수레를 타자 孔子께서는 (衛나라를 떠나) 陳나라로 가셨습니다. 商鞅이 宦官인 景監을 通해 (秦나라 孝公을) 만나자 趙良은 商鞅을 寒心스럽게 여겼습니다. 宦官인 趙談이 文帝를 모시고 수레에 오르자 袁絲가 顔色이 變했습니다. 옛날부터 (宦官을) 부끄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普通의 才能을 가진 사람들도 모든 일에 宦官이 關聯되면 心志가 挫折되지 않음이 없다는데, 하물며 氣槪가 있는 선비야 어떠하겠습니까? 只今 비록 朝廷에 人才가 모자라지만 칼과 톱에서 살아남은(宮刑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天下의 豪傑과 人才를 薦擧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先人이 남기신 緖業에 힘입어 皇帝의 수레 밑에서 罪를 기다린 지(官吏가 되어 일을 한 지) 20如 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恒常 스스로 깊이 생각하였지만,
•위로는 忠心과 信義를 다하지 못했으며, 훌륭한 策略이나 才能이 있다는 稱讚도 듣지 못해 스스로 皇上과 密接한 關係를 맺을 수도 없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또한 잘못을 바로잡고 賢明하고 才能 있는 사람을 薦擧하며 隱居하고 있는 훌륭한 선비를 世上에 드러나게 할 수 없었습니다.
•對外的으로는 또한 軍隊를 거느리고 城을 攻擊하고 들에서 싸우며 敵將의 목을 베고 旗를 빼앗는 功勞도 세울 수 없었습니다.
•아래로는 오랜 歲月 功을 쌓아서 尊貴한 官職이나 厚한 俸祿을 받아 親屬이나 親舊들이 榮光으로 생각하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네 가지 中에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하고 苟且히 남의 脾胃나 맞추고 迎合해서 아무런 功勞도 세우지 못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前에 제가 下大夫의 班列에 있을 때 外廷의 末席에 參與하였습니다. 그때 法度를 바로잡지 못하고 생각도 깊이 하지 못하여 只今 몸도 穩全하게 保存하지 못하고 淸掃나 하는 奴隸처럼 賤한 사람에 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고개를 들고 눈썹을 펴고서(義氣 騰騰하게) 옳고 그름을 論하려고 하는 것은 朝廷을 가벼이 보고 當世의 才能 있는 선비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아, 저와 같은 賤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게다가 일의 本末도 쉽게 밝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젊었을 때 좀 出衆한 才能이 있다고 自負했었습니다. 그러나 長成하고 난 後로는 시골구석에서조차도 훌륭한 評判이 없습니다. 多幸히 皇上께서 저의 先親의 緣故로 微賤한 機能(太史의 일)을 이어받게 하시어 宮中을 出入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동이를 이고 하늘을 쳐다볼 수 없다고(두 일을 兼職해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賓客들과의 往來도 끊고 집안일도 잊어버렸습니다. 밤낮으로 不肖한 能力을 다하고 一心으로 職務에 힘써 皇上을 즐겁게 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이 크게 잘못되어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저와 李陵은 함께 宮中에서 일을 했지만, 平素 서로 親하지는 않았습니다. 서로 志向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일찍이 함께 술을 마시며 慇懃한 情을 나눠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李陵의 사람됨을 보건대 非凡한 선비의 品位를 스스로 지키며, 父母를 極盡히 모시고 사람과 사귐에 信義가 있고 財物에 對해서는 淸廉하며 주고받는 데는 義롭고 分別해야 할 일에는 兼讓이 있고 아랫사람에게 恭遜했습니다. 恒常 奮發하여 自身을 돌보지 않았으며, 國家가 危機에 處하면 自身을 犧牲하였습니다. 그가 平素에 쌓은 바(平素의 言行과 態度)를 보고 저는 그가 國士의 風道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릇 臣下 된 者는 온갖 죽음을 무릅쓰고 畢生의 策略을 내어 國家의 어려움을 救하러 달려가야만 비로소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只今은 일을 하다가 한 가지만 잘못해도 自身과 妻子만을 保護하려는 臣下들이 멋대로 그 잘못을 捏造합니다. 저는 정말 이런 일을 마음속으로 痛嘆스럽게 생각합니다. 게다가 李陵은 5千 名도 안 되는 步兵을 거느리고 敵陣 깊숙이 들어가 匈奴 單于의 根據地까지 갔으니, 이는 먹이를 호랑이 입에 늘어뜨린 것과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莫强한 오랑캐에게 挑戰하여 億萬의 軍士를 맞이하여 匈奴의 單于와 連이어 10如 日을 싸워, 죽인 敵軍의 數가 서로 接戰한 軍士의 數보다 많았습니다. 敵軍이 死傷者를 救하러 오지도 못하자 遊牧民(匈奴)의 單于가 매우 두려워하여 左賢王과 右賢王을 모두 부르고, 활 쏘는 者들을 徵集하여 全國의 軍隊가 함께 李陵을 攻擊하고 包圍했습니다. 我軍은 千 里 길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싸우다 화살도 다 떨어지고 길도 막히게 되었는데, 救援兵은 이르지 않고, 士卒들은 죽어 들에 쌓여만 갔습니다. 그러나 李陵이 큰 소리로 軍士들을 慰撫하자 軍士들이 모두 일어나 感激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피를 뒤집어쓰고 눈물을 삼키며(온 얼굴에 피눈물을 뒤집어쓰고) 빈 활을 다시 매, 번득이는 칼날을 무릅쓰고 北쪽을 向해 목숨을 걸고 敵과 싸웠습니다. 李陵이 아직 죽기 前에 使者가 와 報告하자 漢나라에서는 公卿과 王과 諸侯가 술盞을 들어 天子께 祝賀를 드렸습니다.
며칠 後, 李陵이 敗했다는 文書가 傳해지자 天子께서는 食事를 하시기는 하나 맛을 모르시고, 朝會에 參席하나 기쁜 마음이 없으셨습니다. 大臣들도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저는 自身이 卑賤하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天子께서 몹시 슬퍼하시는 것을 보고 저의 자그마한 어리석음이나마 다하려 했습니다. 저는 ‘李陵은 士大夫들과 本來부터 同苦同樂하여 다른 사람들의 死力을 다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點은 비록 옛날의 名將이라 할지라도 李陵보다 못할 것이다. 그가 敵에게 敗하기는 했지만, 그 속뜻을 보건대 適當한 機會를 기다렸다가 나라에 報答하려 한 것이었다. 事態가 이미 어찌할 수 없는 狀況에 이르렀지만, 그가 敵을 무찌른 功勞는 世上에 드러내기에 充分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러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方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저를 부르시고 下問하시어 이러한 뜻으로 李陵의 功勞를 말씀드려 天子께서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火냄을 막아 보겠다는 말을 미처 다 밝히지도 못했는데, 天子께서 저의 뜻을 分明하게 理解하지 못하시고, 제가 貳師將軍 李廣利를 謀陷하고 李陵을 爲해서 辯護한다고 여기시어 저를 獄舍를 맡은 官吏에게 넘겨, 切切한 저의 忠心을 끝내 다 펼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天子를 欺瞞했다고(誣上) 여겨서 法官의 判決에 따르게 되었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돈으로 罪를 代身할 수도 없습니다. 平素 交流하던 사람들 中에도 救해 주려는 이가 없습니다. 左右의 親한 사람들도 한마디 말이 없습니다. 몸이 木石이 아닐진대 홀로 獄吏들과 隊伍가 되어 깊은 監獄에 갇히게 되었으니, 누가 (내 抑鬱함을 代身) 하소연해 주겠습니까. 이것은 少卿께서 親히 본 바이니, 저의 事情이 어찌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李陵은 이미 살아서 降服하여 그 집안의 名聲을 무너뜨리고 말았고, 저 또한 뒤이어 宮刑을 施行하는 蠶室로 불려가 天下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슬프고 슬픕니다. 事情을 一一이 사람들에게 說明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저의 先親께서는 剖符나 丹書를 가질 만한 功勞가 없었습니다. 天文 · 太史 · 律曆과 같은 일을 擔當하였는데, 占치는 일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일은 本來 天子께서 장난삼아 노시던 것으로, 광대를 養成하는 것 같아 世上 사람들이 輕視하는 것이었습니다. 萬若 제가 刑罰에 服從하여 죽음을 當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홉 마리의 소에서 털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으니,(九牛一毛) 땅강아지나 개미의 죽음과 무엇이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사람들은 저를 節槪를 지켜 죽은 사람과 比較하지 않고, 知慧가 모자라 罪가 極에 달해 마침내 스스로 죽음에 나가 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여길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平素에 스스로 세운 것이 그렇게 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언젠가 한 番은 죽는데, 어떤 죽음은 泰山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기러기 털 하나보다 더 가볍기도 한 것은 살아가면서 推求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훌륭한 죽음은 先祖를 辱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自身을 辱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理致에 어긋나거나 얼굴을 辱되게 하지 않는 것이고, 그다음은 言事에 辱됨이 없게 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몸이 차꼬에 채워져 辱을 當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罪囚服을 입고 辱을 當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罪人이 되어 刑틀을 쓰고 밧줄로 묶여서 棍杖을 맞으며 辱을 當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머리를 깎이고 목에 쇠사슬을 두르고 辱을 當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살갗을 毁損當하고 몸을 잘리는 辱을 當하는 것입니다. 가장 나쁜 것은 宮刑을 받는 것입니다. 옛 冊에 이르기를 ‘大夫에게는 刑罰을 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말은 선비의 節槪는 强制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나운 호랑이가 깊은 山에 있으면 모든 짐승이 두려워 떱니다. 그러나 우리나 陷穽에 갇히면 꼬리나 흔들며 먹이를 求하게 되는데, 이는 屈服을 當해 호랑이의 威嚴이 漸漸 작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비는 땅 위에다 線을 그어 監獄으로 삼는다 해도 氣槪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지 않고 나무를 깎아 法官으로 삼는다 해도 論議 때문에 그 審問을 받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이미 計劃된 것이 定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只今 손발이 묶이고 머리에는 刑具를 쓰고 몸을 다 드러내고 채찍을 맞으며 獄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를 當하여 獄吏를 보면 머리를 조아리고 矯導官을 보면 놀라 가슴이 뛰는데 왜 그렇겠습니까. 오랫동안 監獄에 갇힌 棄世 때문입니다. 이러한 地境에 이르렀는데도 辱을 當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所謂 뻔뻔스러운 사람이니, 어찌 貴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文王은 西伯으로 있던 時節에 유리(羑里)의 獄에 갇혔었고, 李斯는 宰相이었을 때 五刑을 받았습니다. 淮陰侯 韓信은 諸侯王이었으나 陳에서 사로잡혔고, 彭越과 張敖는 南面하여 孤라 稱하다가(王 노릇하다가) 罪를 입고 獄에 갇혔습니다. 絳侯 周勃은 呂氏 一族을 平定하여 그 權力이 春秋五覇를 凌駕하였으나 請室에 갇히게 되었고, 魏其侯 竇嬰은 大將이었으나 罪人의 옷을 입고 몸에는 三木 (목, 손, 발에 채우는 刑틀)을 차게 되었습니다. 季布는 朱家의 집에서 목에 칼을 쓴 奴隸가 되었고 灌夫는 居室에서 辱을 當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몸이 王侯將相에 올라 이웃 나라까지 名聲을 떨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罪를 지어 法에 抵觸되었는데도 스스로 決斷(自決)하지 못하고, 世俗 中에서 苟且하게 살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옛날이나 只今이나 똑같은 것이니 어찌 辱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로써 말하건대 勇敢한 것과 怯을 내는 것은 政勢에 左右되는 것이고, 强하고 弱한 것은 形勢에 달린 것이라 할 수 있으니, 깊이 살펴보면 어찌 異常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일찍이 法 앞에 서기 前에 스스로 決斷(自決)하지 못하여 漸次로 衰微해지다가 매를 맞고서야 節槪를 끌어들이려고 하니(自決하려 하니), 亦是 너무 늦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옛사람들이 大夫에게 法을 適用할 때 愼重을 期했던 까닭이 바로 이러한 것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情이란 것은 삶을 貪하고 죽기를 꺼리지 않음이 없으며, 父母를 생각하고 妻子를 돌보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義理에 感動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不得已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只今 저는 不幸히도 父母님을 일찍 여의고 兄弟도 없이 혼자서 외로이 있습니다. 少卿께서 보시기에 제가 妻子를 對하는 것이 어떠합디까? 또한 勇敢한 사람만이 반드시 節槪를 지켜 죽는 것은 아닙니다. 怯이 많은 사람도 義를 思慕하면 어느 곳인들 힘쓰지 못하겠습니까. 제가 비록 怯이 많아 苟且하게 살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또한 生死의 明分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찌 스스로 監獄 안에 갇혀 辱만 받고 있겠습니까. 종이나 婢妾들도 오히려 自決할 수 있는데 어찌 제가 할 수 없겠습니까.
제가 辱됨을 참고 苟且히 목숨을 保存하면서 더러운 監獄에 갇혀서도 오히려 마다하지 않는 것은 내 個人的인 마음을 다 펴지 못하고 鄙陋하게 죽으면 文章을 後世에 남기지 못할 것을 恨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富貴했으면서도 이름이 사라져 간 사람이 記錄할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오직 뜻이 크고 氣槪 있는 非凡한 人物만은 稱頌을 받았습니다. 文王께서는 拘禁되어 (周易)을 풀이하셨고, 孔子께서 困厄을 當하셨을 때 (春秋)를 著述하셨습니다. 屈原은 追放을 當하고서 (離騷)를 지었고, 左丘明은 失明을 하고서 (國語)를 編纂했습니다. 孫子는 다리를 잘린 後에 兵法을 著述했고, 呂不韋가 蜀으로 쫓겨난 뒤에 (呂覽)과 (呂氏春秋)가 이 世上에 傳해지게 되었습니다. 韓非는 秦나라에 갇힌 뒤에 (說難)과 (孤憤)을 지었습니다. 《詩經》 3百 篇도 大抵 聖賢께서 發奮하여 지은 것입니다. 이러한 분들은 뜻이 있었으나 뜻이 막혀 沓沓했고, 自身의 見解와 道理를 傳할 方法이 없어 지난 일을 舒述하여 後世 사람들에게 自身의 뜻을 볼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左丘明은 눈이 멀고 孫子는 다리를 잘려 끝내 쓰임을 받지 못하게 되자 물러나 冊을 써서 마음속의 鬱憤을 풀고 文章을 後世에 傳해 自身의 志向을 드러나게 했던 것입니다.
요즈음 저는 不遜하게도 잘 쓰지도 못하는 文章에 寄託하여 예부터 世上에 傳해 내려오는 漏落된 이야기를 網羅하여 그 行事를 考證하고 始作과 結末을 宗合하여 成功과 失敗, 그리고 興盛과 衰亡의 理致를 考察했습니다. 그리하여 위로는 軒轅(黃帝)에서 아래로는 只今에 이르기까지 表 10編, 本紀 12編, 書8章, 世家 30編, 列傳 70編 等 모두 130編을 지어 하늘과 사람의 關係를 窮究하고 古今의 變化를 通하여 一家의 文章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初稿를 作成하기도 前에 이런 災難을 當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다 完成하지 못한 것을 哀惜하게 여겼기 때문에 極刑을 當했으면서도 怒氣를 띠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이 冊을 著述하여 名山에 간직해 두었다가 저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에게 傳하여 모든 고을과 都市에 알릴 수만 있게 된다면, 제가 以前에 辱됨을 참고 自決하지 않았다는 빚을 報償받게 될 것입니다. 비록 數萬 番 죽임을 當해도 어찌 後悔스러움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智慧로운 사람에게는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지만, 一般 사람에게는 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罪를 지은 者는 處身하기가 어려우며, 賤薄한 사람은 誹謗받기가 쉬운 法입니다. 제가 말로 因해 이러한 禍를 입고 마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祖上을 辱되게 했으니, 무슨 面目으로 父母님의 墓所를 찾아가겠습니까. 數많은 歲月이 쌓인다 해도 허물만 더 甚해질 뿐입니다. 이런 까닭에 근심스런 마음이 하루에도 數없이 反復되고, 집에 있으면 精神이 曚朧하여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 같으며, 門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每番 이러한 恥辱을 생각할 때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려내려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몸이 宦官과 같은 臣下가 되었으니, 어찌 스스로 隱居 生活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暫時 世上의 浮沈을 따르고 時代의 흐름에 順應하여 狂亂과 迷惑에 빠진 사람들과 交流하고 있습니다. 只今 少卿께서는 저에게 賢人을 推薦하고 선비를 薦擧하라고 하셨는데, 이는 저의 個人的인 생각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只今 비록 제가 美辭麗句로 제 自身을 修飾한다 해도 世上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사람들도 不信할 것이니, 도리어 스스로 부끄러움을 取하게 될 뿐입니다. 結局 죽은 後에나 옳고 그름이 定해질 것입니다. 글로써는 저의 생각을 다 쓸 수 없지만, 固陋한 생각을 簡略하게 적으며, 삼가 再拜 드립니다.
(太史公牛馬走, 司馬遷再拜言少卿足下. 曩者辱賜書, 敎以順於接物, 推賢進士爲務. 意氣懃懃懇懇, 若望僕不相師, 而用流俗人之言, 僕非敢如此也. 僕雖罷駑, 亦嘗側聞長者之遺風矣. 顧自以爲身殘處穢, 動而見尤, 欲益反損. 是以獨鬱悒而與誰語. 諺曰, 誰爲爲之, 孰令聽之. 蓋鍾子期死, 伯牙終身不復鼓琴. 何則. 士爲知己者用, 女爲說己者容. 若僕大質已虧缺矣. 雖才懷隨和, 行若由夷. 終不可以爲榮, 適足以見笑而自點耳. 書辭宜答, 會東從上來, 又迫賤事. 相見日淺, 卒卒無須臾之閒, 得竭志意. 今少卿抱不測之罪, 涉旬月, 迫季冬. 僕又薄從上雍, 恐卒然不可爲諱. 是僕終已不得舒憤懣以曉左右, 則長逝者魂魄, 私恨無窮. 請略陳固陋, 闕然久不報, 幸勿爲過. 僕聞之, 脩身者, 智之符也. 愛施者, 仁之端也. 取與者, 義之表也. 恥辱者, 勇之決也. 立名者, 行之極也. 士有此五者, 然後可以託於世, 而列於君子之林矣. 故禍莫憯於欲利, 悲莫痛於傷心, 行莫醜於辱先, 詬莫大於宮刑. 刑餘之人, 無所比數, 非一世也, 所從來遠矣. 昔衛靈公與雍渠同載, 孔子適陳. 商鞅因景監見, 趙良寒心. 同子參乘, 袁絲變色. 自古而恥之. 夫以中才之人, 事有關於宦豎, 莫不傷氣, 而況於慷慨之士乎. 如今朝廷雖乏人, 奈何令刀鋸之餘, 薦天下豪俊哉. 僕賴先人緖業, 得待罪輦轂下, 二十餘年矣. 所以自惟, 上之, 不能納忠效信, 有奇策才力之譽, 自結明主. 次之, 又不能拾遺補闕, 招賢進能, 顯巖穴之士. 外之, 又不能備行伍, 攻城野戰, 有斬將搴旗之功. 下之, 不能積日累勞, 取尊官厚祿, 以爲宗族交遊光寵. 四者無一遂, 苟合取容, 無所短長之效, 可見如此矣. 嚮者, 僕亦常廁下大夫之列, 陪外廷末議. 不以此時引維綱, 盡思慮, 今已虧形, 爲掃除之隸, 在闒茸之中. 乃欲仰首伸眉, 論列是非, 不亦輕朝廷, 羞當世之士邪. 嗟乎. 嗟乎. 如僕尙何言哉. 尙何言哉. 且事本末, 未易明也. 僕少貧不羈之材, 長無鄕曲之譽. 主上幸以先人之故, 使得奏薄伎, 出入周衛之中. 僕以爲戴盆何以望天, 故絶賓客之知, 亡室家之業. 日夜思竭其不肖之才力, 務一心營職, 以求親媚於主上. 而事乃有大謬不然者夫. 夫僕與李陵, 俱居門下, 素非能相善也. 趣舍異路, 未嘗銜盃酒, 接慇懃之餘懽. 然僕觀其爲人, 自守奇士, 事親孝, 與士信, 臨財廉, 取與義, 分別有讓, 恭儉下人. 常思奮不顧身, 以徇國家之急. 其素所蓄積也, 僕以爲有國士之風. 夫人臣出萬死不顧一生之計, 赴公家之難, 斯以奇矣. 今擧事一不當, 而全軀保妻子之臣, 隨而媒糱其短. 僕誠私心痛之. 且李陵提步卒不滿五千, 深踐戎馬之地, 足歷王庭, 垂餌虎口, 橫挑彊胡. 仰億萬之師, 與單于連戰十有餘日, 所殺過當. 虜救死扶傷不給, 旃裘之君長咸震怖, 乃悉徵其左右賢王, 擧引弓之人, 一國共攻而圍之. 轉鬪千里, 矢盡道窮, 救兵不至, 士卒死傷如積. 然陵一呼勞, 軍士無不起, 躬自流涕, 沫血飮泣, 更張空弮, 冒白刃, 北嚮爭死敵者. 陵未沒時, 使有來報, 漢公卿王侯皆奉觴上壽. 後數日, 陵敗書聞, 主上爲之食不甘味, 聽朝不怡. 大臣憂懼, 不知所出. 僕竊不自料其卑賤, 見主上慘愴怛悼, 誠欲效其款款之愚. 以爲李陵素與士大夫絶甘分少, 能得人死力, 雖古之名將不能過也. 身雖陷敗, 彼觀其意, 且欲得其當而報於漢. 事已無可奈何, 其所嶊敗, 功亦足以暴於天下矣. 僕懷欲陳之而未有路. 適會召問, 卽以此指推言陵之功, 欲以廣主上之意. 塞睚眦之辭, 未能盡明, 明主不曉, 以爲僕沮貳師, 而爲李陵遊說, 遂下於理. 拳拳之忠, 終不能自列. 因爲誣上, 卒從吏議. 家貧貨賂不足以自贖, 交遊莫救, 左右親近, 不爲一言. 身非木石, 獨與法吏爲伍, 深幽囹圄之中, 誰可告愬者. 此眞少卿所親見, 僕行事豈不然乎. 李陵旣生降, 隤其家聲, 而僕又佴之蠶室, 重爲天下觀笑. 悲夫, 悲夫. 事未易一二爲俗人言也. 僕之先, 非有剖符丹書之功, 文史星歷, 近乎卜祝之閒. 固主上所戲弄, 倡優所畜, 流俗之所輕也. 假令僕伏法受誅, 若九牛亡一毛, 與螻蟻何以異. 而世又不與能死節者, 特以爲智窮罪極, 不能自免卒就死耳. 何也. 素所自樹立使然也. 人固有一死, 或重於太山, 或輕於鴻毛, 用之所趨異也. 太上不辱先, 其次不辱身, 其次不辱理色, 其次不辱辭令, 其次詘體受辱, 其次易服受辱, 其次關木索, 被箠楚受辱, 其次剔毛髮, 嬰金鐵受辱, 其次毁肌膚, 斷肢體受辱, 最下腐刑極矣. 傳曰, 刑不上大夫, 此言士節不可不勉勵也. 猛虎在深山, 百獸震恐. 及在檻穽之中, 搖尾而求食, 積威約之漸也. 故士有畵地爲牢, 勢不可入, 削木爲吏, 議不可對, 定計於鮮也. 今交手足, 受木索, 暴肌膚, 受榜箠, 幽於圜牆之中. 當此之時, 見獄吏則頭槍地, 視徒隸則正惕息, 何者. 積威約之勢也. 及以至是, 言不辱者, 所謂强顔耳. 曷足貴乎. 且西伯伯也, 拘於羑里. 李斯相也, 具於五刑. 淮陰王也, 受械於陳. 彭越 · 張敖, 南面稱孤, 繫獄抵罪. 絳侯誅諸呂, 權傾五伯, 囚於請室. 魏其大將也, 衣赭衣, 關三木. 季布爲朱家鉗奴, 灌夫受辱於居室. 此人皆身至王侯將相, 聲聞鄰國. 及罪至罔加, 不能引決自裁, 在塵埃之中. 古今一體, 安在其不辱也. 由此言之, 勇怯, 勢也. 强弱, 形也, 審矣, 何足怪乎. 夫人不能早自裁繩墨之外, 以稍陵遲, 至於鞭箠之間, 乃欲引節, 斯不亦遠乎. 古人所以重施刑於大夫者, 殆爲此也. 夫人情莫不貪生惡死, 念父母, 顧妻子. 至激於義理者不然. 乃有所不得已也. 今僕不幸, 早失父母, 無兄弟之親, 獨身孤立. 少卿視僕於妻子何如哉. 且勇者不必死節. 怯夫慕義, 何處不勉焉. 僕雖怯懦, 欲苟活, 亦頗識去就之分矣. 何至自沈溺縲紲之辱哉. 且夫臧獲婢妾, 由能引決, 況僕之不得已乎. 所以隱忍苟活, 幽於糞土之中而不辭者, 恨私心有所不盡, 鄙陋沒世, 而文采不表於後世也. 古者, 富貴而名摩滅, 不可勝記, 唯倜儻非常之人稱焉. 蓋文王拘而演周易, 仲尼厄而作春秋. 屈原放逐, 乃賦離騷. 左丘失明, 厥有國語. 孫子臏脚, 兵法脩列. 不韋遷蜀, 世傳呂覽. 韓非囚秦, 說難孤憤. 詩三百篇, 大抵聖賢發憤之所爲作也. 此人皆意有鬱結, 不得通其道. 故述往事, 思來者. 乃如左丘無目, 孫子斷足, 終不可用, 退而論書策, 以舒其憤. 思垂空文以自見. 僕竊不遜, 近自託於無能之辭, 網羅天下放失舊聞, 略考其行事, 綜其終始, 稽其成敗興壞之紀. 上計軒轅, 下至於玆, 爲十表, 本紀十二, 書八章, 世家三十, 列傳七十, 凡百三十篇, 亦欲以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 草創未就, 會遭此禍. 惜其不成, 是以就極刑而無慍色. 僕誠以著此書, 藏諸名山, 傳之其人, 通邑大都, 則僕償前辱之責. 雖萬被戮, 豈有悔哉. 然此可爲智者道, 難爲俗人言也. 且負下未易居, 下流多謗議. 僕以口語遇遭此禍, 重爲鄕里所戮笑, 以汗辱先人, 亦何面目復上父母丘墓乎. 雖累百世, 垢彌甚耳. 是以腸一日而九迴, 居則忽忽若有所亡, 出則不知其所往. 每念斯恥, 汗未嘗不發背沾衣也. 身直爲閨閤之臣, 寧得自引於深藏岩穴邪. 故且從俗浮沈, 與時俯仰, 以通其狂惑. 今少卿乃敎以推賢進士, 無乃與僕私心刺謬乎. 今雖欲自雕琢曼辭以自飾, 無益於俗, 不信, 適足取辱耳. 要之, 死日然後是非乃定. 書不能悉意, 略陳固陋, 謹再拜.)
산과바다 이계도
'**한자성어(漢字成語)** > 고사성어(故事成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사성어(故事成語) (ㅍ- 1 파경~ ) (0) | 2026.03.07 |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ㅌ- 3 토사구팽~ ) (0) | 2026.03.07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ㅋ- 1 쾌독파거~ ) (0) | 2026.03.07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ㅊ- 5 치주안족사~ ) (0) | 2026.03.07 |
| 고사성어(故事成語) (ㅊ- 4 춘추필법~ ) (0) | 2026.03.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