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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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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故事成語) (ㅊ- 5 치주안족사~ )

by 산산바다 2026. 3. 7.

산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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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성어(故事成語) (- 5 치주안족사~ )

 

 

31. 치주안족사(巵酒安足辭) 卮酒安足辞

의 술을 어찌 辭讓하겠는가? 술을 하거나 억지로 하는 술을 마실 때 使用하는 말로 쓰인다.

 

最初天下統一秦始皇이 죽은 , 到處에서 나라의 暴惡政治抗拒하는 反亂이 일어났다. 나라의 貴族 出身項梁(項羽叔父)反亂을 일으켜 나라 懷王孫子를 찾아 懷王으로 擁立하고 나라를 再建했다. 邊方下級 官吏亭長不過했던 劉邦小規模反亂을 일으켜 活躍타가 項梁에게 加擔했다. 얼마 後 項梁나라와 싸우다가 戰死했고, 項羽實勢浮上했다. 懷王나라의 首都 咸陽中心으로 하는 首都圈 地域關中 땅을 먼저 征服하는 사람을 그곳의 으로 삼겠다고 公約했다. 懷王이 이런 提案을 했을 當時, 아직은 나라가 天下主人으로서 莫强軍士力保有하고 있었기 때문에 大部分將帥들은 선뜻 나서지 않았으나, 項羽劉邦과 함께 關中攻擊하기를 希望하고 나섰다. 懷王寬厚한 사람을 보내 로써 나라 百姓을 다스려 그들의 協力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을 將軍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老將들의 意見에 따라 關中을 칠 征西軍將軍劉邦任命했다. 項羽巨鹿에서 나라 軍隊와 맞서 激戰을 벌이고 있을 때, 劉邦征西軍을 이끌고 關中出發했다. 劉邦은 여러 들을 平定하는 한便 百姓들을 鎭撫해 가면서 咸陽까지 進擊했다.

 

이러는 사이 나라 內部에서는 權力掌握宦官 趙高가 스스로 皇帝가 되기 二世皇帝逼迫하여 自殺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따르려 하지 않자, 할 수 없이 얼마 前 自己計略으로 自殺, 秦始皇의 큰아들인 扶蘇의 아들 子嬰擁立했다. 皇帝하지 않고 스스로 秦王子嬰計略을 써 趙高殺害하고, 그의 목을 梟首했으며, 그의 三族해 버렸다. 그러고는 마침 咸陽進擊해 오는 劉邦에게 나라를 들어 降服하고 말았다. 劉邦子嬰降服을 받아들이고 咸陽入城했다. 劉邦宮中에 쌓여 있는 엄청난 財物後宮을 가득 채운 美女들에 誘惑을 떨치기 어려웠지만 더 먼 未來해 손 하나 대지 않았고, 咸陽에서 軍士를 물려 覇上駐屯했다. 그리고 民心을 얻는 데만 힘을 기울였다. 代表的인 것이 나라의 煩多하고 無慈悲을 모두 하고 約法三章發表하여 民心收拾한 것이다. 約法三章이란 사람을 殺害死刑하고, 사람을 하거나 남의 物件을 훔친 는 그에 한 죗값을 받는다는 簡略法令이다.

 

便, 巨鹿戰鬪에서 나라 將軍 章邯降服으로 勝利項羽는 서둘러 關中으로 했다. 그런데 項羽關中到着했을 때에는 이미 劉邦秦王 子嬰으로부터 降服을 받고, 咸陽入城하여 터를 잡고 民心까지 다스려 놓은 狀態였다. 函谷關에서 劉邦에게 沮止하자 項羽憤怒는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項羽英布(黥布)를 시켜 函谷關攻略하고, 鴻雁川陣營構築했다. 狀況이 이렇게 되자 劉邦左司馬 曹無傷劉邦背信하고 項羽에게 사람을 보내, 劉邦咸陽 宮殿金銀寶貨美女들을 自己 所有로 만들고 關中으로 함을 받으려 한다고 告者질했다. 이 말을 들은 項羽는 크게 하여 劉邦軍士屠戮하기로 決心했다. 劉邦을 제대로 본 范增劉邦天子氣運을 가지고 있으므로, 機會處置해야 한다며 項羽를 부추겼다.

 

그날 밤, 項羽叔父 項伯은 일찍이 亡命 生活을 하면서 身世를 진 張良이 걱정되어 劉邦本陣에 찾아가 張良을 만나 現在 펼쳐지고 있는 危急狀況을 알려 주었다. 劉邦項伯極盡待接했고, 及其也 劉邦은 사람은 口頭査頓 關係를 맺게 된다. 劉邦自己가 먼저 咸陽接受하고 宮殿寶物 倉庫한 것은 項羽에게 바치기 함이었고, 函谷關封鎖한 것은 다른 盜賊들의 侵入을 막기 한 것이었다고 辨明을 늘어놓으면서, 項羽에게 잘 말해 달라고 懇曲付託했다. 項伯欣快許諾하고 內日 아침 劉邦項羽를 찾아가 謝罪를 할 것을 했다. 項伯은 돌아가 劉邦辨明해 주었고, 項羽가 많이 누그러졌다.

 

當時 項羽軍隊精兵 40으로, 10을 거느린 劉邦相對가 될 수가 없었다. 劉邦元來 項羽咸陽 入城沮止하고 關中 땅의 이 될 생각이었지만, 勢 不利實感하고 어쩔 수 없이 項羽에게 咸陽 入城했다. 劉邦于先 살아남는 것이 重要하다고 생각하고, 直接 項羽陣營을 찾아가 自臣이라 하며 項羽에게 咸陽을 바쳤다. 어젯밤 項伯으로부터 仔細說明을 들었던 項羽, 劉邦이 이처럼 몸을 굽히자 마음이 녹아내렸다. 氣分이 좋아진 項羽劉邦을 머물게 하고 잔치를 벌였다. 이것이 바로 有名鴻門宴, 卽 鴻門의 잔치이다.

 

잔치 자리에서 項羽謀士 范增이 여러 차례 劉邦을 죽이라고 信號를 보냈지만 項羽는 이를 默殺했다. 范增信號를 보낸 方法을 드는 것이었다. 은 한쪽이 터진 圓形佩玉으로 , 卽 決行을 하라는 뜻을 內包하고 있다. 方法失敗로 돌아가자 范增項羽四寸項莊에게 劍舞를 추게 하면서 劉邦殺害하도록 했지만, 에는 같은 便項伯이 나서서 함께 劍舞를 추면서 劉邦保護했다. 部分史記에서는 다음과 같이 記錄하고 있다.

 

沛公(劉邦)은 다음 날 아침 一百如 騎를 거느리고 項王(項羽)을 만나러 가서 鴻門에 이르러 謝過를 했다. “將軍이 죽을 힘을 다해 나라를 攻略하여, 將軍黃河쪽에서 싸우고 黃河쪽에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내 뜻과는 달리 먼저 關中에 들어와 나라를 무너뜨리고 여기에서 다시 將軍을 뵙게 되었습니다. 이제 小人輩의 말로 將軍사이에 틈이 기고 말았습니다.” 項王이 말했다. “그것은 沛公左司馬 曹無傷이 한 말이오.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게 했겠소.” 項王은 그날로 沛公을 머무르게 하고 더불어 마시자고 했다.

 

項王項伯쪽으로 앉고, 亞父쪽으로 앉았다. 亞父范增이다. 沛公쪽으로 앉고 張良西쪽에서 劉邦을 모셨다. 范增이 여러 차례 項王에게 눈짓을 하며 차고 있던 을 들어 세 차례나 信號를 보냈지만 項王默默히 있으면서 하지 않았다. 范增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 項莊을 불러 말했다. “君王의 사람됨이 차마 하지 못하는 性格이다. 네가 들어가 앞에 나아가 (沛公에게)長壽祈願해 주고, 祈願이 끝나면 劍舞를 추겠다고 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 沛公(칼로)쳐서 죽여라. 그러지 않으면 너나 우리가 모두 捕虜가 되고 말 것이다.” 項莊이 들어가 長壽祈願말했다. “君王沛公께서 술을 드시는데 群衆에는 즐길 거리가 없으므로 劍舞를 출까 합니다.” 項王許諾했다. 項莊이 칼을 빼어 들고 춤을 추기 始作했다. 그러자 項伯도 칼을 뽑아 들고 춤을 추면서 自己 몸으로 沛公掩護했다. 項莊은 끝내 칠 수가 없었다. 그러자 張良軍門으로 가 樊噲를 찾았다. 樊噲가 물었다. “오늘 行事는 어떻습니까?” 張良이 말했다. “일이 하게 되었소. 只今 項莊이 칼을 뽑아 들고 劍舞를 추고 있는데 그 뜻이 沛公에게 있소.” 樊噲가 말했다. 정말 多急狀況이군요. 제가 들어가 運命을 함께해야겠소. 樊噲卽時 칼을 차고 防牌를 들고 軍陣으로 들어갔다. 지키고 있는 護衛兵들이 을 엇갈리게 들고 막으며 들여보내려 하지 않았다. 樊噲가 그들의 防牌를 비껴 치자 護衛兵들이 땅에 엎어졌다. 樊噲는 안으로 들어가 帳幕을 들추고 西쪽을 해 서서는 눈을 부릅뜨고 項羽를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이 위로 솟고 두 눈은 부릅떠 찢어질 것만 같았다.

 

項羽가 말했다. “壯士, 더 마실 수 있겠는가?” 樊噲가 말했다. “죽음 또한 하지 않는데, 술을 어찌 辭讓하겠습니까. 나라 은 호랑이와 승냥이의 마음이 있어 사람을 죽여도 다 죽이지 못할까 걱정하고, 刑罰을 내려도 무겁지 않을까 두려워했으므로 天下가 모두 그를 背叛했습니다. 懷王께서 여러 將帥먼저 나라를 쳐부수고 咸陽에 들어가는 이 되리라.’盟約하셨습니다. 只今 覇公이 먼저 나라를 쳐부수고 咸陽에 들어갔지만 히 터럭만큼도 가까이하지 않았고, 宮室封鎖하고 돌아와 覇上에서 駐屯하며 大王께서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將帥를 보내 關門을 지키도록 한 것은 盜賊들의 出沒豫期치 않은 일을 對備한 것입니다. 애써 苦生功勞가 이처럼 높은데, 諸侯하는 은 내리지 않으면서 小人들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요. 이는 滅亡나라를 이어 가는 것일 뿐이니, 大王께서는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項羽答辯도 하지 못하고 말했다. “앉게.”

(噲卽帶劍擁盾入軍門. 交戟之衛士欲止不內, 樊噲側其盾以撞, 衛士扑地, 噲遂入, 披帷西嚮立, 瞋目視項王, 頭髮上指, 目眥盡裂. 項王按劍而曰, 客何爲者. 張良曰, 沛公之參乘樊噲者也. 項王曰, 壯士, 賜之卮酒. 則與斗卮酒. 噲拜謝, , 立而飮之. 項王曰, 賜之彘肩. 則與一生彘肩. 樊噲覆其盾於地, 加彘肩上, 拔劍切而啗之. 項王曰, 壯士, 能復飮乎. 樊噲曰, 臣死且不避, 巵酒安足辭. 夫秦王有虎狼之心, 殺人如不能擧, 刑人如恐不勝, 天下皆叛之. 懷王與諸將約曰, 先破秦入咸陽者王之. 今沛公先破秦入咸陽, 毫毛不敢有所近, 封閉宮室, 還軍霸上, 以待大王來. 故遣將守關者, 備他盜出入與非常也. 勞苦而功高如此, 未有封侯之賞, 而聽細說, 欲誅有功之人. 此亡秦之續耳, 竊爲大王不取也. 項王未有以應, , .)

 

이런 機會를 틈타 劉邦便所에 가는 척 하고 나와 自身陣營으로 逃亡했다. 남아 있던 張良項羽에게 白璧玉 을 바치고 劉邦해 잘 辨明해 주었다. 范增에게는 玉斗를 바쳤다. 范增玉斗를 받아 땅에 내던지고 칼을 뽑아 玉斗를 내리쳐 깨 버리며 長嘆息을 했다. “, 더벅머리 아이놈과는 일을 꾀할 수가 없구나. 앞으로 項王(項羽)天下를 빼앗을 자는 바로 沛公(劉邦)이 되겠구나! 우리는 이제 捕虜가 되고 말 것이야.” 劉邦自己 陣營으로 되돌아와 한 첫 째 일은 曹無傷處刑한 일이었다.

 

이 이야기는 史記 項羽本紀)에 나오는데, 結局 劉邦을 죽이지 않은 項羽劉邦에게 天下를 빼앗기고 말았으며, 自身自殺一生을 마감하고 말았다.

 

 

32. 칠보지재(七步之才)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를 지을 수 있는 . 아주 뛰어난 글주를 이르는 말이다.

 

三國時代 魏文帝 曹丕는 그의 아우 東阿王 曹植을 몹시 미워했다. 曹植은 어렸을 때부터 聰明했는데, 히 열 살 때 벌써 훌륭한 를 지을 程度로 글주가 뛰어났다. 曹操는 셋째인 曹植寵愛하여 한때는 曹丕를 제쳐 놓고 後嗣로 삼을 생각까지 했었다. 曹丕는 어릴 때부터 동생 曹植의 글재주를 猜忌해 온 데다 後嗣 問題에서도 밀릴 뻔했던 적이 있어서 曹植을 미워했다.

 

어느 날, 曹丕曹植을 해칠 目的으로 일곱 걸음을 걸을 동안 를 짓지 못하면 大罪로 다스리겠다고 윽박질렀다. 曹植은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完成했다.

 

콩을 삶아서 국을 끓이는데

콩을 걸러서 국물을 부었다

콩대는 솥 밑에서 타고

콩은 솥 안에서 울고 있구나

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어찌하여 이다지도 히 삶아 대는가.

 

를 들은 魏文帝 曹丕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文帝嘗令東阿王七步作詩, 不成者行大法. 應聲便爲詩曰, 煮豆持作羹, 漉菽以爲汁, 萁在釜下燃, 豆在釜中泣, 本自同根生, 相煎何太急. 帝深有慚色.)

 

이 이야기는 世說新語 文學에 나온다. 어떤 資料에는 로 쓴 것도 있다. 境遇 된장을 걸러 국물을 부었다.’解釋된다.

 

元來 6句節로 되어 있는 이 七步詩三國演義해 아래와 같은 4句節로 된 해졌다.

 

煮豆燃豆萁 :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 :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本是同根生 : 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相煎何太急 : 어찌하여 이다지도 히 삶아 대는가?

 

에서 由來하여 글주가 뛰어난 것을 일러 七步之才七步成章이라 한다. 그리고 骨肉相殘을 가리켜 콩을 삶는데 콩깍지를 땐다는 뜻의 煮豆燃萁’, 콩깍지와 콩이 서로 삶아 댄다는 뜻의 萁豆相煮’, 서로 삶아 대는 일이 어찌 그리 하냐는 뜻의 相煮何急이라고 한다

 

 

33. 칠종칠금(七縱七擒) 七纵七擒

일곱 번 놓아주고 일곱 번 사로잡다. 相對方自己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것을 比喩

 

諸葛亮쪽의 나라 征伐計劃하고 있는데, 南蠻孟獲叛亂을 일으켰다. 諸葛亮北伐을 하기 背後平定하기 孟獲征伐하기로 決定했다. 出戰에 앞서 馬謖諸葛亮에게 進言했다. “어리석은 所見이 있으니 丞相께서는 헤아려 들으시기 바랍니다. 南蠻은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山勢險峻한 것을 믿고 服從하지 않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비록 이擊破한다 해도 來日이면 또다시 背叛할 것입니다. 丞相大軍이 이르면 저들이 틀림없이 服從할 것입니다만, 軍士들이 돌아오는 날로 쪽의 曹丕征伐하러 갈 것이므로, 蠻兵들이 우리 內部가 비었다는 것을 알면 재빨리 反逆할 것입니다. 무릇 用兵을 하는 데는 마음을 攻略하는 것이 上策이며, 攻略하는 것은 下策입니다. 心戰上手兵戰下手이니, 바라건대 丞相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服從시켜야 할 것입니다.” 孔明感嘆하여 말했다. “참으로 幼常 (馬謖)은 내 肺腑를 꿰뚫어 보는구나!”

 

孔明卽時 馬謖參軍으로 삼고 大軍統率하여 곧장 進擊해 나갔다. 諸葛亮作戰을 펴 孟獲을 쉽게 生捕했고, 孟獲抑鬱하다며 놓아주었는데도 다시 싸워 진다면 降服하겠다고 했다. 諸葛亮 孟獲을 풀어 주었다. 孔明孟獲을 놓아 보내자, 지켜보던 여러 將帥들이 물었다. “孟獲南蠻傀首입니다. 이제 多幸히 사로잡아 南方이 겨우 平定되었는데, 丞相께서는 무슨 생각으로 놓아주십니까?” 孔明이 웃으며 對答했다. “내가 孟獲을 사로잡는 것은 주머니 속의 物件을 꺼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오. 孟獲眞心으로 降伏하면 南蠻은 저절로 平定될 것이오.” 孟獲은 또 生捕되었지만 如前不服했다. 諸葛亮은 또 孟獲을 풀어 주었다가 다시 사로잡곤 했는데, 그러기를 무려 일곱 차례나 했다. 마침내 感服孟獲眞心으로 承服하면서 더 以上 對抗하지 않았다. 諸葛亮孟獲에게 蜀漢官職을 주었는데, 나중에는 御使中丞에까지 이르렀다.

 

이 이야기는 三國演義8788, 89, 90에 나오는데, 諸葛亮孟獲을 일곱 사로잡고 일곱 풀어 주었다는 이야기에서 七縱七擒由來했다. 七縱七擒事實이 아닌 虛構이다. 諸葛亮南蠻平定한 일에 三國志 · 蜀書 諸葛傳에서는 다음과 같이 簡略하게 記錄하고 있다.

 

3, 諸葛亮軍士들을 거느리고 南征을 했다. 그해 가을 모두 平定했다.(三年春, 亮率衆南征, 其秋悉平)

 

 

34. 침어낙안(沈魚落雁) 沉鱼落雁

물고기가 잠기고 기러기는 떨어진다. 美人比喩的으로 形容하는 말이다.

 

원숭이는 揙狙를 암컷으로 여기고, 고라니는 사슴과 交尾를 하고,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더불어 노닌다. 毛嬙麗姬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긴다. 하지만 물고기는 그들을 보면 깊이 들어가고 새는 그들을 보면 높이 날고 고라니나 사슴은 그를 보면 逃亡을 친다. 이 넷 에 어느 것이 天下의 올바른 아름다움을 알고 있겠는가? 내가 보기엔 仁義의 실마리와 是非의 갈림이 뒤섞여 어지럽기만 하다. 그러니 내 어찌 그 區別을 알겠는가?

(猿猵狙以爲雌, 麇與鹿交, 鰌與魚遊. 毛嬙麗姬, 人之所美也. 魚見之深入, 鳥見之高飛, 麇鹿見之而決驟. 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 自我觀之, 仁義之端, 是非之塗, 樊然殽亂. 吾惡能知其辯.)

 

莊子 齊物論에 나온다. 이는 齧缺王倪問答 形式으로 되어 있는데, 앞의 이야기는 王叡가 한 말이다. 毛嬙麗姬가 사람이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물고기는 그들을 보면 깊이 들어가고, 새는 그들을 보면 높이 난다.’는 말에서 沈魚落雁由來했는데, 이 말은 元來人間에게는 美人으로 보이는 것이라 해도 물고기와 새에게는 단지 두려운 存在일 뿐이라는 뜻으로 쓰였으나, 아름다운 美人이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齧缺임금 때의 賢人으로 許攸의 스승이며 王叡弟子이다. 王叡 亦是 堯임금 때의 賢人으로 齧缺의 스승이다. 毛嬙越王愛妾이고 麗姬晉獻公寵姬이다.

 

沈魚落雁의 또 하나의 出典秦獻公寵姬 麗姬이다. 麗姬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그의 아름다움에 壓倒되어 물고기는 물속으로 깊이 숨어 버리고 기러기는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隊列에서 떨어졌다.(沉魚落雁)’고 하며, ‘밝은 달은 구름 뒤로 모습을 감추고 꽃은 부끄러워 시들었다.(閉月羞花)’고 한다. 이처럼 沈魚落雁閉月羞花麗姬美貌極讚한 말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이에 正確根據는 밝혀지지 않았다

 

 

35. 침어낙안(浸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

浸魚落雁容貌, 閉月羞花의 아름다움 이라는 말로 女人의 아름다움을 表現한다.

 

中國 古代 4大美人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이들에 한 재미있는 故事를 보면

 

(1) 浸魚 ~ 서시(西施)

개울가에서 손手巾을 씻는 西施를 보자 물고기가 헤엄치는 걸 잊고 물속에 가라앉았다.

 

西施中國有名古代 中國 4大 美女, 本名施夷光이다. 中國에서는 西子라고도 한다. 紀元前 5世紀頃 (春秋戰國時代末期)의 사람이다. 現在의 저장(浙江省) 사오싱(紹興) 近處(現在의 주지(諸曁市)) 出身이다.

越王 勾踐吳王 夫差와의 戰爭에서 敗北하자 나라 勾踐參謀 范蠡戰略에 따라 敗戰處理貢物나라 夫差女人이 된다. 西施에게 빠진 夫差나라를 끝까지 없애야 한다고 主張하던 伍子胥를 죽이면서까지 나라 警戒疎忽하게 되고, 結局 國力을 키운 나라에 敗亡하게 된다.

나라가 敗亡한 뒤의 西施越王 勾踐後宮이 되어 寵愛를 받지만 勾踐正夫人에게 秘密裏除去當했다고 한다.

 

(2) 落雁 ~ 왕소군(王昭君)

집떠나 故鄕 생각이 물밀 듯 밀려와서 을 탔다. 王昭君소리를 듣고 한무리의 기러기가 날개 움직이는 것을 잊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王昭君 (紀元前 1世紀)匈奴呼韓邪 單于, 復株累若鞮 單于閼氏(單于), 本來 漢나라 元帝宮女였다. 이름은 (出典漢書)이다. , 昭君이라고 하여 普通 王昭君이라고 불리며 後日 司馬昭하여 明妃, 王明君 等으로도 일컬어졌다. 荊州 南郡(現在湖北省 沙市) 出身으로 楊貴妃, 西施, 貂蟬과 함께 古代 中國 四大 美人의 한 사람에 손꼽힌다.

前漢元帝 時代, 匈奴呼韓邪 單于나라의 女姓閼氏(匈奴의 말로 君主)로 달라고 해, 王昭君選擇되어 그의 長男을 낳았다. (當時狀況으로 보아 邊方勢力을 달래기 해 보냈다는 도 있다) 以後 呼韓邪 單于死亡하자, 當時 匈奴慣習대로 아들 復株累若鞮 單于가 되어 둘째 딸을 낳았다. 漢族父親妻妾을 아들이 물려받는 것을 꺼려하여, 이것이 王昭君悲劇으로 民間傳承되었다. 荒凉草原地帶大部分이었던 匈奴의 땅에서, 王昭君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故鄕땅을 그리며 를 남겼는데, 詩句 中"봄은 왔으나 봄같지 않구나 (春來不似春)"라는 句節匈奴 땅의 봄을 맞이했음에도 故鄕 땅의 봄같지 않아 더욱 사무치게 故鄕이 그립다는 그哀絶心情이 잘 나타나 있다. 只今도 이 詩句春來不似春은 그리움의 引用句로 널리 쓰이고 있다. 以後 72가 되던 해에 을 얻어 돌무덤에 安葬되었는데, 사람들은 그 무덤을 일컬어 昭君墓 或은 겨울에도 이 무덤가에만 푸른풀이 있어 '靑塚'이라고 부른다

 

(3) 閉月 ~ 초선(貂蟬)

花園에서 달을 보고 있을 때에 구름 한 조각이 달을 가리웠다. 이에 西施養父人 王允이 말하기를 "달도 내 딸에게는 할 수가 없구나.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고 하였다.

 

貂蟬西施, 王昭君, 楊貴妃와 함께 中國4大 美人 가운데 한 사람이다.

三國志演義에서 王允收養딸로 登場董卓呂布 사이를 離間질 시키는 役割을 하는 것으로 有名하다. 이는 呂布董卓侍女艶聞을 가졌다는 正史記錄王允呂布를 부추겨 董卓을 죽이게 했다는 事實演義에서 脚色한 것이다.

 

(4) 羞花 ~ 양귀비(楊貴妃)

楊貴妃花苑에 가서 꽃을 鑑賞하며 憂鬱함을 달래는데 無意識中含羞花를 건드렸다. 含羞花는 바로 잎을 말아 올렸다. 唐明皇이 그' 꽃을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움'讚嘆하고는 그'絶對佳人'이라고 했다.

楊貴妃(719~ 756)唐 玄宗後宮이자, 며느리이다.楊貴妃의 이름은 楊玉環이며, 735年 玄宗武惠妃의 아들인 18王子 壽王 李瑁 17宮闕에 들어온다. 뛰어난 와 노래에 藝術家였던 그는 740年 宦官 高力士紹介로 만난 玄宗의 눈에 들게 된다. 玄宗은 그華山道士出嫁시켜 壽王에게서 빼내고, 안의 道敎寺院 太眞宮을 짓고 다시 이곳을 管理하는 女冠으로 불러 들인다. 이때 楊貴妃의 나이 22, 玄宗57였다.

 

745楊玉環27貴妃가 되면서, 나라는 서서히 끝자락을 달리게 된다. 唐 玄宗 初期에는 開元를 이룩할 程度로 어진 政治를 하였지만, 楊貴妃登場以後 楊貴妃 一家專橫始作되면서, 나라는 漸漸 힘을 잃게 된다. 楊貴妃의 세 오빠에게 모두 높은 벼슬을 주었고, 의 언니들 모두를 國夫人策命程度로 그寵愛하였다. 中 楊貴妃四寸 오빠인 양소(楊釗)玄宗에게 '國忠'이라는 이름을 下賜받고, 丞相地位에까지 올라 國政專橫人物宦官 高力士談合하여 唐 玄宗政治에서 關心을 멀어지게 한다.

747年 節度使 安祿山登場하여, 楊貴妃는 그와 해지게 된다. 새로운 權力者登場危機를 느낀 楊國忠牽制를 하게 되는데, 이것은 安史이 일어나 나라가 滅亡하는 原因이 된다.

 

中國사람들이 表現測面이 있으나 아주 韻致있게 表現하기도 한다.

* 浸魚 ~ 고기가 아름다움에 놀라 헤엄치는 것을 있고 가라 앉았다..

* 落雁 ~ 기러기가 날아가다가 그소리를 듣고 날개짓하는 것을 잊고 땅에 떨어졌다.

* 閉月 ~ 달이 부끄러워서 구름뒤로 숨었다.

* 羞花 ~ 꽃이 부끄러워 그잎을 말아 올렸다.

에서 閉月(貂蟬)三國志登場하며 實存人物은 아니지만 나머지 3實存했던 것으로 해 진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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