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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故事成語) (ㅌ- 3 토사구팽~ )

by 산산바다 2026. 3. 7.

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글 목록

 

 

 고사성어(故事成語) (- 3 토사구팽~ )

 

 

9.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쓸모가 없어진 사냥개를 잡아먹게 된다는 뜻

 

中國 春秋戰國時代나라의 覇權을 차지한 王 勾踐逸話에서 생겨난 成語 이다. 勾踐이 된 後 自身이 되는 데 가장 큰 을 세운 范蠡文宗各各 上將軍丞相으로 任命했다.

하지만 范蠡나라를 脫出하여

나라로 逃亡後 文宗에게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高鳥盡良弓藏) 狡猾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먹는다'(狡兎死良狗烹)라는 內容便紙文宗에게 避身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文宗나라에서 避身하는 것을 躊躇했다.

後 勾踐에게 叛逆疑心을 받고

自決하고 말았다.

兎死狗烹은 이로부터 由來成語

必要할 때에는 쓰다가 必要가 없게 될 때에는 野薄하게 버리는 境遇를 뜻할 때 쓰이게 되었다.

以後 漢나라 高祖 劉邦楚王 韓信

逸話에서 또 登場한다.

楚王 韓信項羽部下鍾離眛

몰래 숨겨주고 있다고 疑心劉邦韓信에게 鍾離眛押送하라고 指示했다.

韓信은 이를 拒絶했고, 劉邦으로 韓信困難해지자 鍾離眛自殺하고

韓信은 하는 수 없이 鍾離眛의 목을 가지고 劉邦을 찾아갔으나, 劉邦韓信에게 叛逆 嫌疑를 씌워 處罰하려고 했다. 이 때 韓信'狡猾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좋은 사냥개도 삶아 먹힌다고 嘆息했다.

 

10. 토포악발(吐哺握髮)

나는 한 番 沐浴할 때 세 머리를 거머쥐고(一沐三握髮), 番 食事할 때 세 番 飮食을 뱉으면서(一飯三吐哺) 찾아오는 天下賢人들을 놓치지 않고자 했다.”

 

中國 周나라 周公人才를 얻고자 沐浴食事도 제대로 못했다는 故事. 周公이 나라의 基盤을 닦을 수 있었던 秘訣人才를 널리 함에서다.

周公孔子마저 내가 오래도록 꿈에서 周公을 보지 못하다니(吾不復夢見周公)”라면서 欽慕했던 聖人이다. 吐哺握髮傳通三國志 曹操 (155?220)로 이어진다.

 

은 높아지기를 마다하지 않고, 물은 깊어지기를 마다하지 않는 , 周公처럼 人才를 얻기 해 먹던 飮食을 뱉는다면, 天下가 나를 服從하고 따르리(山不厭高, 海不厭深, 周公吐哺, 天下歸心).”

 

曹操赤壁大戰을 앞두고 읊은 短歌行末尾. 人才에 허기져 하는 그의 心理吐露한 것이다.

 

中國에서 曹操가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세밑에 中國 허난(河南)에서 曹操의 무덤이 發掘됐다는 消息이다. 그는 죽기 72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무덤인 疑塚을 만들게 했다고 한다. 魏武王恒常 使用하던 호랑이를 때려잡는 큰 (魏武王常所用格虎大戟)’이라 새겨진 石牌發見됐다지만 眞僞 論亂如前하다.

 

曹操 무덤 發掘 消息해지자 中國의 한 媒體는 발 빠르게 輿論調査實施했다. 曹操亂世奸雄이라고 評價한 사람은 8.9%인 데 , 78.1%世上號令英雄이라고 했다. 中國人들은 曹操肯定的으로 評價할까? 品三國著者 이중톈(易中天)曹操用人術에서 을 찾는다. 曹操赤壁大戰 2年 後210부터 세 차례에 걸쳐 널리 人才하는 求賢令頒布했다. 名聲出身보다 實力才能重視人才만을 登用한다政策이다.

 

 

11. 투편단류(投鞭斷流) 投鞭断流

채찍을 던져 의 흐름을 끊다. 兵力이 많고 强大함을 比喩

 

4世紀 初 西晉滅亡할 무렵, 中國北部西部根據地를 두고 있던 匈奴, , , , 鮮卑 等 五胡들이 다투어 中原 地域에 그들의 政權樹立, 마침내 長江 上流黃河 流域에는 무려 16의 나라가 割據하는 樣相을 띠게 되었는데, 이를 五胡十六國이라 한다. 에서도 四川 · 陝西 · 甘肅省 一帶에 살고 있던 異民族氐族苻氏가 세운 나라가 가장 큰 나라였는데, 歷史에서는 이를 前秦 或苻秦이라 한다.

 

372(高句麗 小獸林王 2)前秦의 중 順道高句麗派遣하여 佛經佛像을 보내는 , 처음으로 韓半島佛敎人物로 우리에게 알려진 前秦王 苻堅은 여러 民族團結시켜 天下를 아우르고자 하는 野望을 가지고 있었다. 하여 韓族, 匈奴族, 鮮卑族, 羌族, 羯族 等 여러 民族指導者重用했는데, 에서도 符堅顧問으로 그를 도와 北中國統一하는 데 重要役割을 한 사람은 韓族 出身王猛이었다. 王猛軍隊 改革, 敎育 振興, 水利施設 開發, 農業養蠶振興全力을 기울이는 , 富國强兵 政策을 펼쳤다. 符堅天下 統一意志王猛의 뛰어난 政策으로 前秦强大國이 되었으며, 北中國大部分統一하게 되었다. 苻秦이 이렇게 强盛하게 된 것은 戰國時代統一했던 나라 以後, 700如 年 만에 實施强力改革開放 政策 德分이었다. 이제 天下版圖前秦東晉對決壓縮되었다. 東晉보다 훨씬 優勢戰力을 가지고 있는 符堅은 솟아오르는 東晉 征伐慾心을 누를 수가 없었다. 하여 符堅重臣 會議를 열고 意見을 물었다. 大部分臣下들이 反對 意見을 내었는데, 권익은 東晉에는 賢臣이 많다.’理由, 石越별자리를 보니 南晉하는 데 適合하지 않다. 그리고 東晉長江險峻함에 依據하고 있고 그 朝廷混亂徵候도 없으므로 軍士를 움직이는 것은 不利하다.’出兵反對했다.

 

그러나 符堅軍隊함만 믿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듣기로 나라 武王紂王을 칠 때, 때를 거스르고 별자리를 했다고 한다. 天道幽遠하여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옛날 夫差諸侯國들에 威嚴을 떨쳤지만 句踐에게 滅亡했다. 孫權 (仲謀)은 온 나라를 潤澤하게 했다. 孫皓三代業積繼承했으나 龍驤將軍(王浚)의 호통에 임금과 臣下들이 손을 뒤로 묶여 降服했다. 長江이 있다고 해도 그게 어찌 堅固要塞이겠는가. 나의 大軍으로 에 채찍을 던져 넣게 하면 그 흐름을 끊을 수 있다. (長江)險固함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吾聞武王伐紂, 逆歲犯星. 天道幽遠, 未可知也. 昔夫差威陵上國, 而爲句踐所滅. 仲謀澤洽全吳, 孫皓因三代之業, 龍驤一呼, 君臣面縛. 雖有長江, 其能固乎. 以吾之衆旅, 投鞭於江, 足斷其流. 何險之足恃.)

 

石越이 말한 별자리와 長江險固함에 反駁하여 한 말로, 별자리는 믿을 바가 못 되고, 長江天險要塞로 삼았던 吳王 夫差, 三國時代 吳主 孫皓結局 滅亡했다는 이야기이다. 符堅步兵 60, 騎兵 27大軍을 거느리고 首都 長安出發했다. 그러나 符堅謝玄이 이끄는 東晉軍에게 淝水에서 크게 洛陽으로 逃亡쳤다가 結局 部下에게 殺害되고 말았으며, 前秦西秦滅亡當했다.

 

이 이야기는 晉書 苻堅載記에 나온다. ‘投鞭斷流는 처음에는 虛張聲勢를 부린다는 뜻으로 쓰였지만, 에는 軍隊莫强한 것을 比喩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12. 투필종융(投筆從戎) 投笔从戎

붓을 던지고 軍隊를 따르다<戰爭터로 나아가다>. 文人이 글쓰기를 抛棄하고 從軍하는 것을 比喩

 

漢書編纂班固同生 班超는 어렸을 적부터 勤勉하였으며, 여러 書籍을 두루 涉獵하였다. 하지만 집안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 官家文書를 베껴 주거나 남의 書籍筆寫해 주고 번 돈으로 生計維持했다. 그의 兄 班固校書郞任命되어 어머니와 함께 洛陽으로 移住하였으나, 집안은 如前히 가난하여 班超官廳에서 文書를 베껴 주는 일을 하여 어머니를 奉養했다.

 

어느 날, 班超官廳에서 文書를 베껴 쓰는 일을 하다가 문득 붓을 던져 버리고 嘆息했다. “大丈夫로서 이렇다 할 뜻과 方略이 없다면 마땅히 傅介子張騫을 본받아 異域에서 을 세워 封侯의 자리를 얻어야지, 어찌 붓과 벼루 사이에서 오래 지낼 수 있겠는가.” 左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久勞苦, 嘗輟業投筆嘆曰, 大丈夫無他志略, 猶當效傅介子張騫, 入功異域以取封侯, 安能久事筆硯間乎. 左右皆笑之.)

 

後 班超軍官이 되어 匈奴와 싸워 크게 이겼고, 西域出使해서는 무려 31동안이나 머물면서 匈奴支配를 받던 西域 國家들을 征服하고, 50如 個의 나라들과 關係改善하는 , 나라의 勢力擴張하는 데 을 세웠다.

 

이 이야기는 後漢書 班超傳에 나온다. 傅介子漢昭帝 西域龜玆樓蘭匈奴聯合하여 나라 官吏射殺하고 財物掠奪하자 大宛使者로 가 漢昭帝을 받들어 樓蘭龜玆에게 責任을 묻고 匈奴使者를 죽이는 을 세운 사람이고, 張騫漢武帝을 받고 西域에 가다가 匈奴에게 잡혀 10如 年間苦生 끝에 逃亡하여 온 사람으로, 실크로드를 開拓한 사람이다. ‘投筆從戎棄筆從戎이라고도 한다. 나라 魏徵詩 述懷(出關이라고도 함)投筆從戎이란 成語利用中原 땅에 처음 帝位 다툼이 일어나자, 붓을 던지고 戰爭에 나갔다.(中原初逐鹿, 投筆事戎軒.)句節이 나온다.

 

 

13. 추고(推敲)

미는 것()과 두드리는 것(). 詩文字句를 여러 고치는 것을 말한다.

 

賈道가 처음 科擧를 보러 서울에 가던 길에 하루는 나귀 등에서 새는 못가에 있는 나무에 깃들이고 중은 달빛 아래 을 두드린다.’라는 詩句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를 쓸까 하다가 다시 를 쓸까 하며 決定을 못 하고 나귀 위에서 때때로 손짓으로 밀거나() 두드리는() 動作을 하니, 보는 사람마다 異常하게 생각했다. 때마침 京尹 벼슬에 있던 韓愈行次를 만났는데, 賈道는 그 行次 隊列3안에까지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左右의 사람들이 賈道를 붙들고 韓愈의 앞에 끌고 갔다. 賈道詩句한 이야기를 했다. 韓愈는 말을 세워놓고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賈道에게 가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두 사람은 고삐를 나란히 하고 돌아가 함께 하며 여러 날을 함께 머무르며 親舊가 되었다.

(島初赴擧京師. 一日於驢上得句云, 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 始欲着推字, 又欲作敲字, 煉之未定, 遂於驢上吟哦, 時時引手作推敲之勢, 觀者訝之. 時韓愈吏部權京兆, 島不覺衝至第三節. 左右擁至尹前, 島具對所得詩句云云. 韓立馬良久, 謂島曰, 作敲字佳矣. 遂與幷轡而歸, 共論詩. 道留連累日, 與爲布衣之交.)

 

이 이야기는 劉公嘉話引用湘素雜記苕溪漁隱叢話前集, 그리고 鑒戒錄 賈忤旨에 나오는데, 賈道()’ 를 쓸까 ()’ 를 쓸까를 골똘히 생각한 일에서 由來하여 推敲詩文字句를 고치는 것을 比喩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賈道推敲한 이야기는 唐詩紀事 題李凝幽居에도 나오는데, 여기에는 全文이 실려 있다.

 

閑居少鄰竝 : 閑暇롭게 사니 함께하는 이웃도 드물고

草徑入荒園 : 풀숲 오솔길은 荒廢한 뜨락까지 한다.

鳥宿池邊樹 : 새는 못가 나무에 깃들이고

僧敲月下門 : 중은 달빛 아래 을 두드린다.

過橋分野色 : 다리를 건너니 들판의 깔도 나뉘고

移石動雲根 : 돌을 옮기니 구름의 뿌리가 움직인다.

暫去還來此 : 暫時 떠났다가 다시 이곳에 돌아오니

幽期不負言 : 그윽한 期約 말을 어기지나 말았으면

 

賈道(779843)浪仙으로 河北省 范陽 사람이다. 여러 차례 科擧應試하였으나 失敗하고 중이 되었다가, 811年 洛陽에서 韓愈交流하면서 還俗하였다. 다시 벼슬길에 오르기를 希望하여 進士 試驗應試하였으나 及第하지 못하고, 837四川 長江縣主簿가 되었고, 이어 四川 安岳縣 普州司倉參軍으로 轉職되었다가 으로 죽었다. 作品 으로는 詩集 賈浪仙長江集(10)이 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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