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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한자성어(漢字成語)**/한국 고사성어(韓國 故事成語)

한국 고사성어(韓國 故事成語) (ㅁ-2)

by 산산바다 2026. 2. 21.

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글 목록

 

 

 한국 고사성어(韓國 故事成語) (-2)

 

 

11. 면수화의(棉授花衣)

木花는 꽃과 옷을 提供하여 준다는 말. 두 가지를 다 이롭게 해주는 境遇를 뜻한다.

 

* 韓國人智慧. 朝鮮五百年野史.

朝鮮 英祖妃 貞聖皇后別世하여 3年喪을 치자 英祖直接 새로운 中殿을 간택(揀擇)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綺羅星 같은 士大夫閨秀들을 차례로 둘러보는데, 閨秀方席해 맨바닥에 앉아 있었다. 異常히 여긴 英祖가 물었다.

어찌하여 方席에 앉지 않고 그리 앉아 있는가?”

, 비록 딸이라고는 하오나 아버지의 존함(尊銜)이 맨땅 위에 있는데 제가 方席 위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王妃揀擇할 때는 그 閨秀가 뉘 의 딸인지 알아보기 쉽도록 저마다의 方席 머리에 그 아버지의 名牌를 두었는데 그를 두고 한 말이었다. 英祖는 그 閨秀思慮 깊은 行動感歎했다.

英祖가 다시 여러 閨秀들에게 試驗하여 물었다.

世上에서 가장 깊은 것은 무엇인가?”

어떤 閨秀골짜기가 가장 깊다 하고, 어떤 閨秀는 물이 가장 깊을 것이라 하는 等 對答句句 했으나 唯獨 조금 전의 그 閨秀만이 다르게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 가장 깊습니다.”

무슨 理由인가?”

事物의 깊이는 자로 잴 수가 있으나 사람의 마음은 잴 수 없기 때문입니다.”

英祖가 또 물었다.

그럼 世上에서 가장 좋은 꽃은 무엇인가?”

어떤 閨秀는 복숭아꽃이 좋다 하고, 牡丹꽃이 좋다 하고, 海棠花가 좋다고 하는데, 閨秀만은 또 달랐다.

木花 꽃이 가장 좋습니다.”

英祖가 그 까닭을 물었다.

다른 꽃은 한때만 보기 좋으나 木花 꽃은 피었을 때는 꽃이 좋고, 나중에는 솜이 되거나 무명베가 되어서 世上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주니 좋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智慧로운 對答을 들은 英祖 感歎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中殿으로 맞으니 바로 貞純皇后였다.

훗날 正祖가 이 일을 想起하여 朝官들에게 화복화(花復花)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蔡濟恭 한 사람만이 맞혔다 한다.

閨秀大闕로 들어가니 그 衣裳을 만들기 하여 尙宮이 나인(內人)에게 치를 재라 했다. 그러자 尙宮에게 無禮함을 指摘하여 말하였다.

내가 이제 中殿이 될 몸이니 尙宮直接 재어야 되지 않는가?”

의 나이 겨우 15때의 일이었다.

 

 

12. 명여우슬(命如牛蝨)

소의 목숨이나 이의 목숨은 같다. 動物이나 작은 微物이나 그 生命價値는 똑같이 重要하다는 뜻

 

* 이야기 韓國歷史, 韓國人物史.

高麗 高宗 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文章家 李奎報(1168~1241)에게 한 親舊가 찾아와서 말했다.

엊저녁에 어떤 사람이 큰 소를 죽이는 것을 보았네. 光景이 너무 慘酷하여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더군. 앞으로는 盟誓코 쇠고기나 돼지고기 같은 動物의 고기는 먹지 않으려고 하네.”

李奎報가 말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불이 이글이글 피어오르는 火爐를 끼고 앉아 옷의 이를 잡아 태워 죽이는 것을 보았는데, 惻隱해서 못 견디겠더군. 그래서 다시는 이를 잡지 않겠다고 作定했네.”

아니 그건 微物이 아닌가. 나는 큰 짐승이 죽는 것을 보고 비참(悲慘)한 생각이 들어서 한 말인데, 그대는 하찮은 微物을 들먹여 딴청을 부리니 이는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닌가?”

親舊를 내자 李奎報가 말했다.

그게 아닐세! 사람은 勿論 , , 돼지, 염소 같은 畜生과 하찮은 벌레까지 피를 가진 모든 生物은 죽기를 치 않네. 그런데 어찌 큰 것만 대수(大事)이겠는가. 소의 죽음이나 이의 죽음이나 모두 마찬가지라는 말일세. 그래서 를 들어 말한 것이니 여워하지 말게. 내 말을 納得하지 못하겠으면 그대의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게 엄지손가락만 아프고 나머지는 안 아플까? 한 몸에 있는 것은 크건 작건 모두 피와 살로 되어 있기에 그 아픔은 같은 것일세. 더구나 소와 이는 獨立生命體인데 어떤 生物은 죽음을 싫어하고, 어떤 生物은 죽음을 좋아하겠는가? 돌아가서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게나. 그래서 달팽이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鳳凰처럼 볼 수 있는 마음을 기르게. 그런 뒤에 다시 하기로 하세.”

李奎報傑出한 시호(詩豪로서 호탕(豪宕)하고 활달(豁達)詩風으로 當代를 풍미(風靡)했다. 그는 와 거문고와 술을 즐겨 自稱 삼혹호(三酷好) 先生이라고 했다. 白雲居士였다.

 

 

13. 모과불문(母過不聞)

어머니 허물을 듣지 못하겠다.

 

* 里鄕見聞錄.

壬辰倭亂 때의 義兵長이었던 文烈公(諡號) 重峯() 趙憲(1544~1592)은 일찍이 그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繼母愛情을 주지 않았다. 할머니가 울며 어루만지고 말씀하기를, "繼母가 사납게 하는 것을 내가 가슴 아파한다."라고 하니, 文烈公外家집에 발길을 끊고 다시는 가지 않았다. 할머니가 "네가 왜 오지 않느냐?"라고 하니, 文烈公對答하기를, "子息을 두고 어머니의 허물을 말하니, 차마 못 들을 일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안 온 것입니다."라고 하니, 할머니가 奇特하게 여겨 다시 말하지 아니하였다. 뒤에 壬辰倭亂하여 義兵을 일으켜 壯烈하게 나라 해 죽으니, 世上 사람들이 일컫기를 重峯先生이라 하였다. 七百義塚이 아직도 錦山에 있다.

 

 

14. 모녀상곡(母女相哭)

어머니와 딸이 부둥켜안고 울다.

 

* 三國史記.

孝女 知恩은 홀로 그 어머니를 奉養하느라, 나이 서른둘이 될 때까지 집을 가지 않았다. 품팔이를 하기도 하고 求乞하기도 하였으나 困窮함을 하지 못하자, 富者집에 가서 스스로 몸을 팔아 奴婢가 되어, 費用으로 어머니를 奉養하였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지난에는 飮食形便없었지만 맛이 좋았는데, 요즈음은 飮食은 좋아졌지만 가슴을 찌르는 듯하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구나."라고 하니, 딸이 事實대로 여쭈어 말하였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어미 때문에 네가 奴婢가 되었으니 빨리 죽는 게 낫다."라고 하고는 어머니와 딸이 서로 서럽게 울었는데, 花郞 孝宗이 노닐다가 그 光景을 보고는, 一 百석을 주어 報償해서 다시 兩人으로 回復시켜 주었다. 眞聖女王(在位 887~897)이 이를 듣고 아름답게 여겨 그 마을에 정표(旌表) 하되 효양방(孝養坊)이라 일컫고 그 집의 賦役免除해 주었다.

 

 

15. 모비지덕(貌比智德)

外貌보다는 智慧于先이라는 말로, 高麗時代將帥 강감찬(姜邯贊)을 두고 이루어진 말이다. 사람은 못생긴 外貌보다는 智慧이 더 重要하다는 뜻이다.

 

* 韓國史, 高麗史列傳.

高麗時代에 나라를 危機에서 名將 강감찬(姜邯贊 948~1031)三韓壁上功臣 姜弓珍의 아들이다.

그에게는 태어날 때를 비롯해서 몇 가지 傳說해 오고 있다.

그는 漢陽冠岳山 近處에서 태어났다. 後世 사람들은 그가 태어난 곳을 落星臺라 이름 지었는데. 그가 태어날 때 별이 내려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가 태어날 무렵, 高麗政勢는 매우 어지러웠다. 隣接해 있는 거란(契丹)이라는 나라가 虎視眈眈 侵略을 일삼자, 高麗 사람들은 뛰어난 將帥가 나타나 그들을 물리쳐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자네, 어젯밤에 우리 동네로 큰 별 하나가 내려오는 것 봤나?”

그랬어? 뛰어난 將帥라도 태어나려나?”

어느 날, 冠岳山 아래 한 마을 사람들은 별이 내려앉은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便 姜弓珍의 집안에서도 夫婦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젯밤 꿈에 별이 제 품 속에 와서 안겼어요.”

그래요? 그건 틀림없이 胎夢이오. 當身이 드디어 훌륭한 아이를 낳을 模樣이구려.”

이렇게 해서 姜邯贊이 태어났는데 아이는 못생긴 얼굴에 키가 작아 동네 아이들이 놀리고 같이 놀아주지도 않았다.

. 쟤는 왜 저렇게 생겼을까? 얼굴이 보다 더 얽었잖아.”

姜邯贊은 이렇게 조롱(嘲弄)과 모욕(侮辱)을 받으면서 자라야 했다. 마음속으로는 本人의 잘못이 아닌데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處地를 안타깝게도 여겼다.

어머니는 그런 姜邯贊의 마음을 읽고 따뜻이 다독여 주었다.

姜邯贊의 어릴 때 이름은 殷川이었다.

殷川, 얼굴이 못생겼다고 해서 못할 일이 무엇이며, 또 잘났다 한들 기쁠 것이 무엇이겠느냐? 重要한 것은 智慧가 있고, 知識이 많아야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고 남에게 尊敬을 받는 것이란다. 只今부터는 얼굴이 못생겨 창피(猖彼)하다 생각하지 말고 이 없음을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하여라.”

어머니, 그럼 어떻게 하면 智慧가 많고, 이 높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學問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야 智慧가 깊어지고, 마음을 넓게 써야 이 쌓이는 것이며, 큰 일을 成就할 수 있는 것이다. 自身을 두고 스스로 높다고 생각하면 自慢心이고, 남이 너를 높게 봐야 眞實로 높은 사람일 것이니라. 外貌의 잘 생기고 못생긴 것은 아무 相關이 없는 것이야.”

어머니의 말씀을 깊이 새겨들은 殷川은 그대부터 書堂에 들어가 글을 배우기 始作하고, 남보다 더 많은 努力을 기울여 마침내 높은 境地에 이르렀다.

못생겼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더욱 努力하여 學識智慧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姜邯贊儒學勿論, 佛經兵書까지 通達하여 高麗 成宗 때에는 科擧에서 甲科一等으로 뽑혀 禮部侍郞 等 要職을 지냈다. 1018, 契丹大軍侵攻해 왔을 때는 많은 軍士들이 降服主張하였으나 이를 反對하고 맞서 싸워 큰 功勳을 세움으로서(龜州大捷) 으로부터 으로 만든 꽃을 여덟 송이나 下賜받는 榮光도 얻었다. 그가 크게 成功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敎訓 때문이었다.

高麗史列傳에도 못생긴 姜邯贊이 오히려 훌륭한 人物成長하게 된 背景은 모두 어머니의 힘이 있다고 記錄되어 있다.

 

 

16. 모심지정(母心之釘)

어머니 마음에 박힌 못이라는 말로, 子息이 잘못할 때마다 어머니의 마음에 생기는 傷處를 이르는 말이다. 孝道할 것을 訓育할 때 쓰인다.

 

* 鄭鳳采閑談.

한 홀어머니가 하나뿐인 아들을 愛之重之하면서 精誠들여 키웠다. 아들은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어딘지 漸漸 버릇이 나빠졌다.

어느덧 나이 열다섯 살의 애티를 벗어나 웬만큼 世上 物情을 알 때가 되었는데도 天方地軸이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어르고 타일렀으나 所用이 없었다. 어떻게든 눌러 앉혀 제자리를 잡도록 해주어야 할 텐데 하며 속만 태웠다. 그래서 그날부터 아들이 속을 썩일 때마다 마루 가운데 서 있는 기둥에다 못을 하나씩 박았다.

十如 年이 지나자 더 以上 박을 수 없을 程度로 못이 다닥다닥 박혔다.

어느 날, 아들이 기둥에 박힌 못을 보고 물었다.

어머니! 여기에 왜 못을 이렇게 박아 놓으셨습니까?”

어머니가 눈물 젖은 얼굴로 아들을 보며 말했다.

그건 네가 나를 속상하게 할 때마다 그 標識으로 박아 놓은 것이니라.”

어머니의 울음 섞인 말을 듣고 아들은 생각했다.

, 내가 그 어머니께 못 할 일을 너무 많이 했구나.’

부터 아들은 마음을 고쳐먹고 날마다 어머니의 마음을 慰勞해 드리고, 힘든 일을 거들기도 하면서 기쁘게 해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때마다 기둥에 박힌 못을 하나씩 빼내었다. 그렇게 하기를 十如 年. 드디어 박혔던 못이 모두 빠지고 없었다. 기쁘게 해 드린 횟수가 마음을 아프게 한 횟수에 이른 것이다.

어머니가 아들을 불렀다. 그리고 기둥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이 기둥을 보거라. 처음에는 네가 나를 失望시켜 못을 박았는데 어느 때부턴가 네가 나를 기쁘게 해주기에 그때마다 하나씩 뽑아냈다. 이제 못이 다 뽑히고 하나도 남지 않았구나. 고맙다.”

어머니는 아들이 대견하여 稱讚했다.

아들은 어머니 얼굴의 주름살을 보고 나서 기둥에 뚫린 못자국을 보더니 엉엉 울었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오늘 이 기둥을 보니 벌집과 같이 傷處투성이군요. 어머니의 마음도 이 기둥과 같이 傷處투성이일 것을 생각하니 흑! ! 이제부터는 어머니의 마음이 便安하게 精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가슴에 꼭 안고 눈물을 흘렸다.

 

 

17. 목중무화(木中無花)

나무속에는 꽃이 들어 있지 않다. 꽃은 나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저절로 생긴다는 말로, 모든 일은 억지로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되고 順理的으로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 大東奇聞 古今淸談.

雉岳山의 뒷편 溪谷에 도둑들의 소굴(巢窟)이 있었다. 그들은 걸핏하면 上元寺에 찾아와 행패(行悖)를 부렸다.

. 스님이면 다야? 너희들은 便히 앉아서 信徒들이 갖다 바치는 돈으로 먹고살고 있으니 無爲徒食하기는 우리와 다를 바 없잖아, 於此彼 너희들도 땀 흘려 번 것이 아닌데 조금 나눠 먹자는 것이 뭐가 나쁘냐?”

도둑들이 윽박지르면 스님들은 抵抗 못하고 그들이 要求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주어야 했다. 그런 일이 繼續되자 몇몇 스님들은 官家에 알리자고 했으나 住持 스님은 限死許諾하지 않았다.

저들이 迷惑하여 그런 것이니 怨恨을 사서는 안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밤 住持 스님의 盜賊이 칼을 들고 들어왔다. 住持 스님은 손님을 맞이하듯 자리에서 일어나 泰然히 마주 앉았다.

그 칼을 버리시오.”

헛소리하지 말라. 이 칼이야말로 내 守護神이다.

칼을 든 는 칼로 죽게 되는 이오.”

그러나 盜賊은 코웃음을 치면서 쏘아 보았다.

너희들은 佛法이니 무어니 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해괴(駭怪)한 말들을 주절거리는데, 우리 같은 盜賊들은 주린 창자를 채우는 게 하단 말이야!”

佛法을 올바로 깨달으면 모든 근심에서 벗어날 수가 있소.”

都大體 佛法이라는 게 어디 있느냐?”

當身들의 가슴속에 있소. 다만 그대가 스스로 보지 못할 뿐이오.”

그럼 네 가슴에도 있겠구나?”

그렇소.”

. 잘됐다. 내가 보고 싶으니 어디 네 가슴 좀 열어보자.”

도둑은 시퍼렇게 날선 칼을 住持 스님의 가슴에 겨누었다. 住持 스님은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참으로 어리석은 로다.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고 그 나무를 쪼개면 그 속에 꽃이 들어 있더이까? 꽃은 나무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저절로 생기는 것, 그 칼로 不法하지 마시오.”

그 말에 한참 생각하던 도둑은 그제야 自己가 한 짓을 깨우친 듯 칼을 내던지고 住持 스님 앞에 넙죽 엎드렸다.

 

 

18. 목침교수(木枕絞首)

木枕絞首刑하다. 朝鮮時代文人 林亨秀政爭에 휘말려 死刑하게 되었을 때 木枕絞首刑하게 해 戱弄했던 故事에서 由來했다. 絶體絶命危機에서도 超然姿勢를 잃지 않는 餘裕를 이른다.

 

* 韓國奇人列傳, 韓國人諧謔.

朝鮮 第11代 中宗 때의 文人 錦湖 林亨秀(1504~1547)快活性格에 장난치기를 좋아했다. 그는 明宗 副提學에까지 올랐으나 乙巳士禍罷職되었다. 後 大尹 尹任一破로 몰려 死刑하게 되었다.

사약(賜藥)을 받던 날, 그는 顔色 하나 하지 않고 泰然하였다.

禁府都事賜藥을 내려놓자 下人이 울면서 부엌으로 들어가 按酒를 가져왔다. 그는 下人이 가져온 按酒를 물리치면서 말했다.

치워라! 술도 말로 마실 때에는 按酒가 없는 인데, 賜藥에 무슨 按酒란 말이냐!”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가 妻子作別을 하고 나오면서 열 살 난 아들을 불러 일렀다.

너는 絶對로 글을 배우지 마라. 아니, 배우지 않으면 無識人間이 될 터이니 배우기는 하되 벼슬은 하지 마라.”

그가 밖으로 나오자 禁府都事가 물었다.

이제 賜藥 받을 準備가 다 되었습니까?”

林亨秀가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다.

나는 을 마시고 苦痛스럽게 죽느니 목을 졸려 빨리 죽는 것이 좋은데 그리해도 되겠는가?”

그러자 禁府都事於此彼 마지막인데 그만한 뜻 하나 못 들어주랴 싶어 許諾했다.

許諾을 받은 그는 舍廊房으로 들어가 에 구멍을 뚫고 노끈을 그곳으로 내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이제 노끈을 내 목에 걸었으니 힘껏 잡아당겨라!”

禁府 羅卒들은 힘껏 노끈을 잡아당겼다.

얼마 , 이만하면 죽었으리라고 생각하여 을 열고 들어가 보니, 林亨秀는 노끈에다 木枕을 걸어놓고 그 곁에 누워서 껄껄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平生 諧謔을 즐겨 왔는데, 오늘 죽는다고 생각하니 섭섭하여 마지막으로 한 해본 것이니 그리 여워 말게.”

그러고 나서 林亨秀는 폐하(陛下)가 있는 북쪽을 향하여 큰절을 올리고 賜藥을 들이켰다.

그는 죽는 瞬間까지도 諧謔을 잃지 않은 큰 그릇이었다.

 

 

19. 몽부삼연(夢負三椽)

꿈에 서까래 세 를 짊어졌다는 말로, 太祖 李成桂朝鮮創業하기 꾼 꿈에서 由來했다. 所望했던 일을 이루게 된다는 뜻으로 쓰인다.

 

* 韓國人物史.

朝鮮太祖 李成桂(1335~1408)는 말을 타고 활 쏘는 주가 뛰어났다. 그는 나라 柳仁雨恭愍王 5雙城摠管府侵攻했을 때 아버지와 함께 對應하여 큰 을 세웠다.

後 東北面 女眞 出身私兵들을 거느리고 紅巾賊侵入을 막아냈으며, 나라 將帥 나하추(納哈出)가 쳐들어왔을 때에도 咸興平野에서 물리쳐 나라를 했다. 나라의 힘을 입은 女眞酋長 호바투(胡拔都)侵入하자 吉州에서 물리쳐 咸鏡道 땅을 收復했다.

禑王 14鐵嶺衛設置하는 問題崔瑩遼東征伐決定되자 新進 留學者李成桂反對했으나 容納되지 않았다. 李成桂右軍都統使任命되어 遼東하다가 威化島에서 軍士를 돌이켜 돌아와서 崔瑩 一派肅淸하고, 1392年 朝鮮開國하였다. 그리고 1394에는 서울을 漢陽으로 옮겼다.

李成桂王位에 오르기 , 安邊에 머무를 때 꿈을 꾸었는데 그 內容怪異하여 理解할 수가 없었다. , 온 동네 닭이 一時에 울고, 무너진 집에서 서까래 세 를 짊어지고 나오는데 피었던 꽃들이 떨어지고, 거울이 땅에 떨어져 깨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李成桂破字占을 잘 친다는 道僧을 찾아갔다. 그가 바로 無學大師였는데 그에게 解夢付託했다.

無學大師는 크게 놀라며 말했다.

賀禮 드립니다. 닭 울음소리는 꼬끼오이니, 이는 高貴한 분이 온다는 뜻이고, 서까래 석 을 짊어진 모습은 바로 王字를 뜻하는 것이니, 將次 君王이 될 것을 뜻하는 꿈입니다.”

하하! 설마요……. 그럼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지는 것은 무슨 意味입니까?”

꽃이 떨어지면 마침내 열매를 맺게 되지요. 또 거울이 깨지면 소리가 나는 입니다. 그러니까 열매가 맺는다는 것은 計劃하고 있는 王業結實意味하고, 소리가 난다는 것은 國威四方에 떨치는 것을 意味합니다.”

後 李成桂朝鮮建國하고, 太祖가 되었다.

그는 훗날 無學大師를 만난 곳에 큰 절을 짓고, 의 꿈을 解釋했다하여 이름을 釋王寺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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