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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한자성어(漢字成語)**/한국 고사성어(韓國 故事成語)

한국 고사성어(韓國 故事成語) (ㅁ-1)

by 산산바다 2026. 2. 21.

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글 목록

 

 

 한국 고사성어(韓國 故事成語) (-1)

 

 

1. 마의태자(麻衣太子)

新羅하자 마지막 임금 敬順王王子麻衣를 입고 金剛山으로 들어가 草根木皮餘生을 마친대서 由來한 말이다. 끝까지 自尊心을 지키는 사람을 比喩한다.

 

* 東國輿地勝覽, 韓國人名大辭典

新羅의 마지막 王 敬順王(在位927~935) 때에 後百濟甄萱의 잦은 侵攻으로 國力極度惡化되고, 邊方도 야금야금 掠奪當領土가 좁아졌다. 거기에다가 高麗勢力해지자 敬順王大臣들과 太子에게 疲弊百姓들을 그냥 둘 수 없으니 高麗降服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太子悲憤하며 말했다.

한 나라의 存亡은 하늘에 달려 있습니다. 千年社稷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내어주려 하십니까?”

敬順王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外的으로는 百濟侵攻이 잦고, 內的으로는 群雄割據하여 나라의 危殆함이 이 地境에 이르렀는데, 없는 百姓들을 戰爭터에 내몰아 피를 흘리게 하는 짓은 차마 못 하겠다.”

結局 君臣會議에서 贊反討論 끝에 高 麗太祖에게 降服할 것을 決議했다.

그러자 太子父王에게 痛哭으로 下直하고 皆骨山(겨울의 金剛山의 이름)에 들어가 바위를 지붕삼아 平生 삼베옷을 입고, 풀을 뜯으면서 많은 을 마쳤다. 사람들은 太子가 삼베옷을 입고 節槪威信을 지켰다고 하여 麻衣太子라고 불렀다.

敬順王高麗太祖로부터 宥和宮下賜받고 王建의 딸 樂浪公主를 맞아 政丞해졌으며, 慶州食邑으로 받았다. 그리고 慶州事審官이 되었다.

 

 

2. 막비천운(莫非天運)

하늘의 은 막지 못한다는 말로, 太祖 李成桂가 아들인 太宗除去하려 했으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혼자 중얼거렸던 말이다.

 

* 太宗實錄. 韓國人名大辭典.

朝鮮太祖 李成桂 (1335~1408)1次 王者이 일어나자 둘째 아들 芳果(定宗)에게 禪位한 뒤 上王이 되었다. 1400다섯째 王子 芳遠 (1367~1422)2次 王子을 일으켜 太宗으로 卽位하자 太上王이 되어 咸興으로 隱居해 버렸다. 太宗太上王여움을 풀고자 成石璘, 朴淳 等太上王隱居하고 있는 咸興으로 보냈으나 모두 죽임을 하여 돌아오지 못했다. 여기에서 由來된 말이 咸興差使이다. 太宗은 마지막으로 無學大師를 불러 自己心情을 털어놓고 아버지를 꼭 모셔 오도록 懇曲付託했다.

李成桂와 가깝게 지냈던 無學大師釋王寺에서 李成桂를 만나 그을 나누었다. 그리고 太宗해 말했다.

今上에게 비록 過失이 있다 하나 殿下의 사랑하는 아들이 아닙니까? 이제 人倫을 끊어버리신다면 今上은 그 자리에 便安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保位不安하면 臣下百姓들의 마음이 動搖되고, 나라가 危殆롭게 될 것입니다. 부디 이를 洞察하시어 하늘이 맡기신 王業保全케 하시옵소서.”

이렇게 無學大師懇切說得으로 李成桂咸興을 떠나 漢陽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消息을 들은 太宗心腹 河崙 以下 百官들을 거느리고 議政府까지 出迎했다. 구름 같은 遮日을 치고 歡迎 準備를 서두를 때, 河崙太宗에게 아뢰었다.

遮日의 기둥을 아름드리 나무로 해야 하옵니다.”

왜 그래야 되오?”

太宗勿論 다른 여러 臣下들도 怪異하게 여길 뿐, 河崙底意를 아는 이가 없었다.

次次 아시게 될 테니 꼭 큰 기둥을 써야 되옵니다.”

워낙에 智慧 주머니인 河崙이요, 또 누구보다도 信任이 두터운 그인지라 太宗은 더 以上 묻지 않고 그러하게 했다.

이윽고 太上王還都式嚴肅하고도 莊嚴雰圍氣 속에서 擧行되고 있었다. 李成桂는 마련된 上座에 앉아 太宗이 들어와 拜謁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太宗袞龍袍翼蟬冠威儀堂堂하게 滿朝百官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그가 凜凜하게 들어오는 양을 굽어보고 있던 李成桂의 얼굴에는 瞬間 怒氣의 빛이 번뜩였다. 조금 까지만 해도 마음을 돌리려 했던 그였으나 생각이 突變하여 自己도 모르게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고얀놈! 네가 무슨 面目으로 그리도 華麗하게 내 앞에 나타난단 말이냐?”

瞬間 그는 옆에 놓인 활을 들어 太宗하여 시위를 당겼다. 로 아슬아슬한 瞬間, 太宗은 날쌔게 기둥 뒤로 몸을 했고, 화살은 瞬息間에 날아가 遮日의 큰 기둥에 꽂혔다.

李成桂는 화살을 내던지면서 嘆息했다.

天運은 어쩔 수가 없구나.(莫非天運)”

이어서 獻酒 儀式進行되었다. 勿論 太宗이 손수 술을 따라 父王에게 올려야 했다. 그때 옆에 있던 河崙太宗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아직도 太上王怒氣測量키 어렵사오니 侍官으로 하여금 代身 드리게 하옵소서.”

이에 太宗이 술은 自己가 손수 따랐지만 그 侍官을 시켜 올리게 하였다. 그러자 李成桂는 긴 한숨과 함께 소매 속에서 쇠뭉치를 꺼내어 던져버리고, 을 받으며 말했다.

어찌하랴! 하늘이 運數로다.”

그제야 玉璽太宗에게 내어주며 말했다.

옛다. 이놈! 내던 게 바로 이것이지?”

太宗은 세 番 辭讓하는 척하다가 그것을 받았다.

李成桂王位에서 7, 上王으로 10만인 春秋 74昇遐했다.

便, 太宗으로 하여금 危機謀免케 했던 河崙太宗名參謀, 팔과 다리와 같은 股肱之臣으로 많은 功勞를 세웠으나 李成桂로서는 얄밉기 짝이 없는 存在였다. 그래서인지 河崙은 꿈에 李成桂怒氣 찬 꾸지람을 듣고 을 얻어 結局 일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太宗舊派勢力巨物鄭夢周暗殺하고, 여덟째 아우 芳碩에 이어 일곱째 아우 芳藩도 죽였다. 나중에는 바로 위 芳軒마저 平定했다. 그러니까 王位承繼하기 해서 과 아우 셋을 죽인 것이다.

그는 抑佛崇儒 政策을 펴고, 私兵革罷했으며, 號牌法 實施, 鑄字所 設置, 高麗史 編纂, 申聞鼓 設置 等 많은 治績을 남긴 셋째 아들 世宗에게 禪位하였다.

 

 

3. 만덕자선(萬德慈善)

萬德이 베푼 慈悲로움이라는 말로, 어렵게 돈을 모아 不遇한 이웃을 돕는 境遇比喩하여 쓴다. 濟州道妓女 金萬德善行에서 由來했다.

 

* 朝鮮史女人들에.

朝鮮 正祖(1752~1800) 金萬德濟州道의 한 裕福家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全羅道 羅州往復하면서 特産物인 미역과 全鰒, 橘 等을 파는 商人이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보리와 밀을 耕作하여 남부럽지 않은 집안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金萬德은 어려서 父母를 잃고 家産이 기울어 妓女生活始作하였다. 漸次 나이가 들어 世上理致를 깨우치자 自身兩人身分임을 내세워 妓女 生活淸算하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장사를 始作, 客酒집을 차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모은 돈을 밑천으로 濟州道陸地連結하는 交易始作하였는데 쌀과 옷감과 藥劑 等 陸地한 것을 濟州道에서 보내 30如 年努力 끝에 濟州道에서 손꼽히는 富豪가 되었다.

그때 濟州道에는 몇 極甚한 가뭄으로 凶年이 들어 곳곳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續出하였다. 그러나 官家에서는 하늘의 일이니 人力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傍觀만 하고 있었다.

金萬德에게는 이웃들의 苦痛코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구나. 풀뿌리, 나무뿌리까지 캐 먹으면서도 목숨을 扶持하지 못하니, 저들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해야 되겠다. 모두가 내 兄弟. 姉妹인데 어찌 外面만 하겠는가.”

金萬德朝廷에서도 손을 쓸 수 없었던 百姓들의 疲弊한 삶을 救濟하고자 苦生하여 모은 돈을 떨어 陸地에서 穀食을 사들여 나누어 주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할 수 있었다.

慈善朝廷에까지 알려져 正祖金萬德에 불러들여 內醫院 醫女班首라는 벼슬을 내리고, 稱讚하였다.

네가 女子의 몸으로 千如 名貴重한 목숨을 살려냈으니 참으로 갸륵한 일이다. 남을 自己 財産을 쓰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거늘 주저(躊躇) 없이 慈善을 베푼 것은 너의 마음이 至極하고 아름다운 까닭인 것이다.”

正祖는 그 激勵하는 뜻으로 金剛山을 구경할 수 있게 해주었다. , 平凡村婦로 돌아와 餘生을 보냈다.

顯宗 6, 濟州道流配秋史 金正喜는 그 行跡에 크게 感動하여 恩光世(恩惠의 빛이 온 世上에 번진다.)’ 라고 쓴 扁額을 써서 그 後孫에게 보냈다. 政丞 蔡濟恭金萬德行實記錄傳記를 쓰기도 했다.

 

 

4. 망승도수(忙僧渡水)

바쁜 스님의 물 건너기란 말로, 되는 일이 없이 이리저리 모이기만 하는 것을 뜻한다.

 

* 慵齊叢話.

朝鮮時代에는 抑佛崇儒 政策을 폈던 關係로 스님에 巷說이 많았다. 이 이야기도 그런 背景에서 由來했다.

한 스님이 寡婦에게 장가를 가려 하자 마땅찮게 생각한 上座男女和合할 때에는 생콩가루를 먹고 물을 마시면 最高로 좋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스님은 上座의 말대로 생콩가루를 물에 타 먹고 寡婦에 들어갔다.

그런데 생콩가루를 먹고 물을 마시면 설사(泄瀉)가 나기 마련이다. 新房에 들어간 스님도 例外가 될 수는 없었다.

寡婦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뱃속이 부글부글 끓다가 뒤가 해서 겨우 참고 막 便所로 가려 하는데 눈치 없는 寡婦가 들어와 툭 쳤다. 그러자 새 이불에 排泄物이 쏟아져 惡臭振動했다. 寡婦는 질겁을 하고 스님을 내쫓아버렸다.

스님이 精神 없이 달아나다 보니 하얀 메밀꽃이 달빛에 비쳐 개울처럼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스님은 그곳이 냇물인 줄 알고 옷을 벗고 들어가니 밭이었다.

다음에 또 하얀 물이 나타나니 이번에는 속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걸어가니 그건 짜 물이어서 옷이 모두 젖어 버렸다. 물속에서 기어 나와 할 수 없이 옷을 말리느라 다리 아래에서 쉬고 있는데 동네 婦人들이 와서 沐浴을 하기 始作했다. 그러다가 至毒한 냄새를 피우고 있는 스님을 發見하고는 하고 달려들어 흠씬 두들겨 팼다.

스님은 실컷 얻어맞고 옷을 벗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이에는 지나가던 行人이 스님의 陰莖에 좋다며 자르려고 달려들었다. 魂飛魄散한 스님이 줄行廊 끝에 겨우 절로 돌아와 을 열라고 했으나 對答이 없자, 개구멍으로 기어서 들어갔다. 그러자 上座이놈의 개가 어제 밤에 와서 기름을 훔쳐 먹더니 오늘 또 왔다.’라고 하며 몽둥이로 내리쳤다. 스님은 한 나머지 나요! 나란 말이요!’ 하며 쓰러지자 그때서야 上座가 업고 들어갔다.

이때부터 무슨 일을 하다가 거듭 낭패(狼狽)하는 일을 가리켜 망승도수(忙僧渡水)라 했다.

 

 

5. 망자환채(亡者還債)

죽은 가 빚을 갚아주었다는 말로, 債務者가 죽은 사람을 핑계로 빚을 蕩減 받은 故事에서 由來했다. 터무니없는 일을 끌어대어 責任回避하는 境遇를 이른다.

 

* 傭齊叢話 雜記

禮山高利貸金業者 金長得愚直하면서도 인색(吝嗇)하기 짝이 없어 빚을 주면 督促이 불같았다. 때문에 그에게서 돈을 빌린 姜鎭海라는 사람도 그에게 톡톡히 했다. 그래서 그에게 골탕을 먹여주려고 꾀를 내어 아내에게 말했다.

長得이가 來日 틀림없이 종놈을 보내 빚을 督促할 텐데, 그러면 當身只今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시오.”

이튿날, 그는 홑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屍體처럼 누워 있었다. 그의 아내는 男便이 시킨대로 머리를 풀고 슬피 울었다. 그때 아니나 다를까 金長得의 종이 찾아왔는데, 光景을 보고는 웬일이냐고 물었다.

男便이 어제 저녁 늦게 돌아와 식은 밥 몇 숟갈을 뜨고는 밤중에 가슴을 치더니 별안간(瞥眼間) 죽었지 뭐예요. 이제 어린 것들하고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天地가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 ! !”

종이 히 돌아가 보고 들은 대로 하자 長得은 돈을 떼이는가 싶어 가슴이 쓰라렸다.

그런데 며칠 , 뜻밖에 죽었다던 姜鎭海가 찾아왔다.

죽었다고 들었는데 어찌 된 일인가?”

小人이 죽은 지 사흘 만에 多幸히 다시 살아나 이제야 겨우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죄송(罪悚)합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實際로 보기는 처음이네. 그럼 자네는 저승 구경도 했겠구먼?”

. 저승도 이승과 비슷하던걸요.”

그래? 어디 저승 얘기 좀 들어보세.”

. 얼굴이 凶惡差使小人을 끌고 가는데 꼭 이승과 같더라고요. 염라국(閻羅國)에 들어서니 큰 宮殿鬼神 졸개들이 늘어서 있고, 險狀궂게 생긴 가 붉은 옷을 입고 앉아 있는데 그이가 바로 閻羅大王이라고 하더군요. 閻羅大王을 들추어 보더니 는 아직 오지 않을 사람이니 當場 돌려보내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差史를 따라 나오는데 길가에서 어떤 사람이 小人의 손을 잡고 반가워하기에 仔細히 보니 바로 어르신의 돌아가신 아버지였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돌아가신 우리 先親을 뵈었단 말이냐?”

. 그런데 어르신이 워낙 남루(襤褸)한 모습이어서 처음에는 몰라뵈었다가 或是나 해서 물었더니 只今은 거지 身世가 되었다지 뭡니까? 消息을 물으시기에 仔細히 여쭈었더니 눈물을 치 못하셨습니다. 마침 小人의 주머니에 돈이 한 푼 있어서 그것을 드려 외상 술값을 갚게 했는데, 小人의 마음도 매우 슬펐습니다.”

그럼 或是 母親은 못 만나 뵈었느냐?”

왜요 뵈었지요. 그런데 황송(惶悚)해서 히 여쭙기 어렵습니다.”

괜찮다. 우리 둘뿐인데 뭘 망설이느냐?”

물으시니 不得已 實相을 말씀 드릴 수밖에 없군요. 事實小人差使와 한 客酒 집에 들렀더니 그 집 안主人이 바로 어르신의 母親이 아니겠습니까? 母親께서 반가워하시며 좋은 술과 按酒를 푸짐하게 주시기에 잘 먹고 나왔습니다.”

그럼 우리 母親께서는 어떻게 살고 계시던가?”

不幸히도 어르신의 母親은 어르신의 先親가 맞지 않아 헤어지고, 小人의 아버지와 함께 사시는데 아주 이 깊다고 했습니다.”

金長得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事實漏說되면 내 體面이 말이 아니니 이 일은 絶對 입 밖에 내지 말게. 代身 자네가 빌려간 돈은 모두 蕩減해 주겠네.”

부터 姜鎭海金長得의 집을 뻔질나게 찾아가서 밥과 술을 푸짐하게 待接받고 金錢도 마음대로 빌려 썼다.

 

 

6. 매몽득화(買夢得華)

꿈을 팔아 榮華를 얻는다는 말로, 新羅 金庾信의 누이 同生 文姬가 언니 寶姬의 꿈을 사서 太宗武烈王王后가 된 故事에서 由來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큰 利得을 보는 것을 比喩

 

* 新羅史話.

新羅金庾信(595~673)伽倻國 사람으로 舒玄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萬明夫人으로 金庾信精神的支柱였다.

金庾信에게는 寶姬文姬라는 두 의 누이同生이 있었다. 어느 날, 寶嬉가 꿈에 西岳仙桃山에 올라가 小便을 보니 그 이 엄청나 徐羅伐이 모두 오줌물에 잠겨버렸다. 그래서 同生 文姬에게 그 꿈 이야기를 들려주자 文姬는 그 꿈을 팔라고 졸라 緋緞옷감 한 벌을 주고 샀다.

그런 일이 있은 뒤 正月 어느 날, 金庾信金春秋를 데리고 와서 自己 집 앞에서 공차기를 하고 놀았다. 그러다가 짐짓 春秋의 옷을 밟아 옷고름을 떼어놓고는 自己 집에 들어가 꿰매자고 했다. 春秋庾信을 따라 들어갔다. 庾信은 누이 寶姬에게 春秋의 옷고름을 달아 주도록 했다.

오라버니, 男女有別하온데 어찌 그런 일로 남의 男子를 가까이 하겠습니까?”

寶姬갓집 處女로서 잡힐 짓을 걱정하여 鄭重辭讓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文姬自請하여 떨어진 옷고름을 달아주었다. 그것이 因緣이 되어 文姬春秋와 깊은 關係를 맺어 姙娠을 했고, 事實庾信이 알게 되었다.

집도 안 간 處女孕胎를 하다니, 이는 우리 家門을 더럽힌 것으로 容納할 수 없는 일이다.”

金庾信文姬를 짐짓 크게 꾸짖으면서 불태워 죽이겠다고 消聞을 퍼뜨렸다. 그리고 善德女王南山 行次에 맞추어 自己 집 뜰에다 長斫과 섶을 쌓아놓고 불을 질러 煙氣를 치솟게 했다.

이 고을 복판에서 올라오는 煙氣를 보고 웬일이냐고 묻자 臣下들이 아뢰었다.

金庾信 公의 누이가 집도 가지 않았는데 姙娠하였기로 그 를 물어 火刑한다 하옵니다.”

그럼 姙娠시킨 男子는 누구라 하더냐?”

그러자 을 모시고 있던 金春秋顔色이 검게 하면서 안절부절못했다. 女王은 조카 春秋所行임을 알고 꾸짖었다.

네가 한 짓이로구나. 빨리 가서 해주도록 해라.”

일이 이렇게 되자 金春秋吉日하여 文姬婚禮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善德女王昇遐하고 眞德女王에 이어 金春秋王位에 오르니 바로 太宗武烈王이다. 文姬文明王后가 되어 三國統一內助했고, 五男五女를 낳았으며 得華生活을 하였다. 꿈을 판 寶姬平凡無名女性으로 一生을 마쳤다.

 

 

7. 매호매부락(妹好妹夫樂)

누이 좋고 妹夫 좋다. 朝鮮 숙종(肅宗) 때 한 陵參奉에게서 由來한 말로, 한 가지 일로 여러 사람이 좋아지는 境遇를 이른다.

 

* 大東奇聞, 古今淸談.

朝鮮 肅宗 安東의 선비 權道溫性品이 어질고 집안도 넉넉해서 春窮期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救濟하는 일을 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에 稱頌이 자자(藉藉)했다.

새로 赴任府使는 그가 善行만 하는 것이 아니라 經學에도 밝은 것을 알고 朝廷에 천거(薦擧)하여 楊州陵參奉으로 任命 받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나이 60老軀를 이끌고 官職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權 參奉에게 不足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는 일찍이 喪妻를 했기 때문에 不行 하게도 슬하(膝下)子女가 없었다. 周圍 사람들은 그러한 그를 두고 하늘도 無心 하다면서 同情했다.

權 參奉楊州赴任하여 別檢 金宇杭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을 지키는 사람들이 허름한 차림의 總角 하나를 끌고 왔다. 權 參奉이 그 曲折을 묻자 總角對答했다.

小人70이 넘은 어머니와 35未婚 누님을 모시고 나무를 해다가 팔아 延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많이 와서 나무를 할 수 없어 안까지 들어가 나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용서(容恕)하여 주십시오.”

總角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權 參奉總角處地가 안타까워 金 別檢에게 하지 말고 다른 方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金 別檢 亦是 그를 가엾게 여겨 잘 타이른 다음 가여운 생각에 밥상을 차려주니 總角은 국과 김치만 게눈감추듯 먹고 밥은 먹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理由를 물으니 어머니와 누님에게 갖다 드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權 參奉은 그 밥을 다 먹게 하고 따로 쌀 한 말과 닭 한 마리를 주어 어머니를 奉養하게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추위는 더욱 해져 가는데 그 總角이 또 붙들려 왔다.

權 參奉가 나서 물었다.

왜 또 그랬느냐?”

參奉 어른을 뵈올 面目이 없습니다만 밖에 있는 삭정이(죽은 나뭇가지)를 꺾으려고 나무에 올랐다가 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안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金 別檢이 말했다.

容恕해 준다 해도 總角形便이 나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方法이 있긴 한데…….”

무슨 좋은 方法이라도 있다는 것입니까?”

金 別檢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는가? 只今 參奉이 홀로 사는데 總角의 누이가 35歲 老處 女라고 하니 두 사람이 婚姻을 하면 妻家도 돌보아 주게 되고, 權 參奉一身平安해질 터이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權 參奉金 別檢提案이 싫지 않아 總角에게 어머니의 承諾을 받아 오게 했다. 勿論 總角의 집에서는 拒絶理由가 없었다.

이렇게 하여 60新郞35歲 新婦婚姻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매호매부락(妹好妹夫樂) 慶事였다.

歲月이 흘러 그 사이 別檢 金宇杭府使昇進하여 安東에서 勤務하고 있었다. 어느 날, 權 參奉이 찾아와 말했다.

府使 나리의 配慮只今2324의 두 아들을 두게 되었는데 그 아들들이 올해 監試應試하여 同時及第라는 慶事를 보게 되었으니 참으로 感謝합니다.”

金 府使權 參奉人事를 받고 그를 白馬에 태워 故鄕 마을로 가게 하니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歡迎했다.

 

 

8. 매화매락(賣畵買樂)

그림을 팔아 즐거움을 샀다는 말로, 正祖 때의 風俗畵家 金弘道가 그림을 팔아 風流를 즐긴 逸話에서 由來했다. 自己가 즐기는 일을 豪氣롭게 해내는 것을 比喩한다.

 

* 正祖實錄. 弘濟全書. 朝鮮名人傳.

朝鮮 正祖(1752~1800) 때의 畵家 檀園 金弘道(1745~1806년경)風俗畵大家였다. 그는 圖畵署畵員으로 縣監 待遇를 받았지만 家庭生活은 돌보지 않고 그림과 風流에만 젖어 살았다.

그가 어느 날, 한 마을을 지나다가 울타리 안에 있는 아름다운 梅花나무를 보고 안으로 들어가 主人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이 나무를 내가 사고 싶은데 얼마면 팔 거요?”

나도 매우 아끼는 건데. 히 사시려면 2百 兩만 주십시오.”

“2百 兩이라…….”

金弘道는 더 以上 할 말이 없었다. 끼니를 이어 가기도 힘든 形便2百 兩이라는 巨金을 주고 梅花나무를 살 수는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梅花나무를 鑑賞하는 것으로 滿足해야 했다.

며칠 , 富者로부터 그림을 그려 달라는 付託을 받았다.

金弘道는 서둘러서 不過 며칠 만에 그림을 完成해 주고 3百 兩을 받았다.

돈을 받은 그는 2百 兩을 주고 예전 집主人과 흥정했던 그 梅花나무를 샀다. 그리고 나머지 돈으로 盛大한 술잔치를 마련하여 親舊들을 待接했다.

金弘道는 아름다운 梅花鑑賞하면서 가까운 親舊들과 술을 마시는 것이 무척이나 洽足했다. 親舊들도 겹게 술을 마시면서 마음껏 즐겼다.

여보게, 檀園! 자네가 이런 자리를 마련할 때도 있으니 世上 많이 좋아졌구먼. 그런데 자네가 돈이 어디 있어서 저런 훌륭한 梅花나무도 사고, 이렇게 푸짐한 飮食을 마련했는가?”

金弘道는 호탕(豪宕)하게 웃으면서 자랑했다.

그림을 그려 주고 3百 兩을 받았네. 에서 2百 兩으로는 梅花나무를 샀고, 나머지 돈으로 술과 按酒를 마련하고 쌀과 땔나무도 샀지. 어떤가? 이만하면 사나이 生活이 괜찮지?”

아암. 亦是 자네답네.”

끼니도 이어 가기 힘든 生活이었지만 아름다움과 風流해서라면 自己가 가진 모든 財物을 아낌없이 버릴 수 있는 金弘道였다.

그는 山水畵, 人物畵, 花鳥圖 等에 두루 했으며, 庶民들의 生活 모습을 그린 風俗畵自己만의 獨特方法으로 그려냈다.

 

 

9. 맥반정승(麥飯政丞)

보리밥 政丞이라는 말로, 朝鮮 正祖 때의 政丞 金鍾秀故事에서 由來했다. 社會的 身分이나 物質的으로 豊富한 사람이 勤儉節約하는 것을 比喩하여 쓴다.

 

* 正祖實錄 夢悟集

朝鮮 正宗 때의 政丞 金鍾秀(1728~1799)는 매우 淸廉하고 剛直한 사람이었다. 當時慣習으로 地方官이 새로 任命되면 赴任하기 에 그 地域居住하고 있는 前職 大臣들에게 人事를 하는 것이 禮義였다.

金鍾秀新任 地方官들이 찾아오면 허름한 베옷에 나막신을 끌고 나와서 반가이 맞이하며 人事를 받은 에 굳이 붙들어 앉히고 밥 한 끼를 待接했다.

그러면 그들은 老宰相하는 것이라 辭讓을 못하고 황송(惶悚)해하며 밥상을 받게 되는데, 에는 언제나 꽁보리밥에 김치 한 접시와 막걸리 한 全部였다.

地方官들로서는 只今까지 그렇게 飮食을 먹어 본 일이 없고, 將次 赴任하면 好衣好食할 터라 그런 飮食이 목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정작 兼床하고 있는 金 政丞이 맛있게 먹는지라 억지로라도 아니 먹을 수 없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苦役 中上苦役이었다. 金 政丞은 그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어떤가? 이 밥 먹기가 어렵지? 자네가 赴任하면 珍羞盛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그때마다 이 밥상을 생각하게. 자네가 먹는 珍羞盛饌은 보리밥도 제대로 못 먹는 百姓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百姓들을 먹여 살려야 할 자네들만 잘 먹어서야 되겠는가? 그러니 앞으로 부디 이 늙은이 말을 잊지 말고 善政을 베풀고 百姓을 괴롭히지 말게.”

그의 忠告를 들은 地方官들은 큰 깨달음을 얻고 百姓을 잘 보살폈다.

 

 

10. 면귀심수(面鬼心水)

얼굴은 鬼神처럼 추()하지만 마음은 물처럼 맑다. 겉보기는 나빠 보이지만 속마음은 더없이 고우니. 겉만 보고 그 사람의 마음 까지 速斷하지 말라는 뜻

 

* 馬山. 古今淸談.

高麗 高宗(1192~1259) 때 주열(朱悅)僉議府使를 지냈다. 그는 治績이 쌓이자 觀察使昇進했고, 그에 따른 威嚴名聲이 높아져 사람들이 다 尊敬하고 두려워했다. 中國使臣을 보낼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그가 맨 처음 推薦되어 사람들은 그를 專門 奉命使臣이라고 불렀다.

朱悅度量이 컸다.

한 번은 어느 고을에 가서 留宿을 하는데 방바닥이 갈라져 있어 그 틈으로 불씨가 들어와 所持品을 다 태워버렸다. 아전(衙前)들은 불호령이 내릴 것이라 豫想하고 벌벌 떨고 있는데 그는 潛潛했다. 颱風이 닥칠 것이라고 豫想했으나 微風도 불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또 한 번은 어느 고을 守令賂物을 받았다는 報告를 받고는 貪慾스런 武夫가 조그만 賂物을 받은 것은 개가 飮食 찌꺼기를 먹는 것과 같으니 들춰서 問題 삼을 價値가 없다.’ 하고 不問에 부치니, 守令은 다시는 不正을 저지르지 않았다.

한 번은 그가 어떤 자리에서 宰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姿勢恭遜하지 않은 지라 그것을 倨慢하게 본 한 衙前이 과잉(過剩) 忠誠하여 말했다.

宰相이 말씀하시니 마땅히 땅에 엎드려 들으시오.”

그러자 朱悅이 말했다.

宰相의 말을 엎드려 들어야 한다면 임금님의 말씀은 땅을 파고 들어가서 들어야 된단 말입니까?”

하니 그 衙前은 아무말도 못했다.

그가 能力 있는 官吏, 훌륭한 外交官이었으나 얼굴이 못생기고, 코가 귤()과 같았다. 때문에 한 宴會場에서 그가 公主에게 술을 獻壽하자 公主外面하며 말했다.

왜 늙고 더러운 鬼神같은 사람이 술을 따르는가?”

그러자 임금이 말했다.

이 늙은이는 얼굴이 추()하기는 鬼神 같으나 마음이 맑기는 물과 같으니라.”

이에 公主無顔하여 곧 謝過하고 所重을 받았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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