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한국 고사성어(韓國 故事成語) (ㄱ–4)
31. 공수편매(共水騙賣)
公共의 물을 속여서 팔다. 鳳伊 金先達이 大同江 물을 판 故事에서 由來한 말로, 감쪽같이 속이는 行爲를 이른다.
* 韓國諧謔小說集에.
平壤 船橋里에 鳳伊 김선달(金先達)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똑똑하고 재주가 많았지만 미천(微賤)한 身分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科擧를 볼 수가 없었다.
先達이라는 職位는 그를 부를 마땅한 號稱이 없자 그의 재주를 높이 評價한 周圍의 사람들이 便宜上 붙여준 것이었다.
金 先達은 自己가 아무리 努力을 해도 벼슬길에 들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船橋里 洞口 밖에 있는 綾羅島 주막집에서 소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華麗한 비단옷 차림의 漢陽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平壤 거리를 쓸고 다닌다는 所聞을 듣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平壤의 特産物을 싸게 싹쓸이 해다가 漢陽에서 비싸게 팔려는 投機꾼들이었다. 그들은 많은 돈을 錢帶에 차고 저잣거리를 휘젓고 다니면서 物件을 후려치는 等 볼썽사납게 굴었다.
金 先達은 그들의 行爲를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골탕 먹일 좋은 方法이 없을까 골똘히 생각하면서 大同江가로 가는데 갑자기 물장수들을 만나게 되었다. 瞬間的으로 좋은 생각이 떠오른 先達은 謀事를 꾸미기 始作했다. 그는 물장수들에게 말했다.
“우리 酒幕에 가서 대포나 한잔합시다.”
“아니 先達님께서 어쩐 일로 술을 다 사십니까?”
“내 술은 술이 아닌가? 마셔 보게나, 아주 달콤할 테니…….”
마침 출출 하던 물장수들은 선뜻 金 先達을 따라나섰다. 술이 두어 巡杯 돌아가 입에 침이 돌자 先達이 提案을 했다.
“여보게들! 내가 재미있는 일을 한 번 벌여 보려고 하는데 좀 도와주겠나?”
“좋지요! 무슨 일입니까?”
“내가 여러분들에게 葉錢 다섯 兩씩을 나누어 줄 테니 그것을 가지고 있다가 大同江에서 물을 길어 갈 때마다 나에게 한 兩씩만 주고 가면 돼! 한 二, 三日만 하면 될 게야.”
“그까짓 일쯤이야 協助고 자시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해드리지요.”
“자, 그럼 來日부터 내가 如此저차하면 當身들은 저차如此해주시오. 그럼 내 섭섭지 않게 人事는 하리다.”
그러고는 모두에게 다섯 兩씩을 나누어 주었다.
다음 날, 金 先達은 커다란 소쿠리를 챙겨 들고 물장수들이 大同江에서 물을 길어 마을로 나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장수들은 約束대로 葉錢을 한 兩씩 소쿠리에 던져 주고 갔다.
暫時 後, 漢陽의 패(牌)거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물장수들에게서 꼬박꼬박 葉錢 한 兩씩을 받는 金 先達을 보고는 크게 놀랐다.
“아니 令監은 只今 무슨 돈을 받고 있는 거요?”
“보면 모르시오? 물값이오. 물값! 내 江에서 물을 길어 가니까 물값을 받아야 할 것 아니오.”
“아니 저 大同江 물이 모두 當身 것이란 말이오?”
金 先達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허허! 그렇대두요. 남의 장사 妨害하지 말고 저리들 가시오. 보아하니 漢陽에서 온 兩班들 같은데 꽤나 沓沓들 하시구만!”
그렇게 하루를 지내고 다음날이 밝았다. 金 先達은 또다시 江가로 나가 어제처럼 돈을 받았다.
해가 中天에 떠오르자 漢陽 投機꾼들이 다시 몰려 나왔다. 그때 물지게를 지고 오는 사람에게 金 先達이 말했다.
“자네는 밀린 돈이 열 兩인 거 알고 있지? 來日은 모두 가지고 와야 하네.”
“네! 來日은 틀림없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投機꾼들은 金 先達에게 大同江 물을 팔라고 떼를 쓰기 始作했다. 金 先達은 못이기는 척 물러나며 말했다.
“내 子孫代代로 便히 먹고 살 所重한 財産인데……, 하지만 어르신네들의 말씀이니 어쩔 수 없구려, 얼마면 사실 생각입니까?”
“2千 兩이면 어떻겠소?”
“2千 兩? 어디 셈을 한 番 해봅시다. 하루에 五十 兩만 치더라도 열흘이면 五百 兩, 그럼 한달 열흘이면 本錢을 모두 뽑는데……, 헤헤! 그걸로는 어림도 없소이다.”
“老人長, 그러지 말고 우리들의 誠義를 봐서 適當한 線에서 넘겨주시오. 그럼 倍를 올려 4千 兩 드리리다.”
“안 되오. 正히 그러시다면 5千 兩을 當場 現金으로 내시오. 그 前에는 아예 말도 꺼내지 마시고……,
投機꾼들은 5千 兩이면 엄청난 돈인데도 망설이지 않고 선뜻 錢帶를 풀어 돈을 보이면서 賣買를 해버리자고 서둘렀다. 勿論 簡單한 契約書도 썼다.
金 先達은 契約書에 圖章을 찍고는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그들을 두고 돈자루를 지고 잽싸게 사라져 버렸다.
이튿날, 漢陽 兩班 牌거리들은 길목에 天幕까지 치고 느긋하게 앉아서 돈을 받으려 했으나 돈을 내는 물장수는 하나도 없었다.
“아니, 왜 물값을 안 내는 거요?”
“물값이라니, 무슨 물값을 내라는 거요? 當身들 미쳤소?”
물장수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빤히 쳐다봤다.
“우리가 저 大同江을 샀단 말이오. 그러니 오늘부터는 물값을 우리에게 내고 가슈.”
젊은 물장수가 나서며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허허, 이런 얼간이들을 보았나! 저 大同江 물이 누구의 것인데 누구한테 어떻게 샀다는 거요?”
그러자 投機꾼들은 契約書를 내밀면서 限死코 물값을 내라고 했다. 그러자 물장수가 말했다.
“쯧!쯧! 當身들이 속은 거요. 우리는 그 先達 令監이 如此저차하면 저차如此 해달라기에 그렇게 해준 것뿐이란 말이요.”
그제야 漢陽 兩班 牌거리들은 땅을 치며 길길이 날뛰었으나 金 先達은 이미 물 판 돈 中에서 一部를 물장수들에게 나누어 주고 平壤을 떠난 뒤였다.
32. 공심수덕(空心修德)
마음을 비워야 德을 닦을 수 있다는 뜻이다. 찻잔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더 以上 다른 물을 부을 수 없듯이 我執과 私心을 버려 마음을 비워야 眞理를 받아들일 수 있다. 卽 慾心을 버려야 德을 쌓을 수 있다는 뜻
* 韓國人의 野談 雜記에.
吳再斗 스님이 오랜 修行 生活을 通하여 學問이 깊어지자 世上 사람들에게 바른 삶의 道理를 일깨워주기 爲해 法文을 열었다. 그러자 遠近 各地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로 절 門이 닳도록 붐볐다. 스님은 누가 찾아와도 마다하지 않고 늘 謙遜하게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그런데 이웃 마을에 사는 선비 셋이 스님을 시기(猜忌)하여 헛 所聞을 퍼뜨리며 헐뜯었다.
“겨우 땡중 주제에 알면 얼마나 안다고…….”
“念佛 몇 줄 외우고, 佛經 몇 券 뒤적인 주제에 世上 理致를 다 아는 양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틀림없이 그저 邪術이나 펴는 똘중일 게야.”
그들은 스님의 學德을 깎아내려 相對的으로 自己들의 知識이 優越함을 내세우려고 했다.
“이럴 것이 아니라 우리가 直接 찾아가 골탕을 먹여줍시다.”
이렇게 作黨한 세 선비가 스님을 찾아가서 깍듯이 禮義를 갖추는 척하면서 말을 걸었다.
“저희는 山 아래 사는 선비들 이온데 스님께 가르침을 받으러 왔습니다.”
스님은 선비들의 人事를 받고 房으로 案內한 다음 찻잔을 내놓더니 아무 말 없이 찻잔에 뜨거운 雀舌茶를 넘칠 만큼 가득 부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은 너무 뜨거워서 손을 댈 수조차 없었다. 그때 스님이 선비들에게 말했다.
“小僧이 未練하여 물을 너무 뜨겁게 했군요. 여기 찬물이 있으니 이걸 부어 식혀서 드시지요?”
그러자 선비들은 웬지 自己 들이 無視 당한 느낌이 들었다.
“여보시오, 스님! 이렇게 찻잔이 넘칠 地境인데 어떻게 여기에 찬물을 더 부으라는 거요?”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正色을 하고 말했다.
“바로 그것입니다. 小僧에게 배우러 왔다는 분들이 自己의 我執과 猜忌心으로 가득 차 있는데 小僧의 말이 들어갈 자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眞正으로 제 말을 듣기를 원한다면 于先 마음을 깨끗이 비우셔야 됩니다. 마음에 빈자리가 많을수록 많이 배울 수 있는 法이지요. 自慢과 我執이 가득한 마음은 찻잔에 물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스님의 얘기를 듣고 선비들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조차 들지 못하고 庵子를 떠났다.
33. 공후인(箜篌引)
男便이 江물에 빠져 죽음을 슬퍼하여 부른 노래. 古朝鮮時代의 노래 <黃鳥歌>와 함께 傳해져 내려오고 있다. 節槪를 지킨 白首狂夫의 妻가 부른 노래다.
* 최표(崔豹)의 古今注에.
古朝鮮時代의 詩歌인 <공후인(箜篌引)>에는 슬픈 事緣이 담겨 있다.
大同江에서 뱃사공을 하던 곽리자고(霍里子高)가 어느 날 새벽에 江으로 나갔는데 白首狂夫(흰 머리의 미친 사람)가 江을 가로질러 건너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火急히 따라가며 건너지 말라고 소리쳐 불렀으나 듣는 둥 마는 둥 繼續 물속으로 들어가 結局 빠져 죽고 말았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슬퍼하면서 <公無渡河歌>를 지어 부르기 始作했다.
公無渡河 ~ 임이여 江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 그래도 임은 기어이 건너가셨네.
墮河而死 ~ 結局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 아! 이 일을 어찌해야 하오리.
노래를 다 마친 그녀는 男便이 빠져 죽은 강물로 들어가 목숨을 끊었다.
그 光景을 目擊한 霍里子高는 집에 돌아와 妻 麗玉에게 나루터에서 있었던 일을 노래와 함께 이야기해 주었다. 麗玉은 그 事緣을 듣고 몹시 슬퍼하면서 箜篌를 가지고 男便이 불러 주는 詩歌에 曲調를 붙여 <公無渡河歌>를 完成했다. 그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 노래는 高句麗 琉璃王의 黃鳥歌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34. 과공중형(過恭仲兄)
仲兄에게 恭遜하기를 切實하게 하다.
* 국조휘어(國朝彙語)에.
朝鮮 宣祖 때의 大學者인 文成公(諡號) 栗谷(號) 李珥(姓名)는 집에 둘째 兄님이 있었는데, 每양 일이 있을 때마다 栗谷을 불러 심부름을 시키는데, 栗谷은 게을리함이 없었다. 벼슬이 政丞에 이르렀는데도 禮義 갖추기를 더욱 恭遜하게 하니, 文人이 묻기를,
"지나친 것이 아닙니까?"고 하니, 말하기를,
"아버지와 兄님에게는 恭遜할수록 禮義가 되느니라. 歲月이 흐르는 물과 같이 빠르니 兄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禮義를 갖추고자 하더라도 할 수가 있겠느냐?"라고 하고, 조금도 이를 고치지 아니하였다.
35. 과욕패가(過慾敗家)
慾心이 지나치면 집안을 亡친다는 뜻. 卽 虛望한 過慾은 自身을 亡치게 하는 것은 勿論 家族까지 잃게 한다. 過慾을 警戒하라는 敎訓이다.
* 韓國人의 智慧 古今淸談에.
朝鮮 仁祖 때, 司憲府에 尹厚吉이라는 나졸(邏卒)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獄門을 지키고 있는데 한 罪囚가 自己를 풀어주면 平生 먹고살 만한 돈 三千 兩을 주겠다고 提議했다. 생각해 보니 그 돈만 있으면 苦된 邏卒職을 그만두더라도 平生토록 배부르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그 罪人과 함께 달아났다.
하지만 이내 잡혀 司憲府에 끌려와 拷問을 當한 끝에 犯罪 事實을 告白할 수밖에 없었다. 平生 便히 살려던 꿈이 水泡로 돌아간 것은 勿論이고, 拷問으로 얻은 傷處로 거의 죽을 地境에 이르게 되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維持하여 獄살이를 마치고 나오니 家族들은 勿論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過慾은 身世를 亡치게 되고 끝내는 家族도 지키지 못하는 敗家의 어리석은 것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는 말이다.
36. 과자배학(寡子倍學)
홀어미의 아들은 남보다 갑절이나 더 배우고 法道를 잘 지켜야 한다. 卽 偏母膝下에서 자란 아들은 아버지 없이 자란 버릇없다는 辱을 먹지 않도록 警戒해야 한다는 말이다.
* 古今淸談에.
朝鮮 明宗 때 이준경(李浚慶 1499~1572)은 本貫이 廣州이며 號는 동고(東皐)이다. 中宗 17年에 生員이 되는 것으로 官職에 올라 明宗 20年(1565年) 때에는 領議政에까지 올랐다. 그는 己卯士禍 渦中에 罪人을 辯護했다가 金安老의 미움을 사 罷職되었다. 그 後 金安老가 文定王后 廢位 事件에 連累되어 處刑되자 다시 復歸되었는데, 淸廉하고 儉素하여 德望이 높았다.
이준경(李浚慶)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위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자랐는데, 어머니 申씨는 孝敬篇의 內容대로 아들을 嚴하게 敎育했다.
“孝敬에 寡婦의 아들과는 사귀지 말라 했느니라, 이는 寡婦의 子息은 자칫 버릇이 없을 수 있어 그를 警戒한 말이니, 너는 반드시 남보다 열 갑절이나 더 操心하고 잘 배워서 模範이 되도록 하여라.”
그는 어머니의 말씀을 銘心하여, 兄 潤慶과 함께 從兄 延慶의 門下에서 熱心히 工夫했다. 그래서 마침내 文臣庭試에 壯元하여 벼슬을 하기 始作하였다.
그는 大司憲 때 尹任 一派로 몰려 귀양을 가게 되었으나 나중(乃終)에 풀려나 咸鏡道 巡邊使가 되어 북쪽 邊方의 國防을 맡았고, 다시 全羅道 巡察使가 되어 湖南地方에 侵入하는 倭賊을 擊退하는 功을 세웠다. 그 後 右議政과 左議政을 거쳐 領議政에 까지 올랐으나 1567年 明宗이 昇遐하자 新進士類의 政敵 奇大升 等의 攻擊을 받아 領議政을 辭任하고 領中樞府事를 歷任했다.
그가 죽을 때 朋黨이 심해질 것이라는 豫見을 하여 糾彈을 받았으나 뒤에 實際로 東西分黨이 일어나 未來를 내다보는 높은 慧眼을 認定받기도 했다.
先祖 廟庭에 配享되었으며 諡好는 忠正公이다.
37. 과지옥용(胯知玉龍)
허리 아래 玉龍<男根>은 알고 있다. 卽 나라를 지키겠다는 强한 意志를 피력(披瀝)한 말이다. 또한 男性의 强한 氣槪를 나타낸 말이다. 나라를 爲해 목숨을 바치는 壯烈한 氣槪를 뜻한다.
* 日溪集 및 古今淸談에.
朝鮮 14代 宣祖 때의 武臣 文紀房(?~1597)은 本貫이 南平이고, 字는 仲律로, 문익점(文益漸)의 後孫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하더니 자라서도 亦是 힘이 뛰어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武科에 及第했다.
壬辰倭亂이 일어나자 同生 明會와 함께 義兵을 모아 全羅道 兵馬節度使 李福男을 따라 南原에서 싸웠다. 그때 倭敵은 宿星嶺을 넘어 오고, 官軍은 順天을 지나 南原에 이르렀는데, 義兵들은 武裝한 日本軍을 보자 怯을 먹고 달아나 겨우 50如 名만 남아 있었다.
倭敵의 先鋒이 南原城 아래로 바싹 다가오자 그는 明會에게 强한 意志로 말했다.
“나는 오늘 이 싸움에서 죽어 나라의 恩惠에 報答하겠다.”
그는 활을 당겨 쏘느라고 오른쪽 손가락이 문드러지자 왼손으로 쏘고, 왼쪽 손가락마저 문드러지자 이렇게 詩를 읊었다.
平生토록 殉國은 나의 뜻이다.
허리 아래 玉龍은 알고 있으리.
허리 아래 玉龍이란 大丈夫를 象徵하는 男根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자 아우 明會가 和答했다.
힘을 다해 싸웠건만 孤城이 되었구나.
그 누가 나라의 危殆함을 救해 주려나?
兄弟는 치열(熾熱)한 싸움 中에도 이 글을 적삼 소매에 피로 써 놓고, 肉薄戰을 벌이다가 壯烈히 戰死하니 忠臣의 一生이 그렇게 끝났다.
38. 관명승진(觀明昇進)
관명(觀明)의 昇進이라는 말로, 肅宗 때 戶曹判書를 지낸 李觀明의 昇進에서 由來했다. 公的인 일을 所信껏 推進하여 認定받고 成功함으로써 高速 昇進하는 境遇를 이른다.
* 國朝人物志에.
朝鮮 肅宗 때 堂下官 (正3品) 李觀明(1661~1733)이 御命으로 嶺南에 내려가 百姓들의 實態를 살피고 돌아왔다.
“繡衣御史 李觀明 謁見이오.”
玉座에 正坐한 肅宗은 龍眼에 喜色이 만연(蔓延)하여 그를 맞았다.
“얼마나 客苦가 많았는가? 그래, 百姓들을 直接 살펴본 소회(所懷)는 어떠한고?”
“上監媽媽께서 政事를 바르게 펴신 德澤에 地方 官吏들도 모두 百姓들을 잘 보살펴 주고 있었습니다. 다만 統營에 있는 섬 하나기 後宮의 땅으로 되어 있사온데, 그곳 百姓들에게 부과(賦課)하는 貢物이 너무 많아 怨聲이 자자(藉藉)하였기로 敢히 아뢰옵니다.”
肅宗은 後宮의 땅이라는 데 크게 怒하였다.
“寡人이 조그만 섬 하나를 後宮에게 주었기로서니 그것을 탓하여 敢히 나를 비방(誹謗)하다니……!”
肅宗이 주먹으로 앞에 놓여 있는 床을 내리치니 搏殺이 나고 말았다. 갑자기 闕內의 雰圍氣가 싸늘해졌다. 그러나 觀明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아뢰었다.
“小臣이 예전에 경연(經筵)에 참여하올 때는 殿下께서 이러지 않으셨사옵니다. 그런데 小臣이 外地에 나가 있던 동안에 殿下의 性情이 이처럼 過激해지셨으니 이는 殿下께 올바르게 諫爭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오니 모든 臣下들을 파직(罷職)시키옵소서.”
그는 서슴치 않고 自己가 생각한 바를 그대로 아뢰었다.
그러자 肅宗은 시립(侍立)하고 있는 承旨에게 命하였다.
“承旨는 傳敎를 쓸 準備를 하라.”
臣下들은 觀明에게는 큰 罰이 내려질 것으로 알고 숨을 죽였다.
“繡衣御史 李觀明에세 副提學을 除授한다.”
肅宗의 吩咐에 承旨는 깜짝 놀라 붓끝이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도 생각 밖의 일이었다. 周圍에 함께 있던 臣下들도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왜 그런 敎旨를 내리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斟酌)할 수가 없었다.
肅宗이 다시 命 했다.
“承旨, 나의 말을 다 썼는가?”
“예!”
“그럼 다시 副提學 李觀明에게 弘文提學을 除授한다고 쓰라.”
怪異하게 여기는 것은 承旨만이 아니었다. 滿朝百官이 웅성거렸다. 肅宗은 잇달아 命을 내렸다.
“弘文提學 李觀明에게 禮曹參判을 除授한다.”
肅宗은 李觀明의 관작(官爵)을 한자리에서 세 번이나 높이어 정경(正卿)으로 삼았다.
"경(卿)의 諫言으로 이제 寡人의 잘못을 알았소. 하여 卿을 禮曹參判에 除授하는 것이오. 앞으로도 그런 姿勢로 짐(朕)의 잘못을 바로잡아 나라를 太平하게 하시오.“
이 故事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갑자기 高速 昇進하는 것을 觀明昇進이라 했다.
그는 後日 禮曹判書를 거쳐 吏曹判書, 右議政, 左議政을 지냈다.
著書에 병산집(屛山集)이 있다.
39. 관물불수(官物不受)
官廳의 物件은 받지 않는다는 뜻으로, 公과 私를 區分하는 것이 嚴格하여 淸廉한 境遇를 이른다. 公共의 物件을 私事로이 濫用해서는 안 된다는 敎訓이다.
* 古今淸談에.
朝鮮 中宗 때, 洪順福은 本貫은 南陽이고, 號는 고암(顧庵)으로 淸廉하고 志操가 곧은 선비였다.
그의 丈祖父 (아내의 祖父) 김맹유(金孟鍒)가 고을 員님으로 赴任하여 오자 人事차 訪問하니 丈祖父가 意外라는 듯 말했다.
“그대의 집은 가난하여 무엇인가 財貨가 될 만한 것은 하나쯤은 달라고 할 法도 한데 왜 그런 말을 하지 않는가?”
그러자 順福이 斷乎하게 말했다.
“官家의 物件이라면 저는 絶對로 받지 않습니다.”
이에 丈祖父가 異常하다는 듯이 다시 말했다.
“사소(些少)한 것일 뿐인데 왜 그리 興奮하는가? 그러지 말고 必要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게.”
人事가 끝나고 돌아오려고 일어서자 벌꿀 5홉과 개가죽 半 張을 주는 것이었다. 그는 마지못하여 받아왔으나 집에 와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받아 온 物件을 다시 돌려보내면서 鄭重히 말했다.
“개가죽으로 말 鞍裝을 만들어 쓰다 보면 닳아 끊어질 걱정을 해야 되고, 달콤한 꿀을 먹고 먼 길을 가다 보면 渴症이 더해 오히려 治療를 해야 할 念慮가 있어 아예 돌려드리고자 합니다.”
順福은 이처럼 每事에 公과 私를 確實하게 區別하여 행하는 義로운 사람이었다.
40. 관필숭민(官必崇民)
國家의 祿을 받는 벼슬아치는 반드시 百姓들을 받들어야 한다. 卽 官吏들은 國民들에게 親切하게 奉仕해야 한다는 公職者의 姿勢를 이르는 말이다.
* 朝鮮名臣錄에
朝鮮 第4代 世宗 때의 武臣으로 左議政에까지 올랐던 崔潤德(1376~1465)이 母親喪을 當하여 食率들을 데리고 昌原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途中에 어느 고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서너 명의 守令들이 냇가에 天幕을 치고 川獵을 하다가 말을 타고 가는 崔潤德을 보고 혀를 차며 말했다.
“저런 고얀 놈이 있나? 喪服을 입은 채로 말을 타고 가다니……. 그리고 이 附近의 시골 놈이 分明한데, 어찌 守令에게 禮를 갖추지 않는 게야?”
“저런 놈은 잡아다가 호되게 다스려야 해.”
守令들은 下人을 시켜 崔潤德의 종을 잡아오게 하고 캐물었다.
“네 主人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느냐?”
“예! 崔潤德이라 하고 只今 昌原으로 가는 중입니다.”
“뭐라구? 左議政 崔潤德 大監을 말하는 것이냐?”
“예.”
“어허! 이거 亂離 났군. 亂離가 났어!”
守令들은 今方 死色이 되어 서둘러 天幕을 걷고 술자리를 치웠다. 그리고 崔潤德의 宿所로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容恕를 빌었다.
崔潤德은 준엄(峻嚴)하게 꾸짖었다.
“百姓을 종 보듯 하는 너희들의 마음부터 고치도록 하여라. 牧民官은 百姓들 위에 君臨하는 者가 아니라, 百姓들을 떠받드는 者가 되어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예.”
守令들은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조용히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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