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ㅇ- 6 용두사미~ )
51. 용두사미(龍頭蛇尾) 龙头蛇尾
龍 머리에 뱀 꼬리. 시작은 좋았으나 갈수록 나빠지는 것이나, 시작은 거창했지만 끝은 보잘것없게 되는 것을 比喩
陸州 龍興寺의 僧侶 陳尊宿은 道를 깨치기 爲해 절을 떠나 天下를 放浪했는데, 나그네를 爲해서 짚신을 삼아 길에 걸어 두고 다녔다고 한다. 陳尊宿이 나이 든 後의 어느 날, 禪問答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陳尊宿이 話頭를 던지자 갑자기 相對方이 큰소리로 喝을 했다. 陳尊宿이 “老僧이 그대에게 一喝을 當했구료.” 하고 말하자 相對가 또 한 番 큰소리로 喝을 하고 나왔다. 相對가 呼吸이 꽤 깊은 걸로 보아 相當한 修養을 쌓은 것같이 보였으나, 찬찬히 살펴보니 殊常한 구석도 엿보였다. 陳尊宿은 ‘이 중이 그럴듯해 보여도 眞짜 道를 깨친 것 같지는 않다. 龍의 머리에 뱀의 꼬리는 아닌지 疑心스럽구나.
(看取頭角, 似則似, 是則未是, 只恐龍頭蛇尾.)
라고 생각하면서 相對에게 물었다. “그대가 그렇게 三喝四喝을 한 後에는 무엇으로 마무리를 질 것인가?” 그러자 相對는 그만 슬그머니 答辯을 避하고 말았다.
* 碧巖錄에 나온다.
52. 우공이산(愚公移山)
愚公이 山을 옮기다. 어떠한 어려움도 굳센 意志로 밀고 나가면 克服할 수 있으며, 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다는 것을 比喩
「太形山과 王屋山은 四方 700里에 높이가 萬 길이나 되는데, 冀州의 南쪽과 河陽의 北쪽 사이에 있다. 北山의 愚公은 나이가 아흔이 다 되었는데 山이 마주 보이는 곳에 居住했다. 그런데 北山이 막고 있어서 出入을 하려면 길을 우회(迂廻)해야 하는 不便이 있었다. 愚公은 집안 食口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나와 너희들이 힘을 다해 險峻한 山을 平平하게 만들면 豫州의 南쪽으로 直通할 수 있고 漢水의 南쪽에 다다를 수 있는데, 할 수 있겠느냐?” 모두들 贊成했는데 婦人이 疑問을 提起했다.
“當身의 力量으로 괴부(魁父)의 언덕도 깎아 내지 못했는데, 太形과 王屋을 어떻게 해낸단 말이오? 더구나 흙과 돌은 어디다 버린단 말이오?” 그러자 모두들 말했다. “발해(渤海)의 끝과 隱土의 北쪽에다 버리면 됩니다.” 愚公은 짐을 질 수 있는 子孫 셋을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의 끝으로 운반했다. 이웃집 과부 京城氏도 七八 歲 된 어린 아들을 보냈는데, 통통 뛰어다니며 도왔다. 겨울과 여름이 바뀌는 동안 한 번 往復을 했다. 河曲의 지수(智叟)가 비웃으며 말렸다. “甚하도다, 그대의 총명하지 못함은. 당신의 남은 生涯와 남은 힘으로는 山의 풀 한 포기도 없애기 어려울 텐데 흙과 돌을 어떻게 한단 말이오.” 北山 愚公이 長嘆息하며 말했다. “당신 생각이 막혀 있어 그 막힘이 고칠 수가 없는 정도구려. 과부네 어린아이만도 못하구려. 내가 죽더라도 아들이 있고, 또 孫子를 낳으며, 孫子가 또 子息을 낳으며, 子息이 또 子息을 낳고 子息이 또 孫子를 낳으면 子子孫孫 끊이지를 않지만, 山은 더 커지지 않으니 어찌 平平해지지 않는다고 걱정할 必要가 있겠소.” 하곡의 지수는 대꾸할 수가 없었다. 조사신(操蛇神)이 이를 듣고 (山을 옮기는 일을) 그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上帝에게 呼訴했다. 上帝는 그 精誠에 感動하여 과아씨(夸娥氏)의 두 아들에게 命해 두 山을 업어다 하나는 朔東에 두고, 하나는 雍南에 두게 했다. 이로부터 冀州의 南쪽과 漢水의 南쪽에는 언덕조차 없게 되었다.
(太形, 王屋二山, 方七百里, 高萬人仞. 本在冀州之南, 河陽之北. 北山愚公者, 年且九十, 面山而居. 懲山北之塞, 出入之迂也. 聚室而謀曰, 吾與汝畢力平險, 指通豫南, 達於漢陰, 可乎. 雜然相許. 其妻獻疑曰, 以君之力, 曾不能損魁父之丘, 如太形王屋何. 且焉置土石. 雜曰, 投諸渤海之尾, 隱土之北. 遂率子孫荷擔者三夫, 叩石墾壤, 箕畚運於渤海之尾. 鄰人京城氏之孀妻, 有遺男, 始齔, 跳往助之. 寒暑易節, 始一反焉. 河曲智叟笑而止之曰, 甚矣汝之不惠. 以殘年餘力, 曾不能毁山之一毛, 其如土石何. 北山愚公長息曰, 汝心之固, 固不可徹, 曾不若孀妻弱子. 雖我之死, 有子存焉. 子又生孫, 孫又生子. 子又有子, 子又有孫. 子子孫孫, 無窮止也, 而山不加增, 何苦而不平. 河曲智叟亡以應. 操蛇之神聞之, 懼其不已也, 告之於帝. 帝感其誠, 命夸娥氏二子負二山, 一厝朔東, 一厝雍南. 自此冀之南, 漢之陰, 無隴斷焉.)」
이 이야기는 《列子 湯問》에 나온다. 隱土는 古代 傳說에 나오는 地名이다.
53. 우수마발(牛溲馬勃) 牛溲马勃
소의 오줌과 말똥. 가치 없고 쓸모없는 물건을 比喩하는 데 쓰이거나, 비천하거나 흔하지만 때로는 유용하게 쓰이는 재료나 약재를 比喩하는 말로도 쓰인다.
「아! 자네 앞으로 나오라. 무릇 큰 나무는 들보가 되고, 가는 나무는 서까래가 되며 欂㯭, 侏儒, 門지도리, 門地坊, 빗장, 門설주가 各其 마땅함을 얻어 집을 이루는 것은 木手의 功이다. 玉札, 丹砂, 赤箭, 靑芝, 질경이(소 오줌이라고도 함)와 먼지버섯(藥材로 쓰는 버섯)이나 찢어진 북의 가죽을 모두 거두어 貯蓄해 놓고, 쓰일 때를 기다려 버리는 일이 없는 것은 醫師의 賢明함이로다.
(旴, 子來前. 夫大木爲杗, 細木爲桷, 欂櫨侏儒椳闑扂楔, 各得其宜, 以成室屋者, 匠氏之功也. 玉札丹砂, 赤箭靑芝, 牛溲馬勃, 敗鼓之皮, 俱收幷蓄, 待用無遺者, 醫師之良也.)」
이 이야기는 韓愈의 進學解에 나오는 말로, ‘질경이(소 오줌이라고도 함)와 먼지버섯(藥材로 쓰는 버섯)이나 찢어진 북의 가죽’이란 말에서 ‘牛溲馬勃’이 由來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같은 뜻으로 쓰이는 ‘敗鼓之皮’도 나왔다.〈進學解〉 典文은 牛溲(질경이)는 利尿 作用을 하며, 馬勃(藥材로 쓰는 먼지버섯)은 부스럼을 治療하는 데 쓰이는데, 둘 다 흔하고 別 價値가 없는 藥材이다.
54. 우화등선(羽化登仙)
날개가 돋아 神仙이 되어 하늘에 오르다. 번잡한 세상일을 떠나 마음이 평온하고 즐거운 상태, 혹은 술이 거나하게 醉하여 기분이 좋은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壬戌年 가을의 칠月 열엿새 날, 나 蘇軾은 客들과 함께 배를 띄우고 赤壁의 아래에서 노닐었는데, 시원한 바람은 건듯 불고(천천히 불고) 물결도 일지 않았다. 술을 들어 客에게 勸하고, 明月의 詩를 읊으며 窈窕의 章을 노래했다. 이윽고 달이 東山 위에 떠올라 北斗星과 牽牛星 사이를 徘徊하는데, 물안개 자욱이 江을 가로지르고, 물빛이 하늘에 이어져 있었다.(江물에 反射된 달빛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갈댓잎처럼 작은 배가 가는 바대로 맡기어 萬頃蒼波의 아득하고 넓은 곳을 건너가는데, 넓고 넓음이 마치 虛空을 타고 바람을 모는 것같이 그 그치는 곳을 모르겠으며, 가벼이 나부끼는 것이 마치 世俗을 버리고 홀로 서 몸에 날개가 돋아 神仙이 되어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이에 술을 마시고 즐거움이 커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했다. “桂樹나무 노, 牧丹 상앗대로 虛空의 달(달빛이 비치는 江물)을 치고, 흐르는 빛(江물에 비쳐 江물을 따라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올라간다. 아득하고 먼 내 마음이여, 하늘 한쪽 끝에서 思慕하는 임을 바라본다.”
客 가운데 퉁소를 부는 사람이 있어 노래에 맞추어 伴奏를 하는데, 그 소리가 우우 하는 것이 마치 怨望하는 것 같기도 하고 愛慕하는 것 같기도 하며, 흐느끼는 듯하기도 하고 呼訴하는 듯하기도 하는데, 餘音이 가냘프게 끊이지 않는 것이 마치 실 가닥과 같아, 깊은 골짜기의 물속에 잠긴 龍을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의 홀로된 女人(寡婦)을 울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나 蘇軾은 正色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곧추 앉아 客에게 물었다. “어찌 그것이 그러하오?(어떻게 그렇게 感情을 살려 잘 부는가?)” “ ‘달이 밝으니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 南쪽으로 날아간다.’ 이것은 曹孟德의 詩가 아니겠소? 西쪽으로 夏口를 바라보고 東쪽으로 武昌을 바라보니 山川이 서로 얽혀 검푸르기만 한데, 이곳이 바로 孟德이 周郞에게 困辱을 當한 곳이 아니겠소? 바야흐로 荊州를 깨뜨리고 江陵으로 내려갈 제 물길 따라 東쪽으로 흘러가는데 배는 千 里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다오. 술을 걸러 江물을 굽어보며 槍을 비껴 들고 詩를 읊을 때에는 眞實로 一世의 英雄이었더니 只今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나와 當身이 江과 沙洲에서 고기를 잡고 나무를 하며, 고기나 새우와 짝하며, 사슴이나 고라니와 벗함에 있어서이겠소. 나뭇잎 같은 작은 배를 타고, 술甁을 들어 서로 勸하며 天地에 하루살이 같은 짧은 生을 붙이고 사니, 작기가 넓은 바다 가운데 있는 좁쌀 하나와 같소.(滄海一粟) 우리 삶의 짧음을 슬퍼하고, 長江의 끝이 없음을 부러워한다오. 나는 詩選을 끼고 함께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 永遠히 살고 싶지만, 갑자기 얻어지지 못함을 알아 남은 音響(퉁소 소리의 여음)을 슬픈 바람에 붙인다오.” 나 蘇軾이 말했다. “客도 亦是 물과 달을 아시오?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으니 일찍이 가는 것이 없었고, 차고 기우는 것이 저와 같으니 結局은 消滅하거나 불어나지 않는 것이지요. 스스로 變하는 것으로부터 보면 天地는 한瞬間도 變하지 않을 수 없으며, 變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보면 事物과 나는 모두 끝이 없는 것이니, 또한 어찌 부러워하겠소? 또한 天地間의 모든 事物에는 主人이 있으니, 眞實로 내 所有가 아닐진대 비록 터럭 하나라도 取하지 말아야 하지만, 오직 江 위의 시원한 바람과 山間의 밝은 달은 귀가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이 만나면 色(아름다운 景致)이 되면서, 그것을 取하는 데 禁함이 없고, 그것을 使用해도 마르지 않으니, 이것은 造物主의 다하지 않는 報告이며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기는 것이라오.” 客이 즐거이 웃으며 盞을 씻어 다시 술을 따랐다. 按酒도 다했고 술盞과 小盤이 어지러이 널려 있으며, 배 안에서 서로 베고 깔고 드러누워(잠이 들어) 東쪽이 이미 밝아 온 것도 알지 못했다.
(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泛舟遊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擧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白露橫江, 水光接天.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如憑虛御風而不知其所止,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於是, 飮酒樂甚, 扣舷而歌之. 歌曰, 桂櫂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 渺渺兮余懷, 望美人兮天一方.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其聲鳴鳴然, 如怨如慕, 如泣如訴, 餘音嫋嫋, 不絶如縷, 舞幽壑之潛蛟, 泣孤舟之嫠婦. 蘇子愀然, 整襟危坐而問客曰, 何爲其然也. 客曰, 月明星稀, 烏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 西望夏口, 東望武昌, 山川相繆, 鬱乎蒼蒼.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 方其破荊州, 下江陵, 順流而東也, 舳艣千里, 旌旗蔽空. 釃酒臨江, 橫槊賦詩.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況吾與子, 漁樵於江渚之上, 侶魚鰕而友麋鹿, 駕一葉之扁舟, 擧匏樽以相屬, 寄蜉蝣於天地, 渺滄海之一粟.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挾飛仙以遨遊, 抱明月而長終. 知不可乎驟得, 托遺響於悲風. 蘇子曰,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適. 客喜而笑,洗盞更酌. 肴核旣盡, 杯盤狼藉. 相與枕藉乎舟中, 不知東方之旣白.)」
* 蘇軾 赤壁賦에 前赤壁賦(전적벽부) : 소식(蘇軾)
宋나라 神宗 때 王安石의 新法이 施行되자 舊法黨에 屬해 있었던 蘇軾은 湖北 黃州로 左遷되었다. 그는 틈나는 대로 周邊의 名勝地를 遊覽하였는데, 赤壁을 찾아 〈赤壁賦〉 2首를 지었다. 7月에 〈前赤壁賦〉를 짓고, 3個月 後인 10月에 〈後赤壁賦〉를 지었는데, 〈前赤壁賦〉에서 羽化而登仙이 나온다. ‘羽化’는 原來 번데기가 날개 달린 나방으로 變하는 것을 말하는데, 煩雜한 世上 일에서 떠나 즐겁게 지내는 狀態를 比喩하는 말이며, 술에 醉하여 陶然한 모습을 일컫기도 한다.
本文에서 引用한 詩句인 ‘달이 밝으니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 南쪽으로 날아간다.(月明星稀, 烏鵲南飛)’는 曹操의 短歌行이다. 蘇軾이 노닐었던 赤壁과 曹操가 싸웠던 赤壁은 同一한 곳은 아니다. 曹操의 赤壁은 湖北省 赤壁市에 있으며, 武赤碧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蘇軾의 赤壁은 그보다 下流에 있는 湖北省 黃岡市 赤鼻磯로, 文赤碧이라고도 한다
55. 원교근공(遠交近攻) 远交近攻
먼 나라와는 사귀고 가까운 나라는 친다.
戰國時代 魏나라 사람 범수(范睢)는 魏나라 中大夫 須賈를 섬겼으나, 誤解를 받아 抑鬱하게 목숨을 잃을 뻔했다. 九死一生으로 살아나 張祿으로 이름을 고치고 秦나라로 들어갔다. 當時 秦나라의 昭王은 在位 36年이나 되었지만 如前히 實權을 가지지 못했고, 昭王의 어머니 宣太后와 그女의 同生인 穰侯와 華陽君, 그리고 昭王의 同生들인 涇陽君과 高陵君이 實權을 쥐고 있었다. 穰侯는 宰相으로 있으면서 國政을 專橫했고, 나머지 세 사람은 番갈아 가며 軍士權을 掌握했다. 范睢는 秦나라에서 1年이란 歲月을 特別한 일 없이 虛送했지만, 昭王의 근심거리가 外部에 있는 것이 아니라 王의 周邊에 있다는 것을 正確하게 把握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范睢가 기다리던 機會가 왔다. 當時 穰侯는 燕 · 楚 · 韓 · 趙 · 魏 等 다섯 나라와 聯合하여 齊를 擊破하고 昭王에게 陶邑을 封地로 받았는데, 陶邑은 齊나라와 가까운 距離에 있었다. 하여 穰侯는 韓나라와 魏나라를 지나 齊나라의 剛과 壽를 쳐서 占領하고 이곳을 封地로 받아 自身의 勢力을 擴大할 計劃을 세웠다. 范睢는 이 消息을 듣고 昭王에게 上書를 올려 離宮에서 獨對할 機會를 얻었다. 昭王이 范睢에게 여러 차례 가르침을 請하자 范睢는 비로소 입을 열어 昭王에게 遠交近攻의 計策을 說明했다.
“穰侯가 韓, 魏 두 나라를 지나 齊나라의 剛과 壽를 친다는 것은 賢明한 일이 아닙니다. 적은 軍士로는 齊나라를 이길 수 없고, 많은 軍士를 보내면 秦나라에 害가 됩니다. 臣이 王의 計策을 생각해 보니 軍士를 적게 내고 韓나라와 魏나라의 軍士를 動員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는 義가 아닙니다. 只今 同盟國인 齊나라와 親하지 않다고 남의 나라를 넘어가 攻擊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그 計劃에는 虛點이 많습니다. 지난날 齊나라의 민왕(涽王)이 南쪽으로 楚나라를 攻擊하여 軍隊를 깨뜨리고 將軍을 죽여 領土를 千 里나 넓히려고 했지만 齊나라는 尺寸의 땅도 얻지 못했습니다. 어찌 땅을 얻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겠습니까. 形勢가 땅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諸侯들은 齊나라가 지치고 王과 臣下 사이가 不和한 것을 보고 軍士를 일으켜 齊나라를 크게 깼으므로 將帥는 辱을 當하고 軍士들은 꺾이고 말았습니다. ······ 그러므로 齊나라가 크게 깨진 까닭은 楚나라를 쳐 韓나라와 魏나라를 살찌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른바 敵에게 軍隊를 빌려 주고 도둑에게 糧食을 보내 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먼 나라와 親交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攻略하는 것이 낫습니다. 한 치의 땅을 얻으면 殿下의 寸土가 되고, 한 자의 땅을 얻으면 殿下의 尺地가 됩니다. 只今 이를 버리고 멀리 있는 나라를 攻擊하는 것은 좋은 計策이 아닙니다.
(故齊所以大破者, 以其伐楚而肥韓魏也. 此所謂借敵兵齎盜糧者也. 王不如遠交而近攻, 得寸則王之寸, 得尺亦王之尺也. 今舍此而遠攻, 不亦繆乎.)”
昭王은 范睢의 計策을 받아들였으며, 范睢를 客卿으로 삼았다. 그 後 紹王의 信任을 얻은 范睢는 宰相이 되어 應侯에 封해졌고, 그의 遠交近攻策은 天下 統一을 志向하는 秦나라의 國施가 되었다.
* 史記 范睢蔡澤列傳 과 戰國策 秦策에 나온다.
56.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远水不救近火
먼 곳의 물로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 없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도움이 切實히 必要할 때 實質的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比喩
春秋時代 齊나라와 魯나라는 隣接國이었는데, 魯나라가 齊나라보다 작았으므로 魯나라 穆公은 齊나라에 對하여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穆公은 公子들을 晉나라에서 벼슬하게 하거나 或은 楚, 荊나라에서 벼슬을 하게 하였다.(魯나라에 일이 생기면 晉나라와 楚나라의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期待했기 때문이었다.) 犁鋤가 말했다. “越나라 사람의 힘을 빌려 물에 빠진 아들을 救하려 한다면 越나라 사람들이 水泳을 잘하더라도 (때맞추어 올 수 없으니) 아들은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불이 났는데 바닷물을 가져다 쓰려고 한다면 바닷물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불을 끌 수가 없습니다. 먼 곳의 물은 가까운 곳의 불을 끄지 못하는 것입니다. 只今 晉나라와 楚나라가 强하기는 하지만 齊나라가 더 가깝기 때문에 魯나라의 어려움을 求할 수 없을 것입니다.”
(魯穆公使衆公子或宦於晉, 或宦於荊. 犁鋤曰, 假人於越而救溺子, 越人雖善遊, 子必不生矣. 失火而取水於海, 海水雖多, 火必不滅矣. 遠水不救近火也. 今晉與荊雖强, 而齊近, 魯患其不救乎.)」
이 이야기는 《韓非子 說林上》에 나오는데, 먼 곳의 물로 가까운 불을 끌 수 없다는 말에서 由來했다.
57. 원형이정(元亨利貞) 元亨利贞
《周易 乾卦》에 나오는 四德을 말한다.
「乾은 元亨利貞이다.(乾, 元亨利貞.)」 문언전(文言傳) 1. 건(乾)
이에 對해 《周易 文言傳》에서 다음과 같이 說明했다.
「元은 모든 善의 首長이고 亨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이며, 利는 義로움의 調和이고 貞은 事物의 根幹이다. 君子는 仁을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고,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어 禮와 合致할 수 있으며, 事物을 利롭게 하여 義로움과 和合할 수 있고, 곧음을 굳게 하여 事物의 根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君子는 이 四德을 實行한다. 그러므로 乾은 元亨利貞이라고 하는 것이다.
(元者, 善之長也. 亨者, 嘉之會也. 利者, 義之和也. 貞者, 事之幹也. 君子體仁足以長人, 嘉會足以合禮, 利物足以和義. 貞固足以幹事. 君子行此四德者, 故曰, 乾, 元亨利貞.)」
‘元’은 萬物이 始作되는 때로 봄에 屬하며, 仁으로 이루어진다. ‘亨’은 萬物이 成長하는 때로 여름에 屬하며, 禮로 實踐된다. ‘利’는 萬物이 이루어지는 때로 가을에 屬하며, 義로 行해진다. ‘貞’은 萬物이 完成되는 때로 겨울에 속하며, 智로 이루어진다.
58. 월단평(月旦評) 月旦评
每月 첫째 날의 評. 人物에 대한 評을 이르는 말이다.
「許劭는 字가 子將으로, 汝南 平輿 사람이다. 許劭는 그의 從兄 許靖과 함께 名聲이 높았다. 두 사람은 每月 初하루면 地域의 人物을 評價했는데, 每月 品評할 사람을 바꾸어 가며 論評했다. 그래서 汝南에서는 ‘月旦評’이라 했다. 曹操가 아직 이름이 나지 않았던 時節에 恭遜한 말투와 厚한 禮物로 許劭를 찾아와서 自己를 좀 보아 달라고 付託했다. 許劭는 曹操를 鄙陋한 人物로 보았기 때문에 相對를 하지 않았는데, 曹操가 틈을 보아 脅迫을 하자 許劭는 할 수 없이 말해 주었다. “그대는 太平之歲에는 奸賊이며 亂世에는 英雄이오.” 이 말을 듣고 曹操는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
(劭與靖俱有高名, 好共核論鄕黨人物, 每月輒更其品題, 故汝南俗有月旦評焉. 曹操微時, 常卑辭厚禮, 求爲己目. 劭鄙其人而不肯對, 操乃伺隙脅劭, 劭不得已曰, 君淸平之奸賊, 亂世之英雄. 操大悅而去.)」
이 이야기는 《後漢書 許劭傳》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月旦評’이 由來했다. ‘月旦’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三國志 武帝紀》에는 許劭가 曹操를 ‘太平聖歲에서는 有能한 臣下이고, 어지러운 世上에서는 奸智를 지닌 英雄(子治世之能臣, 亂世之奸雄也.)’이라고 評價했다고 記錄되어 있다.
59. 월명성희(月明星稀)
달이 밝으니 별이 드물다. 어진 사람이 나오면 소인들은 숨어 버린다는 것을 比喩
對酒當歌 人生幾何 : 술잔을 대하고 노래 부르니 人生은 그 얼마인가?
譬如朝露 去日苦多 : 아침 이슬 아니런가, 지난 歲月 괴로움도 많았지.
慨當以慷 憂思難忘 : 마음이 북받쳐 오르니 근심을 잊기 어려워라.
何以解憂 唯有杜康 : 어찌하면 이 근심을 잊을까, 술이 있을 뿐이로다.
靑靑子衿 悠悠我心 : 푸르른 그대의 옷깃 아득한 내 마음이여
但爲君故 沈吟至今 : 그대 생각하며 지금도 조용히 읊조리고 있다네.
呦呦鹿鳴 食野之蘋 : 사슴은 우우 울어 대며 들판의 풀을 뜯는구나.
我有嘉賓 鼓瑟吹苼 : 좋은 손님 오셨으니 琵琶 타고 생황(笙簧) 부세.
晈晈如月 何時可輟 : 밝고 밝은 달빛 같아 그 어느 때나 그치려나.
憂從中來 不可斷絶 : 시름도 이 안에서 나오니 끊을 수가 없구나.
越陌度阡 枉用相存 : 두렁 넘고 이랑 넘어 손님들 수고를 마다 않고 찾아오신다.
契瀾談嘗 心念舊恩 : 오랜만에 모여 잔치하고 즐기니 옛 恩情 마음에 그려지네.
月明星稀 鳥鵲南飛 : 달이 밝으니 별은 드문데 까막까치는 南으로 날아오누나
繞樹三匝 何枝可依 : 나무를 빙빙 돌지만 依支할 가지 없어라.
山不厭高 海不厭深 : 山은 높기를 마다하지 않고 물은 깊기를 마다하지 않네.
周公吐哺 天下歸心 : 주공(周公)처럼 어진 선비 맞으니 天下가 한마음으로 돌아왔다네.
曹操 短歌行, 對酒當歌라고도 하는 이 詩는 208年 曹操가 吳나라 孫權과 劉備의 聯合軍과의 赤壁 戰鬪를 앞에 두고 長江의 밤景致를 바라보면서 지은 것이다. 曹操가 이 노래를 부른 後에 모두 함께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는데 揚州 刺史 劉馥이 ‘달이 밝으니 별은 드문데 까막까치는 南으로 날아오누나. 나무를 빙빙 돌지만 依支할 가지 없어라.’라는 句節이 不吉한 徵兆라고 말했다. 興이 깨진 曹操는 그 자리에서 劉馥을 찔러 죽이고 말았는데, 다음 날 술이 깬 뒤 後悔하고 劉馥을 厚히 葬事했다. 이 이야기는 《三國演義》 第48回에 나오는데, 正史 《三國志》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이다.
曹操는 三國時代를 風靡한 一世의 英雄일 뿐 아니라 中國의 文學史에 길이 남을 文人이었다. 그는 두 아들 曹丕, 曹植, 그리고 建安七子와 더불어 當時의 建安 文壇을 이끌었는데, 曹操와 그의 두 아들을 通稱하여 ‘曹氏 三父子’라고 한다. 그리고 當時 曹氏 三父子의 幕下에서 그들과 더불어 文壇 活動을 했던 孔融, 阮瑀, 劉楨, 陳琳, 應瑒, 徐幹, 王粲 等 7人의 文人들을 建安七子라고 한다. 이 詩에 나오는 杜康은 夏나라 사람으로, 最初로 自然 醱酵 現狀을 發見하여 술을 만들었다. 이로 因하여 ‘杜康’은 술의 代名詞로 쓰이게 되었다.
60. 월하빙인(月下氷人) 月下冰人
달빛 아래의 老人과 얼음 위에 있는 사람. 중매쟁이를 말한다.
月下氷人은 月下老人과 氷上人을 合한 말이다. 氷上人에 對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晉나라에 天文과 꿈 解夢에 能한 색담(索紞)이란 占쟁이가 있었다. 어느 날 孝廉人 令狐策이 얼음 위에 서서 얼음 아래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꿈을 꾸었다. 索紞이 解夢을 해 주었다. “얼음 위는 陽이며 그 밑은 陰이므로 이는 陰陽의 일입니다. ‘男子가 아내를 맞아들이려면 얼음이 풀리기 前에 해야 한다.’ 婚姻은 大事입니다. 當身이 얼음 위에서 얼음 아래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陽이 되어 陰과 이야기를 한 것으로, 仲媒를 하는 일입니다. 當身이 다른 사람을 爲해 仲媒를 하게 되는데 얼음이 풀릴 무렵 成事될 것입니다.” 令狐策이 말했다. “나이 80이 넘은 늙은이라 仲媒를 할 수가 없소.” 얼마 後에 太守 田豹가 令狐策에게 自己 아들과 마을 사람 張씨의 딸을 중매서 달라고 付託을 했다. 婚事는 仲春에 이루어졌다.
(孝廉令狐策, 夢立冰上, 與冰下人語. 紞曰, 冰上爲陽, 冰下爲陰, 陰陽事也. 士如歸妻, 迨冰未泮, 婚姻事也. 君在冰上與冰下人語, 爲陽語陰, 媒介事也. 君當爲人作媒, 冰泮而婚成. 策曰, 老夫耄矣, 不爲媒也. 會太守田豹因策爲子, 求鄕人張公征女, 仲春而成婚焉.)」
* 晉書 藝術傳에.
月下老人의 이야기와 氷上人의 이야기로부터 사람들은 仲媒쟁이를 가리킬 때에 ‘月下老人’ 또는 ‘氷上人’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 둘을 合쳐서 ‘月下氷人’이라 부른다.
元文에 나오는 ‘男子가 아내를 맞아들이려면 얼음이 풀리기 前에 해야 한다.(士如歸妻, 迨冰未泮)’는 《詩經 〈패풍(邶風)〉》의 (匏有苦葉) 에 나오는 句節이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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