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평사 낙안하고 : ?이후백(李後白 1520~1578) ?조헌(趙憲)
평사 낙안하고 강촌에 일모로다
어선도 돌아오고 백구 다 잠들 적에
어디서 긴 피리 소리 잠든 나를 깨우는가
소상팔경(瀟湘八景) 중 <제2연>
[현대어 풀이]
모래밭에 기러기 내리니 강촌에 날이 저물어
어선은 돌아오고 갈매기는 다 잠든 밤에
어디서 빠른 소리의 긴 피리 소리가 잠든 나를 깨우는가.
*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조선 중기에 이후백(李後白)이 소상팔경을 노래하여 지은 연시조. 8수. 그의 문집인 《청련집(青蓮集)》에 전한다. 중국 후난성(湖南省)에 있는 소상강(瀟湘江) 주변의 승경과 여기에 얽힌 고사들을 내용으로 담고 있기는 하지만 팔경의 짜임도 뚜렷하지 않으며, 아무런 세련미도 없는 평범한 작품이다. 이 8수가 다른 시조집에는 거의가 이름을 밝히고 있지 않으며, 둘째수에 해당하는 "平沙에 落雁하고"는 여러 가집에 작가가 조헌(趙憲)이라고 밝혀져 있어, 이것을 이후백의 연시조 작품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제1연 순(舜)임금의 죽은 영혼이 소상강의 대나무 사이의 비가 된 뜻은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의 천년동안 흘린 눈물을 못내 씻어 볼까 하노라 노래한다.
제2연 모래밭에 기러기 내리니 강촌에 날이 저물어 어선은 돌아오고 갈매기는 다 잠든 밤에 어디서 빠른 소리의 긴 피리 소리가 잠든 나를 깨우는가 하고 노래한다.
제3연 동정호의 밝은 달이 초나라 회(懷)왕의 넋이 되어 넓은 호수에 비치어 보이는 뜻은 아마도 굴평(屈平)의 영혼을 굽어볼까 하노라 하고 노래한다.
제4연 소상강 가랑비 중에 도롱이 입은 저 노옹(老翁)아 빈 배 가는 데로 저어 향하니 가는 곳이 어느 곳인가 이백(李白)이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풍월(風月)을 실러 가노라 하고 노래한다.
제5연 아미산(峨嵋山)에 반달이 뜬 가을과 적벽강가의 뛰어난 경치를 소동파와 이태백이 못다 놀고 남은 뜻은 후세에 나와 같은 호걸이 다시 놀 수 있게 함이로다 하고 노래한다.
제6연 순임금이 남쪽을 순행하시어 창오야(蒼梧野)에서 돌아가시니 「남풍시(南風詩)」와 오현금(五絃琴)을 누구의 손에 전하셨는가 지금 이 소리를 들으니 이 손에 전하셨구나 하노라 하고 노래한다.
제7연 악양루(岳陽樓) 높은 곳에 올라 동정호를 굽어보니 넓은 호수에 많은 산들이 반 넘게 잠겼노라 어디서 한 척의 어선이 왔다 갔다 하는 것에 맡기는가 하고 노래한다.
제8연
황학루 저 소리 듣고 고소대에 올라가니
한산사 찬 바람에 취한 술 다 깨거다
아이야 주가하처(酒家何處)오 전의고주(典衣沽酒)하리라
황학루(黃鶴樓) 피리 소리를 듣고 고소대(姑蘇臺) 올라가니 한산사(寒山寺) 찬 소리에 취한 술이 다 깨는구나. 아이야 술집이 어느 곳이냐 옷 잡혀 술을 사오리라 노래한다.
이 내용은 『청련집』의 것인데, 수록된 가집(歌集)에 따라 내용의 넘너듦이 약간 심하다. 소상팔경은 중국 송적(宋迪)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에 나오는 8경을 말하는데, 이 작품의 경우는 일치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작자]
이후백(李後白, 1520~1578) : 조선 중기 때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진(季眞), 호는 청련(靑蓮). 관찰사 숙함의 증손으로 현감원례(元禮)의 손자이며, 국형(國衡)의 아들이다.
1535년(중종 30) 향시(鄕試)에 장원하고 곧 상경하여 이의건(李義健) · 최경창(崔慶昌) · 백광훈(白光勳) 등에게서 배웠다. 1546년(명종 1)사마시에 합격하고, 155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주서를 거쳐 1558년 승문원박사로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그 뒤 전한이 되고 이어 시강원설서 · 사서 · 정언 · 사간 · 병조화랑 · 이조정랑 · 사인 등을 역임하였다. 1567년(선조 즉위년) 원접사(遠接使)의 종사관이 되어 명나라 사신을 맞았고, 그해에 동부승지에 발탁되었으며 이어 대사간 · 법조참의를 거처 도승지를 역임하였다. 1571년 정시문과에 장원하고 이어 예조참의 · 홍문관부제학 · 이조참판을 역임하였으며, 1573년 변무사(辨誣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인성왕후(仁聖王后 : 仁奈의 妃)가 죽어 복제문제가 일어나자 3년상을 주장하여 그대로 시행되었다. 1574년 형조판서가 되고 다음해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 뒤 이조판서와 양관(兩館)의 제학을 지내고, 호조판서로 있을 때에 휴가를 얻어 함안에 성묘를 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청백리에 녹선되고, 앞서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1590년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으로 연양군(延陽君)에 추봉되었다. 문장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아 사림의 추앙을 받았다. 함안의 문회서원(文會書院)에 제향되었고, 저서로는 《청련집(靑蓮集)》이 있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시조 11수가 전하는데 몇 수 들면 다음과 같다.
「소상강(瀟湘江) 세우중(綱雨中)의 누역 삿갓 뎌 노옹(老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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