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사우가(四友歌) : 이신의(李愼儀 1551~1627)
<제1수>
바위에 서 있는 솔이 늠름한 것이 반갑구나
풍상을 겪어도 여위는 일 전혀없다
어찌하여 봄빛을 가져 고칠 줄 모르나니
<제1수> : 시련에도 항상 변함없이 당당한 '소나무'를 예찬하고 있다.
<제2수>
동쪽 울에 심은 국화 귀한 줄을 누가 아나
봄볕을 마다하고 찬 서리에 혼자 피니
어즈버 청고한 내 벗이 다만 너인가 하노라
<제2수> : 서리 속에 홀로 피는 ‘국화’에 대한 예찬
<제3수>
꽃이 무한하되 매화를 심은 뜻은
눈 속에 꽃이 피어 한 빛인 것이 귀하도다
하물며 그윽한 향기를 아니 아끼고 어쩌리
<제3수> : 눈 속에서 핑나 절개의 귀한 향기를 내뿜는 '매화'를 예찬함.
<제4수>
백설이 잦은 날에 대를 보려 창을 여니
온갖 꽃 간데없고 대숲이 푸르구나
어떠한 청풍을 반겨 흔들흔들 하나니
<제4수> : 한겨울에도 깨끗하고 푸르름을 유지하는 '대나무'를 예찬함.
[작자]
이신의(李愼儀 1551~1627)
조선 후기에, 형조참의, 광주목사,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칙(景則), 호는 석탄(石灘). 부정(副正) 이익희(李益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간(李侃)이다. 아버지는 형조판서 이원손(李元孫)이며, 어머니는 정종(定宗)의 현손이다. 민순(閔純)의 문인이며 김장생(金長生)과도 친교가 있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어버이를 여의고 형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1582년(선조 15) 학행으로 천거되어 예빈시봉사가 되었고, 이어 참봉·종묘서봉사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군 300명을 거느리고 적과 싸운 공으로 사옹원직장에 올랐으며, 이어 사재감주부·공조좌랑·고부군수 등을 지냈다.
1596년 이몽학(李夢鶴)의 난 때에는 직산현감으로 천안군수 정호인(鄭好仁)과 함께 8,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병사(兵使)에게 가 합세하였다. 1604년 괴산군수를 거쳐 광주목사(廣州牧使)·남원부사·홍주목사·해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1617년(광해군 9) 이항복(李恒福)·정홍익(鄭弘翼)·김덕함(金德諴) 등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등 광해군의 폭정에 대해 극간하다가 유배되자, 이신의도 분연히 항소를 올렸다가 이듬 해 회령으로 유배, 위리안치되었다. 그 해 가을 북로(北虜)의 경보(警報)가 있어 변경 일대가 불안하자 흥양으로 유배지를 옮겼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풀려 나와 형조참의·광주목사(光州牧使)를 역임하고, 1626년 판결사를 거쳐 이듬 해 형조참판에 올랐다. 이 해 정묘호란으로 왕을 호종해 강화로 가던 도중 병이 나 인천에 머물다가 수원 마정리(馬井里)에서 죽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고양의 문봉서원(文峰書院)과 괴산의 화암서원(花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는 『석탄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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