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이고 진 저 늙은이 : 정철(鄭澈 1536~1593)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점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늙기도 설웨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현대어 풀이】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러라커늘 짐을조차 지실까
머리에는 짐을 이고 등에는 짊어졌으니 그 짐을 풀어서 나에게 주시오.
나는 젊었으니 돌인들 무겁겠는가.
늙는 것도 서럽다 하거든 무거운 짐까지 지시겠는가?
【어구 풀이】
<이고 진> : 머리에 이고 등에 짊어진
<점었거니> : 젊었으니. '점다'는 '젊다'의 옛말
<설웨라커든> : 서랍다 하겠거늘
<짐을조차> : 짐을 마저, 짐까지야
【한역시】- 송달수(宋達秀)
負戴彼何老 請我代勞之 :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我則年光少 道理悌長宜 :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衰老已可憐 又何負重爲 : 늙기도 서러라커늘 짐을조차 지실까
【감상】
조선 선조 때 정철(鄭澈)이 45세 때인 1580년(선조 13) 강원도관찰사로 재직하면서 백성들을 계몽하고 교화하기 위하여 지은 연시조 <훈민가(訓民歌)> 16수(首) 중 열여섯 번째 시조로, 반백자불부대(斑白者不負戴), 즉 노인에 대한 공경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내용의 시조이다.
경로사상(敬老思想)도 이런 식으로 강조하면 한결 설득력이 있다. ‘이고 진 늙은이’기 수두룩한 우리의 사회 현실에서 경로사상을 입으로만 부르짖는 것은 헛된 구호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다.
싫건 좋건, 그러지 않아도 어김없이 핵가족화해 가는 산업 사회에서 경로사상의 고취만으로 노인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느낌마저 든다. 그러므로 현대적인 복지정책 기반 위에서 해결 방법을 찾되, 그래도 우리 전래의 미풍양속인 경로사상은 도덕 유산으로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훈민가>는 그 이름이 보이듯이 백성을 교화하고 계고(戒告)를 주되, 유시(諭示)나 포고(布告) 대신에 노래로 읊어서 익히기 쉽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교훈적이기는 하나, 지은이의 놀라운 글 솜씨에 얹힌지라 은연중에 인정의 기미를 건드려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훈민가(訓民歌) 백성을 교화할 목적으로 지은 것으로, 조선왕조가 들어선 이래 계속 강조되어온 것으로, 송순·주세붕에 의해 지어진 바 있는 훈민시조가 정철에게로 이어진 것이다.
정철의 <훈민가>는 내세우는 덕목은 전과 같았으나 정감 있고 순탄한 말로 인정과 세태를 생동감 있게 그려낸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이 노래는 유교적인 윤리관에 따라 생활할 것을 권했으나, 민요의 사설과 같은 표현방법을 써서 지나치게 의도에 매여 있지 않는 느낌이다. 이 작품은 송강의 뛰어난 시적 재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문학적 기교와 세련미를 엿볼 수 있다.
사람이란 세상과의 교통을 끊고 홀로 살아가노라면 석가모니와도 같이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그러나 정철이 이 시조에서 느끼는 무상은 종교의 세계로 가 버리지 않고 행동으로 이를 도움으로써 마음의 충족(充足)을 얻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안겨 주려는 충동을 느끼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다르다.
말로만 짐을 날라다 주는 그러한 참새가 아니라, 자기 어깨와 등을 내밀음으로써 그 노인이 지고 가는 무거운 짐을 가져다주면서 나누는 이야기에 자기의 피로도 잊어버리는 인간성의 진면목(眞面目)이 있는 것이다. 그만큼 정 철은 좋은 것을 좋아하고, 나쁜 것을 싫어하는 원초적인 동심을 기초로 한 직선형(直線型)의 인간이었음을 이 시조는 남김없이 보여 주고 있다.
더구나 높은 벼슬자리에 앉아서 나라의 경륜(經綸)을 펴던 그가 이만큼 평민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계급의식이 절대적이었던 당시로선 실로 찾아보기 힘든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아들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늙은 나이에 비지땀을 흘려가며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또 끌고 가는 노인의 모습. 정철은 이러한 광경 앞에서 어진 임금이 백성의 어려운 생활에 가슴을 앓듯이 어딘가 괴로운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것은 곧 자기의 슬픔이라고 즉각 단정하는 인간성, 말하자면 타인과 자기와의 사이에 별다른 거리를 느끼는 일없이 만인을 위한 만인의 감정, 그것이 인간의 감정이자 행동으로 알고 있는 정 철이었다. 이 작품 역시 훈민가 중의 하나이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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