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ㅇ-2 야단법석~ )
11. 야단법석(野壇法席) 野坛法席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모습을 말한다.
野壇은 ‘野外에 세운 壇’을 말하고 ‘法席’은 ‘佛法을 펴는 자리’를 말한다. 卽 ‘野外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뜻이다. 法堂이 좁아 많은 사람들을 다 收容할 수 없으므로 野外에 壇을 펴고 說法을 펼치고자 하는 것이다. 그만큼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釋伽가 野外에 壇을 펴고 說法을 할 때 最大 規模의 사람이 모인 것은 靈鷲山에서 法華經을 說法했을 때로, 무려 300萬 名이나 모였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秩序가 없고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하다. 이처럼 景況이 없고 시끌벅적한 狀態를 가리켜 比喩的으로 쓰이던 말이 一般化되어 日常生活에서 흔히 쓰이게 되었다.
12. 야도화쟁발(野渡花爭發) 野渡花争发
들판의 나루터에 꽃들이 다투어 핀다. 與件이 무르익어 일이 興盛하는 것을 比喩
細草綠汀洲 : 작은 풀 물가에서 푸르고
王孫耐薄遊 : 王孫은 하찮은 놀이도 기꺼워해
年華初冠帶 : 화창한 날 처음 관대(冠帶)를 두르고
文體舊弓裘 : 옛 활과 가죽옷 문체(文體)도 곱구나.
野渡花爭發 : 들판 나루터에 꽃은 다투어 피고
春塘水亂流 : 봄 연못가 물은 어지러이 흐른다.
憐君憐小阮 : 그대가 안타깝고 소완(小阮)도 가련해
應念倚門愁 : 分明 문에 기대 愁心에 잠겨 있으리.
* 이가우(李嘉佑) 送王牧往吉州謁王使君叔에.
李嘉佑는 唐나라 玄宗 때 進士 試驗에 及第한 뒤 肅宗과 代宗 代에 걸쳐 벼슬을 하였다. 主로 自然 景物을 노래한 詩를 지었는데, 그중에는 安史의 亂으로 인한 江南 地方의 社會的 動亂을 切實하게 描寫한 詩들도 있다. 이 時는 李嘉佑가 王牧을 전송(餞送)하면서 지은 詩이다. 小阮은 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阮咸을 말한다. ‘野渡花爭發’은 봄을 맞아 나루터에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듯이 與件이 무르익어 일이 잘되어 나가는 것을 比喩하는 말로 使用된다.
13. 양금택목(良禽擇木) 良禽择木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 賢明한 사람은 自己의 能力을 키워 줄 사람을 골라서 섬긴다는 것을 比喩
春秋時代 晉나라 公子가 衛나라에 亡命해 있을 때 딸에게 밭일을 시켰다. 大叔懿子가 (지나가다) 멈춰 함께 술을 마시다 맞아들여 悼子를 낳았다. 悼子가 家門의 後繼子가 된 까닭에 (은의 아들이자 悼子의 外叔인) 夏茂 衛나라의 大夫가 되었다. 그런데 悼子가 亡命하자 衛나라 사람들은 夏茂의 封邑을 깎아 버렸다.
「이 일로 因하여 孔文子가 大叔懿子를 치기 爲해 孔子에게 咨問을 求하자 孔子가 말했다. “祭祀 지내는 일은 배운 적이 있습니다만, 戰爭에 對해서는 全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물러 나온 孔子는 弟子에게 서둘러 수레에 말을 매라고 하면서 말했다. “새가 나무를 擇하지, 나무가 어찌 새를 擇할 수 있겠느냐?” 孔文子가 遑急히 말리면서 말했다. “제가 어찌 私事로운 일을 헤아리겠습니까? 衛나라의 어려운 일을 두고 물었던 것입니다.” 孔子는 다시 衛나라에 머무를까 생각했는데, 魯나라에서 禮物을 가지고 와서 請하자 行裝을 꾸려 魯나라로 돌아갔다.
(孔文子之將攻大叔也, 訪於仲尼. 仲尼曰, 胡簋之事, 則嘗學之矣. 兵之事, 未之聞也. 退, 命駕而行, 曰, 鳥則擇木, 木豈能擇鳥. 文子遽止之, 曰, 圉豈敢度其私, 防衛國之難也. 將止, 魯人以幣召之, 乃歸.)」
이 이야기는 《左傳 哀公 11年》에 나오는데, 새가 나무를 擇한다는 말에서 賢明한 사람은 自己 才能을 알아주는 사람을 擇하여 섬긴다는 뜻의 ‘良禽澤木’이 由來했다.
14. 羊頭狗肉 , 羊头狗肉
羊 머리, 개고기. 羊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팔다. 겉은 훌륭하나 속은 변변치 못하거나, 그럴듯한 物件을 展示해 놓고 實在로는 形便없는 物件을 파는 것을 比喩
《(晏子春秋》에 쇠머리를 문에 내걸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판다고 했다. 世祖가 丁邯에게 詔書를 내려 “쇠머리를 걸고 말 脯를 팔며, 盜跖처럼 行하면서 孔子의 말을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俗語가 若干 變하여 소와 말 대신 羊과 개를 쓰는데 그 뜻은 다르지 않다.
(晏子春秋, 懸牛首於門, 而賣馬肉於內. 世祖賜丁邯詔曰, 懸牛頭, 賣馬脯. 盜琮行, 孔子語. 今俗語小變, 以羊狗易牛馬, 意仍不異也.)
* 淸나라 錢大昕의 恒言錄에.
‘羊頭狗肉’의 元 出典은 ‘牛首馬肉’인데 이는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온다.
「戰國時代 齊나라의 靈公은 宮中의 모든 女子들에게 男裝을 시켰다. 그러자 百姓들이 모두 男裝을 했다. 그러자 靈公은 百姓들에게 “女子인데 男子 옷을 입는 者는 옷을 찢고 허리띠를 잘라 버리겠다.”고 하며 男裝을 禁止시켰으나 서로 바라보면서 그치지를 않았다. 靈公은 宰相인 晏子에게 물었다. “寡人이 官員을 시켜 女子들의 男裝을 禁止시키고 옷을 찢고 허리띠를 자르는데도 서로 바라만 보면서 그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晏子가 對答했다. “王께서는 宮中의 女子들에게는 男裝을 하라고 하시면서 百姓들에게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마치 쇠머리를 門에 걸어 놓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宮中에서도 男裝을 못 하게 하시면 百姓들 사이에서도 敢히 못 할 것입니다.” 靈公은 옳다고 하며 宮中에서도 男裝을 하면 안 된다는 命을 내렸다. 한 달여가 지나자 아무도 男裝을 하지 않았다.
(靈公好婦人而丈夫飾者. 國人盡服之. 公使吏禁之. 曰, 女子而男飾者, 裂其衣, 斷其帶. 裂衣斷帶, 相望而不. 晏子見, 公問曰, 寡人使吏禁女子而男子飾, 裂斷其衣帶, 相望而不止者何也. 晏子對曰, 君使服之於內, 而禁之於外. 猶懸牛首於門, 而賣馬肉於內也. 公何以不使內勿服, 則外莫敢爲也. 公曰, 善. 使內勿服. 踰月, 而國莫之服.)」
이 이야기는 《晏子春秋》에 나온다. ‘羊頭狗肉’의 元말은 懸羊頭賣狗肉이다.
15. 양상군자(梁上君子)
대들보 위의 君子. 도둑을 다르게 表現하는 말이다
「陳寔은 마을에 있으면서 和平한 마음으로 事物을 對했으며, 紛爭이 있을 때에는 恒常 올바르게 判定을 하며 옳고 그름을 確實히 說明했으므로 돌아가 怨望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차라리 刑罰을 받을지언정 陳寔에게 惹端을 맞지 않겠다.’고 말하며 嘆息했다. 當時 兇年이 들어 百姓들이 收穫이 없었는데, 도둑 하나가 밤에 陳寔의 집에 侵入하여 대들보 위에 숨었다. 이를 發見한 陳寔은 일어나 衣冠을 整齊하고 아들과 孫子들을 불러 놓고 嚴肅한 목소리로 訓戒하기 始作했다. “사람은 스스로 힘써 일해야 한다. 나쁜 사람도 처음부터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平素 잘못된 習慣이 性格이 되어 그렇게 된 것이다. 대들보 위의 君子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도둑은 크게 놀라 自進해서 바닥으로 내려와 머리를 조아리며 罪를 빌었다. 陳寔이 그를 깨우쳐 주었다. “그대를 보니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 自身을 이기고 善으로 돌아가도록 하시오. 이는 貧困이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니겠소.” 陳寔은 사람을 시켜 도둑에게 緋緞 두 疋을 주었다. 이로부터 縣에는 더 以上 도둑이 生기지 않았다.
(寔在鄕閭, 平心率物. 其有爭訟, 輒求判正, 曉譬曲直, 退無怨者. 至乃嘆曰, 寧爲刑罰所加, 不爲陳君所短. 時勢荒民儉, 有盜夜入其室, 止於梁上. 寔陰見, 乃起自整拂, 呼命子孫,正色訓之曰, 夫人不可不自勉. 不善之人未必本惡, 習以性成, 遂至於此. 梁上君子者是矣. 盜大驚, 自投於地, 稽顙歸罪. 寔徐譬之曰, 視君狀貌, 不似惡人, 宜深克己反善. 然此當由貧困. 令遺絹二匹. 自是一縣無復盜竊.)」
이 이야기는 《後漢書 陳寔傳》에 나오는데, 陳寔이 대들보 위에 숨어 있는 도둑을 ‘대들보 위의 君子’라고 말한 데서 ‘梁上君子’가 由來했다. 陳寔과 關聯된 故事成語로 ‘難兄難弟’도 있다.
16. 양포지구(楊布之狗) 扬布之狗
楊布의 개. 겉이 달라지면 속까지 바뀐 것으로 여긴다는 것을 比喩
「楊朱의 同生 楊布가 흰옷을 입고 外出했다가 비를 만나서 흰옷을 벗고 검은 옷으로 바꿔 입고 돌아왔다. 楊布의 집에서 기르는 개가 主人인 줄도 모르고 마구 짖어 댔다. 楊布가 火가 나서 개를 때리려 하자 楊朱가 타일렀다. “때리지 마라. 너 亦是 마찬가지다. 저 개가 흰 털로 나갔다가 검은 털로 돌아왔다면 너도 怪異하게 생각하지 않겠느냐?”
(楊朱之弟楊布衣素衣而出. 天雨, 解素衣, 衣緇衣而反, 其狗不知而吠之. 楊布怒, 將擊之. 楊朱曰, 子毋擊也, 子亦猶是. 曩者使女狗白而往, 黑而來, 子豈能毋怪哉.)」
이 이야기는 《韓非子 說林下》에 나오는데, 옷을 갈아입고 온 楊布를 보고 짖어 댄 개 이야기에서 ‘楊布之狗’가 由來했다. ‘楊布之狗’는 흰옷으로 나갔다가 검은 옷으로 돌아왔다는 뜻의 ‘白往黑歸’, 너 또한 이와 같을 것이라는 뜻의 ‘子亦猶是’라고도 한다.
楊朱는 ‘自己 털 하나를 뽑아 天下가 利롭게 된다고 해도 하지 않겠다.’는 極端的인 利己主義를 主張했다. 그래서 孟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楊朱는 爲我를 말했으니 이는 임금이 없는 것이요, 墨子는 謙愛를 내세웠으니 自己 아비를 無視하는 것이다. 自己 아비를 無視하고 임금을 無視하는 것은 새나 짐승이 하는 짓이다.
(楊氏爲我是無君也. 墨氏兼愛是無父也. 無父無君是禽獸也.)」
* 孟子 滕文公下에
17. 양호유환(養虎遺患) 养虎遗患
호랑이를 길러 근심을 남기다. 남의 事情을 봐주었다가 나중에 도리어 禍를 입게 된다는 것을 比喩
戰國時代를 統一했던 秦始皇이 死亡한 後, 楚나라 再建과 秦나라 滅亡의 旗幟를 높이 들었던 項羽 等 抗秦 勢力에 依해 秦나라가 滅亡했다. 스스로 楚覇王이 된 項羽는 彭城을 首都로 삼고, 楚懷王을 義帝로 擁立했다. 그리고 秦나라를 打倒하는 데 功이 큰 사람들을 諸侯로 封했다. 項羽는 特히 危險人物인 劉邦을 漢王으로 封해 奧地인 巴蜀 땅(四川省)으로 몰아냈다. 天下는 鎭靜 局面에 접어들었고, 項羽가 天下를 차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 義帝가 項羽의 唆做를 받은 英布에게 弑害를 當하자 論功行賞에 不滿을 품었던 諸侯들이 各地에서 反旗를 들고 일어났다. 項羽가 各地의 反軍들을 平定하는 사이, 劉邦은 關中 땅을 攻略하고 이어 56萬 大軍을 몰아 單숨에 彭城을 占領했다. 그러나 急報를 받고 말머리를 돌려 달려온 項羽의 3萬 騎兵에게 大敗한 劉邦은 아버지와 아내를 敵陣에 남겨 둔 채, 겨우 목숨만 扶支하여 滎陽으로 달아나 軍士를 整備하고 項羽와 對峙했다. 그 後 雙方은 一進一退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鴻溝를 境界로 해서 天下를 兩分하고 休戰하기로 했다. 項羽는 約束을 지켜 劉邦의 아버지와 夫人을 돌려보내고 彭城을 向해 撤軍 길에 올랐다.
「劉邦도 撤軍을 하려 하자, 張良과 陳平이 말렸다. “漢나라는 이제 天下의 半을 차지했고, 諸侯들과 人心도 우리 便입니다. 그러나 楚나라 軍隊는 지쳤고 食糧도 떨어졌으니 이는 하늘이 楚를 滅亡시키려는 때입니다. 機會를 놓치지 말고 天下를 奪取해야 합니다. 只今 攻擊하지 않으면 이는 호랑이를 길러 禍根을 남겨 두는 꼴이 되고 맙니다.”
(漢欲西歸, 張良陳平說曰, 漢有天下太半, 而諸侯皆附之. 楚兵罷食盡, 此天亡楚之時也. 不如因其機而遂取之. 今釋弗擊, 此所謂養虎遺患也.)」
劉邦은 張良과 陳平의 計策에 따라 卽時 말머리를 돌려 項羽를 追擊했다. 이듬해 劉邦은 韓信과 彭越 等의 軍士와 聯合하여 垓下에서 項羽의 楚나라 軍隊와 最後의 一戰을 벌여 楚나라 軍隊를 殲滅했다. 項羽는 달아나다가 烏江에 이르러 自決했고, 劉邦은 마침내 天下를 차지하고 漢나라를 創業했다.
* 史記 高祖本紀에.
18. 어부지리(漁父之利) 渔父之利
漁夫의 利得. 두 사람이 맞붙어 싸우는 바람에 엉뚱한 第三者가 德을 본다는 것을 比喩
「趙나라가 燕나라를 치려 하자 때마침 蘇代는 燕나라 王의 付託을 받고 趙나라의 惠文王을 찾아가 말했다. “오늘 오면서 易水를 지나는데 민물조개가 입을 벌리고 햇볕을 쪼이고 있었습니다. 황새가 조갯살을 쪼아 먹으려 하자 조개가 입을 오므려 황새의 주둥이를 물어 버렸습니다. 황새가 말했습니다. ‘오늘도 비가 안 오고 내일도 비가 안 오면 죽고 만다.’ 조개 亦是 황새에게 말했습니다. ‘오늘도 못 빠져나가고 來日도 못 빠져나가면 너도 亦是 죽고 만다.’ 둘이 서로 놔주려 하지 않자, 마침 지나가던 漁夫가 그 둘을 한꺼番에 잡아 버렸습니다. 只今 趙나라가 燕나라를 쳐 두 나라가 오래 對峙하면 百姓들을 被弊하게 만들게 됩니다. 臣은 强한 秦나라가 漁夫처럼 두 나라를 한꺼番에 取하는 利得을 얻게 될까 憂慮됩니다. 그러므로 王께서는 燕나라 치는 問題를 深思熟考하시기 바랍니다.” 惠文王은 果然 옳은 말이라 하여 燕나라 攻擊 計劃을 中止하였다. (趙且伐燕, 蘇代爲燕謂惠王曰, 今者臣來, 過易水, 蚌方出曝, 而鷸啄其肉, 蚌合而鉗其喙. 鷸曰, 今日不雨, 明日不雨, 卽有死蚌. 蚌亦謂鷸曰, 今日不出, 明日不出, 卽有死鷸. 兩者不肯相舍, 漁者得而幷禽之. 今趙且伐燕. 燕趙久相支, 以弊大衆, 臣恐强秦之爲漁父也. 故願王之熟計之也. 惠王曰, 善. 乃止.)」
《戰國策 燕策》에 나온다. ‘漁夫之利’는 漁翁之利, 蚌鷸之爭, 鷸蚌相爭이라고도 한다.
19. 언과기실(言過其實) 言过其实
말이 實際보다 지나치다. 말만 앞세우고 實力은 그 말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223年, 蜀主 劉備는 221年부터 始作된 東吳와의 싸움인 夷陵 戰鬪에 出戰하였다가 大敗하고 病을 얻어 世上을 떠나면서 諸葛亮과 李嚴에게 아들 劉禪을 付託한 後, 다음과 같이 當付하였다.
「“丞相, 馬謖은 말이 實際를 뛰어넘는 자니 크게 쓰지 말고 愼重히 살피도록 하시오.” 하지만 諸葛亮은 그렇지 않다고 하고 馬謖을 參軍으로 삼아 每番 불러다 相議를 하면서 낮부터 밤까지 함께했다. (先主臨薨謂亮曰, 馬謖言過其實, 不可大用, 君其察之. 亮猶謂不然, 以謖爲參軍, 每引見談論, 自晝達夜.)」
建興 5年(227), 諸葛亮은 軍士를 이끌고 北쪽으로 가 魏나라를 攻擊했다. 出征에 앞서 諸葛亮은 後周 劉禪에게 出師表를 올린 後에 漢中을 나와 長安을 向해 進軍했다. 漢中에서 祁山을 向해 迂廻하면서 天水, 安定, 南安 等 3個 郡을 接受하고 祁山에 이른 다음 長安으로 進軍하는 戰略이었다. 魏나라는 夏侯楙를 總司令官으로 하여 對敵했으나, 南安, 天水, 安定의 隴西 地方 3郡을 빼앗기고 姜維가 蜀漢에 投降했다. 그러자 魏나라 明帝 曹睿는 司馬懿를 復職시키고 張郃을 街亭으로 向하게 하였다.
諸葛亮은 戰力上의 要衝地인 街亭을 지킬 將帥로 馬謖을 보내면서 街亭의 길목을 지켜 敵이 接近하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命令했다. 하지만 馬謖은 自身의 能力만을 믿고 敵을 끌어들여 逆襲을 하려다가 도리어 山등성이에서 張郃의 軍隊에게 包圍當해 힘 한 番 써 보지도 못한 채 慘敗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諸葛亮은 할 수 없이 軍隊를 이끌고 漢中으로 退却해야만 했다. 諸葛亮은 敗戰의 責任을 물어 馬謖에게 斬首刑을 내렸다. 다시 求하기 어려운 將帥이므로 살리자고 많은 사람들이 挽留했지만 法을 嚴正히 지켜 紀綱을 바로 세우기 爲해 울면서 馬謖의 목을 베었다. 馬謖이 죽은 後, 諸葛亮은 直接 祭祀를 모시고, 그의 子息들을 馬謖이 살아 있을 때처럼 보살펴 주었다.
* 三國志 · 蜀書 馬良傳에 나온다.
20. 엄이도령(掩耳盜鈴) 掩耳盜铃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치다. 스스로 自己 自身을 속이거나, 얕은꾀로 남을 속이려는 것을 比喩하는 말이다. 自身에게 들리지 않는다고 남도 모르는 줄 아는 것과 같이,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獨善的이고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春秋戰國時代 晉나라의 范氏 家門이 沒落하자, 어떤 사람이 鐘을 훔치러 들어갔다. 鐘을 등에 지고 가려고 했으나 鐘이 너무 커 질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은 (鐘을 깨뜨려 조각내어 가져가기로 하고) 망치로 鐘을 내리쳤다. 鐘에서 天地를 振動하는 듯한 소리가 나자 다른 사람이 듣고 빼앗아 갈까 봐 急히 自己 귀를 틀어막았다.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이 싫은 것은 그럴 수 있다지만, 自己가 듣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道理에 어긋난 일이다. 사람의 王이 되어 그 잘못을 말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는 것이 어찌 이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王의 잘못을 말하는 것은 오히려 괜찮은 것이다.
(范氏之亡也, 百姓有得鍾者, 欲負而走, 則鍾大不可負, 以椎毁之. 鍾況然有音, 恐人聞之而奪己也, 遽揜其耳. 惡人聞之, 可也. 惡己自聞之, 悖矣. 爲人主而惡聞其過, 非猶此也. 惡人聞其過尙猶可.)」
이 이야기는 《呂氏春秋 不苟論》에 나온다. 元來는 귀를 가리고 鐘을 훔친다는 掩耳盜鐘이었는데 後에 ‘鐘’ 대신 ‘鈴’쓰게 되었다.
《呂氏春秋 不苟論》에서는 이 이야기를 쓴 後에 임금이 바른말을 하는 臣下를 所重히 여긴 實例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魏文侯가 臣下들과 술을 마시며 大夫들에게 魏文侯 自身에 對해 論하도록 했다. 어떤 사람은 王이 智慧롭다고 말했다. 任座의 차례가 되었다. “王께서는 不肖한 王입니다. 中山을 滅한 뒤 王의 同生을 封하지 않고 아들을 封했습니다. 이로써 王이 不肖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文侯가 不快한 表情을 짓자 任座는 그곳을 뛰쳐나갔다. 翟黃 차례가 돌아왔다. “王은 어진 王입니다. 王이 어질어야 臣下가 바른말을 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方今 任座가 바른말을 하는 것을 보니 이로써 王이 어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文侯는 곧 다시 任座를 부른 後 몸소 階段 아래까지 나가 그를 맞이하고 上座에 앉게 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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