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산에는 꽃이 피네
**한자성어(漢字成語)**/고사성어(故事成語)

고사성어(故事成語) (ㅇ-2 야단법석~ )

by 산산바다 2026. 3. 7.

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글 목록

 

 

 고사성어(故事成語) (-2 야단법석~ )

 

 

11. 야단법석(野壇法席) 野坛法席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모습을 말한다.

 

野壇野外에 세운 을 말하고 法席佛法을 펴는 자리를 말한다. 野外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뜻이다. 法堂이 좁아 많은 사람들을 다 收容할 수 없으므로 野外을 펴고 說法을 펼치고자 하는 것이다. 그만큼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釋伽野外을 펴고 說法을 할 때 最大 規模의 사람이 모인 것은 靈鷲山에서 法華經說法했을 때로, 무려 300萬 名이나 모였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秩序가 없고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하다. 이처럼 景況이 없고 시끌벅적한 狀態를 가리켜 比喩的으로 쓰이던 말이 一般化되어 日常生活에서 흔히 쓰이게 되었다.

 

 

12. 야도화쟁발(野渡花爭發) 野渡花争发

들판의 나루터에 꽃들이 다투어 핀다. 與件이 무르익어 일이 興盛하는 것을 比喩

 

細草綠汀洲 : 작은 풀 물가에서 푸르고

王孫耐薄遊 : 王孫은 하찮은 놀이도 기꺼워해

年華初冠帶 : 화창한 날 처음 관대(冠帶)를 두르고

文體舊弓裘 : 옛 활과 가죽옷 문체(文體)도 곱구나.

野渡花爭發 : 들판 나루터에 꽃은 다투어 피고

春塘水亂流 : 봄 연못가 물은 어지러이 흐른다.

憐君憐小阮 : 그대가 안타깝고 소완(小阮)도 가련해

應念倚門愁 : 分明 문에 기대 愁心에 잠겨 있으리.

 

* 이가우(李嘉佑) 送王牧往吉州謁王使君叔.

李嘉佑나라 玄宗 進士 試驗及第한 뒤 肅宗代宗 代에 걸쳐 벼슬을 하였다. 自然 景物을 노래한 를 지었는데, 그중에는 安史으로 인한 江南 地方社會的 動亂切實하게 描寫들도 있다. 李嘉佑王牧을 전송(餞送)하면서 지은 이다. 小阮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阮咸을 말한다. ‘野渡花爭發은 봄을 맞아 나루터에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듯이 與件이 무르익어 일이 잘되어 나가는 것을 比喩하는 말로 使用된다.

 

 

13. 양금택목(良禽擇木) 良禽择木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 賢明한 사람은 自己能力을 키워 줄 사람을 골라서 섬긴다는 것을 比喩

 

春秋時代 晉나라 公子나라에 亡命해 있을 때 딸에게 밭일을 시켰다. 大叔懿子(지나가다) 멈춰 함께 술을 마시다 맞아들여 悼子를 낳았다. 悼子家門後繼子가 된 까닭에 (은의 아들이자 悼子外叔) 夏茂 衛나라의 大夫가 되었다. 그런데 悼子亡命하자 나라 사람들은 夏茂封邑을 깎아 버렸다.

 

이 일로 하여 孔文子大叔懿子를 치기 孔子에게 咨問하자 孔子가 말했다. “祭祀 지내는 일은 배운 적이 있습니다만, 戰爭해서는 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물러 나온 孔子弟子에게 서둘러 수레에 말을 매라고 하면서 말했다. “새가 나무를 하지, 나무가 어찌 새를 할 수 있겠느냐?” 孔文子遑急히 말리면서 말했다. “제가 어찌 私事로운 일을 헤아리겠습니까? 나라의 어려운 일을 두고 물었던 것입니다.” 孔子는 다시 나라에 머무를까 생각했는데, 나라에서 禮物을 가지고 와서 하자 行裝을 꾸려 나라로 돌아갔다.

(孔文子之將攻大叔也, 訪於仲尼. 仲尼曰, 胡簋之事, 則嘗學之矣. 兵之事, 未之聞也. 退, 命駕而行, , 鳥則擇木, 木豈能擇鳥. 文子遽止之, , 圉豈敢度其私, 防衛國之難也. 將止, 魯人以幣召之, 乃歸.)

 

이 이야기는 左傳 哀公 11에 나오는데, 새가 나무를 한다는 말에서 賢明한 사람은 自己 才能을 알아주는 사람을 하여 섬긴다는 뜻의 良禽澤木由來했다.

 

 

14. 羊頭狗肉 , 羊头狗肉

머리, 개고기.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팔다. 겉은 훌륭하나 속은 변변치 못하거나, 그럴듯한 物件展示해 놓고 實在로는 形便없는 物件을 파는 것을 比喩

 

(晏子春秋에 쇠머리를 문에 내걸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판다고 했다. 世祖丁邯에게 詔書를 내려 쇠머리를 걸고 말 를 팔며, 盜跖처럼 하면서 孔子의 말을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俗語若干 變하여 소와 말 대신 과 개를 쓰는데 그 뜻은 다르지 않다.

(晏子春秋, 懸牛首於門, 而賣馬肉於內. 世祖賜丁邯詔曰, 懸牛頭, 賣馬脯. 盜琮行, 孔子語. 今俗語小變, 以羊狗易牛馬, 意仍不異也.)

* 나라 錢大昕恒言錄.

 

羊頭狗肉元 出典牛首馬肉인데 이는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온다.

 

戰國時代 齊나라의 靈公宮中의 모든 女子들에게 男裝을 시켰다. 그러자 百姓들이 모두 男裝을 했다. 그러자 靈公百姓들에게 女子인데 男子 옷을 입는 는 옷을 찢고 허리띠를 잘라 버리겠다.”고 하며 男裝禁止시켰으나 서로 바라보면서 그치지를 않았다. 靈公宰相晏子에게 물었다. “寡人官員을 시켜 女子들의 男裝禁止시키고 옷을 찢고 허리띠를 자르는데도 서로 바라만 보면서 그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晏子對答했다. “께서는 宮中女子들에게는 男裝을 하라고 하시면서 百姓들에게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마치 쇠머리를 에 걸어 놓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宮中에서도 男裝을 못 하게 하시면 百姓들 사이에서도 히 못 할 것입니다.” 靈公은 옳다고 하며 宮中에서도 男裝을 하면 안 된다는 을 내렸다. 한 달여가 지나자 아무도 男裝을 하지 않았다.

(靈公好婦人而丈夫飾者. 國人盡服之. 公使吏禁之. , 女子而男飾者, 裂其衣, 斷其帶. 裂衣斷帶, 相望而不. 晏子見, 公問曰, 寡人使吏禁女子而男子飾, 裂斷其衣帶, 相望而不止者何也. 晏子對曰, 君使服之於內, 而禁之於外. 猶懸牛首於門, 而賣馬肉於內也. 公何以不使內勿服, 則外莫敢爲也. 公曰, . 使內勿服. 踰月, 而國莫之服.)

 

이 이야기는 晏子春秋에 나온다. ‘羊頭狗肉말은 懸羊頭賣狗肉이다.

 

 

15. 양상군자(梁上君子)

대들보 위의 君子. 도둑을 다르게 表現하는 말이다

 

陳寔은 마을에 있으면서 和平한 마음으로 事物했으며, 紛爭이 있을 때에는 恒常 올바르게 判定을 하며 옳고 그름을 確實說明했으므로 돌아가 怨望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차라리 刑罰을 받을지언정 陳寔에게 惹端을 맞지 않겠다.’고 말하며 嘆息했다. 當時 兇年이 들어 百姓들이 收穫이 없었는데, 도둑 하나가 밤에 陳寔의 집에 侵入하여 대들보 위에 숨었다. 이를 發見陳寔은 일어나 衣冠整齊하고 아들과 孫子들을 불러 놓고 嚴肅한 목소리로 訓戒하기 始作했다. “사람은 스스로 힘써 일해야 한다. 나쁜 사람도 처음부터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平素 잘못된 習慣性格이 되어 그렇게 된 것이다. 대들보 위의 君子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도둑은 크게 놀라 自進해서 바닥으로 내려와 머리를 조아리며 를 빌었다. 陳寔이 그를 깨우쳐 주었다. “그대를 보니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 自身을 이기고 으로 돌아가도록 하시오. 이는 貧困이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니겠소.” 陳寔은 사람을 시켜 도둑에게 緋緞 을 주었다. 이로부터 에는 더 以上 도둑이 기지 않았다.

(寔在鄕閭, 平心率物. 其有爭訟, 輒求判正, 曉譬曲直, 退無怨者. 至乃嘆曰, 寧爲刑罰所加, 不爲陳君所短. 時勢荒民儉, 有盜夜入其室, 止於梁上. 寔陰見, 乃起自整拂, 呼命子孫正色訓之曰, 夫人不可不自勉. 不善之人未必本惡, 習以性成, 遂至於此. 梁上君子者是矣. 盜大驚, 自投於地, 稽顙歸罪. 寔徐譬之曰, 視君狀貌, 不似惡人, 宜深克己反善. 然此當由貧困. 令遺絹二匹. 自是一縣無復盜竊.)

 

이 이야기는 後漢書 陳寔傳에 나오는데, 陳寔이 대들보 위에 숨어 있는 도둑을 대들보 위의 君子라고 말한 데서 梁上君子由來했다. 陳寔關聯故事成語難兄難弟도 있다.

 

 

16. 양포지구(楊布之狗) 扬布之狗

楊布의 개. 겉이 달라지면 속까지 바뀐 것으로 여긴다는 것을 比喩

 

楊朱同生 楊布가 흰옷을 입고 外出했다가 비를 만나서 흰옷을 벗고 검은 옷으로 바꿔 입고 돌아왔다. 楊布의 집에서 기르는 개가 主人인 줄도 모르고 마구 짖어 댔다. 楊布가 나서 개를 때리려 하자 楊朱가 타일렀다. “때리지 마라. 亦是 마찬가지다. 저 개가 흰 털로 나갔다가 검은 털로 돌아왔다면 너도 怪異하게 생각하지 않겠느냐?”

(楊朱之弟楊布衣素衣而出. 天雨, 解素衣, 衣緇衣而反, 其狗不知而吠之. 楊布怒, 將擊之. 楊朱曰, 子毋擊也, 子亦猶是. 曩者使女狗白而往, 黑而來, 子豈能毋怪哉.)

 

이 이야기는 韓非子 說林下에 나오는데, 옷을 갈아입고 온 楊布를 보고 짖어 댄 개 이야기에서 楊布之狗由來했다. ‘楊布之狗는 흰옷으로 나갔다가 검은 옷으로 돌아왔다는 뜻의 白往黑歸’, 너 또한 이와 같을 것이라는 뜻의 子亦猶是라고도 한다.

 

楊朱自己 털 하나를 뽑아 天下롭게 된다고 해도 하지 않겠다.’極端的利己主義主張했다. 그래서 孟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楊朱爲我를 말했으니 이는 임금이 없는 것이요, 墨子謙愛를 내세웠으니 自己 아비를 無視하는 것이다. 自己 아비를 無視하고 임금을 無視하는 것은 새나 짐승이 하는 짓이다.

(楊氏爲我是無君也. 墨氏兼愛是無父也. 無父無君是禽獸也.)

* 孟子 滕文公下

 

 

17. 양호유환(養虎遺患) 养虎遗患

호랑이를 길러 근심을 남기다. 남의 事情을 봐주었다가 나중에 도리어 를 입게 된다는 것을 比喩

 

戰國時代統一했던 秦始皇死亡, 나라 再建나라 滅亡旗幟를 높이 들었던 項羽 等 抗秦 勢力나라가 滅亡했다. 스스로 楚覇王이 된 項羽彭城首都로 삼고, 楚懷王義帝擁立했다. 그리고 나라를 打倒하는 데 이 큰 사람들을 諸侯했다. 項羽危險人物劉邦漢王으로 奧地巴蜀 (四川省)으로 몰아냈다. 天下鎭靜 局面에 접어들었고, 項羽天下를 차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 義帝項羽唆做를 받은 英布에게 弑害하자 論功行賞不滿을 품었던 諸侯들이 各地에서 反旗를 들고 일어났다. 項羽各地反軍들을 平定하는 사이, 劉邦關中 땅을 攻略하고 이어 56萬 大軍을 몰아 숨에 彭城占領했다. 그러나 急報를 받고 말머리를 돌려 달려온 項羽3萬 騎兵에게 大敗劉邦은 아버지와 아내를 敵陣에 남겨 둔 채, 겨우 목숨만 扶支하여 滎陽으로 달아나 軍士整備하고 項羽對峙했다. 後 雙方一進一退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鴻溝境界로 해서 天下兩分하고 休戰하기로 했다. 項羽約束을 지켜 劉邦의 아버지와 夫人을 돌려보내고 彭城撤軍 길에 올랐다.

 

劉邦撤軍을 하려 하자, 張良陳平이 말렸다. “나라는 이제 天下을 차지했고, 諸侯들과 人心도 우리 便입니다. 그러나 나라 軍隊는 지쳤고 食糧도 떨어졌으니 이는 하늘이 滅亡시키려는 때입니다. 機會를 놓치지 말고 天下奪取해야 합니다. 只今 攻擊하지 않으면 이는 호랑이를 길러 禍根을 남겨 두는 꼴이 되고 맙니다.”

(漢欲西歸, 張良陳平說曰, 漢有天下太半, 而諸侯皆附之. 楚兵罷食盡, 此天亡楚之時也. 不如因其機而遂取之. 今釋弗擊, 此所謂養虎遺患也.)

 

劉邦張良陳平計策에 따라 卽時 말머리를 돌려 項羽追擊했다. 이듬해 劉邦韓信彭越 等軍士聯合하여 垓下에서 項羽나라 軍隊最後一戰을 벌여 나라 軍隊殲滅했다. 項羽는 달아나다가 烏江에 이르러 自決했고, 劉邦은 마침내 天下를 차지하고 나라를 創業했다.

* 史記 高祖本紀.

 

 

18. 어부지리(漁父之利) 渔父之利

漁夫利得. 두 사람이 맞붙어 싸우는 바람에 엉뚱한 第三者을 본다는 것을 比喩

 

나라가 나라를 치려 하자 때마침 蘇代나라 付託을 받고 나라의 惠文王을 찾아가 말했다. “오늘 오면서 易水를 지나는데 민물조개가 입을 벌리고 햇볕을 쪼이고 있었습니다. 황새가 조갯살을 쪼아 먹으려 하자 조개가 입을 오므려 황새의 주둥이를 물어 버렸습니다. 황새가 말했습니다. ‘오늘도 비가 안 오고 내일도 비가 안 오면 죽고 만다.’ 조개 亦是 황새에게 말했습니다. ‘오늘도 못 빠져나가고 來日도 못 빠져나가면 너도 亦是 죽고 만다.’ 둘이 서로 놔주려 하지 않자, 마침 지나가던 漁夫가 그 둘을 한꺼에 잡아 버렸습니다. 只今 趙나라가 나라를 쳐 두 나라가 오래 對峙하면 百姓들을 被弊하게 만들게 됩니다. 나라가 漁夫처럼 두 나라를 한꺼하는 利得을 얻게 될까 憂慮됩니다. 그러므로 께서는 나라 치는 問題深思熟考하시기 바랍니다.” 惠文王果然 옳은 말이라 하여 나라 攻擊 計劃中止하였다. (趙且伐燕, 蘇代爲燕謂惠王曰, 今者臣來, 過易水, 蚌方出曝, 而鷸啄其肉, 蚌合而鉗其喙. 鷸曰, 今日不雨, 明日不雨, 卽有死蚌. 蚌亦謂鷸曰, 今日不出, 明日不出, 卽有死鷸. 兩者不肯相舍, 漁者得而幷禽之. 今趙且伐燕. 燕趙久相支, 以弊大衆, 臣恐强秦之爲漁父也. 故願王之熟計之也. 惠王曰, . 乃止.)

 

戰國策 燕策에 나온다. ‘漁夫之利漁翁之利, 蚌鷸之爭, 鷸蚌相爭이라고도 한다.

 

 

19. 언과기실(言過其實) 言过其实

말이 實際보다 지나치다. 말만 앞세우고 實力은 그 말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223, 蜀主 劉備221부터 始作東吳와의 싸움인 夷陵 戰鬪出戰하였다가 大敗하고 을 얻어 世上을 떠나면서 諸葛亮李嚴에게 아들 劉禪付託, 다음과 같이 當付하였다.

 

丞相, 馬謖은 말이 實際를 뛰어넘는 자니 크게 쓰지 말고 愼重히 살피도록 하시오.” 하지만 諸葛亮은 그렇지 않다고 하고 馬謖參軍으로 삼아 每番 불러다 相議를 하면서 낮부터 밤까지 함께했다. (先主臨薨謂亮曰, 馬謖言過其實, 不可大用, 君其察之. 亮猶謂不然, 以謖爲參軍, 每引見談論, 自晝達夜.)

 

建興 5(227), 諸葛亮軍士를 이끌고 쪽으로 가 나라를 攻擊했다. 出征에 앞서 諸葛亮後周 劉禪에게 出師表를 올린 漢中을 나와 長安進軍했다. 漢中에서 祁山迂廻하면서 天水, 安定, 南安 等 3個 郡接受하고 祁山에 이른 다음 長安으로 進軍하는 戰略이었다. 나라는 夏侯楙總司令官으로 하여 對敵했으나, 南安, 天水, 安定隴西 地方 3을 빼앗기고 姜維蜀漢投降했다. 그러자 나라 明帝 曹睿司馬懿復職시키고 張郃街亭으로 하게 하였다.

 

諸葛亮戰力上要衝地街亭을 지킬 將帥馬謖을 보내면서 街亭의 길목을 지켜 接近하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命令했다. 하지만 馬謖自身能力만을 믿고 을 끌어들여 逆襲을 하려다가 도리어 등성이에서 張郃軍隊에게 包圍當해 힘 한 써 보지도 못한 채 慘敗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諸葛亮은 할 수 없이 軍隊를 이끌고 漢中으로 退却해야만 했다. 諸葛亮敗戰責任을 물어 馬謖에게 斬首刑을 내렸다. 다시 하기 어려운 將帥이므로 살리자고 많은 사람들이 挽留했지만 嚴正히 지켜 紀綱을 바로 세우기 해 울면서 馬謖의 목을 베었다. 馬謖이 죽은 , 諸葛亮直接 祭祀를 모시고, 그의 子息들을 馬謖이 살아 있을 때처럼 보살펴 주었다.

* 三國志 · 蜀書 馬良傳에 나온다.

 

 

20. 엄이도령(掩耳盜鈴) 掩耳盜铃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치다. 스스로 自己 自身을 속이거나, 얕은꾀로 남을 속이려는 것을 比喩하는 말이다. 自身에게 들리지 않는다고 남도 모르는 줄 아는 것과 같이,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獨善的이고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春秋戰國時代 晉나라의 范氏 家門沒落하자, 어떤 사람이 을 훔치러 들어갔다. 을 등에 지고 가려고 했으나 이 너무 커 질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은 (을 깨뜨려 조각내어 가져가기로 하고) 망치로 을 내리쳤다. 에서 天地振動하는 듯한 소리가 나자 다른 사람이 듣고 빼앗아 갈까 봐 自己 귀를 틀어막았다.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이 싫은 것은 그럴 수 있다지만, 自己가 듣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道理에 어긋난 일이다. 사람의 이 되어 그 잘못을 말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는 것이 어찌 이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의 잘못을 말하는 것은 오히려 괜찮은 것이다.

(范氏之亡也, 百姓有得鍾者, 欲負而走, 則鍾大不可負, 以椎毁之. 鍾況然有音, 恐人聞之而奪己也, 遽揜其耳. 惡人聞之, 可也. 惡己自聞之, 悖矣. 爲人主而惡聞其過, 非猶此也. 惡人聞其過尙猶可.)

 

이 이야기는 呂氏春秋 不苟論에 나온다. 元來는 귀를 가리고 을 훔친다는 掩耳盜鐘이었는데 대신 쓰게 되었다.

 

呂氏春秋 不苟論에서는 이 이야기를 쓴 에 임금이 바른말을 하는 臣下所重히 여긴 實例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魏文侯臣下들과 술을 마시며 大夫들에게 魏文侯 自身하도록 했다. 어떤 사람은 智慧롭다고 말했다. 任座의 차례가 되었다. “께서는 不肖입니다. 中山한 뒤 同生하지 않고 아들을 했습니다. 이로써 不肖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文侯不快表情을 짓자 任座는 그곳을 뛰쳐나갔다. 翟黃 차례가 돌아왔다. “은 어진 입니다. 이 어질어야 臣下가 바른말을 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方今 任座가 바른말을 하는 것을 보니 이로써 이 어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文侯는 곧 다시 任座를 부른 몸소 階段 아래까지 나가 그를 맞이하고 上座에 앉게 했다.

 

 

 

 

산과바다 이계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