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입암(立巖) : 박인로(朴仁老 1561~1642)
<제1수>
무정(無情)히 선는 바회 유정(有情)하야 보이느다.
최령(最靈)한 오인(吾人)도 직립불의(直立不倚) 어렵거늘
만고(萬古)에 곧게 선 저 얼굴은 고칠 적이 없나다.
<제2수>
강두(江頭)에 흘립(屹立)하니 앙지(仰之)예 더욱 놉다.
풍상(風霜)에 불변(不變)하니 찬지(鑽之)에 더욱 굿다.
사람도 이 바회 갓하면 대장부(大丈夫)인가 하노라
<제3수>
한 말도 업슨 바회 사괼 일도 없건마는
고모진태(古貌眞態)를 벗 하마 안자시니
세상에 유익한 벗을 사귈 줄 모르노다.
<제4수>
승묵(繩墨)업시 삼긴 바희 어느 규구(規矩) 알니마는
놉고도 고다니 귀(貴)하야 보니나다.
애닯다 가(可)히 사람이오니 돌마도 못하랴.
<제5수>
탁연직립(卓然直立)하니 법(法)바담 즉하다마는
『구름 깊은 협중(峽中)에 알 니 있어 찾아오랴』
노력제반(努力躋攀)하면 기관(奇觀)이야 만하리라
<제6수>
세정(世情)이 하 수상하니 나를 본들 반길런가
왕기순인(枉己順人)하여 내 어데 옮아 가료
산 좋고 물 좋은 골에 삼긴 대로 늙으리라
<제7수>
천황씨(天皇氏) 처음부터 이 심산(深山)에 혼자 있어
너 보고 반기기를 몇 사람 지내던고
만고(萬古)애 허다영웅(許多英雄)을 드러 보려 하노라
<제8수>
소허(巢許) 지낸 후에 엄처사(嚴處士)를 만낫다가
낫비 여희고 알 니 없이 베렸더니
오늘사 또 너를 만나니 시운(時運)인가 하노라
<제9수>
종용(從容)히 다시 묻자 너 나건 지 몇 천년(千年)고
네 나흔 필연(必然)하고 내 나흔 적건마는
이제나 너와 나와는 함께 놀자 하노라
<제10수>
당우(唐虞)를 그제 본 듯 한당송(漢唐宋)을 어제 본 듯
꿈같이 지내다가 남은 해도 적다마는
십이회(十二會) 못다간 드란 나도 너와 늘그리라
[다른 풀이]
(1)
무정(無情)히 섰는 바위 유정(有情)하여 보이나다.
최령(最靈)한 오인(吾人)도 직립불의(直立不倚) 어렵거늘
만고(萬古)에 곧게 선 얼굴이 그칠 적이 없나다.
(2)
강두(江頭)에 흘립(屹立)하니 앙지(仰之)에 더욱 높다.
풍상(風霜)에 불변(不變)하니 찬지(鑽之)예 더욱 굳다.
사람도 이 바위 같으면 대장부(大丈夫)인가 하노라.
(3)
한말도 없는 바위 사귈 일도 없건마는
고모진태(古貌眞態)를 벗 삼아 앉았으니,
세상(世上)애 익자삼우(益者三友)를 사귈 줄 모르노라.
(4)
승묵(繩墨)업시 삼긴 바희 어느 규구(規矩) 알니마는
놉고도 고다니 귀(貴)하야 보니나다.
애닯다 가(可)히 사람이오니 돌마도 못하랴.
(5)
탁연(卓然) 직립(直立)하니 본받을 만하다마는
구름 깊은 협중(峽中)에 알 이 있어 찾아오랴
노력 제반하면 기관(奇觀)이야 많으니라
(6)
세정(世情)이 하 수상(殊常)하니 나를 본들 빈길넌가.
왕기순인(枉己楯人)하야 내 어데 올마가료.
산(山) 됴코 믈 됴한 골의 삼긴대로 늘그리라.
(7)
천황씨(天皇氏) 처음부터 니 심산(深山)의 혼자 이셔
너보고 반기기를 멧 사람 지내던고.
만고(萬古)애 허다영웅(許多英雄)을 드러 보려 하노라.
(8)
소허(巢許) 지낸 후(後)에 엄처사(嚴處事)를 만났다가
나쁘게 이별하고 알 사람 없이 버려져 있더니,
오늘에야 또 너를 만나니 이것도 운인가 하노라.
(9)
종용(從容)히 다시 묻자 너 나건지 몇천년(千年)고.
네 나인 필연(必然) 많고 내 나인 적건마는
이제나 너와 나와는 함께 늙자 하노라.
(10)
당우(唐虞)를 그제 본듯 한당송(漢唐宋)을 어제 본듯
꿈같이 지내가니 남은 해도 적다마는
십이회(十二會) 못다 간 동안은 나도 너와 늙으리라.
【현대어 풀이】
(1)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는 저 바위가 마치 무슨 뜻이라도 품고 있는 듯 보이는구나.
가장 영특한 우리네 사람들도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오랫동안 바로 서기는 어렵거늘
오랜 세월 꼿꼿하게 선 그 모습이 변할 때가 없구나.
(2)
강가에 우뚝 서 있어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구나.
바람과 서리에도 변하지 않으니 더욱 굳세도다.
사람도 이 바위 같으면 대장부라 할 것이로다.
(3)
말도 없는 바위 사귈 일도 없건마는
변함없는 모습을 벗 삼아 앉았으니,
세상에 유익한 벗을 사귈 줄 모르노다.
(4)
먹줄도 없이 생긴 바위 어느 모양 알 것이냐마는
높고도 곧으니 귀하게 보이는구나.
애달프다 가히 사람이 돌만큼도 못하겠느냐.
(5)
빼어나게 뛰어나 꼿꼿이 서 있으니 본받을 만하다마는
구름 깊은 산골짜기에 알 사람이 어디 있어 찾아오겠는가?
힘써 높은 곳에 오르면 기이한 경치를 많이 구경할 수 있느니라.
(6)
세상 형편이 너무 수상하니 나를 본들 반기겠는가.
도리를 어겨 남을 좇아간들 내 어디로 가겠는가.
산 좋고 물 좋은 자연에 묻혀 생긴 대로 늙으리라.
(7)
태고적부터 이 몸 혼자 있어서
너보고 반기기를 몇 사람이나 하였던가.
옛날 수많은 영웅호걸들을 만나보고 싶구나.
(8)
옛 은사(隱士) 소부ㆍ허유ㆍ엄광을 만났다가
언짢게 이별하고 알 사람 없이 버려져 있더니,
오늘에야 또 너를 만나니 이것도 운인가 하노라.
(9)
조용히 다시 물어보자. 너 태어난 지 몇 천 년인가.
너의 나이는 분명히 많고 내 나이는 적지마는,
이제부터 너와 나는 함께 늙어 가고자 하노라.
(10)
중국의 요순시대를 그제 본 듯하고, 한당송을 어제 본 듯하구나.
꿈 같이 지나가니 남은 해도 많지 않지마는
오랜 세월까지 못 다 간 동안은 나도 너와 함께 늙으리라.
【해설】
조선 중기에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연시조. <입암(立巖)>은 모두 29수로 된 <입암가(立巖歌)> 가운데 10수로 된 연시조로, 작자의 문집인 <노계집(蘆溪集)>에 실려 전한다. 이 작품은 작자의 만년인 1640년경에 지은 듯하다.
바위라는 무정물(無情物)에 지은이의 감정을 이입(移入)한 작품이다. 어쩌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희구한 유치환(柳致還)의 '바위'라는 시를 이 시조에 접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직립 불의(直立不倚)하며 만고 불변(萬古不變)하는 바위의 곧은 성품을 찬양하고 있다.
작품의 제목인 ‘입암’은 경상북도 영일군 죽장면 입암의 냇물 속에 솟아 있는 거대한 바위 이름이다.
【감상】
모두 10수로 된 연시조이다. 우뚝 솟아있는 바위가 지닌 긍정적 속성에 주목하여 인간에게 주는 교훈을 찾고 있는 작품이다.
제1수는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항상 변함없이 서 있는 바위의 곧음을, 제2수는 홀로 우뚝 솟아있는 바위의 높은 기상과 풍상에도 불변하는 바위의 굳은 절개를 찬양하고 있으며, 제3수는 노력하면 입암의 기이한 경관을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찾지 않는 사람들의 우매함을 지적하면서 변함없는 바위를 벗 삼고 싶다는 마음을, 제4수는 변함없는 바위만도 못한 인간을 경계하고, 제5수는 입암의 장관을 찾지 않는 사람들의 우매함을 지적하고, 제6수는 속세를 떠나 자연을 벗삼아 살겠다는 마음을, 제7수는 바위를 통해 옛 영웅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을, 제8수는 은자(작자)를 만나 기뻐하는 바위를, 제9수는 입암과 함께 늙어가고 싶은 마음을, 제10수는 바위와 함께 오랜 세월을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읊고 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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