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만흥삼결(漫興三闋) : 곽기수(郭期壽 1549-1616)
<제1수> : 자연의 맑은 정취 속에서 귀를 씻다.
초당의 밝은 달이 북창을 비껐으니
시내 맑은 소리 두 귀를 절로 씻네
소부의 기산영수도 이렇던종 만동
<제2수> : 물 위의 세상 고요한 병풍을 벗삼다.
물은 거울이 되어 창 앞에 비꼈거늘
뫼는 병풍이 되어 하늘 밖에 여위었네
이 중에 벗 삼은 것은 백구 외에 없어라
<제3수> : 술에 취해 태고(太古)의 진리를 찾다.
희황이 니건 지 오래니 시절이 보암 직지 아니해
술이 광약인 줄 내 먼저 알것마는
적은 덧 취향에 들어가 태고적을 보려 하니
선조 때 문신으로 자는 미수이고 호는 한벽당으로 호서 해미 사람이다. 예조 좌랑, 부안 현감을 지냈다. 부안 현감 재직 시에 90여세가 되는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두문불출하며 ‘주역’의 연구에 몰두, 주역의 암송으로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까지 할 정도로 세간에 소문이 자자했다. ‘안택지’ ,‘사방해’ 등을 저술했으며 사람들은 임천에 사는 것을 좋아한다해서 그를 한벽 노인이라고 불렀다.
저서로 ‘한벽당문집’이 전하며 여기에 ‘만흥삼결(漫興三闋)’이라 하여 시조 3수가 실려 있다.
1수
초당의 밝은 달이 북창을 비껐으니
시내 맑은 소리 두 귀를 절로 씻네
소부의 기산영수도 이렇던동 만동
시골 선비가 밤중에 밝은 달을 보며 맑은 시냇물 소리를 듣고 있다. 초당에서 바라보는 달이 북창에 비꼈으니 시내의 맑은 물소리가 두 귀를 절로 씻는구나. 소부의 기산영수도 이러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가 잘 조화되어 동양화의 이면을 보는 듯하다.
요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고 당대의 현자 허유에게 권했다. 허유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물러나 그런 소리 들었다며 기산 밑을 흐르는 영수로 가서 귀를 씻었다. 그런데 소부는 허유가 씻은 물조차 더럽다하여 자기의 소에게 그 물을 먹이지 않았다. 기산영수는 허유와 소부가 왕명을 피해 은거했던 곳으로 중국 하남성에 있는 산과 시내의 이름을 말한다.
맑은 물소리가 두 귀를 씻는데 소부의 기산영수가 왜 생각이 났을까. 깨끗한 물소리가 귀를 씻는 것하고 못 들었어야 할 말을 들었다하여 귀를 씻는 것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 ‘어렇던동 만동’이라는 어감은 긍정과 부정의 묘한 의미를 자아내게 한다. 그는 동서분당의 혼미한 정국을 피해 전원으로 돌아간 사람이다. 그런 그였기에 허유·소부와 같이 자연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이 그런 표현을 쓰게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2수
물은 거울이 되어 창 앞에 비꼈거늘
뫼는 병풍이 되어 하늘 밖에 여위었네
이 중에 벗 삼은 것은 백구 외에 없어라
강호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물은 거울이 되어 창 밖에 비스듬히 비쳐있거늘 산은 병풍이 되어 하늘 밖에 널리 펼쳐져 있네. 이 중에 벗 삼은 것은 백구 외에는 없어라.
시각적 이미지만으로 구성한 아름다운 동양화 한 폭이다. 이런 전원 속에서 오직 흰 갈매기만을 벗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읊었다. 강호한정, 물아일체라는 말은 이런 삶을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3수
희황이 니건 지 오래니 시절이 보암 직지 아니해
술이 광약인 줄 내 먼저 알것마는
적은 덧 취향에 들어가 태고적을 보려 하니
현실에 대한 불만을 술로 잊어버리고 취흥 속에서라도 태곳적 평화를 찾아보겠다는 또 하나의 도피적 은일 시조이다.
희황은 복희씨의 다른 이름이다. 중국의 전설상의 임금 복희씨가 다스리던 태평 시절은 이미 가버린 지 오래이다. 지금의 현실이야 뭐 볼 것이 있겠느냐하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복잡한 그런 현실을 잊어버리려고 그는 술을 찾고 있다. 술은 나를 미치지게 하는 약인 줄 알지만 잠시나마 취흥 속에 빠져 태곳적 태평성대를 찾아보겠다는, 그의 이상 세계의 염원을 담고 있다.
그는 벼슬을 그만 두고 삶의 위안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이다. 강호자연에서 명철보신하면서 은자의 이런 한정가들을 남겼다.
[작자]
곽기수(郭期壽, 1549-1616)의 생애
조선 중기 전라도 강진 지역 문인인 한벽당(寒碧堂) 곽기수(郭期壽, 1549-1616)의 생애 주요 면모와 그의 국문시가 향유 양상을 살펴보고, 그의 시가 창작·향유가 갖는 시가사적 의미를 탐색하고자 하였다.
곽기수는 16세기 이래로 호남 지역에서 이어져온 국문시가 창작·향유의 전통 아래 시가 작품을 창작하였으며,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지역 인사 중에 임제(林悌), 김응정(金應鼎) 등과 직접적인 교유관계를 형성하였다.
특별히 곽기수는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을 매개로 하여 이황(李滉), 권호문(權好文) 등 영남 지역의 시가 작품도 접했을 개연성도 매우 크다.
곽기수가 남긴 시가 작품은 시조의 한역인 <취원당십경단가(聚遠堂十景短歌)> 10수, 가사의 한역인 북창춘면가(北?春眠歌)> 1편, 국문시조 <만흥삼결(漫興三闋)> 3수가 전한다. 이 시가 작품들은 생애 만년기에 접어든 곽기수가 자신의 거처와 별서를 오가면서 현실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유유자적하면서 여유롭고 낙관적인 삶의 흥취를 표출하고 있다. 이렇듯 곽기수의 시가 작품들은 강호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서의 고아(高雅)한 즐거움을 드러내는 강호시가의 맥락과도 그 흐름을 같이 하고 있는 바, 곽기수는 17세기 초반 호남을 대표하는 시가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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