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어제 오던 눈이 : 홍적(洪迪 1549∼1591)
어제 오던 눈이 사제에 오돗던고
눈이 모래 같고 모래도 눈이로다
아마도 세상 일이 다 이런가 하노라
[해설]
어제 왔던 눈이 모래 언덕에도 왔다. 눈이 모래 같고 모래가 눈 같다. 눈과 모래가 한 빛으로 구분이 안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는 당쟁이 아니라 공의라는 것이다. 공의와 사감을 ‘눈’과 ‘모래 언덕’이라는 객관적 상관물로 제시했다.
종장에서 그는 눈과 모래가 다 같다고 세상일이 다 그렇다고 체념하고 있다.
그는 홍문관에서 ‘학사전재(學士全才)’라 불렀던 만큼 그의 논리는 매우 정연했을 것이다. 결백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을 것이고 이를 끝까지 굽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왕의 미움을 사 장연으로 좌천되었고 그 곳에서 이런 저런 많은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시조가 창작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그는 40살에 모친상을 당했고 복이 끝나기 전 43세의 이른 나이에 죽었다. 그의 단명을 한탄하며 슬퍼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벼슬에 나간 24년 간 당쟁에 휩쓸리지 않았다. 시문에 능했으며 필명 또한 높았다. 저서로는 ‘하의집’·‘하의시십(荷衣詩什)’이 있다.
국역인물조는 그를 이렇게 말했다.
도는 숫돌처럼 평탄하고 곧기는 화살 같았네. 굳고도 확실하니 군자의 행실이요 곧고도 바르니 군자의 처신일세. 학문에 연원이 있었으니 이를 잇고 이를 배웠으며, 가르침은 차례가 있었으니 이를 본받고 이를 모범으로 삼았네.
사람 사는 세상은 동서고금 하등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무엇이 잘 사는 것인가는 어떻게 살았는가에 달려있다. 오늘은 어제의 눈부신 거울이다.
출처 : 금강일보(https://www.ggilbo.com)
[작자]
홍적(洪迪 1549∼1591) : 조선 전기에, 지제교, 예조정랑, 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태고(太古)·준도(遵道), 호는 양재(養齋)·하의자(荷衣子). 사성(司成) 홍이평(洪以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홍덕연(洪德演)이고, 아버지는 홍인우(洪仁祐)이며, 어머니는 생원 김영윤(金寧胤)의 딸이다. 판서 홍진(洪進)의 동생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2년(선조 5) 진사로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정자(權知承文院正字)가 되었다가 곧 사관(史官)이 되었다.
이듬해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한 뒤 1574년 정자로 홍문관에 들어가 10년 동안 봉직하였다.
1577년 부수찬에 오르고, 예조·병조의 좌랑을 거친 뒤 지제교를 겸하였다. 1580년 예조정랑이 되고, 이듬해 병조정랑으로 옮겼다가 곧 경기암행어사가 되어 민정을 살폈다. 그 뒤 교리·수찬을 지내고, 1583년 정언이 되었다.
이 해 양사(兩司)에서 이이(李珥)를 탄핵하자, 이것을 반박하다가 장연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588년 병조정랑이 되었으며, 이듬해 교리·검상을 지낸 뒤 사임이 되었다가 그
해 겨울에 집의가 되었다.
경학(經學)에 밝고 논사(論思)를 잘하여 홍문관에서 ‘학사전재(學士全才)’라 불렸으며, 시문에 능하고 글씨도 잘 썼다. 저서로는 『하의집』·『하의시십(荷衣詩什)』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시조 한 수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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