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한 잔 먹세그려 : 정철(鄭澈 1536∼1593)
장진주사(將進酒辭)
(초장)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중장)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여 주리혀 메여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의 만인(萬人)이 울어 예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白楊) 속에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종장)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 불 때야 뉘우친들 어쩌리.
-송강가사(松江歌辭) 성주본(星州本)-
{어휘 풀이}
* 산(算) 놓고 : 꽃나무 가지를 꺾어, 하나 둘 셈을 하면서 한 잔 먹고 가지 하나 꺾고, 두 잔 먹고 가지 하나 꺾어 가면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모습
* 무진무진 : 한없이, 끝없이, 무궁무진
* 줄 이어 매여 : 꽁꽁 졸라매어져서
* 유소보장(流蘇寶張) : 호화롭게 꾸민 상여를 말한다. '유소'는 깃발 따위의 가장자리에 붙이는 오색실이나 노로 만든 술, '보장'은 고급 휘장(장막). 여기서는 그것을 두른 상여를 말함.
* 울어 예나 : 울면서(곡을 하면서) 따라가거나
* 어욱새 : 억새풀
* 백양 : 사시나무
* 누른해 : 누런 해. 묘지에서 쳐다보는 기분 나쁜 뿌연 해를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 흰달 : 밝은 달이 아니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달이다.
* 가는비 : 가랑비. 시원스럽게 내리는 비가 아니라 구질구질하게 내리는 음산한 비
* 굵은눈 : 함박눈
* 소소리바람 : 음산한 바람.
* 잿납이 : 잿빛(회색) 납이. 납은 원숭이의 옛말
* 파람 : 원숭이의 구슬픈 울음 소리를 말함.
* 뉘우친들 어떠리 : 술을 즐기는 태도의 합리화
[현대어 풀이]
한 잔 먹어 보세, 또 한 잔 먹어 보세. 꽃 꺾어 셈을 하면서 한없이 먹어 보세 그려.
(마음껏 음주할 것을 권유함.)
이 몸이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을 덮어 꽁꽁 졸라 매어져서 가거나 호화로운 상여에 만인이 울면서 따라가거나, 억새풀과 속새와 떡갈나무와 백양나무 숲에 가기만 곧 가면,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함박눈, 음산한 바람이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고 할 것 같은가.
(죽은 후의 무상감을 가정함.)
하물며 무덤 위에 잿빛 원숭이가 휘파람을 불 때, 뉘우친들 무엇하리.
(죽은 후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음을 밝힘.)
[이해 및 감상]
'장진주사'라는 사설시조로 멋진 권주가에 해당되는 시조이다. 사람이 한번 죽고 나면, 거적을 덮어 지게에 짊어지고 가거나, 유소보장 호화로운 상여에 만인이 울면서 따라가거나, 일단 북망산천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외롭고 쓸쓸하고 을씨년스럽기는 매한가지가 아니냐. 부귀와 영화도 살았을 적의 일이지 한번 죽어지면 모든 것이 다 일장춘몽이다. 공수래 공수거하는 인생, 그러니까 살아생전에 후회 없이 즐겁게 지내보자는 것이다.
초반부의 꽃을 꺾어서 술잔 수를 셈하면서 즐기는 낭만적이고 풍류가 넘치는 정경과, 후반부에 그려진 무덤 주변의 삭막하고 음산한 분위기는 대조적이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인생무상을 느끼게 한다. 현실에 대한 무기력감과 퇴폐적인 정조로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북망산천의 묘사는 영상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표현면에서 당나라 시인 이백과 두보의 술을 노래한 시와 시상이 비슷하고 더러는 그 구절을 인용한 것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구사된 걸작이다.
[정리]
* 성격 : 사설시조, 권주가(勸酒歌), 장진주사(將進酒辭)
* 표현
① 중장의 산문화, 대조적 분위기 연출
② 반복법, 대조법, 열거법 등을 통해 화자의 심리를 진솔하게 드러냄.
* 주제 : 술로써 인생의 무상함을 해소함.(음주 취락)
* 의의 : 이백의 <장진주>를 연상케 하는 권주가로, 최초의 사설시조로 알려져 있음.
* 참고 : 『장진주사』는 최초의 사설시조인가?
'장진주사'는 사설시조의 효시라는 인식이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일반화되어 있는바, 이런 인식은 사설시조의 발생을 조선 후기의 사회적 변동과 관련짓게 된다. 그러나 정철에 앞서 중종 때의 고응척(1531~1605)을 사설시조의 작가로 보고 사설시조의 발생을 15세기 또는 고려 말까지 소급하려는 시도도 있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의 파격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고려 말 이래로 사대부들이 연유(宴遊)를 즐기는 자리에서 평시조와 병행하여 불려져 온 창곡이라는 것이다. 즉, 사설시조는 고려 속요의 형태를 계승하면서 고려 말에 발생하여, 조선 초기에 소강 상태를 보이다가 '장진주사'와 같이 정제된 작품이 등장하였고, 18세기 이후 민중 의식의 발달에 힘입어 민중 문학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하게 잡았다고 보는 것이다.
조선 중기에 정철(鄭澈)이 지은 사설시조이다. 「장진주사」는 권주가(勸酒歌)로 분류된다. 초장은 반복법을 주로 사용하고 중장은 대조법과 병치법의 교묘한 조화에 의하여 표현의 묘를 살렸다.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에 걸맞는 소재를 선택해서 인생의 허무함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백의 「장진주」가 남성적인 호방함을 보임에 비하여 이 작품은 여성적인 우수(憂愁)의 감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대조적이며, 서정성과 낭만성이 교차하고 있다.
[내용]
조선 중기에 정철(鄭澈)이 지은 사설시조. 『송강가사(松江歌辭)』 및 『문청공유사(文淸公遺詞)』에 실려 전하며, 『청구영언(靑丘永言)』 · 『근화악부(槿花樂府)』 등 각종 가집(歌集)에도 널리 수록되어 있다.
『순오지(旬五志)』에는 이 노래가 이백(李白) · 이하(李賀)주1의 명시인 「장진주(將進酒)」를 본받았다 하고 두보(杜甫)의 시에서도 뜻을 취하였다 하였다. 그러나 거기에서 소재와 시상을 취하였을 뿐, 독창성과 개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이 노래는 『송강가사』에 실려 있다는 점과 가집에 노래 제목이 붙은 채 독립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가사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볼 수만도 없는 것이 「장진주사」는 평시조(平時調)주2의 정형을 일탈하면서도 3장 구성체계라는 사설시조(辭說時調)주3의 구조적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한다면 사설시조로 봄이 옳다.
즉, 초장(한 盞 먹새그려∼無盡無盡 먹새그려)의 음보수가 동일하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경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는 시조창에서의 초장에 해당하는 것을 가곡창에서는 두 장으로 나누어 부르게 된 데서 생기는 경향이다. 또한 3장 가운데 대체로 중장(이 몸 주근 後면∼먹쟈 ᄒᆞᆯ고)이 길어지는 경향도 아울러 보이고 있어, 사설시조의 형식적 특성을 온전히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게다가 진본(珍本) 『청구영언』 등의 가집에서 가곡창이나 시조창으로 연행하는 자료들 틈에 함께 소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장진주사」에 화답(和答)한 것으로 보이는 후대의 시조작품(空山木落 雨蕭蕭ᄒᆞᆫ듸∼어즙어 昔年歌曲이 郞今調가 ᄒᆞ노라)에서도 본 작품을 ‘가곡’이라 칭하고 있어 가곡창이나 시조창으로 불렸을 것은 더욱 확실시된다.
결국 이 노래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초 · 중 · 종장 모두 평시조의 틀에서 일탈하였으되, 중장에서 특히 길어지는 사설시조의 보편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장진주사」는 내용의 측면에서 본다면 권주가(勸酒歌)로 분류된다. 인생이란 허무한 것이니 후회하지 말고 죽기 전에 술을 무진장 먹어 그 허무함을 잊어버리자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몸 죽은 後후면 지게 우ᄒᆡ 거적덥허 주리혀 ᄆᆡ여가나, 流뉴蘇소寶보藏쟝의 萬만人인이 우러녜나” 마찬가지라, 죽으면 술 한 잔 먹자고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니, 꽃 꺾어 술잔 수를 세어가며 무진장 먹자고 한다.
초장은 반복법을 주로 사용하고 중장은 대조법과 병치법의 교묘한 조화에 의하여 표현의 묘를 살렸다.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에 걸맞은 소재를 선택해서 인생의 허무함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고사성어나 한문 조어를 피하고 우리말의 일상적 생활어를 시어로 선택함으로써 시대를 넘어서는 문학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백의 「장진주」가 남성적인 호방함을 보임에 비하여 이 작품은 여성적인 우수(憂愁)의 감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대조적이며, 서정성과 낭만성이 교차하고 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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