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
(서사)
고산구곡담(高山九曲潭)을 사람이 모르더니
주모복거(誅茅卜居)하니 벗님네 다 오신다.
어즈버 무이(武夷)를 상상하고 학주자(學朱子)를 하리라.
(제1곡)
일곡은 어디메오 관암(冠巖)에 해 비친다.
평무(平蕪)에 내 거두니 원산(遠山)이 그림이라.
송간(松間)에 녹준을 높고 벗 오는 양 보노라.
(제2곡)
이곡(二曲)은 어디메오 화암(花巖)에 춘만(春晩)커다.
벽파(碧波)에 꽃을 띄워 야외(野外)로 보내노라.
사람이 승지(勝地)를 모르니 알게 한들 어떠하리.
(제3곡)
삼곡(三曲)은 어디메오 취병(翠屛)에 잎 퍼졌다.
녹수(綠樹)에 춘조(春鳥)는 하상기음(下上其音)하는 적에
반송(盤松)이 수청풍(受淸風)하니 여름경(景)이 없세라.
(제4곡)
사곡(四曲)은 어디메오 송애(松崖)에 해 넘는다.
담심암영(潭心巖影)은 온갖 빛이 잠겼 세라.
임천(林泉)이 깊도록 좋으니 흥을 겨워 하노라.
(제5곡)
오곡(五曲)은 어디메오 은병(隱屛)이 보기 좋으이.
수변정사(水邊精舍)는 소쇄(蕭灑)함도 가이 없다.
이 중(中)에 강학(講學)도 하려니와 영월음풍(詠月吟風) 하오리라.
(제6곡)
육곡(六曲)은 어디메오 조협(釣峽)에 물이 넓다.
나와 고기와 뉘야 더욱 즐기는고.
황혼에 낚대를 메고 대월귀(帶月歸)를 하노라.
(제7곡)
칠곡(七曲)은 어디메오 풍암(楓巖)에 추색(秋色) 좋다.
청상(淸霜)이 엷게 치니 절벽이 금수(錦繡)ㅣ로다.
한암(寒巖)에 혼자 앉아 집을 잊고 있노라.
(제8곡)
팔곡(八曲)은 어디메오 금탄(琴灘)에 달이 밝다.
옥진금휘(玉軫金徽)로 수삼곡(數三曲)을 노래하니
고조(古調)를 알이 없으니 혼자 즐겨 하노라.
(제9곡)
구곡(九曲)은 어디메오 문산(文山)에 세모(歲暮)커다.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눈 속에 묻쳤세라.
유인(遊人)은 오지 아니하고 볼 것 없다 하더라.
【현대어 풀이】
(서사)
고산의 아홉 굽이 계곡의 아름다움을 세상 사람들이 모르더니,
(내가) 풀을 베고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사니(그때야) 벗님네 (모두) 찾아오는구나.
아, 주자가 읊은 무이산에서 후학을 가르친 주자를 생각하고 주자를 배우리라
(제1곡)
첫 번째로 경치가 좋은 계곡은 어디인고? 갓머리처럼 우뚝 솟은 관암에 아침 해가 비쳤도다.
잡초 우거진 들판에 안개가 걷히니 먼 산이 그림 같구나!
소나무 숲 사이에다 술맛 좋은 술통을 놓고 벗들이 찾아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리라.
(제2곡)
두 번째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가? 화암의 늦봄 경치로다.
푸른 물결에 꽃을 띄워 멀리 들판으로 보내노라.
사람들이 경치 좋은 이곳을 모르니, (꽃을 띄워 보내) 알게 하여 찾아오게 한들 어떠리.
(제3곡)
세 번째로 경치 좋은 계곡은 어디인고? 푸른 병풍을 둘러친 듯한 절벽, 취병에 녹음이 짙어졌다.
푸른 나무 사이로 봄 새는 예서제서 우짖는데,
가로 퍼진 소나무가 마주치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듯싶으니, 시원스런 풍경이라고는 할 수 없구나!
(제4곡)
네 번째로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고? 소나무 보이는 낭떠러지 위로 해가 진다.
깊은 물 한가운데로 바위 그림자는 온갖 빛이 어울린 채 잠겨 있구나!
숲속의 샘물은 깊을수록 좋으니 흥을 이기지 못하겠구나.
(제5곡)
다섯 번째로 경치 좋은 계곡은 어디인가. 으슥한 절벽 같은 은병이 보기도 좋구나.
물가에 지어놓은 정사는 맑고 깨끗하기가 더할 나위 없구나.
이 중에서 글도 가르치고 연구하려니와 시를 짓고 읊으면서 풍류도 즐기리라.
(제6곡)
여섯 번째로 경치 좋은 계곡은 어디인가? 낚시질하기에 좋은 골짜기에 물이 많이 고여 있구나.
나와 고기와 어느 쪽이 더 즐기는가?
해가 저물거든 낚싯대를 메고 달빛을 받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리라.
(제7곡)
일곱 번째로 경치 좋은 계곡은 어디인고? 단풍으로 덮인 바위, 풍암에 가을빛이 짙었다.
게다가 깨끗한 서리가 엷게 덮였으니 낭떠러지로 이루는 풍암이 마치 수놓은 비단처럼 아름답구나!
바람맞이 바위에 홀로 앉아 가을 경치에 취한 나머지 집에 돌아가는 것도 잊고 있다.
(제8곡)
여덟 번째로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가? 악기를 연주하며 흐르는 시냇가에 달이 밝구나.
좋은 거문고로 몇 곡조를 연주했지만,
옛 가락을 알 사람이 없으니 혼자 듣고 즐기노라.
(제9곡)
아홉 번째로 경치 좋은 계곡은 어디인고? 바위와 돌이 모두 괴이하게 생겨서 아롱져 보이는 문산에 마지막 겨울인 섣달이 찾아왔다.
기이한 바위와 야릇한 모양의 돌들이 그렇게도 보기 좋더니, 이제는 모두 깊은 눈 속에 묻혀버렸구나!
유람객들이 눈에 덮인 이곳을 찾아보지도 아니하고서, 입으로만 볼 것이 없다고 하니 참 딱한 노릇이로다.
【어휘 풀이】
(서사)
<고산구곡담(高山九曲潭)> : 중국 송나라 때, 주자학의 시조인 주희가 복건 성무이산에 있는 구곡계의 아름다운 풍경을 읊은 구곡가를 본받아 고산의 고곡담을 가려낸 것이다. 담(潭)은 깊은 못 또는 물이 깊은 곳을 뜻한다.
<주모복거(誅茅卜居)> : 띠풀을 베고 집터를 가려잡고 살아가니
<벗님네> : 친구분들. 만년에 해주 고산에 은퇴, 은병정사를 짓고 지낸 것으로 보아 정사(精舍)의 여러 후학(後學)들을 가리킨다고 봄
<어즈버> : '아!' 하는 감탄사
<무이(武夷)> : 중국 복건성에 있는 산. 주자가 이 산에 정사(精舍)를 짓고 학문을 닦음. 구곡계(九曲溪)가 있어 경치가 좋음.
<무이를 상상하고> : 주자가 정사를 짓고 학문을 닦던 무이산을 생각하고. 이곳에서 그는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지었다.
<학주자(學朱子)> : 주자가 주장한 성리학의 연구
(제1곡)
<어디메오> : 어디인가? '어느 곳이요?'의 옛 말투
<관암(冠巖)> : 갓머리처럼 우뚝 솟은 바위
<평무(平蕪)> : 잡초가 우거진 들판
<내> : 안개.
<내 거두니> : 연기(또는 안개)가 걷히니
<원산(遠山)> : 멀리 보이는 산
<송간(松間)> : 소나무 숲 사이
<녹준> : 푸른 술통. 좋은 술동이. 즉 맛있는 술을 뜻한다.
<벗 오는 양> : 벗들이 오는 모습
(제2곡)
<화암(花巖)> : 꽃이 피어 있는 바위
<춘만(春晩)> : 봄이 저물어 감.
<커다> : 하도다.
<춘만(春晩)커다> : '∼커다'는 '하거다'의 준말. '춘만(春晩)하다'의 강조된 표현. 봄이 늦었구나! 늦봄이로구나!
<벽파(碧波)> : 푸른 물결
<야외(野外)> : 들판
<승지(勝地)> : 명승지(名勝地)의 준말로서, 경치 좋기로 이름난 곳
(제3곡)
<어디메오> : 어디인가.
<취병(翠屛)> : 꽃나무의 가지를 틀어 만든 병풍. 여기서는 푸른빛 병풍같이 나무나 풀로 덮인 절벽
<녹수(綠樹)> : 푸른 나무
<춘조(春鳥)> : 봄새. 꾀꼬리ㆍ종달새 따위
<하상기음(下上其音)> : 소리를 높였다 낮추었다 하며 노래를 부름. 아래 위서 우짖음.
<적에> : 때에
<반송(盤松)> : 키가 작고 가지가 가로 퍼진 소나무
<수청풍(受淸風)> : 맑은 바람을 받음.
<여름경(景)> : 여름의 경치. 여름다운 풍치
<없세라> : '없구나'의 옛 말씨
(제4곡)
<송애(松崖)> : 소나무가 있는 벼랑. 소나무가 보이는 물가의 낭떠러지
<담심(潭心)> : 못처럼 물이 고인 한가운데
<암영(巖影)> : 물에 비친 바위 그림자
<담심암영(潭心巖影)> : 못 가운데 비친 바위의 그림자. 못처럼 물이 고인 가운데 비친 바위 그림자.
<잠겼세라> : '잠겼구나!'의 옛 말투
<임천(林泉)> : 원뜻은 수풀 속의 샘물이나, 여기서는 은거하는 선비의 사는 곳, 즉 벼슬을 물러나 산골에서 살고 있는 율곡선생의 거처를 가리킨다.
<깊도록> : 깊을수록.
<겨워 하노라> : 이기지 못하는 듯하구나!
(제5곡)
<은병(隱屛)> : 굽이진 곳에 있어 눈에 띄지 않는 절벽. 으슥한 병풍처럼 되어 있는 낭떠러지(절벽).
<좋으이> : 좋도다.
<수변(水邊)> : 물가
<정사(精舍)> : 학사서당(學舍書堂). 글을 가르치는 집. 독서하는 곳.
<수변정사(水邊精舍)> : 물가의 정사(精舍). 정사는 제자를 가르치는 집.
<소쇄(蕭灑)> : 맑고 깨끗하여 속되지 않음
<가이없다> : 가없다. 그지없다.
<강학(講學)> : 학문 강의. 글 가르치기. 학문을 가르치고 연구함.
<영월음풍(詠月吟風)> : 시를 짓고 읊으며 흥겹게 노는 것
<하오리라> : '하리라'의 옛 말투
(제6곡)
<조협(釣峽)> : 낚시질하기에 좋은 골짜기
<뉘야> : 누구가.
<대월귀(帶月歸)> : 달빛을 띠고 돌아감
(제7곡)
<어디메오> : 어디인고.
<풍암(楓巖)> : 단풍으로 덮인 바위
<추색(秋色)> : 가을빛
<청상(淸霜)> : 깨끗한 서리
<금수(錦繡)> : 비단에 수를 놓은 듯이 아름다운 것
<한암(寒巖)> : 차가운 바위. 바람맞이에 있는 맨 바위를 말한 듯하다
(제8곡)
<금탄(琴灘)> : 거문고나 가야금을 타 듯이, 물 흐르는 소리가 흥겹게 들리는 여울목
<옥진금휘(玉軫金徽)>: 진(軫)은 거문고·가야금의 줄을 죄었다 늦쳤다 하는 자그마한 말뚝 못. 휘(徽)는 줄 고르는 자리를 보이기 위하여 거문고 앞쪽에 원형으로 박아 놓은 13개의 자개 조각. 그러므로 옥진금휘는 옥으로 만든 진과 금박으로 박은 휘, 즉 아주 값지고 좋은 거문고와도 같다는 뜻에서 금탄을 가리킨다.
<수삼곡(數三曲)> : 서너 곡조
<고조(古調)> : 옛 곡조
<알 이> : 알 사람
(제9곡)
<문산(文山)> : 문(文)은 글월이란 뜻 외에도 화(華)·미(美)·반(斑)·식(飾)의 뜻이 있으므로, 기암괴석이 뒤섞여 아롱지게 아름다운 곳을 이렇게 일컫는 듯하다.
<세모(歲暮)커다> : 한 해의 마지막 때가 되었다. '∼커다'는 '하거다'의 준말. '세모하다'의 강조된 표현. 섣달이 되었구나! 음력 섣달은 겨울철의 마지막 달이니, '겨울이 깊었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기암괴석(奇巖怪石)> : 생김새가 기이한 바위와 괴상한 돌
<묻혔세라> : 묻혔구나! 묻혀버렸도다. ‘∼세라’는 감탄 종지형.
<유인(遊人)> : 경치 좋은 곳을 찾는 사람. 유람객.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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