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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時調詩 ***/한국 古時調

이시렴 부디 갈다 : 성종(成宗 1457~1494)

by 산산바다 2025.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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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렴 부디 갈다 : 성종(成宗 1457~1494)

 

이시렴 부디 갈다 아니 가든 못할소냐

무단(無端)히 네 슬트냐 남의 말을 들엇느냐

그려도 하 애돼라 가는 뜻을 일러라.

 

[현대어 풀이]

있으렴 꼭 가겠느냐 아니 가진 못할쏘냐

까닭없이 싫더냐 남의 말을 들었느냐

그래도 너무 애닯다 가는 뜻을 말하거라

 

[어휘 풀이]

* 이시렴 : 있으렴.

* 갈다 : 가겠느냐

* 가든 : 가지는.

* 슬트냐 : 싫더냐

* 그려도: 그래도

* : 많이, 하도

* 애도래라 : 애닯구나

 

[창작 배경]

성종 임금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고, <여지승람>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던 유호인이란 신하가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고자 합천 군수가 되어 떠나려고 벼슬을 내놓았을 때, 성종이 만류하여도 받아들이지 않아 석별의 연회를 베풀어 주면서 읊은 노래이다.

 

[이해와 감상]

작품 전체의 내용이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노래로, 임금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법도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인정미가 넘치는 작품이다. 이것은 임금의 신하에 대한 태도라기 보다는 차라리 어버이의 자식에 대한 태도와 진배없다. 중장과 종장에 이르러서 그 귀향의 연유를 확실하게 알고자 하는 작자의 간곡함이 잘 나타나 있다.

 

짧은 노래 안에 군신 간의 끈끈한 애정, 인간미 넘치는 성품 등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리]

성격 : 고시조, 평시조, 회유가, 유교적 군신유의

표현

문답법, 직설적 표현

임금이라는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번 신하의 의사를 묻는 방식으로 간절한 심리를 드러냄.

주제 : 신하를 떠나보내는 임금의 안타까운 심정(석별의 정)

문학사적 의의 : 작가가 봉건 왕조 시대의 최고 권력자인 임금이라는 점에서 시조의 창작 계층이 다양했음을 알려주며, 군신유의라는 덕목을 잘 구현함.

 

[작자]

성종(成宗 1457~1494) : 조선 제9대 임금. 학문을 즐기고 유학을 장려하였으며 經國大典, 樂學軌範, 杜詩諺解, 東國與地勝覽, 東文選, 東國通鑑 등을 편찬케 하였다.

 

[왕실(王室) 풍류(風流)의 대명사(代名詞)] : 월산대군(月山大君)

때는 이화(梨花) 도화(桃花)가 만발하고 두견화(杜鵑花)가 한양성(漢陽城)을 둘러 붉게 물들인 춘삼월 호시절, 지금 연경궁(현재의 안국동)에 위치한 풍월정(風月亭)에선 봄꽃보다 아름다운 잔치판이 흥겹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잔치 자리의 주인공은 두 사내와 한 여인, 불과 세 사람에 불과 하지만 그들의 노랫소리와 호탕한 웃음소리는 봄꽃과 산새들의 아름다운 우짖음마저도 주눅 들게 하고 있다.

 

풍월정(風月亭) 진실로 아름다운 정자 이름으로서 이곳에서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면 거의 예외 없이 이런 잔치판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한 주인공도 언제나 세 사람이었으니, 한 사람은 조선의 제 9대 임금인 성종대왕이요, 마주한 사람은 그의 형님인 좌리공신 월산대군(月山大君)이니, 이 아니 놀라운 자리인가? 천지가 경동(驚動)할 그 자리에 언제나 빠지지 않는 여인인 즉 바로 성종 임금의 애기(愛妓)소춘풍(笑春風)인바 그녀는 바로 영흥의 명기(名妓)로서 선상기(選上妓)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여인이었다.

 

가장 화기애애하고 즐거우며, 인세(人世)의 근심걱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만 같은, 풍월정의 이 자리가 있기까지는 한두 마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숱한 사연을 그 뒤에 담고 있다.

 

수양대군, 세조의 맏아들은 의경세자(뒷날 덕종으로 추존됨)로서 시서화(詩書畵)에 능했으나, 월산대군과 자을산군의 두 아들을 남겨둔 채 약관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때문에 세조의 사후에 의경세자의 동생인 예종이 왕세자로 책봉되고 대통을 잇게 되지만, 그의 나이가 어린 까닭에 어머니인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정희왕후는 불도에 귀의한 까닭에 예종의 장인인 훈척(勳戚) 한명회가 권력을 쥐게 되었으니, 한명회는 자을산군의 장인이기도 하였다. 한편 예종은 몸이 약하여 즉위 원년(元年)을 넘기면서 불귀(不歸)의 객이 되고 만다. 그러나 예종에겐 두 아들과 한 명의 공주가 있었다. 당연히 그 아들이 왕권을 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한명회의 영향력은 여기에서도 작용한다. 이제 왕권은 의경세자의 맏아들인 월산대군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 동생 자을산군은 당대에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한명회의 사위였다. 결국 월산대군의 몸이 허약하다는 미명하에 왕권은 자을산군에게 넘어가게 되니, 그가 바로 성종이며 이때 성종의 나이 불과 열세 살이었다.

 

왕권을 이어받아야 할 왕세자가 그 대통을 이어받지 못하게 될 경우, 그의 일생은 여염집 남정네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 목숨도 보장받지 못하는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운명에 놓이는 경우도 흔한 일이었으니, 우리는 단종이나 영창대군의 경우를 통하여 그러한 예를 보아 왔다.

 

그러나 성종은 덕인(德人)으로서 인간미가 풍부했던가 보다. 비록 본의와는 관계없이 왕권을 잇게 되었지만, 형님인 월산대군에게 항상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즉위 후 2년째 되던 해에는 월산대군을 순성명량경제좌리공신(純誠明亮經濟佐理功臣)에 책봉하고, 전지와 노비 등을 하사하였다. 뿐만 아니라 월산대군에게 풍월정이란 호를 하사하고 지금 잔치판이 벌어지고 있는 풍월정(風月亭)을 짓게 하였으며, 이곳에서 오늘과 같은 잔치를 종종 벌리고 있는 것이다.

 

술잔이 한 순배 돌면서 좌중은 술이 거나해졌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성종 임금이 곁의 여인에게 잔을 건네면서 말을 잇는다.

 

거 봄바람의 미소가 훈기를 불러오는구나. 하늘엔 춘삼월의 보름달이 걸려 있고.... 봄바람이 있고, 밝은 달이 있는데 어찌 한 가락의 창이 없을쏘냐? 소춘풍아, 어디 한 자락 읊어 보렷다.”

 

소춘풍은 이미 성종임금과 남남이 아닌 사이였다. 성종은 미복잠행(微服潛行)을 빌미로 하여 소춘풍의 집을 한밤중에 찾아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눈 사이였지만, 월산대군이 그런 내막을 알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소춘풍은 선상기로서 성종의 총애를 독점하고 있기에 조정의 모든 잔치에 동석하므로 성종과 월산대군의 내면세계까지도 이해하는 입장이다.

 

상감마마, 황공하옵니다. 감히 풍월을 벗할 수 있을지 모르겠아오나, 한 자락 읊어 올리겠나이다.”

 

()도 대국이요 초()도 대국이로다

조그만 등()국이 간어제초(間於齊楚)하였으니

두어라 이 다 좋으니 사제사초(事齊事楚)하리라.

 

제 나라도 큰 나라이며 초 나라도 큰 나라이로구나

힘없고 작은 등 나라가 제나라와 초 나라 사이에 끼었으니

아아, 그러나 제나라도 좋고 초나라도 좋으니 이 모두를 섬기리라.

 

이 얼마나 재기 넘치는 노래인가? 과연 성종의 총애를 받을 만한 조선의 명기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기지(機智)를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연인이신 성종 임금도 훌륭하고 그 형님인 월산대군도 걸출한 대장부이시도다.

 

작고 하찮은 계집 소춘풍이 두 분을 모시고 앉아 있거늘

 

아아, 어찌하여 한 분의 뜻만을 좇을 수 있으리오. 두 분 모두 섬기오리니, 즐거움과 우애가 넘치는 자리 되시옵소서.

 

허허, 과연 듣던 대로 명기에 명창이로고. 상감께 주청(奏請)드리오. 어찌 이런 자리에서 상감이신들 한 곡조 화답이 없으오리까? 제 보기에 상감을 향한 소춘풍의 눈빛이 예사롭지 아니하오이다.”

 

허허, 형님께선 별말씀을 다 하시옵니다. 모처럼 하시는 형님의 청 이시온 즉 제가 한 자락 읊어 보오리다.”

 

이시렴 부디 갈다 아니가든 못 할쏘냐

무단(無斷)히 네 슳드냐 남의 말을 들었느냐

그려도 하 애닳아라 가는 뜻을 일러라

 

성종은 성군(聖君)으로서 25년의 재위 기간에 숱한 치적을 남긴 임금이다. 태조(太祖)에 의해 조선이 건국된 이후, 조선의 모든 문물제도는 성종 때에 이르러 거의 완성되었으며, 백성들은 건국 이후 최대의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한 임금이 형님인 월산대군과 사랑하는 소춘풍 앞에서 부른 노래이다. 소춘풍의 노래에 풍자와 기지가 담겼듯이 성종의 이 노래는 중의적(重意的) 표현이 두드러지니, 이 노래는 소춘풍과 월산대군 두 사람 모두를 향한 하소연이라 할 수 있겠다.

 

소춘풍아 굳이 떠나야만 하겠느냐 아니 가든 못하겠느냐

공연히 내가 싫어졌느냐 이간질하는 말을 들었더냐

그래도 많이 애닯구나 가는 뜻을 일러라.

 

형님 꼭 떠나시렵니까? 언제까지나 제 곁에 함께 할 수는 없으십니까?

공연히 아우가 싫어졌습니까? 이간질하는 신하가 있었습니까?

만약 떠나신다면 너무도 애닯습니다. 부디 제 곁에 함께 하소서.

 

성종의 이 노래를 듣고 이런 뜻을 못 알아들을 소춘풍이 아니며, 월산대군도 아니겠다. 역시 월산대군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잠시의 침묵을 깨면서 분위기를 북돋운다.

 

허허, 역시 상감이시구려. 국사에 분망하실 터임에도 어찌 이리 음률까지 능통하시오니까? 탄복, 그저 탄복뿐이로소이다.”

 

그러나 그 순간 소춘풍의 얼굴에 쓸쓸한 빛이 번개보다 빠르게 스치고 지나감은 웬일일까? 어쩌면 성종의 노래를 네가 떠날 때가 되었다는 암시쯤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그러나 소춘풍의 그런 낌새는 두 사람 모두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형제지간의 우애를 다지기에 여념이 없을 무렵 소춘풍이 월산대군에게 고한다. 역시 구슬이 구르는 듯한 음성이다.

 

대군마마, 탄복만 하실 일이 아닌가 하옵니다. 상감마마께옵서 창을 읊으셨사오니 화창(話唱)이 있으셔야 하실 줄로 아옵니다.”

 

허허, 소춘풍아, 그랬구나. 너무도 유쾌한 자리이기에 내 잠시 상감께 결례(缺禮)를 했구나, 허허. 상감, 송구하오이다. 내 한 자락 읊어 보리다.”

 

허허. 형님의 창()이야, 궁궐은 물론 장안(長安)에 자자한 솜씨가 아니옵니까? 어디한번 경청하겠습니다.”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매라.

 

월산대군은 항상 낚시를 즐겼다. 강태공(姜太公)은 곧은 바늘을 늘어뜨려 세월을 낚으면서 때를 기다렸고, 마침내 세상을 얻는 자리에 이르렀지만, 월산대군의 낚시는 경우가 다르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왕위 계승을 위한 암투(暗鬪)는 치열했었다. 특히 세조, 예종, 성종 연간의 왕위 계승 싸움은 더욱 치열했으니, 그것은 한명회를 비롯한 훈척들의 창궐(猖獗)에서 비롯된다.

 

이와 같은 왕위 계승 싸움에서 밀려난 왕족은 재상집의 자제만도 못한 슬픈 운명을 짊어지고 무거운 삶을 꾸려가야 했으며, 때로는 그 목숨까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월산대군의 낚시는 바로 이러한 것으로 부터의 도피행각 일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세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단언 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결국 그의 모든 행위는 풍류와 직결된다.

 

가을 강이다. 배를 띄운다. 달이 휘영청 밝다. 낚시를 드리우지만 고기는 물지 않는다. 그러나 고기가 물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무에 대수이랴, 월산대군은 이미 인생의 강에서 산을 낚고, 강을 낚고, 달빛까지 낚아 한 배 가득 싣고 돌아오는 중인 것을.

 

허허. 형님의 창은 언제 들어도 좋습니다. 역시 명창이십니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성종은 이미 월산대군의 내면의식을 이해하고 있다. 가을강의 차가운 물결이 무엇인 줄을 알고 있다. 물지 않는 고기가 무엇을 뜻하는 줄도 알고 있다. 당연히 형의 것이어야 했던 왕권, 그리고 그것의 상실, 그로부터 비롯된 상실감의 크기가 어떤 것인 줄을 성종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실감을 무심한 달빛으로 극복하고 무욕의 경지에서 삶을 꾸리며 성종으로 하여금 성군이 되어 주기를 염원하는 형님의 심정을 성종은 충분히 헤아리고 있었으며, 그러기에 성종은 형님인 월산대군에게 풍월정이란 호와 함께 정자를 지어 하사하여 오늘과 같은 잔치를 종종 베풀면서 형제간의 우의를 다져갔고, 그것은 곧 국태민안(國泰民安)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성종월산대군이 보여 준 형제간의 우애, 그것은 오로지 풍류 정신에 바탕을 둔 정신적 교감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풍월(風月)이 무엇이던가? 풍월이란 바로 풍류(風流)가 아니던가. 따라서 풍월정이란 풍류를 누리는 정자이니, 왕권과 풍류를 맞바꾼 월산대군이야말로 왕실(王室) 풍류의 대명사라 이를 만하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로서의 풍류, 그것은 왕권까지도 초월하며,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원동력(原動力)이 되기도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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