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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時調詩 ***/한국 古時調

당우를 어제 본 듯 : 소춘풍(笑春風 1460?~?)

by 산산바다 2025.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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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우를 어제 본 듯 : 소춘풍(笑春風 1460?~?)

 

당우(唐虞)를 어제 본 듯 한당송(漢唐宋) 오늘 본 듯

통고금(通古今) 달사리(達事理)하는 명철사(明哲士)를 어떻다고

저 설 데 역력히 모르는 무부(武夫)를 어이 좇으리.

 

현대어 풀이

태평성대인 요순시대를 어제 본 듯하고, 문물이 화려했던 한, , 송나라를 오늘 본 듯,

고금의 모든 일에 통달하고 일의 근본 이치를 모두 달통하신 뛰어난 선비님을 어이 버려두고

앉을 데, 설 데도 잘 모르는 무식한 장군을 어이 따를 것인가?

 

어구 풀이

<당우(唐虞)> : 도당씨(陶唐氏)와 유우씨(有虞氏). 곧 태평성대였던 요순시대(堯舜時代). 덕으로 인민을 다스리던 요순시대를 가리키는 말

<한당송(漢唐宋)> : 문화가 화려했던 한나라ㆍ당나라ㆍ송나라. 경학(經學)이 크게 발달했던 시대.

<통고금(通考今)> : 고금을 통해. 지금과 옛적을 통하여.

<달사리(達事理)하는> :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는

<명철사(明哲士)> : 어질고 밝은 선비. 세상 형편과 사물의 이치에 밝은 선비

<저 설 데> : 제가 서 있어야 할 곳. 자기의 처지 또는 지위

<무부(武夫)> : 무사(武士). 무도를 닦아 무사에 능한 사람.

<역력히(歷歷)> : 뚜렷이

<어이 좇으리> : 어떻게 따를 수 있으랴?

 

감상

조선 성종(成宗은 자주 술자리를 베풀고 군신들과 여악(女樂)을 즐겼는데, 하루는 소춘풍(笑春風)에게 술을 따르도록 명했다. 소춘풍은 영흥(永興)의 이름난 기생(妓生) 이었는 바 임금께 금배(金杯)에 술을 따라 바친 다음 영상(領相) 앞에 나아가 술잔을 들어 노래한 것이 바로 이 것이었다.

뜻인즉, 아득한 옛날에 있었던 요순시대(堯舜時代)의 역사며 한ㆍ당ㆍ송에 이르도록 모르는 일이 없는 똑똑한 선비님들을 어찌 마다하고 저렇듯 제 설 자리도 분간 못하는 어리석은 무관(武官)들을 따르겠느냐고 한 것이다.

이는 무부(武夫)를 얕잡고 문신들을 추켜세워 그 뜻에 영합하는 것이었으므로 문관들은 득의만만하였으나, 무사들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자못 심상치 않았다. 이에 춘풍은 또 한 잔을 무부(武夫) 앞에 나아가 따르면서,

 

전언(前言)은 희지이(戱之耳)라 내 말씀 허물 마오.

문무일체(文武一體)인 줄 나도 잠깐 아옵거니,

두어라, 규규무부(赳赳武夫)를 아니 좇고 어이리.

 

라고 읊어 그 얼음짱 같았던 노여움을 봄눈 녹이듯 사그라지게 하였다. 그 뜻은,

 

앞서 한 말은 희롱삼아 한 것뿐이니 내 말씀을 탓하지 마시오.

문신과 무신이 다 같은 준재인 줄 나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으려니와

씩씩한 무관들을 따르지 않고 어찌하겠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

 

()도 대국(大國)이요 초()도 역대국(亦大國)이라.

조그만 등국(騰國)이 간어제초(間於齊楚)하였으니

두어라, 이 좋으니 사제사초(事齊事楚)하리라.

 

고 결론지었다. 곧 자기를 소국(小國) 등나라로 견주고, 문무신을 각각 제()와 초() 나라에 비유하여 둘 다 섬기겠다고 했으니, 만당(滿堂)은 화락(和樂)의 극에 이르렀다. 이에 성종은 매우 기뻐하고 많은 비단과 호표피(虎豹皮) 등을 상급(賞給)했으니, 이로써 온 나레에 그 이름이 크게 떨쳤다고 한다. [차천로(車天輅)<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

 

과연 한낱 기생으로 지존(至尊) 앞에 나아가 문무백관들을 떡 주무르듯 다루던 소춘풍의 재주도 놀랍지만, 흉허물 없이 한데 어울리던 태평성대의 조정 풍경이 장관(壯觀)이었다 할 것이다.

 

* 소춘풍(笑春風)내세를 기약한 군왕(君王)과의 밀회

아이야, 이제 네 나이 열두 살, 이 에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겠구나. 에미의 평생 한은 박색으로 태어나 뭇사람으로부터 멸시를 받으며 살아온 것이란다. 어엿한 장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것 또한 말할 나위도 없고. 그러나 십여 년 전, 집 앞을 지나던 한 스님으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은 일이 있으니, 아가야, 네가 바로 그 사랑의 징표이니라. 그 스님이 안변의 석왕사에 계시다는 소문을 오래전에 들었구나.”

 

함경도 영흥 고을의 산골 마을에 자리한 외딴집,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이야기를 잇는 이는 초로의 여인이요, 이야기를 듣는 아이는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는 열두살 박이 계집아이이다. 비록 어리기는 하지만, 한 눈으로 보기에도 재기와 영특함이 온몸에서 넘쳐난다. 그 아이는 오래지 않아 기적(妓籍)에 이름을 올리게 되니, 그녀가 바로 소춘풍(笑春風), 봄바람처럼 스쳐 가는 인생을 덧없게 생각하지만, 한 군주(君主)의 사랑을 독점하면서 달관한 인생을 산 여인이다.

 

소춘풍은 선상기(選上妓)로서 한양 땅을 밟게 되니, 선상기란 전국에서 뽑혀 올라와 궁중 연회에 참석하는 기생이기에 가히 그 미모와 자질이 어떠했을 줄을 짐작할 수 있겠다.

 

성종(成宗, 1469-1494) 임금은 당대에 주요순야걸주(晝堯舜夜桀紂)’로 일컬어진 군왕이었다. 그는 형님인 월산대군을 대신하여 보위에 오른 것을 항상 미안해하고 있었기에 왕업에 더욱 열심이어서 재위 시절 숱한 치적을 남긴 성군으로 통한다. 그러기에 낮 동안은 국사(國事)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으니, 조선은 세종을 지나 성종 대에 이르러 비로소 태평성대를 구가하게 된다. 그러나 양지 뒤엔 음지가 있게 마련이 아니던가? 낮 동안 일에 파묻혀 모든 것을 잊고 지내는 성종은 밤이 되면 밀물처럼 밀려오는 외로움과 괴로움을 주체하기 어려워 고대 중국의 걸왕이나 주왕처럼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졌던가 보다. 때문에 성종은 선상기까지 뽑아 올려 궁중 연회를 베푼 것이 아니겠는가?

 

어느 날의 궁중 연회 석상이다. 격양가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성종 임금의 단아한 옥음이 좌중에 흐른다.

 

여봐라. 소춘풍은 조정 대신들에게 행주(行酒: 임금의 술잔을 대신 돌리는 일)하여 권토록 할지어다.”

 

소춘풍은 왕명을 받들어 삼정승 육판서에게 잔을 돌리면서 권주가를 부른다. 맨 먼저 성종에게 잔을 올리며 평조 한 가락을 읊으니 좌중의 모든 대신들이 찬탄을 금치 못한다.

 

태평성대로다 어즈버 태평연월이로다

격양가(擊壤歌) 울려오니 이 아니 성세인가

순군도 계시지만 요()야 내 임금인가 하노라.

 

현재의 상감마마가 순임금보다도 요임금에 가까운 성군이시라고 칭송하는 소춘풍의 재치에 좌중은 물론 성종의 용안에도 훈훈한 미소가 감돈다.

 

삼정승을 지나 육조 판서가 잔을 받을 차례이다. 그런데 서열을 무시한 병조판서가 예조판서의 앞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소춘풍은 봄바람 같은 미소 속에 촌철(寸鐵)의 꾸지람을 담아 쏟아낸다.

 

당우(唐虞)를 어제 본 듯 한당송(漢唐宋)을 오늘 본 듯

통고금(通古今) 달사리(達事理)하는 현철사(賢哲士)를 어디 두고

저 설 데 역력히 모르는 무부(武夫)를 어이 좇으리.

 

현재는 한당송 같은 태평성대로서 그것은 고금의 사리에 통달한 문관(文官)의 업적이니, 제 분수를 알지 못하는 무관을 따를 수 없다는,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꾸지람이다. 좌중에 있는 무관(武官)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성종의 용안에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스치고 있음은 소춘풍의 기지와 풍자와 해학을 익히 알고 있는 까닭이겠다. 병조 판서의 입가가 실룩거리면서 그 급하기만 한 성질이 폭발하기 직전이다. 병조판서를 바라보는 소춘풍의 미소는 바로 훈훈한 봄바람 그 자체이다. 그 미소만으로도 병판의 노화가 가라앉을 법하건만, 소춘풍의 작고 붉은 입술을 비집고, 구르는 듯한 옥음이 노래되어 흘러나온다.

 

전언(前言)은 희지이(戱之耳)라 내 말씀 허물마소

문무일체인 줄 나도 잠깐 아옵나니

두어라 규규무부(赳赳武夫)를 아니 좇고 어이리.

 

먼저 번의 말은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허물치 마소서

문신과 무신이 한 몸인 것을 나도 잘 압니다.

저토록 훤칠한 장부인 병판대감을 어찌 따르지 않으오리까.

 

과연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표현 속에 병도 주고 약도 주고, 좌중의 모든 신하는 물론 성종 임금까지도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재치요, 풍자이겠다. 이날의 일로 소춘풍은 성종으로부터 호랑이 가죽을 상으로 받고, 상감의 총애라는 더 큰 상을 받게 된다.

 

구중궁궐 깊숙한 상감의 처소이다. 소춘풍은 성종과 마주하고 있다. 둘 사이에는 조촐한 주안상이 놓여 있다.

 

오늘은 갑자기 소춘풍, 네가 보고 싶기에 불렀느니라.”

 

말소리와 함께 상감의 표정 또한 은근하기 이를 데 없다. 그 말을 듣는 소춘풍의 표정에도 사랑이 가득 담겨 흐른다. 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은 번갯불보다 더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

 

어우동, 바로 어우동이란 여인이 있지 않았던가? 상감과 하루 저녁의 정을 나눈 뒤, 자기를 추스르지 못하고 다른 종친들과 정을 나눔으로써 교수형을 당한 어우동이 있지 않던가? 마마와의 하룻밤 인연으로 후궁이 되어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한을 품은 채 한 생을 마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 비록 마마를 한 남자로서 흠모할지언정, 나의 사랑은 자유인의 그것이어야 한다.’

 

오늘은 너와 함께 지내고 싶은데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어찌 마음이 내키지 않는가 보다.”

 

마마, 황공하옵니다.”

 

그 대답이 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구나?”

 

마마, 황공하오나, 오늘 한 남자로서가 아닌 성상을 뫼시면 그 이후 평생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속 속에 살아야 할 일이 마음에 걸리옵니다.”

 

과연 이럴 수도 있는 것인가? 분명한 항명이며 임금의 명을 거역한 뒤에는 오직 한 길밖에 없으니,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그러나 성종의 말과 태도는 실로 뜻밖이었다.

 

오호라. 네 말이 옳도다. 나는 한 나라의 군주이지만, 너야말로 가장 자유분방한, 인생의 왕이로고. 그래, 방금 전의 일은 없던 일로 하고 우리 술이나 마음껏 마시자꾸나.”

 

일개 천기(賤妓)의 뜻과 그 안타까운 심정을 포근하게 감싸안는 성종 임금의 풍도(風道), 그리고 왕명도 개의치 않고 의연하게 소신을 밝히는 소춘풍의 기개야말로 진정한 풍류인의 진수(眞髓)라 아니할 수 없겠다.

 

그 이후 얼마의 세월이 흐른 늦은 밤이다. 소춘풍의 집 앞에 웬 한량이 찾아왔다.

 

여봐라. 이 집이 천하의 명기 소춘풍의 집이더냐?”

 

천하 명기는 못되오나 제가 소춘풍이오니 드소서. 동짓달 바람이 몹시 차옵니다.”

 

등불을 밝힌 소춘풍, 천하의 소춘풍도 이 순간만은 너무도 큰 놀라움에 벌린 입을 닫지 못한 채 부복할 수밖에 없었다. 방바닥에 부복한 소춘풍을 잡아 일으키며 껄껄거리는 한량, 그는 바로 평복 차림의 성종 임금이 아닌가?

 

상감마마, 어찌 이 누추한 곳까지......?”

 

허허, 미복잠행(微服潛行: 임금이 평민 복장으로 시정을 살피는 일)이라 해 두자꾸나. 어쨌든 오늘은 너를 한 지아비로 만나고 싶어 찾았느니라. 이래도 물리칠꼬?”

 

동짓달의 긴긴밤, 성종과 소춘풍은 한 남자와 한 여인, 한 지아비와 한 지어미가 되어 꽝꽝 얼어붙은 세상을 훈훈하게 녹인다. 밖에는 동지섣달 설한풍이 휘몰아치건만 소춘풍의 안방엔 봄바람의 미소가 그칠 줄이 없었다.

 

동짓달 밤 기닷말이 나를 속이는 거즛말이

님 오신 날이면 하늘조차 시샘 너겨

자는 닭 일깨와 울려 님 가시게 하는고.

 

다음 날 새벽, 성종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소춘풍의 속삭이는 듯한 노랫소리이다.

 

소춘풍아, 오늘 이후라도 궁중 연회에는 반드시 참석하렷다.”

 

염려 마옵소서. 궁궐에서는 언제나 군주를 뫼시는 기녀 소춘풍이옵니다.”

 

한 나라의 군주이자 찾아보기 어려운 풍류남아 성종 임금, 그는 즉위한 지 26년째 되던 해, 서른여덟 살의 젊은 나이로 이승을 떠난다. 성종이 승하한 후 아직 잔디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 선릉 앞에 서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의 입을 비집고 설움에 북받친 평조 한 자락이 가냘프게 흘러나온다.

 

바람 부러 셔리친 날에 울고 가는 저 기럭아

반 남아 셔근 간장 네 소리에 다 석는다.

진실로 너 우는 밤마다 눈믈 계워 하노라.

 

성종이 없는 한양은 소춘풍이 발붙일 이유가 없는 곳이었다. 스물여덟의 꽃다운 청춘, 십년 세월을 건너뛰어 불태웠던 성종 임금과의 사랑, 그 사랑을 한()처럼 가슴에 안고, 소춘풍은 안변의 석왕사를 찾는다. 임종 전의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운야대사를 뵙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소춘풍은 아버지로 믿고 있는 운야대사를 평생에 단 한 번 만난다. 얼마 후 금강산 유첩사에서 운야대사가 입적했다는 연락을 받은 소춘풍은 석왕사 주지스님을 통해 삭발을 하고 출가(出家)한다. 운야대사의, 아니 아버지의 법사(法事)에 참석하고자 석왕사 주지스님을 따라 걷고 있는 여승의 법명(法名)은 운심(雲心).

 

봄바람의 미소를 닮은 여인은 어느새 행운유수(行雲流水)의 여승이 되어 내세를 기약하면서 금강산 산길을 걷고 있었다.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한 점 흰 구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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