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 왕방연(王邦衍 1400년대 ?~?)
千萬里(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은 님 여희옵고
내 마음 둘 듸 업서 냇가에 안자이다
져 물도 내 안 갓도다 우러 밤길 녜놋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현대어 풀이】
천만리 머나먼 길에서 떠나와 고운 님(단종)을 이별하고,
내 마음을 매어 둘 곳이 없어 혼자 흘러가는 냇물가에 앉아 있으니,
아! 저 시냇물도 내 마음속 같아서 울면서 흘러가기만 하는구나.
【어구 풀이】
<고운 님> : 사랑하는 임. 여기서는 단종(端宗)을 가리킴.
<여의옵고> : 이별하옵고.
<내 안> : 내 마음.
<예놋다> : 가도다. 가는구나. ‘놋다’는 힘줌을 나타내는 ‘도다’의 옛말.
* 왕방연은 조선 전기의 문신(文臣)으로,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왕방연은 조선 세조 때 금부도사(禁府都事)였는데,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된 단종을 유배지인 강월도 영월까지 호송하였다. 이 작품은 단종을 호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은 작품이라고 한다. 왕방연은 단종에게 사약(賜藥)이 내려졌을 때도 사약을 가지고 간 인물로 단종과 비극적인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사육신의 단종 복위 사건으로 인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가게 되었을 때 단종은 열일곱 살이었다. 왕방연은 당시 금부도사로 단종을 호송하는 책임을 맡았다. 한때 왕이었던 단종을 영월에 모신 후 돌아오는 왕방연의 슬픈 심정을 이 작품은 잘 보여준다.
초장에서는 임(단종)과 이별한 사실과 이별한 상실감의 정도를 거리로 보여주고 있다. 한양(서울)에서 영월까지 거리가 천만 리나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은이는 ‘천만리 머나먼 길’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임을 두고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워서 임과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진다는 표현이다.
발걸음도 무겁고 마음도 무겁기 때문에 쉽게 가지 못하는 상황을 중장에서 표현하였다. 임을 두고 가려니 지은이의 마음은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이별의 슬픔과 안타까움, 임을 두고 가야만 하는 죄책감 등으로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냇가에 앉자 흘러가는 냇물을 보며 잠시 쉬려고 하였다.
하지만 지은이의 생각과 달리 마음은 더 심란해졌다. 왜냐하면 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지은이에게는 마치 사람이 우는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종장에서 ‘져 물도 내 안 도다 우러 밤길 녜놋다’라고 하였다. 임과 이별하고 가야만 하는 자신의 심정을 냇물이 아는 것처럼 울며 간다고 하였다. 즉 지은이는 냇물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켜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임과 이별한 슬픔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천만리 머나먼’처럼 과장법을 사용하거나, 흘러가는 물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수법을 통해 슬픔을 형상화하였다. 이렇게 표현했던 것은 단종에 대한 지은이의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주제는 임과 이별하는 슬픔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유배된 임금을 두고 떠나야 하는 애달픔이라 할 수 있다.
『청구영언(靑丘永言)』, 『해동가요(海東歌謠)』,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등에 실려 있으며, 시조집마다 표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원문은 『청구영언』의 표기를 따랐다.
산과바다 이계도
'*** 時調詩 *** > 한국 古時調'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 몸이 쓸 데 없어 : 이총(李摠 ?~1504) (0) | 2025.11.21 |
|---|---|
| 삿갓세 도롱이 닙고 : 김굉필(金宏弼 1454~1504) (0) | 2025.11.21 |
| 간밤에 부던 바람 : 유응부(兪應孚 ?~1456) (0) | 2025.11.21 |
| 초당에 일어 없어 : 유성원(柳誠源 ?~1456) (0) | 2025.11.21 |
| 추강에 밤이 드니 : 월산대군(月山大君 1454~1488) (0) | 2025.11.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