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앞 말은 희롱이라 : 소춘풍(笑春風 1460?~?)
前言은 戲之耳라 내 말쌈 허믈마오
文武一體인줄 나도 暫間 아옵껀이
두어라 赳赳武夫를 안이 좃고 어이리.
[현대어 풀이]
앞 말은 희롱이라 내 말을 허물 마오.
문신 무신 일체인 줄 나도 이미 알고 있사오니
두어라 용맹, 늠름한 무부 아니 좇고 어이하리.
[어휘 풀이]
* 희지이(戲之耳) : 실없이 웃고자 할뿐
* 문무일체(文武一體) : 문관과 무관이 한결같이
* 규규무부(赳赳武夫) : 용맹스러운 무인
[이 시조의 연유]
하루는 성종이 여러 대신들과 함께 술자리를 베풀었다. 소춘풍에게 명하여 대신들에게 술을 따르게 했다. 그리고 새 노래를 지어 문사들을 칭찬하라 명했다.
“소춘풍아, 여러 대신들에게 일일이 권하면서 노래를 부르거라. ”
임금께는 감히 드리지 못하고 영의정 자리로 가 술잔을 올렸다. 그리고 임금의 성덕을 노래했다.
순임금 계시건만
요임금이 바로 내 님인가 하노라
[상신에게 술 권하는 노래]
이때 무신 병조판서는 상신에게 잔을 올린 뒤에는 마땅히 무신인 내게 술잔이 오리라 생각했다. 소춘풍은 문관인 이조판서 앞으로 가 잔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당우를 어제본 듯 한당송 오늘 본 듯
통고금 달사리하는 명철사를 어떻다고
저 설 데 역역히 모르는 무부를 어이 쫓으리
요순시대를 어제 본듯 한․당․송나라를 오늘 본듯, 고금을 두루 알고 사리에 밝은 명철한 선비가 어떻다고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무인을 어찌 쫓으리.
‘당우’는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던 요순시대, ‘한․당․송’은 경학이 융성하던 시대를 말한다. ‘통고금 당사리’는 고금의 일을 두루 알고 사리에 밝은 것을, ‘명철사’는 명석하고 사리에 밝은 선비를 말한다.
누가 보아도 무관을 무시한 희롱조의 노래이다. 병조판서는 노기가 등등했다. 눈치채지 못할 리 없는 소춘풍은 이제는 병판에게 다가가 술잔을 올렸다.
앞 말은 희롱이라 내 말을 허물마오
문신 무신 일체인 줄 나도 이미 알고 있사오니
두어라 용맹, 늠름한 무부 아니 쫓고 어이하리
병판은 아직도 노기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술자리가 어색하게 돌아갔다. 성종은 자못 놀랐지만 결말이 어찌 되어가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소춘풍은 병조판서를 보고 생긋 웃으며 다시 노래 한가락을 멋들어지게 뽑아댔다.
제나라도 큰 나라요 초나라 또한 대국이라
조그만 등나라가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었도다
두어라 둘 다 좋으니 제나라, 초나라도 섬기리라
절묘한 응답이었다. 등이라는 조그마한 나라가 대국인 제나라와 초나라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으니, 제나라인들 어찌 무시할 수 있으며, 초나라인들 어찌 무시할 수 있으랴. 모두 다 나의 낭군으로 알고 한결같이 섬기겠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소춘풍의 이름이 온 나라에 알려졌다.
성종이 38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하자 소춘풍은 서울을 떠나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입산 시 28세로 법명은 운심이었다. 성종의 은총을 입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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