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한국 고사성어(韓國 故事成語) (ㅅ-4)
31. 숙호충비(宿虎衝鼻)
자는 범에 코침 주기
호랑이도 건드리지 않으면 사납게 굴지 않는다. 더군다나 자는 범이라야 옆을 살금살금 지나가면 그뿐이다. 그런데 턱없는 勇氣를 試驗하는 것일까? 잠든 호랑이에 다가가서 코침을 놓는 사람들이 있다. 선잠에서 깨어난 호랑이는 더욱 사나워질 것이다. 宿虎衝鼻는 ‘자는 범 코 찌르기’란 俗談과 같은 말로 가만히 있는 사람을 空然히 건드려서 禍를 입거나 일을 不利하게 만드는 것을 이른다.
이 말도 朝鮮 仁祖 때의 洪萬宗이 쓴 ‘旬五志’에서 볼 수 있다. 보름이 걸려 冊을 完成했다 해서 이름을 ‘旬五志’라 했다는 그 冊이다. 中國에는 쓰지 않는 成語가 숱하게 登場한다. 例를 들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를 鯨戰鰕死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猫項懸鈴으로 했으니 興味롭다. 그런데 旬五志에는 ‘宿虎衝本 言誤觸而取患(잠자는 호랑이에게 코침을 주듯 잘못 건드려서 禍를 招來한다)’으로 되어 있고 朝鮮 後期 朴慶家가 지은 韓國語 語源硏究書 ‘東言考略’과 趙在三이 쓴 ‘松南雜識’에 宿虎衝鼻로 바로 나온다. 그리고 茶山 丁若鏞이 엮은 ‘耳談續纂’에는 ‘虎方之睡 莫觸其鼻 言不可挑禍也(호랑이가 잠을 자고 있을 때 그 코를 건드리지 말라. 괜히 禍를 自招해서는 옳지 않다)로 되어 있다. 어느 것이나 뜻은 같다. 풀숲을 쳐서 뱀을 괜히 놀라게 한다는 打草驚蛇도 같은 뜻이 있다.
32. 승지허과(僧之虛夸)
스님의 虛風이라는 말로, 옛날 海印寺의 스님과 釋王寺의 스님이 서로 自己 寺刹의 솥과 뒷間의 크기를 부풀려 자랑한 故事에서 由來했다. 事實보다 크게 誇張하는 境遇를 이른다.
* 韓國說話集에.
陜川 海印寺의 가마솥은 크기로 有名하고, 咸鏡南道 安邊 釋王寺의 뒷間은 높기로 有名했다.
釋王寺의 뒷間에 對해 所聞을 들은 海印寺의 한 스님이 果然 그러한지 確認을 하려고 바랑(背囊)을 짊어지고 나섰다. 그런데 釋王寺의 스님도 海印寺의 가마솥을 구경하러 가다가 두 스님이 途中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釋王寺의 스님이 海印寺 스님에게 먼저 물었다.
“都大體 海印寺의 가마솥이 얼마나 크기에 所聞이 그리 藉藉합니까?”
“글쎄요. 어떻게 說明해야 그 크기를 斟酌하실지……, 아무튼 지난해 冬至에 그 가마솥에 팥粥을 쏠 때 上佐가 팥粥을 짓기 爲해서 배를 타고 떠났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그래요? 果然 크긴 크군요. 或是 東海보다 큰 건 아니겠지요?”
“아무려면 東海보다야 크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듣기로 釋王寺의 뒷間이 높다고 하던데 大體 얼마나 높기에 그렇게 所聞이 搖亂합니까?”
“네. 形容할 수 없을 만큼 높지요. 小僧이 이番에 절을 떠나며 뒤를 보았는데, 그 덩어리가 아직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내가 海印寺에 到着할 즈음에나 떨어지려나…….”
“허허! 그래요? 九萬里 長天 같겠구려.”
“아무려면 그만이야 하겠소만 아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외다.”
질세라 虛風을 떨던 두 스님은 서로 같은 結論에 이르렀다.
“말씀을 듣고 보니 彼此 얼마나 크고, 얼마나 높은지 잘 알겠구려! 그렇다면 굳이 먼 길을 힘들여 찾아갈 必要가 뭐 있겠소.”
하고는 이내 헤어져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33. 시금여석(視金如石)
黃金 보기를 돌과 같이 하라
* 성현(成俔 1439∼1504)이 지은 筆記雜錄類에 속하는 '재총화(齋叢話)'에 실려 있다.
鐵城 崔瑩(1316∼1388)은 少年時節 그의 아버지인 元直으로부터 "黃金 보기를 돌과 같이 하라"는 訓戒를 자주 들었다.
崔瑩은 恒常 네 글字를 허리띠에 새겨서 죽을 때까지 가슴속에 새겨 暫時도 잊지 아니했다.
비록 國政을 管掌하여 안팎으로 威嚴을 行使할지라도 조금도 남의 財物을 取하지 않았다.
집은 겨우 끼니를 이어갈 程度로 넉넉하지 못했다.
當時 宰相들은 서로 오고 가면서 바둑 두는 일로 消日하며 맛있는 반찬을 잔뜩 만들어 호사스러움에 힘을 썼다.
公은 홀로 손님을 맞이하는데 點心때가 지나도 飮食을 차리지 않다가 날이 저물어 기장과 벼를 섞어 밥을 짓고 나물 飯饌들을 차려내니 손님들이 배가 고파 나물밥을 다 먹고는 말했다.
"鐵城의 밥은 아주 맛이 있습니다." 公이 웃으며 "이것 또한 用兵의 꾀요"라고 했다.
當時 벼슬아치들과는 差別化되는 그의 勤儉節約하는 姿勢를 살필 수 있다.
崔瑩 將軍은 風采가 남다르게 우뚝하고 힘이 뛰어나 왜구(倭寇)와 紅巾賊 討伐에 赫赫한 戰功을 세웠으나, 함께 요동정벌(遼東征伐)에 나섰던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威化島)에서 回軍하여 都城을 점령함으로써 그는 잡혀 참형당했다. 그를 기리는 祠堂인 武愍祠가 開城 德物山과 南海郡 미조면(彌助面) 및 釜山 水營區 등에 있다.
濟州道 西歸浦市 三梅峰 앞바다의 외돌개(孤石浦)는 崔瑩 將軍이 마지막 남아있던 牧胡(元나라에서 派遣한 말먹이꾼)를 물리친 遺跡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무덤은 적분(赤墳 풀이 나지 않는 무덤)으로 有名하다.
34. 시서습자(撕書習字)
冊張을 찢어내어 글을 외운다는 말로, 工夫에 專念했던 朝鮮 世祖, 成宗時代의 學者 김수온(金守溫)의 行動에서 由來했다. 어떤 일을 爲해 完璧하게 해내는 것을 가리킬 때 쓴다.
* 大東奇聞, 韓國人物考에.
金守溫(1409~1481)은 本貫이 永同이고, 號는 乖崖, 諡號는 文平이다. 朝鮮 世祖 때 領中樞府事를 지내고, 徐居正, 姜希孟 等과 學問을 같이 했다.
그는 四書五經의 口訣을 定했으며 集賢殿에 있을 때는 治平要覽을 編纂했고, 郊理로 있을 때는 醫方類聚를 編纂했다. 또 諧學을 좋아하였다. 그가 일찍이 兵曹正郞으로 있을 때 手下의 佐郞에게 말했다.
“내가 當身의 觀相을 보니 壽를 많이 할 것 같소.”
佐郞이 기뻐하며 仔細히 보아 달라고 매달리자 守溫이 말했다.
“그걸 어디 함부로 말할 수 있소? 한턱을 내면 모를까…….”
佐郞은 觀相을 보고 싶은 생각에 한턱을 걸게 차려 待接하며 다시 守溫에게 請했다.
“제 觀相을 제대로 좀 보아 주시겠다 하셔서 이 자리를 마련했으니 한 말씀 해주십시오.”
그러자 守溫이 시침을 떼며 말했다.
“當身의 나이가 벌써 쉰을 넘었기에 내가 壽 좀 많이 할 相이라고 말한 것일 뿐 얼마나 더 살지 그것은 알 수 없소이다.”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깔깔 웃어댔다.
金守溫의 奇行은 또 있었다. 그는 冊을 빌려오면 어김없이 한 張씩 뜯어서 소매 속에 넣고 다니며 외우다가 確實하게 외우게 되면 아무 데나 버렸다. 그래서 책 한 권을 다 떼고 나면 그 冊은 없어져 버렸다.
한 번은 領相 申叔舟가 愛藏하고 있는 眞貴한 古書를 그가 빌려달라고 請했다. 申叔舟는 차마 拒絶할 수가 없어서 빌려주었더니 몇 달이 되어도 가져오질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金守溫의 집을 찾아가니 그 책을 모두 찢어 壁紙로 발랐는데 이미 연기에 그을려 새까맣게 되어 있었다. 申叔舟가 깜짝 놀라 물으니 守溫은 책을 누워서 읽기 便하게 하느라고 그랬다고 했다.
申叔舟는 차마 火도 못 내고 입맛만 다시며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에 能動的으로 對處하였고 일을 하면 完璧을 固執하는 그의 괴벽(怪癖)을 영상(領相)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35. 시수절화(是誰折花)
누가 꽃을 꺾어다 주겠느냐는 말로, 新羅의 水路夫人이 絶壁에 피어 있는 꽃이 갖고 싶어서 했던 말에서 由來했다. 간절(懇切)한 소망을 表現할 때 쓴다.
* 三國遺事에.
新羅 第33代 聖德王 때 純貞公의 아내 水路夫人은 빼어난 美人이었다.
純貞公이 江陵太守가 되어 家族이 모두 任地로 갈 때였다. 먼 길에 疲勞해진 一行이 絶壁 아래에서 暫時 쉬고 있는데 水路夫人은 깎아지른 絶壁의 벼랑에 진달래꽃 한 떨기가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아! 아름답구나! 꺾어다가 가까이 두고 보면 얼마나 좋을 까?”
그러나 워낙 깎아지른 낭떠러지에 있는 꽃이라 敢히 누구도 꺾어올 생각을 못했다. 水路夫人은 그 꽃이 못내 갖고 싶어 혼잣말을 했다.
“누가 저 진달래꽃을 꺾어 올 수 없을까(是誰折花)?”
그때 흰 鬚髥의 한 老人이 암소를 몰고 그곳을 지나다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이 늙은이가 꺾어다 드리지요.”
“危險할 텐데 할 수 있겠어요?”
水路夫人이 걱정을 하자 老人은 對答 代身 빙긋 웃더니 성큼 絶壁에 매달렸다. 그런데 絶壁을 기어 올라가는 老人의 動作이 너무도 날렵했다. 老人은 그렇게 하여 水路夫人의 所願을 풀어 주었다.
一行이 江陵을 向해 떠난 지 사흘째 되던 날, 바닷가에 있는 臨海亭이라는 亭子에서 點心을 먹게 되었다. 그때 水路夫人의 美貌에 반하여 虎視眈耽 機會를 노리던 東海의 龍이 갑자기 솟구쳐 올라 水路夫人을 낚아채어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男便 純貞公은 아무런 對策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그러자 이番에도 그 老人이 나타나 計巧를 일러주었다.
“이 일은 많은 사람이 必要하니 사람들을 더 불러 오시오.”
“바다로 들어가야 합니까?”
“물고기도 아닌데 어떻게 바닷속으로 들어간단 말입니까? 옛날에 여러 사람의 말은 무쇠도 녹인다고 했습니다. 바다의 龍이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의 입은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러니 모을 수 있는 데까지 많이 모이게 하시오.”
純貞公이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으자 老人은 노래를 지어주며 큰 소리로 부르게 했다.
“거북아! 거북아! 너희나라 龍이 잡아간 우리 水路夫人을 데려오너라, 남의 아내를 잡아갔으니 하늘이 용서(容恕)치 않으리라. 만약 夫人을 데려오지 않으면 그 대신 널 잡아 구워 먹겠다.”
여러 사람이 노래를 부르며 장대로 바닷물을 두드리자 龍은 할 수없이 水路夫人을 거북의 등에 태워 뭍으로 돌려보냈다.
老人은 여러 사람을 動員하여 龍을 非難하는 輿論을 造成함으로써 水路夫人을 救해냈던 것이다.
36. 시적수첨(柴積修簷)
장작(長斫)을 쌓아 부서진 처마를 修理한다는 말로, 어떤 物件을 效率的으로 利用하는 것을 比喩的으로 이른 말이다.
* 韓國歷史大事典에.
迎恩門은 朝鮮時代에 明나라의 使臣을 맞이하기 爲해서 세워진 門이었다. 只今의 西大門區 獨立門 附近에 있었는데 1537年 中宗 2年에 金安老가 改築할 때 靑瓦로 덮고 迎詔門이라는 懸板을 달았던 것을 明宗 때 明나라의 薛延寵 勅使가 迎恩門이라 바꾸어 걸게 했다.
어느 날, 迎恩門의 추녀 기와 한 張이 깨졌다. 그러자 門을 管理하던 管理員은 그 일을 戶曹判書에게 報告했다.
“추녀의 기와가 빠져 나가면 나머지 기와들도 잇달아 주저앉을 것입니다.”
“사다리를 댈 자리가 마땅치 않고, 飛階를 設置하는 것도 適當하지 않습니다.”
“그럼 내가 直接 가서 確認을 해야 되겠다.”
戶曹判書가 迎恩門으로 가서 仔細히 살펴보니 기와 한 張만 갈아 끼우면 되는 일이었지만 決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窮理 끝에 돈 2千 兩을 管理員에게 주며 말했다.
“새벽에 長安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서 있으면 高陽이나 辟除에서 長斫을 팔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돈으로 長斫을 모두 사서 迎恩門의 기와가 깨진 처마 밑에 차곡차곡 쌓도록 하여라.”
官員들은 戶曹判書의 指示대로 長斫을 사서 쌓았다. 長斫의 높이가 迎恩門과 거의 비슷해지자 戶曹判書가 다시 말했다.
“그 長斫더미에 올라가서 깨진 기와를 바꿔 끼우도록 하여라.”
果然 指示대로 하니 일은 今方 끝났다. 管理員이 戶曹判書에게 물었다.
“吩咐하신 대로 修理했습니다. 이제 저 長斫은 어떻게 할까요?”
“으음. 조금 있으면 長斫을 求하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니 그때 모두 팔아넘기도록 하여라.”
한낮이 되자 果然 判書의 말대로 長斫을 求하려는 사람들이 迎恩門 앞으로 몰려왔다. 쌓여 있던 長斫은 瞬息間에 다 팔려 나갔다.
戶曹判書가 말했다.
“나라의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迎恩門을 修理하였다. 가난한 百姓들에게서 나온 돈을 한 푼이라도 헛되이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너희는 恒常 명심(銘心)해야 될 것이다.”
37. 시죽발복(施粥發福)
죽을 베푸니 福이 되었다는 말로, 스님에게 若干의 죽을 나누어 주었더니 그것이 因緣이 되어 福을 받게 된 이지광(李趾光)의 故事에서 由來했다. 좋은 일을 하면 福이 되어 돌아온다는 뜻으로 쓰인다.
* 大東奇聞에.
朝鮮 第21代 英祖 때 이지광(李趾光)은 讓寧大君의 13世孫이다. 讓寧大君은 太宗의 世子가 되었으나 王位를 同生 忠寧大君 (世宗)에게 물려주고 八道를 遊覽하며 自由奔放하게 살다 간 人物이다.
李趾光은 南大門 밖에서 살았는데,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生活을 이어갈 수 없어서 막노동해야 할 딱한 지경에 있었다.
그러한 그에게 어느 날, 施主僧이 찾아와 먹을 것을 求乞했다. 그는 自身도 배가 고파 죽을 地境이면서도 먹고 있던 죽(粥) 절반을 나누어 주고, 찬 방에서 하룻밤을 같이 지냈다. 스님은 크게 고맙게 생각하고, 떠나면서 말했다.
“形便을 살펴보니 선비님도 어렵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집 뒤의 端正한 집은 무슨 집입니까?”
“내개 13代 先祖가 되시는 讓寧大君의 祠堂입니다.”
“그러시면 祠堂 앞의 나무를 베어내 祠堂이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李趾光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스님의 말에 眞實한 데가 있어 그의 말대로 祠堂 앞의 나무를 베어냈다. 그러자 가려졌던 祠堂 建物의 모습이 훤히 드러나 멀리에서도 잘 보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英祖가 헌능(獻陵) (太宗의 陵)에 祭祀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李趾光의 집 近處를 지나게 되었다. 英祖는 그곳에서 허물어져 가는 낡은 祠堂을 보고 臣下들에게 물었다.
“저것이 누구의 祠堂인가?”
옆에 서 있던 承旨가 아뢰었다.
“네! 讓寧大君의 祠堂입니다.”
“그래? 한데 많이 낡았구나. 祭祀를 지내 주는 宗孫은 있다더냐?”
“네. 있긴 하온데 너무 가난하고 궁색(窮塞)하여 천한 막노동을 해야 할 形便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럼 大闕로 들어와서 나를 찾으라고 일러라.”
일이 이렇게 된 것은 施主僧의 豫知 能力 때문이었다. 卽 祠堂 앞의 나무를 베지 아니했더라면 祠堂이 英祖의 눈에 띄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날, 李趾光은 헤진 道袍에 부서진 갓을 쓰고 英祖 앞에 나아가 엎드렸다. 英祖는 남루(襤褸)한 形色을 보고 측은(惻隱)해하며 물었다.
“그대는 讓寧大君의 몇 世孫인가?”
“13 世孫입니다.”
“萬若 讓寧大君께서 王位를 世宗大王에게 辭讓하지 아니했다면 네가 이 자리의 主人公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英祖는 그를 南部都事에 任命하고 承旨를 보내 讓寧大君의 祠堂을 새롭게 重修하게 하는 한便, 논과 穀食을 넉넉히 下賜하여 祭祀를 모시게 했다.
李趾光은 얼마 안 돼서 벼슬이 牧使에 이르고, 政事를 잘 펴서 世上에 이름을 남겼다.
또한 그의 曾孫 李承輔, 高孫 李根秀는 判書에 이르러 子孫 代代로 富貴를 누렸으니, 시죽발복(施粥發福)이 이같이 클 줄 누가 알았겠는가?“
38. 식부지덕(媳婦之德)
며느리의 德이라는 말로, 며느리가 불씨를 保存하기 爲해 精誠을 다했던 故事에서 由來했다. 집안의 兒女子가 일을 잘할 때 稱讚하는 말로 쓰인다.
* 韓國人의 說話에.
우리나리의 大家집에서는 祖上 代代로 불씨를 이어받는 傳統이 있었다. 오늘날처럼 불을 얻는 일이 쉽지 않았던 때라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지키는 것이 兒女子의 義務이자 큰 德目이었다.
한 士大夫 兩班宅에서 새 며느리를 얻었다. 그 女는 비록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마음씨가 착하고 부지런한 데다 禮儀凡節이 바른 閨秀였다.
며느리에게 살림을 넘겨주던 날, 媤어머니는 特別히 일렀다.
“새아가야, 너를 맞게 되어서 참으로 기쁘구나! 너도 아다시피 우리 집에는 先祖로부터 이어받은 불씨가 있단다. 이제 이 불씨를 너에게 넘겨줄 테니, 너도 웃어른들을 本받아서 꺼뜨리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예. 어머니!”
며느리는 불씨를 돌보는 일에 特別히 神經을 썼다.
며칠 後, 새벽에 밥을 짓기 爲해 부엌으로 나간 며느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불씨가 꺼져 있었던 것이다. 간밤에 불씨를 火爐에 담아서 그토록 잘 다독여 놓았건만 어찌 된 일인지 차가운 재만 남이 있었다.
며느리는 媤父母님이 이 事實을 알게 되어 怒發大發하실 것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생각 끝에 그래도 自己의 處地를 理解해 줄 사람은 男便밖에 없다고 생각해 男便에게 事實대로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男便도 처음에는 깜짝 놀랐으나 이내 걱정하는 아내를 慰勞하였다.
“너무 걱정 마오. 내가 새 불씨를 만들어 줄 테니 다시는 꺼뜨리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男便은 부싯돌로 새로이 불씨를 만들어 주었다. 며느리는 無思히 危機를 넘겼으나 마음속으로는 罪悚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이튿날 또 불씨가 꺼져 있었다.
며느리는 氣가 막혔다. 한 番 꺼뜨린 것만으로도 어른들을 뵐 面目이 없는데, 연거푸 두 번씩이나 꺼뜨렸으니 自身이 생각해도 상서(祥瑞)롭지 못한 일인 듯싶었다.
“참으로 異常한 일이야. 어젯밤 늦도록 불씨가 무이(無頉) 했었는데 밤사이에 꺼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야.”
며느리는 누군가가 故意로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男便도 火가 나서 도와주지 않는 바람에 그날 시어머니로부터 호된 꾸중을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이었다.
며느리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엌 한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불씨가 든 火爐를 監視하고 있었다.
한밤중이 되었다. 며느리는 밤이 깊어지자 참을 수 없이 졸음이 쏟아지기 始作했다. 온종일 고달프게 일을 한데다가 불씨 때문에 마음을 졸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졸고 있던 며느리는 인기척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藍色 저고리에 灰色 바지를 깨끗하게 차려입은 열두어 살 되어 보이는 少年 하나가 부엌문으로 들어서더니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불씨가 담긴 火爐 앞으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며느리의 가슴은 놀라움으로 방망이질을 치듯 두근거렸다. 그런데 해괴(駭怪)하게도 그 少年은 火爐에 오줌을 누는 것이었다.
“이 녀석! 너, 누구냐?”
며느리는 그 少年의 옷자락을 움켜잡으려고 했다. 그러자 少年은 날렵하게 빠져 밖으로 도망쳤다.
며느리는 있는 힘을 다해 少年이 가는 대로 내를 건너고 언덕을 지나 가시덤불 속을 지나서 정신없이 쫓아갔다.
약을 올리듯 힐끗힐끗 뒤를 돌아보면서 달려가던 少年은 더 以上 도망갈 힘을 잃었는지 한 나무 밑에 멈춰 서는 것이었다.
“꼼짝 마라! 너는 이제 잡혔다.”
그런데 少年은 瞬息間에 땅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좋다. 네가 땅속으로 숨는다고 못 잡을 것 같으냐? 내 기어이 너를 잡고 말 테다.”
며느리는 분한 마음에 맨손으로 정신없이 땅을 팠다. 바로 그때 한 때의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山으로 올라왔다. 媤宅 사람들이었다.
“여보,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요?”
男便이 피투성이가 된 아내의 손을 감싸 잡았다. 며느리는 눈물을 흘리며 只今까지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예사(例事)로운 일이 아니구나. 그곳을 더 파보는 것이 좋겠다.”
함께 따라 나온 시어머니가 근심스러운 表情으로 말했다.
男便을 비롯한 壯丁들이 땅을 파고 들어가니 널따란 바위가 나왔다. 그래서 그 바위를 힘껏 젖혔다.
“오 이럴 수가……!”
그곳에는 커다란 항(缸)아리가 하나 있고, 그 속에는 金銀寶石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불씨를 꺼뜨리지 않은 그 집안에 하늘이 福을 내려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39. 식자살장(識者殺丈)
有識한 者가 장인(丈人)을 죽이다. 有識한 체하며 거들먹거리다가 되려 큰일을 당하는 境遇를 이른다. 식자우환(識者憂患)과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
* 韓國諧謔全集에.
忠北 提川 校洞마을에 金 參奉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매우 有識해서 漢文에 關해서는 그를 當할 사람이 없었다.
그는 툭하면 이렇게 말했다.
“쳇, 그까짓 諺文 나부랭이를 글이라고 쓰나?”
“흥, 암글 가지고 내 앞에서 行勢하지 말게나! 나는 眞書를 하는 선비일세.”
그는 自己가 남보다 漢文을 좀 많이 안다는 것을 코에 걸고 툭하면 한글은 女子나 배우는 암글이요, 堰文이요, 常놈 글이고, 漢文은 眞書, 곧 참글이라고 하며 한글을 賤視하였다. 그래서 그는 平素에 自己 생각을 漢文으로 말하고, 漢文으로 썼다. 卽 ‘아침밥을 먹었다’ 라는 말은 (我食朝飯也)! 라고 하고, ‘빨리빨리’ 라는 말은 ‘速去速去’ 라는 式이었다.
어느 날, 난데없이 큰 호랑이가 山에서 내려와 金 參奉의 丈人을 물고 달아나 버렸다. 房 안에서 그 光景을 보고 있던 金 參奉이 뛰어나와 소리쳤다.
“我甚驚 我甚驚이로다.”
“내가 놀랄 일이다. 내가 놀랄 일이다.” 라는 말을 漢文으로 하니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자 그는 빨리 사람들에게 알려서 丈人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다시 소리를 쳤다.
“遠山之虎가 自近來也하여 吾之丈人을 捉去捉去했도다!”
먼 山에서 호랑이가 내려와 나의 丈人을 물어갔다. 그러니 빨리 나와서 얼른 도와달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洞네 사람들은 如前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늘그막에 마느라가 아기를 낳았으니 祝賀해 달라는 것인지, 自己 집에 불이 났으니 꺼달라는 것인지…….
金 參奉은 사람들의 反應이 없자 안타까운 나머지 다시 소리를 질렀다.
“持棒者는 持棒而來하고, 持槍者는 持槍而來하여 速去速去, 吾之丈人 希救出 바라노라.”
이 말 또한 알아들을 사람이 없었다. 맨 끝에 救出하라는 말은 겨우 알겠는데 어디서 누구를 救出하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結局 丈人은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임을 當하고 말았다. 그러자 金 參奉은 혼자 憤怒했다.
“이런 無情하고 괘씸한 사람들 같으니……. 員님에게 일러 혼내 주리라.”
員님이 그의 말만 듣고 그럴 수가 있느냐며 火가 나서 사람들에게 물었다.
“왜, 저 사람의 丈人이 죽게 되었는데도 도와주지 않고 가만히들 있었느냐? 한 洞네에 사는 사람의 道理가 아니지 않느냐?”
그러자 洞네 사람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랬다고 했다. 員님은 金 參奉에게 무엇이라고 소리쳤는지 그대로 復唱을 해보라고 했다. 金 參奉이 그대로 되풀이 했다.
“遠山之虎 (먼山의 호랑이가) 自近來也 (스스로 가까이 와서) 吾之丈人(우리 丈人을) 捉去 (잡아갔다) 持棒者 (몽둥이를 가진 者는) 持棒而來 (몽둥이를 가지고 오고) 持槍者 (槍을 가지고 있는 者는) 持槍而來 (槍을 가지고 와서) 速去速去 (빨리빨리) 希救出(救出해 주기를 바라노라.)”
그러자 員님이 激怒하여 호통을 쳤다.
“이놈, 金 參奉! 그냥 ‘호랑이가 우리 丈人 물어갔소. 어서 와서 救해주시오.’ 그러면 될 것인데, 그리 어렵게 말했단 말이냐?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 員님께서도 그리 無識합니까?”
“이놈! 文字를 쓸 때가 따로 있지, 그 景況에 무슨 文字야? 저 멍청한 줄은 모르고 남까지 바보 만들어? 여봐라! 저 愚眛한 金 參奉을 刑틀에 메고 볼기를 쳐서 다시는 그 따위 文字를 쓰지 못하게 하라!”
金 參奉은 곤장(棍杖)을 맞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야둔야(我也臀也 아. 내궁둥이야) 통야!(痛也 아파라!) 此後不用文字乎(이후로는 文字를 안 쓰겠노라!)”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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