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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時調詩 ***/한국 古時調

소상강 긴 대 베혀 : 김유(金瑬 1571~1648)

by 산산바다 2025.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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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강 긴 대 베혀 : 김유(金瑬 1571~1648)

 

소상강(瀟湘江) 긴 대 베혀 하늘 밋게 뷔를 매야

폐일부운을 다 쓸어 버리고자

시절이 하 수상하니 쓸동말동 하여라

 

[해설 및 감상]

소상강가에서 자란 긴 대나무를 베어다가 빗자루를 만들어 해를 가리는 뜬구름을 쓸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뜬구름은 물론 임금의 총명을 가리는 간신배들을 말한다. 그러나 시절이 하 수상하니 쓸까말까 망설인다는 것이다.

 

[배경]

대북파 이이첨과 정인홍이 권세를 잡고 있었던, 공언할 수 없는 매우 조심스러울 때이다. 자신의 원대한 포부와 열망을 노래하고 있는 시조로 인조 반정을 모의하던 때에 지은 작품으로 생각된다.

 

인조반정은 대북파의 폐모살제로 서인의 힘을 총집결하게 했고 남인이 이에 호응, 이귀, 최명길, 김유, 이괄 등이 군사를 일으켜 광해군을 폐하고 왕의 조카인 인조를 옹립한 사건이다. 인조반정 후 폐모론을 주장했던 대북파 이이첨, 정인홍 등 수십 명을 극형에 처해졌고 나머지는 귀양 또는 축출되었다.

 

[작자의 생애와 활동]

김유(金瑬 1571~1648)는 선조 광해 인조 때의 문신으로 호는 북저이며 본관은 순천으로 송익필의 문인이다.

임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한 순절자 김여물의 아들이다. 26살에 문과에 급제했으며 도체찰제사, 이항복의 종사관, 수찬, 부교리 등을 거쳐 동지사 성절사 등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인목대비 폐모론이 일어나자 바로 낙향했으며 시국을 통탄하다가 이귀와 함께 인조반정을 일으켰다. 정사공신 1, 승편부원군이 되었으며 병조참판을 거쳐 병조판서 겸 대제학이 되었다.

 

반정 주류들 간의 갈등으로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병조판서로서 남행하는 인조를 호가하였으며 난이 평정된 뒤 우찬성을 거쳐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김유(金瑬)는 영의정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힘이 세고 궁마(弓馬)를 잘 다루었으며 풍채가 준수하고 호걸의 기풍이 있었다.

기골이 비범하고 문무를 겸하였으며 성품이 근엄하고 의지가 굳었다. 병자호란 전후 주화와 척화 사이에서 일관되지 못한 입장을 갖기도 했으며 일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듬해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가 죽자 세제인 봉림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할 것을 주장하였다. 소현세자의 빈인 강씨의 옥사가 일어나자 이를 반대하다 사직한 뒤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문집에 북저집이 있다

김유의 아내 진주 유 씨는 조선 후기 열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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