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뒷 뫼히 뭉킨 구룸 : 정훈(鄭勳 1563~1640)
뒷 뫼히 뭉킨 구룸 압 들헤 펴지거다.
바람 불디 비 올지 눈이 올지 서리 올지.
우리는 뜻 모르니 아므랄 줄 모로리라.
뒷 뫼에 뭉친 구름 앞들에 퍼지거다
바람 불지 비 올지 눈이 올지 서리 올지
우리는 하늘 뜻 모르니 아무럴 줄 모르리다
【어구 풀이】
<뒷 뫼히> : 뒷 산에
<펴지거다> : 퍼지었다.
【현대어 풀이】
뒷산에 험하게 일어났던 구름이 앞 들에까지 퍼지었다.
저렇게 구름이 험악하니 장차 바람이 불지, 비가 내릴지, 눈이 올지, 혹은 서리가 올지
우리는 전혀 그 뜻을 알 수 없으니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감상】
이 시조의 작가의 작품은 20수가 전하는데, 이것은 <탄북인작변가(歎北人作變歌)>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제목이 뜻하는 바와 같이 이이첨·정인홍 등 북인들에 의하여 인목대비가 서궁에 갇히고, 영창대군 또한 서인으로 만들어 강화도로 데려갔다가 결국은 참혹하게 죽인 사건을 탄식하여 지은 것이다.
‘뭉킨 구름’은 북인들을 비유한 것이고, 중장과 종장은 폐모살제(廢母殺弟)의 사건으로 미루어 보아 장차 또 어떤 변이 생길지 모름을 뜻한다. 결국 이 시조는 광해군을 앞세우고 전횡하는 북인들의 행위에 대한 비분강개를 나타낸 것이다.
[작자]
정훈(鄭勳 1563~1640) : 조선시대 『수남방옹유고』를 저술한 시인.
자는 방로(邦老), 호는 수남방옹(水南放翁). 경주 계림인으로 고려 때 대제학을 지낸 정현영(鄭玄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효성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능참봉 정금암(鄭金嚴)이고 어머니는 옥천(玉川) 조영(趙瑛)의 딸이다.
전형적 양반 집안에 태어났으나 관직에 나간 바 없이 남원 동문 밖에서 초야에 묻혀 살면서 77세의 일생을 보냈다.
[생애 및 활동사항]
불의를 보지 못하고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의식은 그의 가사작품 「성주중흥가(聖主中興歌)」와 시조작품 일부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계해반정후계공신가(癸亥反正後戒功臣歌)」·「탄오성한음완평찬적가(歎鰲城漢陰完平竄謫歌)」·「탄강도함몰대가출성가(歎江都陷沒大駕出城歌)」·「탄북인작변가(歎北人作變歌)」·「민여임청백찬가(閔汝任淸白讚歌)」 등도 모두 다 그런 의식을 표현한 시조작품이다.
한편,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대신 생활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찾아다니며 그 심회를 시가로 표현하기도 했다. 「수남방옹가(水南放翁歌)」·「용추유영가(龍湫遊詠歌)」 등의 가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일상생활상을 작품화한 시가로는 「탄궁가(嘆窮歌)」·「우활가(迂濶歌)」 등의 가사작품과 「자경(自警)」·「기우인(寄友人)」·「곡처(哭妻)」 등의 시조가 있다.
그의 시가작품은 시어 선택과 배치 면에서 독창적이다. 더불어 섬세한 예술적 관찰력과 대담한 의식 노출은 개성 있는 시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시가작품의 군데군데에 보이는 고발 부분들은 당시 여타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글작품으로 가사 5편과 시조 20편이 있고, 한시문도 30여 편이 있다. 문집으로 『수남방옹유고(水南放翁遺稿)』가 전한다.
[정훈(鄭勳 1563~1640)의 다른 시조 감상]
【시조】自警-정훈
낙락(落落) 천장송(千長松)이 공곡(空谷)에 빼어나니
길고 곧은 양은 동량(棟樑)에 맞다마는
장석(匠石)이 본 양을 아니 하니 절로 늙어 말까 하노라.
【시조】自警-정훈
닭이 뉘게 배워 부디 새벽에 우는 게고.
무지미물(無知微物)도 제 할 일 다 하거든
어찌타 유식(有識)한 사람이고 제 할 일을 모르는고.
【시조】寄友人-정훈
인간(人間)에 사람이 한들 오륜(五倫) 알 리 그 몇이리.
반룡부봉(攀龍附鳳)하여 원복린(願卜隣) 하건마는
백년(百年)이 하 쉬이 가니 될동말동하여라.
【시조】歎老-정훈
죽기와 늙는 일이 그 무엇이 더 설우니
병(病) 들어 죽기는 설운 줄 모르려니와
알고서 못 금(禁)하는 백발(白髮)을 그야 설워하노라.
【시조】哭妻- 정훈
조강(糟糠) 삼십년(三十年)에 즐거운 일 없건마는
불평(不平) 사색(辭色)을 날 아니 뵈었더니
머리 해 늙은 날 버리고 혼자 가려 하시는고.
아내의 죽음을 당하여 겉으로는 양반의 체통 때문에 담담한 어조를 띠고 있지만 삼십년 조강지처를 잃는 깊은 슬픔이 담겨 있다.
【시조】歎北人作變歌 -정훈
뒷 뫼에 뭉친 구름 앞들에 펴지거다.
바람 불지 비 올지 눈이 올지 서리 올지.
우리는 하늘 뜻 모르니 아무럴 줄 모르리다.
제목은 ‘북인이 정변을 일으킨 것을 탄식하는 노래[歎北人作變歌]’다. 광해군 5년(1613)에 계축옥사가 일어났는데, 아마 그 때의 심경을 읊은 것이라 생각한다.
【시조】歎鰲城漢陰完平竄謫歌 -정훈
집을 지으려고 재목(材木)을 구(求)하나니
천생(天生) 곧은 남글 어이 하여 버렸는고.
두어라 동량(棟樑)을 삼으면 기울 줄이 있으랴.
‘이항복, 이덕형, 이원익이 귀양간 것을 탄식하는 노래[歎鰲城漢陰完平竄謫歌]’다. 이덕형은 폐모론을 반대하고 영창대군을 보호하려다가 탄핵을 받아 양근으로 물러나 병으로 죽었고, 이항복은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북청에 유배되어 죽었으며, 이원익은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홍천에 유배되었다. 조정을 받치고 있던 대신들이 물러나거나 유배된 것을 탄식한 것이다.
【시조】癸亥反正後戒功臣歌 -정훈
전조(前朝) 모은 은(銀)을 공신(功臣)아 다 썼는가.
더러 명경(明鏡)을 지어 대궐(大闕) 모에 걸어 두고
은감(殷鑑) 멀지 않은 줄을 비췬들 어떠하리.
‘계해년 인조반정 후에 공신을 경계하는 노래[癸亥反正後戒功臣歌]’다. 김류(金瑬), 이귀(李貴) 등 인조반정의 공신들이 전조에서 모아둔 국고의 은을 다 썼느냐고 묻고, 거울을 대궐 모퉁이에 걸어놓고, 은(殷)나라는 하(夏)나라가 멸망한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했듯이, 반정공신은 광해군의 실정을 거울삼아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다.
【시조】歎江都陷沒大駕出城歌 -정훈
이 몸이 젊었을 제 저 되놈 나고라쟈
곤륜산(崑崙山) 이어 밟아 씨 없이 벨 것을
일장검(一長劒) 갈아 쥔 마음이 가고 아니 오노매라.
‘강화도가 함락되고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항복한 것을 탄식한 노래[歎江都陷沒大駕出城歌]’다. 그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아들을 시켜 의병을 모아 출정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강화도는 이미 함락되었고 임금은 남한산성에 포위되었다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울분을 시조로 표현한 것이다.
【시조】閔汝任淸白讚歌 -정훈
추양(秋陽)으로 쬐었던가, 강한(江漢)으로 씻었던가.
수양(首陽) 기혼(飢魂)이 다시 되어 나왔던가.
청풍(淸風)이 부러 옌 후니 간 곳 몰라 하노라.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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