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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時調詩 ***/한국 古時調

풍파에 놀란 사공 : 장만(張晩 1566~1629)

by 산산바다 2025.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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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파에 놀란 사공 : 장만(張晩 1566~1629)

 

풍파(風波)에 놀란 사공(沙工)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九折羊腸)이 물도곤 어려왜라.

이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 갈기나 하리라.

 

전문 풀이

사납기만 한 풍파에 놀란 뱃사공이 배를 팔아 말을 사니,

꼬불꼬불한 산길을 말 몰아 오르고 내리는 것이 물길보다 더 어렵구나.

이후에는 배도 그만두고 말도 그만두고 밭 갈기만 지으리라.

 

어휘 풀이

<풍파(風波)> : 바람과 물결.

<구절양장(九折羊腸)> : 이리저리 틀어진 양의 창자. 굽이굽이 틀어진 양()의 창자처럼 험준한 산길.

<물도곤> : 물보다.

<어려왜라> : 어렵구나.

 

[풀이]

바다에서 풍파를 겪고 몹시 놀란 사공이, ‘다시는 배를 아니 타겠다고 배를 팔아서 말을사서 부렸더니, 구절양장(九折羊腸) 같이 꼬불꼬불한 산길이 물 보다도 가기가 더 어렵구나. 다음 부터는 배도 말도 다 그만 두고 농사 짓기에만 골몰해야 하겠다.

 

[지은이]

장만(張晩: 1566~1629): 본관(本貫)은 인동(仁同). ()는 호고(好古), 호는 낙서(洛西). 아버지는 군수 기정(麒禎)이다. 1591(선조24)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승문원의 벼슬을 거쳐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이후 전생서주부를 지내고, 형조좌랑·예조좌랑·정언·지평등을 역임했다. 1599년 봉산군수가 되었는데 이때 왕래하던 명나라 군사를 잘다스린 공로로 동부승지에 임명되었다.

 

1601년 도승지가 되고, 이듬해 왕후의 고명주청부사(誥命奏請副使)2차례 명나라에 다녀왔다. 1607년 함경도관찰사로 나가 후금(後金) 누르하치(奴爾哈齊)의 침입을 경고하고, 방어책을 세우도록 상소했다. 1610(광해군2) 다시 함경도관찰사가 되었고, 동지중추부사로 호지(胡地)의 산천지도(山川地圖)를 그려 바쳤다. 이듬 해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호조참판·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1619년 체찰부사(體察副使)가 되어 찬획사(贊畫使)이시발(李時發)과 함께 후금에 대한 대비책을 협의했다. 그후 형조판서를 거쳐 1622년 병조판서로 재임할 때, 대북(大北) 정권의 비정(秕政)을 힐책 하다가 광해군의 분노를 사게 되어 병을 핑계로 통진(通津)에 은거했다. 이듬해 인조반정 후 다시 팔도 도원수로 뽑혀 원수부를 평양에 두고 후금의 침입에 대비했다. 1624(인조2)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키자, 각지의 관군과 의병을 모아 난을 진압했다. 이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1등에 책록되고 옥성부원군(玉城府院君)에 봉해 졌다. 1627년의 정묘호란 때 병조판서로 도원수가 되었지만 적을 막지 못해 관작을 삭탈당하고 부여에 유배되었으나, 앞서 세운 공로로 복관되었다. 저서로는 <낙서집>이 있다. 영의정에 추증 되었으며 통진의 향사(鄕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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