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달 밝은 오례성에 : 박계현(朴啓賢 1524~1580)
달 밝은 오례성(五禮城)에 혀 남은 벗이 앉아
고향(故鄕) 감루(感淚)를 뉘 아니 지리마는
아마도 위국단침(爲國丹沈)은 나뿐인가 하노라.
【어구 풀이】
<오례성(五禮城)> : 성(城)의 이름. 소재 미상. 오리성(五理城)이라고 한 곳도 있다.
<혀남은> : 몇몇의
<고향 감루(故鄕感淚)> : 고향이 그리워 느껴 운 눈물. 고향을 그리며 눈물겨워하는 마음
<지랴마는> : (눈물을) 흘릴까마는. 덜어지랴마는, 빠져들랴마는
<위국단침(爲國丹沈)> : 나라를 위한 충성된 마음. 나라를 위하는 피 끓는 정성
【현대어 풀이】
밝은 달빛이 훤하게 비치는 오례성 수루(戍樓)에 몇몇 동지들이 둘러앉아 있자니
고향을 생각하여 눈물겨워 하는 마음에 어느 한 사람인들 빠져들지 않으랴마는
아무래도 나라의 편안함을 바라는 피 끓는 정성에 불탐은 나만인 듯하구나!
【작자】
* 박계현(朴啓賢 1524~1580) : 조선의 문신. 본관은 밀양. 진사를 거쳐 식년 문과에 급제. 벼슬이 병조판서. 지중추부사(정2품)에 이르렀음.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군옥(君沃), 호는 관원(灌園). 박광영(朴光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조(朴藻)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박충원(朴忠元)이며, 어머니는 이인수(李獜壽)의 딸이다. 조성(趙晟) 형제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43년(중종 38) 진사가 되고, 1552년(명종 7)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권지정자(承文院權知正字)에 보임되었고 곧 예문관검열과 정자 등을 역임하였다. 1555년 사가독서(賜暇讀書)에 선발되었고, 곧 부수찬을 지냈다.
그해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경상도평사(慶尙道評事)가 되어 유장(儒將)을 기르는 책임을 맡았다. 이어 수찬을 거쳐 병조와 이조의 좌랑을 지내고, 1556년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동지사(冬至使)를 따라 명나라에 다녀왔다.
1558년 이조정랑을 거쳐 홍문관부교리 · 의정부검상 · 사인 등을 역임하고, 사헌부장령 · 교서관교리를 겸하였다. 그 뒤 성균관직강을 지내고 승문원참교가 되었다. 1559년 장단부사(長湍府使)가 되어 치적이 많았다.
이조정랑으로 있을 때 현사(賢士)로 인정되는 사람만 기용하고 척신(戚臣)들의 추천은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권신(權臣) 윤원형(尹元衡)이 박계현을 포섭하고자 혼인을 청했으나 거절당하자, 1560년 만포진 병마첨절제사(滿浦鎭兵馬僉節制使)로 임명하여 변방으로 내몰았다. 1563년 사간원대사간에 올랐다가 성균관대사성으로 옮겼고, 이어 예조 · 형조 · 병조의 참의를 두루 역임하였다.
1565년 도승지, 시약청제조(侍藥廳提調)를 거쳐 한성좌윤이 되었다가 대사헌이 되었다. 겨울에 하성절사(賀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곧이어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1567년 경상도관찰사로 나가 권벌(權橃) · 이언적(李彦迪) 등의 신원을 계청했고, 이듬해 호조참판 등을 지냈다.
1573년(선조 6) 예조참판을, 1575년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1577년 지중추부사와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당시 동인 · 서인의 당쟁이 심해지자 이를 걱정해 제지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편서로는 『밀산세고(密山世稿)』가 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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