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뫼는 높으나 높고 : 허강(許橿 1520~1592)
뫼는 높으나 높고 물은 기나 길다
높은 뫼 긴 물에 갈 길도 그지 없다.
님 그려 젖은 소매는 어느 적에 마를꼬
송호유고(松湖遺稿) 중 <제1수>
【현대어 풀이】
산은 높디높고 강물은 길고 길다.
높은 산 긴 물에 갈 길은 끝이 없다.
임이 그리워서 눈물로 젖은 소매는 언제 마를 것인가?
【감상】
강호를 벗 삼아 산수를 즐기던 지은이의 생활로 미루어 있을 만한 노래라 하겠다. 이런 생활에는 때로 고독이 따르는 것이니, 그 감정이 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현되는 일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작자】
허강(許橿 1520~1592) : 좌찬성(左贊成) 자(磁)의 아들로,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즐겼고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아버지가 이기(李芑)의 전자(專恣)를 척언(斥言)한 탓으로 평북 홍원(洪原)에 귀양갔다. 영달(榮達)을 마음에 두지 않았고, 강호에 노닐며 부름을 듣지 않고 1592년 임진왜란 때 토산(兎山)으로 난을 피하다 죽었다.
* 허강許橿(1520~1592) 조선 중기의 학자 字는 사아(士牙). 호는 송호(松湖)ㆍ강호거사(江湖居士). 을사사화 때 아버지 허자(許磁)가 죽자 벼슬을 단념하고 방랑 생활을 하면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아버지가 편찬하던 ≪역대사감(歷代史鑑)≫ 30권을 완성하였으며, 저서에 ≪송호유고(松湖遺稿)≫가 있다. 미수허목의 조부이다.
『송호유고(松湖遺稿)』 6수 : 허강(許橿 1520~1592)
<제1수>
뫼는 높으나 높고 물은 기나 길다
높은 뫼 긴 물에 갈 길도 그지 없다
님 그려 젖은 소매는 어느 적에 마를꼬
명종 5년, 아버지가 권신 이기와 대립하다 심복 진복창의 탄핵으로 평안북도 홍원으로 유배되었을 때 아버지를 따라가면서 지은 시조이다. 먼 북방으로 귀양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자식이 대신해 표현한 유배 시조이다.
산과 물이 높고 길다는 말은 쌓인 한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다. 임금이나 권신을 대놓고 원망할 수 없어 한을 품고 유배를 가고 있으니 높은 뫼 긴 물에 갈 길이 그지없다고 말한 것이다. 임금을 그려 젖는 소매가 마를 날이 없다는 ‘충신연주지사’의 노래이다.
<제2수>
서호 눈 진 밤에 달빛이 낮 같은 제
학창을 니믜차고 강고로 내려가니
봉해에 우의선인을 마주 본 듯 하여라
예전에는 서울 근처에 나루가 다섯 군데가 있었다. 한강, 용산, 마포, 현호, 서강나루이다. 위 시조는 서강, 서호에 대한 시조이다.
초장은 서호의 눈 내린 밝은 달밤을 표현하였다.
중장은 학창의를 여미어 입고 강가 언덕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눈 내린 하얀 대지와 자신이 입은 학창의의 검은색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종장은 삼신산의 하나인 봉래산에서 신선을 마주 본듯 하다고 하였다.
‘학창’은 ‘가를 검은 천으로 두른 창의’를 말하다. ‘창의’는 학의 털로 만든 웃옷을 뜻하고 ‘봉해’는 ‘봉래산’을 뜻한다. '우의선인‘은 ’깃옷을 입은 신선‘을 말한다.
자연 속에서 학처럼 살아가는 자신의 생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성품이 그만큼 고결하고 깨끗했다.
<제3수>
난하 서릿달 孤竹村 눈 진 길에
萬里를 돌아드니 帝鄕이 거의로다
天涯에 외로운 꿈은 절로 돌아 가나다
<제4수>
鳳凰城 돌아들어 故鄕이 어드메오
八渡河 가에 갈잎에 자리 보아
三更에 겨우 든 잠을 여울 소리에 깨과라
봉황성 돌아들어 고향이 어드메오
팔도하 가에 갈잎에 자리 보아
삼경에 겨우 든 잠을 여울 소리에 깨과라
<제5수>
父母 生我하시니 續莫大焉이거니
撻之流血인들 疾怨을 차마 할까
生我ㅎ고 鞠我하신 恩惠를 못 갚을까 하노라
부모 생아하시니 속막대언이거니
달지유혈인들 질원을 차마 할까
생아하고 국아하신 은혜를 못 갚을까 하노라
<제6수>
西湖 十里 들에 해 다 저문 날에
먼 데를 멀다 아녀 오실사 님아 님아
반기노라 반기노라하니 사뢸 말이 없어라
서호 십리 들에 해 다 저문 날에
먼 데를 멀다 아녀 오실 사 님아 님아
반기노라 반기노라하니 사뢸 말이 없어라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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