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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사성어(韓國 故事成語) (ㅇ-2)

by 산산바다 2026. 2. 23.

산과바다

 고사성어(故事成語) 글 목록

 

 

 한국 고사성어(韓國 故事成語) (-2)

 

 

11. 어이아이(於異阿異)

다르고 다르다. 하나 차이에 의해 소리가 달라지듯이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같은 뜻의 말이라도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을 이른다.

 

* 韓國人智慧, 太平閒話.

朴相吉이라는 푸줏간 主人에게 金善基朴太煥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다. 먼저 金善基가 말했다.

! 相吉, 고기 한 썰어라.”

,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對答 소리에는 어디인지 모르게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러나 朴太煥相對賤民이지만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기에 높여서 말했다.

朴書房, 여기 고기 한 주시게.”

, 알겠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쓱싹 썰어 주었다. 먼저 고기를 받아 든 金善基가 보니까 自己 것이 朴太煥의 것보다 折半도 안 되는지라 가 나서 물었다.

이놈아, 같은 한 인데 어찌 내 것은 이리 적으냐?”

그러자 푸줏간 主人이 볼멘소리로 쏘아붙였다.

손님 고기는 相吉이가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 朴 書房이 잘랐기 때문이죠. 世上에 하고많은 말이지만 그 나이가 되시도록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도 못 들어 보셨습니까?”

於異阿異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을 에 맞추어 漢譯한 것이다.

 

 

12. 여민동락(與民同樂)

百姓苦樂을 같이 한다는 말. 임금이 百姓을 사랑하고, 臣下忠誠으로 나라를 받들어 혼연일체(渾然一體) 한다는 뜻이다.

 

* 三國史記 券42.

三國時代 高句麗, 新羅, 百濟 三國이 서로 먼저 漢江流域을 점령하여 統一의 터전으로 삼으려 했다.

그래서 475에는 高句麗20代 長壽王南下政策을 펴 점령했고, 553에는 新羅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高句麗百濟同盟하여 新羅를 견제(牽制)함으로써 新羅는 고립되었다.

이에 新羅나라와 제휴를 모색하자 나라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韓半島를 병탄하려는 야욕을 품고 .唐 聯合軍을 결성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라에서는 적당히 관여하다가 때가 오면 실리를 차지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쉬고 있다가 상대가 지치면 맞아 싸운다는 兵法 이일대로(以逸待勞)計略으로 접근했던것이다. 때문에 兵力武器를 일부만 가져오고 軍糧被服新羅負擔하게 했다. 따라서 新羅負擔二重 三重으로 加重되었다. 그 후 나라는 百濟高句麗平定하게 되자 노골적으로 흉계를 드러내 百濟 땅에는 오도독부(五都督府)를 두고, 高句麗 땅에는 九都督府를 두어 병탄정책(倂呑政策)을 노골화했다. 나라의 이러한 행위는 背信行爲임에 분명 했고, .唐 聯合協定을 크게 위반한 것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나라는 百濟泗泌城에 거점을 만들고 新羅를 침범하려는 음모까지 꾸미자 新羅에서는 이를 알고 대책 회의를 열었다. 多美公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우리 新羅의 백성을 百濟 사람으로 위장시켜 반란을 꾀하려는 것처럼 하면 나라 軍士들이 이를 제압하려 나올 것입니다. 그때 맞서 싸운다면 成功할 수 있습니다.”

金庾信도 이에 積極的으로 贊成했다. 그러자 이 말했다.

唐軍은 우리를 위하여 百濟軍을 격멸시켰는데 이제 와서 그들과 싸운다면 하늘이 우리를 돕겠는가?”

이에 金庾信이 나서서 말했다.

개도 主人이 제 다리를 밟으면 무는 입니다. 하물며 나라의 存立頃刻에 달렸는데 어찌 自救策講究하지 않으오리까? 바라옵건대 이를 許諾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新羅는 국방을 튼튼하게 재정비했다.

한편, 나라 장수 蘇定方新羅의 방비가 튼튼 해지자 百濟官吏 93명과 軍士 2만 명을 사로잡아 돌아가니, 唐 高宗이 말했다.

어찌하여 新羅征伐하지 아니했는가?”

蘇定方이 말했다.

新羅는 그 이 어질어 百姓을 사랑하고, 臣下忠誠으로써 나라를 받들고 있었으며,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을 父兄과 같이 섬기므로 征伐하기가 어려웠나이다.”

라고 아뢰었다.

 

 

13. 여시여시(汝是汝是)

너의 말이 옳고, 너의 말도 옳다. 사람의 일은 두루두루 따지면 모두 나름대로의 妥當性이 있다는 뜻이다.

 

* 韓國人物誌

황희(黃喜 1363~1452)高麗 末에서 朝鮮 初期 때 사람으로 本貫長水이고, 는 방촌(庬村)이다. 그는 각 부서의 首長을 거쳐 領議政18년간이나 역임하면서 많은 制度改善名宰相이었다.

그는 高麗가 망하자 杜門洞에 들어가 隱居했으나 太祖의 간청(懇請)으로 1394年 成均館 學官文藝春秋官, 京畿 都事를 맡아보았다.

領議政이 되어서는 禮法改正하여 천첩 소생의 천역을 면제하는 등 훌륭한 業績을 많이 남겼다.

그는 평소 威嚴이 있으면서도 人品圓滿하고 淸廉했다. 부리부리한 눈에 날카로운 눈썹, 그리고 수염이 잘 어울렸다. 마음이 너그러워 집에서 일하는 하인들도 百姓이니 사람으로서의 待遇를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얽힌 逸話가 있다.

어느 날 그가 편지를 한 통 써 두었는데 하인의 아이가 그 위에다 오줌을 누워버렸다. 그러나 그는 화를 내지 않고, 不問에 부쳤다. 또 한 번은 그가 술을 마시고 있는데 어린 下人 아이가 흙 묻은 맨발로 들어와 술안주를 맨손으로 집어 먹다가 그의 발을 밟았다.

여늬 사람 같으면 불호령이 떨어질 만하건만 화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女子 下人들이 서로 싸우다가 한 사람이 찾아와서 相對方이 이러이러하게 잘못을 하고도 덤빈다고 하소연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그가 말했다.

그래, 네가 옳다.”

그러자 이번에는 같이 싸웠던 下人이 달려와서 自己가 옳다고 主張했다. 이에 黃喜가 말했다.

그렇다면 너도 옳다.”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그런 判決이 어디 있습니까? 너는 그러하고 너는 이러하니 네가 옳고 네가 잘못 했다라고 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黃喜가 말했다.

當身 말도 옳소.”

그는 每事汝是汝是一貫하니 主觀分明치 않은 것처럼 느끼지만 이는 그의 생각이 너그럽고, 人格圓滿하기 때문에 可能한 일이었다.

 

 

14. 연고위하(年高位下)

나이는 더 많으나 職位가 아래다.

 

* 高麗史.

高麗 末 文人 安宗源(1325~1394. 本貫 順興. 字 嗣淸. 號 雙淸堂. 諡號 文簡公)科擧及第하여 충목왕(忠穆王) 史翰任命 되었다가 任期가 차 昇進하여 轉補 할 즈음 同僚 沈東老가 나이도 많은데 職位가 낮아 그 자리를 讓步하였다. 그의 父親 安軸이 이 消息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讓步最高로 남을 配慮하고 讓步 할 줄 안다면 누가 너를 저버리겠는가? 將次 家門이 크게 昌盛 할 것이다."

周圍信望이 두터워 더욱 隆盛하였다.

 

 

15. 연함응안(鷰頷鷹眼)

제비의 턱과 매의 눈이란 말로, 將次 人物이 될 非凡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高句麗의 혜량법사(惠諒法師)新羅 거칠부(居柒夫)의 처음 印象을 보고 將次 將軍이 될 人物임을 알아본 데서 由來되었다.

 

* 三國史記 <列傳 44券 居柒夫>

新羅時代 大阿湌 거칠부(居柒夫 - 荒宗 이라고도 함)는 내물왕(奈勿王)5代 孫으로 金氏이며, 할아버지는 角干 仍宿이며, 아버지는 伊湌 物力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遠大한 뜻이 있어 스님이 되어 高句麗로 들어갔다. 그리고 法師 혜량(惠諒)에게로 가서 法經 講論을 들었다.

그를 본 惠諒法師가 물었다.

사미(沙彌)는 어디에서 왔느냐?”

, 新羅에서 왔습니다.”

容貌를 보니 凡常치 않구나, 或是 다른 뜻이 있는 것 아니냐?”

아니옵니다. 저는 新羅邊方에서 出生하였으므로 아직 佛敎眞理를 듣지 못했습니다. 스승님께 참된 道理를 배우고자 이렇게 온 것이오니 拒絶하지 마시고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십시오.”

나는 사람을 많이 보아왔다. 오늘 너를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다. 이 나라가 작다고는 하지만 그대의 能力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거기다가 네가 新羅에서 온 것을 알면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物議를 일으키지 말고 어서 돌아가거라.”

이 말을 듣고 거칠부(居柒夫)가 돌아가려고 하자 法師가 다시 말을 덧붙였다.

너의 印象이 제비턱(鷰頷)에 매의 눈(鷹眼)이라, 將來에 반드시 將帥가 될 것이다. 將次 軍士를 거느리고 高句麗로 쳐들어오게 되면 그때 나를 해치지 말아라.”

, 萬一 스님의 말씀대로 된다면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新羅로 돌아와 眞興王 6, 545王命을 받들어 國史를 편찬(編纂)했으며, 功勞로 파진찬(波珍湌)으로 昇進했다. 眞興王 12, 은 거칠부(居柒夫) 및 대각찬(大角湌), 구진(仇珍), 각찬(角粲), 비태(比台), 잡찬(迊湌), 탐지(耽知) 등 여덟 將軍에게 하여 百濟聯合하여 高句麗侵攻하게 했다.

그리하여 百濟軍士가 먼저 平壤進入하자 居柒夫竹領 高峴 안의 10을 빼앗았다. 그때 惠諒法師와 길 위에서 맞닥뜨리게 되었다. 居柒夫卽刻 말에서 내려 軍禮로써 깎듯이 절하고 그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옛날 留學하던 때 法師恩惠를 입어 生命保全했는데 오늘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무엇으로 報答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法師가 말했다.

只今 우리나라가 어지러워 滅亡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으니 나는 그대의 나라로 가서 살기를 한다.”

그리하여 居柒夫惠諒法師를 모시고 돌아와 에게 事實을 아뢰니, 은 그를 僧統으로 삼아 百座講會佛敎儀式八關會開催하게 했다.

居柒夫眞智王 元年(576)上大等이 되어 나라의 重要軍事, 政治 任務遂行하다가 78別世했다.

 

 

16. 열기지용(裂起之勇)

열기(裂起)勇氣라는 말로, 남들이 어려워 忌避하는 일을 自願해서 용기 있게 해내는 것을 意味한다.

 

* 三國史記 列傳 第7.

裂起新羅 第30代 文武王 (在位661~681) 때의 武官이었다.

文武王 元年, 나라의 蘇定方高句麗 征伐에 나서 平壤包圍했다. 그러나 軍糧이 떨어지자 含資道 摠官 劉德敏을 시켜 新羅國王에게 支援要請했다.

이에 文武王大角干 金庾信에게 해 쌀 4석과 벼 22250석을 輸送하게 했다. 行列獐塞(遂安)當到했는데, 눈바람이 휘날리고 날씨가 몹씨 추워 말과 兵士들이 많이 얼어 죽는 바람에 調達되지 못했다. 그러자 이를 안 高句麗 軍士들이 길목을 막고 攻擊해왔다. 唐慌金庾信은 멀리 떨어진 나라 指揮官에게 書札을 보내려 했으나 距離가 멀어 到底히 보낼 수가 없었다. 이때 步騎監으로 있던 裂起가 나서며 말했다.

將軍! 제가 直接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軍師 仇近 等 軍士 15과 함께 말을 달리니, 高句麗 軍士들이 그 勇猛에 놀라 히 막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이틀 만에 蘇定方에게 傳達하니, 蘇定方은 크게 기뻐하며 答狀을 써주었다. 裂起가 다시 이틀 만에 돌아오니, 庾信은 그의 勇猛嘉尙히 여겨 에게 上申했다.

裂起仇近天下勇士입니다. 臨時級湌 位를 주었으나 功勞에 맞지 않으니, 沙湌으로 를 높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이 말했다.

沙湌이면 좀 하지 않은가?”

이에 庾信은 두 절하며 말했다.

벼슬과 祿俸이 있는 에게 주는 것이 當然하온데 어찌 하다 하십니까?”

그제야 欣快許諾했다.

 

 

17. 예성강곡(禮成江曲)

禮成江의 노래라는 말로, 나라 장사꾼에게 속아 아내를 빼앗기게 되자 夫婦離別을 하며 불렀던 슬픈 노래를 말한다.

 

* 增補文獻備考.

高麗는 거란(계단-契丹)1, 2, 3에 걸친 侵犯으로 便安한 날이 없었다. 1018, 契丹의 소배압(蕭排押)10大軍을 이끌고 와서 朝貢을 바칠 것을 要求했다. 高麗가 이를 拒絶하고 國交斷絶하자 武力으로 侵犯해 왔다. 그러자 강감찬(姜邯贊)上元帥가 되어 20軍士興化鎭에서 接戰하여 크게 무찔렀다.

*‘계단(契丹)’은 한자 (맺을 계(붉을 단)’의 훈음이 나라이름 글(글단)’로 쓰여 글단(글안)’으로 읽히고, 여기서 거란으로 한글화되었다는 설명이 제시된다.

 

이에 朝廷에서는 祝賀宴으로 燃燈會를 열었다. 그리고 11에는 30만에 八關會를 다시 가졌다. 八關會는 시조묘(始祖廟)祭祀를 모시는 風俗으로 술과 다과(茶菓)를 베풀며 歌舞 等으로 天神慰勞하고 國家王室太平祈願하는 行事였다.

그 무렵 高麗나라와 國交를 맺고 있었으나 거란(契丹)干涉나라와 交流를 할 때에는 거란(契丹)의 눈을 하여 明州船路하였다.

明州船路禮成港 碧瀾渡에서 出港하여 黃海 沿岸을 거쳐 全羅道黑山島를 지나 다시 西南쪽 큰 바다로 빠져 나가는 港路였다.

高麗貿易王族貴族들이 하는 官營貿易一般 장사치들의 私貿易으로 나뉘었다. 高麗나라 사이에는 使臣이 오가는 배와, 장사치들의 商船往來가 끊임없었다. 그리고 나라를 비롯하여 거란(契丹), 女眞, 日本 等外國 장사치들이 利用하는 禮成江 河口에는 客館茶館, 妓樓, 술집 이 즐비(櫛比)하게 있었다.

여기에 나라 장사치에게 속아서 마누라를 빼앗길 뻔한 한 사내의 이야기가 해지고 있다.

禮成江 河口에 한 젊은 夫婦琴瑟 좋게 살았다. 男便은 뱃사람이었고, 아내는 港口에 드나드는 뱃사람과 장사치를 相對飮食을 팔았다. 그런데 그 夫人의 음식솜씨가 뛰어난데다가 보기 드문 美人이었다.

하루는 나라에서 온 賀頭綱이란 장사치가 高麗 장사치들과 함께 찾아왔다가 그 夫人을 보고는 美貌에 단박에 반해버렸다. 그래서 그는 배에 싣고 온 物品들을 팔고 高麗物建으로 바꿔 실을 때까지 그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賀頭綱은 배에 있는 時間은 밤에 잘 때뿐이고, 하루의 大部分을 밥집에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날, 賀頭綱夫人에게 말했다.

내가 여러 날 이곳에 와 있었는데 主人 아저씨를 좀 만나고 싶소이다.”

그리하여 主人과 마주 앉은 賀頭綱이 말했다.

主人丈! 오늘은 비도 오고 심심한데 바둑이나 한 둡시다.”

잘 둘 줄 모르는데요.”

主人이 한 발 뒤로 빼자 賀頭綱이 말했다.

나두 뭐 로 잘 두지는 못합니다.”

賀頭綱이 몇 을 놓아보니 主人의 바둑 實力自己보다 한 아래로 보였다. 그러나 賀頭綱은 일부러 져주기도 하고 適當히 이기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말했다.

主人丈! 바둑을 잘 두시는군요? 그런데 그냥 두는 것은 심심하니 우리 내기바둑을 둡시다.”

무엇을 걸구요?”

緋緞을 겁시다.”

이렇게 하여 내기 바둑을 두었는데 두는 대로 賀頭綱이 져서 배에 있던 緋緞이 몽땅 밥집에 쌓이게 되었다.

, 큰일 났네. 主人丈! 난 이젠 緋緞이 한 필도 없는데 뭘 걸었으면 좋겠소?”

배가 있지 않소? 배를 거시구려.”

그렇지만 主人丈이 가진 緋緞의 몇 곱절을 줘도 내 배를 살 수 없는 건데…….”

그러면 내 집과 緋緞을 함께 걸리다. 그래도 안 되겠소?”

賀頭綱은 고개를 左右로 저었다.

그것으로는 모자라고, 걸만한 게 꼭 하나 있기는 하오만…….”

그게 뭐요?”

나는 緋緞을 다 주고, 이제 한 척 남은 배마져 걸었으니 主人丈夫人을 거시오, 내가 지면 나는 빈 몸으로 나라로 돌아가고, 當身이 지면 내가 主人丈夫人을 데리고 가겠소, 어떻소?“

主人暫時 생각해 보았다.

지면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기게 되겠지만 이기기만 하면 큰 배의 船主가 되어 내기에서 딴 緋緞을 가지고 貿易을 하면 임금님 부럽지 않은 큰 富者가 될 것이 아니겠는가?’

慾心에 눈이 먼 主人은 호기롭게 말했다.

좋소! 내가 지면 主人丈 배의 砂工 노릇이라도 하겠으니 좀 써주시구려.”

이렇게 하여 드디어 내기 바둑이 벌어졌다. 그러나 바둑은 賀頭綱勝利로 끝나고 말았다.

主人丈! 오래간만에 내가 이겼소. 이번 밀물에 배가 떠야 되니까 約束대로 夫人을 불러 주시오.”

그제야 精神이 번쩍 든 밥집 主人은 눈앞이 깜깜했다.

'아뿔사! 내가 속았구나! 이놈이 내 아내를 빼앗아 가려고 일부러 져준 게 틀림없어, 바보! 내가 바보지, 結局 緋緞을 받고 사랑하는 아내를 판 꼴이잖아!'

아름다운 아내와 結婚後 只今까지 싸움 한 번 안 하고 살아왔는데 그런 아내를, 그것도 外國 사람의 집으로 바다를 건너 멀리 보내게 된 것이 眞正 슬펐다.

緋緞을 도로 가져가고 없었던 일로 하자고 눈물로 事情하였으나 賀頭綱은 듣지 않았다.

무슨 소리요? 어서 夫人을 불러 주시오. 밀물 時間이 얼마 남지 않았소.”

主人이 할 수 없이 아내를 데리고 나오자 賀頭綱이 말했다.

夫人! 이것도 因緣인가 보오. 나라는 매우 豪華스러운 곳이오. 이 좁은 漁村에서 苦生을 하며 사는 것보다는 나와 함께 나라로 가서 幸福하게 삽시다.”

夫人屠殺場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음에 내키지 않는 발길을 옮겨 배에 올랐다.

밥집 主人은 미친 듯이 따라가며 소리쳤다.

이 도둑놈아! 緋緞을 도로 가져가고 내 아내를 돌려다오.”

그러나 한 번 떠나간 배가 다시 뱃머리를 돌릴 리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긴 밥집 主人水平線 너머로 가물가물 사라지는 배를 바라보며 목메어 禮成江曲을 불렸다.

 

내가 物慾에 눈이 어두워 當身을 팔았소.

사랑하는 아내여, 이제 가면 언제 올 거요?

목메어 울어봐도 임이 탄 배는 아니 오고

禮成江 벽란도(碧瀾渡)엔 갈매기만 넘나드네.

 

男便이 가슴을 치며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그의 아내 亦是 배 안에서 男便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었다.

그런데 怪異한 일이 생겼다.

배가 갑자기 소용돌이치는 바닷물에 맴돌기만 할 뿐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賀頭綱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배 안에 있는 쟁이를 히 불러 무슨 變故인지 을 치게 했다. 쟁이가 말했다.

배 안에 貞節生命처럼 지키는 夫人을 감금(監禁)해 두었기 때문이오. 夫人을 빨리 돌려보내지 않으면 큰 를 입을 것이오.”

貞節을 지키는 夫人이라고?, 밥집의 그 夫人 말인가?”

맞소. 틀림없이 그 夫人 때문이오! 夫人을 돌려보내지 않고 그냥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물귀신(鬼神)이 될 것이오.”

할 수 없지. 뱃머리를 돌려라.”

그러자 神奇하게도 맴돌던 물이 潛潛해지고 順風이 불어와서 배가 삽시간(翣時間)禮成江 河口에 닿았다.

賀頭綱夫人에게 말했다.

夫人! 龍王夫人貞節感服한 것 같소. 못된 나를 용서(容恕)하시오. 當身을 기다리고 있는 男便에게로 가시오.”

밥집 夫人은 뜻밖에 되돌아온 아내를 보자 容恕를 빌었다.

여보! 내가 物慾에 눈이 멀어 當身을 빼앗길 뻔했소. 容恕하구려!”

永永 헤어지는 줄 알았던 夫人도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一片丹心 이내 貞節 누가 꺾으리.

永永 離別인가 하였는데 다시 만났소.

龍王님이 길을 막아 우리 다시 만났네.

禮成江 하구의 當身 곁을 다시는 떠나지 않으리.

 

以後 男便이 부른 노래는 禮成江曲 前篇, 아내가 부른 노래는 後篇이라고 하였으나 노래는 하지 않고 高麗歌謠로 이야기만 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노름에 미친 사람을 일러 禮成江曲主人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8. 예이태교(禮以胎敎)

로써 胎敎를 하다. 현숙(賢淑)夫人姙娠 중에 에 따라서 胎敎를 하여 大學者로 키운 故事에서 由來했다.

 

* 三國史記 列傳 第5.

栗谷 李珥의 어머니 申師任堂 (1504~1551)朝鮮 第13代 明宗 江原道 江陵에서 申命和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本貫平山이며, 監察 李元秀와 열아홉 살에 結婚하여 四男四女를 두었고, 師任堂은 그 이다. 孝誠至極하고, 人品高潔賢母養妻였다.

어려서부터 經文, 글씨, 그림, 文章, 針工(바느질, 刺繡) 을 고루 工夫하여 各 分野에서 一家를 이루었다.

가 일곱 살, 世宗 때의 有名畵家 安堅이 그린 夢遊桃源圖赤壁圖를 보고 크게 影響을 받아 그림을 그리기 始作했다. 의 그림은 女性 特有纖細함과 精描함으로 葡萄, , 벌레 을 잘 그려 새로운 畵風을 이루었다.

또 그의 思親이라는 에는 어린 時節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이 잘 드러나 있다.

 

千里家山萬疊峰 : 千 里 故鄕 萬疊山 저 너머로

歸心長在夢魂中 : 뵈오러 가고파라 꿈속에서일망정

寒松亭畔雙輪月 : 寒松亭 가에 외로이 떠오른 둥근 달

鏡浦臺前一陣風 : 鏡浦臺 앞에는 몰아치는 거센 바람

沙上白鷗恒聚散 : 只今도 모래톱엔 갈매기 놀겠지.

波頭漁艇每西東 : 바다 위엔 고깃배들 물결 따라 오고가는데

何時重踏臨瀛路 : 언제나 故鄕길 다시 밟아보려나

綵舞斑衣膝下縫 : 동옷 입고 엄마 곁에서 바느질하던 때가 그립구나.

 

다음은 申師任堂38에 지은 , 어린 栗谷을 데리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江陵에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읊은 것이다.

 

慈親鶴髮在臨瀛 : 늙으신 어머님을 임영(臨瀛) 두고

身向長安獨去情 : 외로이 서울로 떠나는 이 마음

回首北村時一望 : 돌아보니 北村은 아득도 한데

白雲飛下暮山靑 : 흰 구름만 저문 靑山을 날아 내리네.

 

白髮의 어머니를 의 머리에 比喩하여 홀로 계시게 한 自身의 가슴속의 뜨거운 을 엿볼 수 있게 하는 哀絶한 글이다.

申師任堂媤宅에 돌아와서도 故鄕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 생각을 잠시도 놓지 못했다. 밤이면 어머니 계신 곳을 향하여 눈물을 짓는가 하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子女 敎育에는 온갖 精誠을 다 기울였으며 詩文書畵, 刺繡에 힘썼다.

그 녀가 李元秀에게 出家하여 江陵 烏竹軒에서 아들아이를 姙娠 했을 때, 검은 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胎夢을 꾸고 出産했으므로 처음에는 아들의 이름을 현용(見龍)이라고 했다.

姙娠했을 때 胎敎로 말은 고운 말로, 行動眞重하게, 邪惡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아니하고, 恒常 마음은 穩和하게, 몸가짐은 端正히 갖는데 努力했다.

栗谷에게는 그런 어머니의 胎內 敎育詩文을 지으시는 態度와 꿋꿋하게 사시는 生活이 그대로 산 스승이 되었다. 江陵 親庭집을 생각하며 눈물지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精神的으로 튼튼하게 자랄 수 있었다.

李珥가 뒷날 海東孔子稱頌 받은 것은 모두 師任堂이 예이태교(禮以胎敎) 한데에서 힘입은 것이라 해도 過言이 아닐 것이다.

 

 

19. 오비삼척(吾鼻三尺)

내 코가 석 자다. 즉 내게 닥친 일이 더 힘들고 어려워 다른 일을 돌볼 틈이 없다는 뜻이다.

 

* 永遠微笑, 兒童文學

高句麗, 新羅, 百濟 三國鼎立, 솥의 발과 같이 安定하다가 서로 雌雄을 겨루던 때, 慶州에 가난한 과 마음씨가 고약한 同生 兄弟가 살았다.

田畓이 없는 네사람에게서 땅을 빌려 農事를 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뿌릴 씨앗조차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同生에게 付託하기로 했다.

그러자 심술궂은 同生은 싹이 트지 못하게 씨앗을 삶아서 주었다. 은 그것도 모르고 씨앗을 뿌린 後 精誠껏 물을 주고 가꾸었으나 웬일인지 싹이 나지 않았다.

異常하다. 왜 싹이 안 나오지? 精誠不足한 걸까?’

은 더 熱心히 물을 주며 精誠을 다하여 가꾸었다. 그러자 그의 精誠에 하늘이 感動했던지 딱 하나의 씨앗에서 싹이 터 올랐다. 그리고 그 싹은 漸漸 자라 엄청나게 큰 이삭을 맺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그 이삭을 잘라 물고 날아가는 것이었다.

! 거기 서라, 거기 서!”

은 죽을 힘을 다해 깊은 속에까지 새를 쫓았지만 끝내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덧 날이 저물어 바위 洞窟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搖亂한 소리가 들리더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붉은 옷을 입은 도깨비들이 몰려나와 춤을 추기 始作했다.

나와라. 뚝딱!”

도깨비들이 呪文을 외우며 방망이를 휘두르자 神奇하게도 이 쏟아져 나왔다. ,

술 나와라, 뚝딱!”

하고 외치니 이에는 술이 나왔다. 도깨비들은 그렇게 방망이를 두들겨 必要한 것을 얻어내며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놀았다. 그러다가 새벽녘이 되자 도깨비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방망이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은 그 방망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도깨비들이 한 것처럼 그대로 따라 해보았다.

나와라, 뚝딱! 옷 나와라, 뚝딱! 집 나와라 뚝딱!

그러자 덩어리가 와르르 쏟아지고, 緋緞옷이 나오고, 大闕 같은 집이 생겨났다. 마침내 은 큰 富者가 되었다.

이 큰 富者가 되었다는 消息해들은 同生은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에게 쫓아가 細細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同生當場 그 골짜기로 달려가 洞窟에 몸을 숨겼다. 아니나 다를까 밤이 깊어지자 의 말대로 도깨비들이 몰려 나와 방망이를 두드리며 놀았다. 그런데 그때 同生하고 방귀를 뀌고 말았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도깨비 險狀궃게 생긴 놈이 눈을 부릅뜨고 이리저리 찾기 始作했다. 그래서 마침내 붙들리고 말았다.

, 이놈! 혼 좀 나봐라. 코야 커져라. 뚝딱!”

慾心을 부리던 同生은 도깨비들에게 붙들려 코만 코끼리 코만큼 커져서 돌아왔다.

그로부터 내 코가 석 자.’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이는 自己 處地하게 되어 남을 도와 줄 餘有가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20. 오조세조(烏鳥洗澡)

까마귀가 沐浴한다는 말이니, 本來 타고난 天性은 바뀌지 않는다. 또는 어떤 일을 熱心히 해도 그 보람이 없다는 뜻

 

* 雜記.

高麗 末에서 朝鮮 初期에 걸쳐 官職에 올랐던 亨齋 이직(李稷 1362~1431)世宗 領議政에 이르렀다.

高麗 遺臣이었던 그가 朝鮮開國功臣으로 벼슬에 오르면서 讓心을 피력(披瀝)하여 아래와 같은 時調를 지었다.

 

까마귀 검다 하고 白鷺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소냐.

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을 손 너뿐인가 하노라.

 

여기서 白鷺高麗 末의 세 忠臣 三隱比喩한 것이고, 까마귀는 自身과 같은 處地人物을 가리킨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時調는 겉으로는 潔白하고 善良한 체하면서도 속으로는 奸邪하고 陰凶爲人比喩하여 꼬집은 것이다.

까마귀가 눈처럼 흰 白鷺를 보자 혼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쩌면 저렇게 눈이 부시게 하얄까? 나도 한 희게 돼 봐야지!”

까마귀는 곧 湖水가로 가서 하루 終日 아무것도 먹지 않고 繼續 씻었지만 虛事였다. 오히려 허기(虛飢)가 지고 精神만 어지러워서 끝내는 죽을 地境에 이르렀다.

本色이 검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본래 검은 천을 양잿물에 삶고, 헹구기를 거듭한다 해도 純白이 되기란 어렵다.

하물며 검은 까마귀가 희어질 수 있겠는가?

이 말은 타고난 本質은 바꿀 수 없다는 뜻으로 쓴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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