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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당송8대가(唐宋八大家)

소순(蘇洵) 글 모음

by 산산바다 2026. 2. 15.

산과바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글 목록

 

 

소순(蘇洵) 글 모음

 

소순(蘇洵 1009~1066) : 북송(北宋)의 학자. 사천(四川) 미산(眉山) 사람. ()는 명윤(明允). ()는 노천(老泉). 그 아들인 식() ()과 더불어 삼소(三蘇)라 칭해지며, 또한 당송8대가(唐宋八大家) 가운데 한 사람. () 太常因革礼 태상인혁례, () 蘇老泉文集, 소로천문집. (1009~1066).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북송 이래 예에 관한 책들을 요벽 등과 함께 편집한 태상인혁례 太常因革禮100권이 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당나라 시대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송나라 시대구양수(歐陽脩), 왕안석(王安石), 증공(曾鞏),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 중의 한 사람이다.

 

* 소식(蘇軾)의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삼소(三蘇)라고도 일컬어지는데 가족 모두가 당송팔대가에 속하는 명문가이기도 하다. * 소순

 

 

1. 고조론(高祖論) : 소순(蘇洵)

고조론(高祖論)은 소순(蘇洵)이 한고조(劉邦)진평·장량보다 전쟁·일시의 이해를 제어하는 데는 못 하지만, 장래를 계획하고 위하는 데는 더 뛰어나다.’고 평가한 글이다.

 

(1)

漢高祖挾數用術하여 以制一時之利害不如陳平하고 揣摩天下之勢하여 擧指搖目하여 以劫制項羽不如張良하니 微此二人이면 則天下不歸漢이요 而高帝乃木彊之人而止耳이나 天下已定後世子孫之計陳平張良智之所不及이니 則高帝常先爲之規劃處置하여 使夫後世之所爲曉然如目見其事而爲之者하니 蓋高帝之智明於大暗於小至於此而後見也

 

漢 高祖(劉邦)術數를 써서 한때의 利害를 제어하는 것은 陳平만 못하였고, 천하의 형세를 헤아려 손가락을 들고 눈을 움직여서 項羽를 제압하는 것은 張良만 못하였으니, 이 두사람이 없었다면 천하가 한나라의 소유가 되지 못했을 것이요, 高帝는 순박하고 강직한 사람으로 그칠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하가 이미 정해진 뒤에 후세 자손에 대한 계책은 진평과 장량의 지혜가 미치지 못하는 바 였으니, 고제는 늘 먼저 계획하고 처리하여 후세에 일어날 일을 환하게 눈으로 그 일을 보고서 하는 것과 같게 하였다. 대개 고제의 지혜가 큰 데에 밝고 작은 데에 어둡다는 것을 이에 이른 뒤에야 알 수 있다.

 

(2)

帝常語呂后曰 周勃重厚少文이나 然安劉氏者必勃也可令爲太尉라하니 方是時하여 劉氏旣安矣勃又將誰安耶吾之意曰 高帝之以太尉屬()勃也知有呂氏之禍也니라

 

高帝가 일찍이 呂氏에게 말하기를 周勃厚重하고 문채가 적으나 劉氏를 안심시킬 자는 반드시 주발일 것이니, 그를 太尉로 삼을 만하다.” 하였다. 이때를 당하여 유씨가 이미 안정되어 있었으니, 주발이 또 장차 누구를 안정시키겠는가. 그러므로 내 생각으로는, 고제가 태위를 주발에게 맡긴 것은 呂氏禍亂이 있을 줄을 알았기 때문이다.

 

(3)

雖然이나 其不去呂后何也勢不可也昔者武王沒成王幼而三監版하니 帝意百勢後將相大臣及諸侯王有如武庚綠父()하여 而無有以制之也獨計以爲家有主母而豪奴悍婢不敢與弱子抗하나니 呂氏佐帝定天下하여 爲諸侯大臣素所畏服하니 獨此可以鎭壓其邪心하여 以待嗣子之壯이라 不去呂后者爲惠帝計也니라

 

비록 그러하나 여후를 제거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형세가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옛날에 武王이 죽자 成王은 어리고 三監이 반란을 일으켰으니, 고제는 자신의 死後將相大臣 諸侯王 가운데 武庚 綠父 같은 자가 있어 이러한 자를 제어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홀로 계책하기를 집안에 主母가 있으면 드센 사내종과 사나운 계집종이 감히 약한 자식에게 대항하지 못하는 법이다. 여씨는 내가 천하를 평정하는 것을 도와 제후와 대신들이 평소에 두려워 복종하는 사람이니, 오직 이 사람만이 그들의 간사한 마음을 진압하여 嗣子(惠帝)가 장성하기를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후를 제거하지 않은 것은 혜제를 위한 계책이었다.

 

(4)

呂后旣不可去削其黨하여 以損其權하여 使雖有變이라도 而天下不搖是故以樊噲之功으로 一旦遂欲斬之而無疑하니 嗚呼彼獨於噲不仁耶且噲與帝偕起하여 拔城陷陣功不爲少方亞父()嗾莊時하여 微噲譙羽則漢之爲漢未可知也

 

呂后를 이미 제거할 수 없었으므로 그 黨與를 줄여 권력을 덜어내서 비록 變亂이 생기더라도 천하가 요동하지 않도록 하였다. 이런 까닭으로 공을 세운 樊噲도 하루 아침에 마침내 주저 없이 斬首하고자 하였으니, , 高帝는 유독 번쾌에 대해서만 불하단 말인가. 게다가 번쾌는 고제와 함께 일어나 을 빼삿고 敵陳을 함락한 것이 그이 적지 않았고, 亞父(范增)項莊을 사주했을 때 번쾌가 項羽를 꾸짖지 않았더라면 나라가 나라가 되었을지는 알 수 없다.

 

(5)

一旦人有惡()하여 欲滅戚氏者한데 噲出伐燕이어늘 立命平勃하여 卽軍中斬之하니 夫噲之罪未形也惡之者誠僞未必也且帝之不以一女子斬天下功臣亦明矣彼其娶於呂氏하니 呂氏之族若産綠輩皆庸才不足䘏이요 獨噲豪健하여 諸將所不能制後世之患無大於此矣

 

그런데 하루아침에 번쾌가 戚氏를 멸하고자 한다고 비방하는 자가 있다, 당시 번쾌는 나가서 나라를 정벌하고 있었는데도 <고제가> 즉시 陳平周勃에게 명하여 바로 진중에서 그를 참수하게 하였다. 번쾌의 죄가 드러나지 않았고, 비방한 자의 眞僞를 반드시 알 수는 없었고, 게다가 고제가 한 여자 때문에 천하의 공신을 참수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분명하였다.

 

저 번쾌는 呂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여씨 일족 가운데 呂産呂綠 같은 자들은 모두 용렬한 재주라 걱정할 것이 못 되었다. 번쾌만이 豪健하여 다른 장수들이 제어하지 못하는 대상이었으니, 후세의 후환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었다.

 

(6)

夫高帝之視呂后猶醫者之視菫也使其毒으로 (使)[]治病이요 而無至於殺人而已噲死則呂氏之毒將不至於殺人하리니 高帝以爲是足以死而無憂矣彼平勃者遺其憂者也로다 噲之死於惠帝之六年天也使之尙在則呂祿不可給太尉不得入北軍矣리라

 

무릇 高帝呂后를 보는 것은 의원이 烏頭를 보는 것과 같았다. 그 독이 병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고 사람을 죽이는 데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될 따름이었다. 樊噲가 죽으면 呂氏의 독이 장차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니, 고제는 이렇게 하면 죽어서도 근심이 없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을 것이다. 陳平周勃은 그 걱정거리(번쾌)를 남겨놓은 자들이로다. 번쾌가 惠帝 6년에 죽은 것은 天運이니,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呂祿을 속일 수가 없었을 것이고 太尉(주발)北軍으로 들서가지 못했을 것이다.

 

(7)

或謂噲於帝最親하니 使之尙在라도 未必與産祿叛이라하니 夫韓信黥布盧綰皆南面稱孤하고 而綰又最爲親幸이나 然及高帝之未崩也하여 皆相繼以逆誅誰謂百歲之後椎埋屠狗之人見其親戚得爲帝王하고 而不欣然從之耶吾故曰 彼平勃者遺其憂者也라하노라

 

혹자는 말하기를 樊噲高帝와 가장 친하였으니 그가 살아 있었더라도 반드시 呂産, 呂祿과 더불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한다. 韓信, 黥布, 盧綰은 모두 왕의 신분이었고 노관은 더욱이 가장 친애하고 총애하는 사람이었으니, 高帝가 아직 崩御하지 않았을 때 모두 뒤를 이어 반역죄로 주벌을 당하였다. 누가 <고제>가 죽은 뒤에 사람을 때려죽여 땅에 묻고 개백정 노릇을 하던 사람(번쾌)이 친척이 帝王이 된 것을 보고 기뻐하며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겠는가. 나는 그러므로 陳平周勃은 그 걱정거리를 남겨놓은 자들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2. 관중론(管仲論) : 소순(蘇洵)

관중과 포숙의 관중에 대하여

 

(1)

管仲相威公하여 覇諸侯하고 攘夷狄하여 終其身토록 齊國富强하여 諸侯不敢叛이러니 管仲死竪刁易牙開方하니 威公薨於亂하고 五公子爭立하여 其禍蔓延하여 訖簡公齊無寧歲하니라

 

管仲齊 威公(桓公)을 도와 諸侯覇者가 되게 하고 夷狄을 물리쳐, 종신토록 제나라가 부강하여 제후들이 감히 배반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관중이 죽자 竪刁易牙開方이 쓰였으니, 위공은 난중에 죽었고 다섯 공자가 왕위를 다투어 그 화가 만연하여 簡公에 이르도록 제나라는 편안한 해가 없었다.

 

(2)

夫功之成非成於成之日이라 蓋必有所由起하고 禍之作不作於作之日이라 亦必有所由兆하니 則齊之治也吾不曰管仲而曰鮑叔이요 及其亂也하여는 吾不竪刁易牙開方而曰管仲이라하노라

 

무릇 공이 이루어지는 것은 이루어지는 날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개 반드시 말미암아 일어나 바가 있고, 화가 일어나는 것은 일어나는 날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또한 반드시 말미암아 조짐이 생겨 나는 바가 있으니, 제나라가 다스려 진 것을 나는 관중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고 鮑叔 때문이라고 하며, 제나라가 어지러워진 것에 미쳐서는 나는 수조ㆍ역아ㆍ개방 때문이 아니라 관중 때문이라고 한다.

 

(3)

何則竪刁易牙開方三子彼固亂人國者어니와 顧其用之者威公也夫有舜而後知放四凶하고 有仲尼而後知去少正卯彼威公何人也顧其使威公으로 得用三子者管仲也

 

어째서인가. 수조ㆍ역아ㆍ개방 저 세 사라은 진실로 남의 나라를 어지럽히는 자들이거니와 돌아보건대 그들을 쓴 자는 위공이다. 무릇 이 있은 뒤에 四凶을 추방할 줄 알고, 仲尼가 있은 뒤에 少正卯를 제거할 줄 알았으니, 저 위공은 어떠한 사람인가? 돌아보건대 위공으로 하여금 세 사람을 쓰게 한 자는 관중이었다.

 

(4)

仲之疾也公問之相하니 當是時也하여 吾以仲且擧天下之賢者以對러니 而其言乃不過曰 竪刁易牙開方三子非人情이니 不可近而已라하니 嗚呼仲以爲威公果能不用三子矣乎

 

管仲이 병들었을 때 威公이 후임 재상에 대해 물으니, 이때를 당하여 나는 관중이 천하의 어진 자를 천거하여 대답하려니 했는데, 그의 말이 도리어 竪刁易牙開方 세 사람은 人情에 맞지 않으니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 슬프다. 관중은 위공이 과연 세 사람을 쓰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였는가.

 

(5)

仲與威公處幾年矣亦知威公之爲人矣乎인지 威公聲不絶乎耳하며 色不絶於目하니 而非三子者則無以遂其欲이라 彼其初之所以不用者徒以有仲焉耳一日無仲이면 則三子者 可以彈冠而相慶矣리니 仲以爲將死之言可以縶威公之手足耶

 

관중이 위공과 함께 여러 해를 지냈으니, 또한 위공의 사람됨을 알았을 것이다. 위공은 음악이 귀에서 끊이지 않으며 美色이 눈에서 끊이지 않았으니, 세 사람이 아니면 그 욕심을 이룰 수가 없었다. 저들이 처음에는 쓰이지 않았던 것은 다만 관중이 있었기 때문이니, 하루아침에 관중이 없어지면 세 사람이 갓의 먼지를 털면서 서로 축하할 것이다. 관중은 죽을 무렵에 한 말이 위공의 手足과 같은 <이 세 사람을> 묶어놓을 수 있다고 여긴 것인가?

 

(6)

夫齊國不患有三子而患無仲이니 有仲이면 則三子者三匹夫耳不然이면 天下豈少三子之徒리오 雖威公幸而聽仲하여 誅此三人이라도 而其餘者仲能悉數而去之耶嗚呼可謂不知本者矣로다 因威公之問하여 擧天下之賢者以自代則仲雖死而齊國未爲無仲也夫患三子者리오 不言이라도 可也니라

 

무릇 나라는 세 사람이 있는 것이 우환이 아니라 管仲이 없는 것이 우환이 되니, 관중이 있으면 세 사람은 세 匹夫일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천하에 어찌 세 사람과 같은 무리가 적겠는가. 비록 威公이 다행히 관중의 말을 들어 세 사람을 주벌하였더라도 그 나머지 사람을 관중이 모두 헤아려서 제거할 수 있었겠는가.

 

! 슬프다. 관중은 근본을 알지 못한 자라고 할 만하다. 위공의 물음을 계기로 천하의 현자를 천거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하였다면 관중이 비록 죽더라도 제나라에 관중이 없는 것이 아닌 셈이니, 어찌 세 사람을 근심하겠는가. <세 사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7)

五覇莫盛於威文하니 文公之才不過威公이요 其臣又皆不及仲이요 靈公之虐不如孝公之寬厚언마는 文公死諸侯不敢叛晉하고 晉襲文公之餘威하여 猶得爲諸侯之盟主百餘年하니 何者其君雖不肖而尙有老成人焉일새라 威公之死也一亂塗地無惑也彼獨恃一管仲이라가 而仲則死矣夫天下未嘗無賢者하나니 蓋有有臣而無君者矣어니와 威公在焉이요 而曰天下不復有管仲者吾不信也로라

 

五覇齊 威公晉 文公보다 강성한 이가 없었으니, 문공의 재주가 위공보다 낫지 못하고 그 신하들도 모두 管仲만 못하고 晉 靈公의 포악함이 齊 孝公寬厚함만 못하였건만, 문공이 죽자 제후들이 감히 진나라를 배반하지 못하고 진나라가 문공의 남은 위세를 이어받아 여전히 백여 년 동안 제후의 盟主가 될 수 있었으니, 어째서인가. 그 임금이 비록 불초하나 그래도 老成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공이 죽자 단번에 극도로 혼란해진 것은 의혹할 것이 없으니, 저들은 관중 한 명만을 믿고 있다가 관중이 죽었기 때문이다. 무릇 천하에 일찌기 어진 자가 없었던 적이 없으니, 대개 어진 신하는 있고 어진 임금은 없는 경우는 있었지만, 위공은 있고 천하에 다시 관중 같은 이가 없다고 하는 것은 나는 믿지 않는다.

 

(8)

仲之書有記其將死論鮑叔賓胥無之爲人하고且各疏其短하니 是其心以爲是數子者皆不足以托國이요 而又逆知其將死하니 則其書誕謾不足信也吾觀史鰌以不能進蘧伯玉而退彌子瑕有身後之諫하고 蕭何且死擧曹參以自代하니 大臣之用心固宜如也니라 一國以一人興하고 以一人亡하나니 賢者不悲其身之死하고 而憂其國之衰必復有賢者而後有以死하나니 彼管仲何以死哉

 

管仲의 책(管子)에 그가 죽을 무렵에 鮑叔賓胥無의 사람됨을 논하고 또 각각 그 단점을 설명한 기록이 있으니, 이는 그의 마음이 이 몇 사람은 모두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여긴 것이고 또 자신이 죽을 것을 미리 안 것이니, 그 책은 허탄하여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내가 보건대, 史鰌蘧伯玉을 등용하게 하지 못하고 彌子瑕를 물리치지 못했기 때문에 死後하였고, 蕭何는 죽을 때 曹參을 천거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하였으니, 大臣의 마음씀이 진실로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한 나라가 한 사람 때문에 흥하고 한 사람 때문에 망하는 법이니, 어진 자는 자기 몸이 죽는 것을 슬퍼하지 않고 자기 나라가 쇠망하는 것을 근심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어진 자가 <자리에> 있은 뒤에야 죽을 수 있으니, 저 관중은 어떻게 죽을 수 있었는가.

 

 

3. 名二子說(명이자설) : 소순(蘇洵)

두 아들의 이름을 설명하다

 

輪輻蓋軫皆有職乎車로되 而軾獨若無所爲者연이나 去軾則吾未見其爲完車也軾乎吾懼汝之不外飾也하노라 天下之車莫不由轍이로되 而言車之功轍不與焉이라 雖然이나 車仆馬斃라도 而患不及轍하나니 是轍者禍福之間이니 轍乎吾知免矣로라

 

(수레바퀴)(수레바퀴살)(수레덮개)(수레 뒤턱 나무)은 모두 수레에서 맡은 일이 있지만 (수레 앞턱 가로 댄 나무)은 유독 하는 일이 없는 듯하다. 비록 그러하나 을 없애면 나는 그것이 완전한 수레가 됨을 보지 못한다. ! 나는 네가 外飾을 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노라.

 

천하의 수레가 (바퀴 자국)을 따르지 않음이 없으나 수레의 을 말할 때 은 거기에 끼지 못한다. 비록 그러하나 수레가 엎어지고 말이 죽더라도 禍患에 미치지 않으니, 이라는 것은 의 사이이다. ! 나는 네가 <화를> 면할 줄을 아노라.

 

 

4. 장익주화상기(張益州畵像記) : 소순(蘇洵)

익주 자사 장방평의 화상에 대하여 논하다

 

至和元年秋(지화원년추) : 지화 원녕 가을에

蜀人傳言(촉인전언) : 촉 지방 사람들이전하는 말에

有寇至(유구지) : 변경에 왜적이 침입해

邊軍夜呼(변군야호) : 밤중에 변방을 비키는 병사들이 놀라 소리쳤으며

野無居人(야무거인) : 이 때문에 그곳 들에는 사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妖言流聞(요언유문) :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하여

京師震驚(경사진경) : 경성 사람들도 놀라게 되자

方命擇帥(방명택수) : 조정에서 군대를 파견하려 했다.

 

天子曰(천자왈) : 천자께서 말씀하시기를

毋養亂(무양란) : "왜구의 낭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毋助變(무조변) : 변란을 조장하지 말라.

衆言朋興(중언붕흥) : 수많은 유언비어가 난무하게 되어

朕志自定(짐지자정) : 짐이 바로잡고자 한다.

外亂不作(외란불작) : 외란은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變且中起(변차중기) : 변란이 나라 안에서 일어나려 한다.

不可以文令(불가이문령) : 또 이미 문치로 교화시킬 수 없게 되었고

又不可以武競(우불가이무경) : 무력으로서도 진압할 수 없게 되었다.

 

惟朕一二大吏(유짐일이대리) : 짐 가까이 있는 고관들 중

孰爲能處玆文武之間(숙위능처자문무지간) : 누가 이 문치의 교화와 무력 진압을 맡을 수 있겠는가?

其命往撫朕師(기명왕무짐사) : 적당한 분을 파견하여 우리 병사를 위로하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乃推曰(내추왈) : 이에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張公方平其人(장공방평기인) : "장공이 적당합니다."라고 추천하자

天子曰然(천자왈연) : 천자께서 이르기를 "그렇지요.'라고 하였다.

公以親辭(공이친사) : 장공이 어버이를 모셔야 한다는 핑계로 사양했으나

不可(불가) : 천자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셨다.

 

遂行(수행) : 장공께서 마침내 행차하여

冬十一月(동십일월) : 그해 겨울 11월에

至蜀(지촉) : 촉지방에 도착하셨다.

至之日(지지일) : 도착하는 날

歸屯軍(귀둔군) : 국경 주둔군을 불러들이고

徹守備(철수비) : 수비관원들도 철수시켰다.

使謂郡縣(사위군현) : 또 군과 현의 장관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寇來在吾(구래재오) : "왜구가 오더라도 내가 여기 있으니

無爾勞苦(무이로고) : 그대들은 노고하지 마시오."라고 했다.

明年正月朔旦(명년정월삭단) : 이듬해 정월 초하루날 아침

蜀人相慶如他日(촉인상경여타일) : 촉 지방 사람들은 예전처럼 서로 축하했으나

遂以無事(수이무사) : 아무런 변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又明年正月(우명년정월) : 그 이듬해 정월에

相告留公像於淨衆寺(상고유공상어정중사) : 모든 사람들이 상의하여 장공의 화상을 정중사에 그리기로 했는데

公不能禁(공불능금) : 장공께서도 금지시킬 방법이 없었다.

眉陽蘇洵言於衆曰(미양소순언어중왈) : 미양 사람인 나 소순이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未亂(미란) : "난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易治也(이치야) : 다스리기가 쉽고

旣亂(기란) : 난이 일어났어도

易治也(이치야) : 다스리기가 쉽니다.

有亂之萌(유란지맹) : 난은 맹아는 있으나

無亂之形(무란지형) : 흔적이 없어

是謂將亂(시위장란) : 난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將亂難治(장란난치) : 난이 일어나려고 하는 것을

不可以有亂急(불가이유란급) : 다스리기가 여려우니

亦不可以無亂弛(역불가이무란이) : 난이 일어났다고 긴장하고 난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마음 편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是惟元年之秋(시유원년지추) : 원년 가을에

如器之欹(여기지의) : 기물이 기울어졌으나

未墜於地(미추어지) :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惟爾張公(유이장공) : 장공께서

安坐於其旁(안좌어기방) : 그 옆에 편히 앉아계시다가

顔色不變(안색불변) : 안색하나 변하지 않으시고

徐起而正之(서기이정지) : 천천히 일어나서 그 기물을 바로 놓으셨다.

 

旣正(기정) : 바로잡은 후

油然而退(유연이퇴) : 태연히 물러나와

無矜容(무긍용) : 자랑스러운 기색도 없으셨다.

爲天子牧小民不倦(위천자목소민불권) : 천자를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리는데 권태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惟爾張公(유이장공) : 장공뿐이셨다.

爾繄以生(이예이생) : 여러분이 이곳에 사는 것은

惟爾父母(유이부모) : 지방관 덕택이다.

且公嘗爲我言(차공상위아언) : 장공께서 일찍이 저에게 말하기를

民無常性(민무상성) : "백성에게는 상성이 없어

惟上所待(유상소대) : 다만 윗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볼 뿐이다.

 

人皆曰(인개왈) : 사람들이 모두 이르기를

蜀人多變(촉인다변) : '촉지방 사람은 마음이 잘 변한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於是待之以待盜賊之意(어시대지이대도적지의) : 이에 백성을 도적처럼 대하고

而繩之以繩盜賊之法(이승지이승도적지법) : 도적을 묶어드리는 법으로 묶어들여서

重足屛息之民(중족병식지민) : 몹시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而以碪斧令(이이침부령) : 참수대와 도끼로 호령해 보십시오.

於是民始忍以其父母妻子之所仰賴之身(어시민시인이기부모처자지소앙뢰지신) : 이에 백성들은 부모와 처자가 딸린 몸이지만 모진 마음을 먹고

而棄之於盜賊(이기지어도적) : 도적의 무리에 몸을 맡겨

故每每大亂(고매매대란) : 모두 대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夫約之以禮(부약지이례) : 백성들을 예로써 단속하고

驅之以法(구지이법) : 법령으로서 다스리면

惟蜀人爲易(유촉인위이) : 촉 지방 사람이라하더라도 다스리기가 쉬울 것입니다.

至於急之而生變(지어급지이생변) : 통치를 너물 엄격하게 하면 변란이 생기게 되는데

雖齊魯亦然(수제노역연) : 비록 제와 노 지방 사람들처럼 처신했습니다.

吾以齊魯待蜀人(오이제노대촉인) : 나는 ·(齐鲁)처럼 (蜀地) 사람들을 대한다.

而蜀人亦自以齊魯之人待其身(이촉인역자이제노지인대기신) : (張公)齊魯의 사람으로 사람을 대하듯, 사람도 스스로 齊魯의 사람으로 자신을 대한다.

若夫肆意於法律之外(약부사의어법률지외) : 법률 밖에서 마음대로 하며

以威劫齊民(이위겁제민) : 저는 멋재로 백성들을 위협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吾不忍爲也(오불인위야) : 나는 참지 못하게 되었구나.

 

嗚呼(오호) : ,

愛蜀人之深(애촉인지심) : 이토록 촉 지방 사람들을 사랑하고

待蜀人之厚(대촉인지후) : 후하게 대하는 것을

自公而前(자공이전) : 장공 이전에

吾未始見也 본 적이 없다."라고 했다.

皆再拜稽首曰然(개재배계수왈연) : 이에 모두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 맞습니다."라고 했다.

蘇洵又曰(소순우왈) : 나 소순이 또 이르기를

公之恩在爾心(공지은재이심) : "장공의 은혜가 여러분 가슴에 남아 있고

爾死(이사) : 여러분이 죽은 후에는

在爾子孫(재이자손) : 여러분 자손에게도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其功業在史官(기공업재사관) : 장공의 공적을 사관이 기록하여 놓을 것이니

無以像爲也(무이상위야) : 초상화를 그릴 필요가 없습니다.

且公意不欲如何(차공의불욕여하) : 더구나 장공께서 원하지 않으시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라고 했더니

皆曰(개왈) : 모두 이르기를

公則何事於斯(공즉하사어사) : "장공께서 어찌 이런 일에 마음을 두시겠습니까?

雖然(수연) : 비록 그렇게 한다고 해도

於我心有不釋焉(어아심유불석언) : 저의 백성들은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今夫平居聞一善(금부평거문일선) : 평소에 착한 일을 했다는 말만 들어도

必問其人之姓名(필문기인지성명) : 그의 이름과

與鄕里之所在(여향리지소재) : 고향을 반드시 물어봅니다.

以至於其長短大小美惡之狀(이지어기장단대소미악지장) : 키의 대소와 체격의 아름답고 추한 생김새를 묻고

甚者或詰其平生所嗜好(심자혹힐기평생소기호) : 심지어 그가 좋아했던 것까지 물어

以想見其爲人(이상견기위인) : 그 사람됨을 생각하여

而史官亦書之於其傳(이사관역서지어기전) : 사관도 그것을 전기에 기록합니다.

意使天下之人(의사천하지인) : 그 의도는 천하 사람들이

思之於心(사지어심) : 마음 속에 그를 흠모하고

則存之於目(칙존지어목) : 그를 눈애 볼 수 있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有之於目(유지어목) : 그를 본 후에

故其思之於心也固(고기사지어심야고) : 그를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굳어지게 됩니다.

由此觀之(유차관지) : 이로 볼 때

像亦不爲無助(상역불위무조) : 장공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어찌 도음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蘇洵無以詰(소순무이힐) : 그래서 나 소순도 문책할 수 없어

遂爲之記(수위지기) : 장공을 위해 기를 쓰게 되었다.

公南京人(공남경인) : 장공께서는 남정 사람으로

爲人慷慨有節(위인강개유절) : 강개하시고 절개와 지조가 있으셔서

以度量雄天下(이도량웅천하) : 천하에 영웅이라고 부를 만하고

天下有大事(천하유대사) : 세상에 큰 일이 생기면

公可屬(공가촉) : 부탁드릴 만하다고 하여

系之以詩曰(계지이시왈) : 이어 그를 위해 시를 짓는다.

 

天子在祚(천자재조) : 천자께서 재위하시니

歲在甲午(세재갑오) : 갑오년 해였다.

西人傳言(서인전언) : 촉 지방 사람 전하는 말에

有寇在垣(유구재원) : 왜적이 실로 쳐들어왔다고 하는구나.

庭有武臣(정유무신) : 조정에 무관과

謀夫如雲(모부여운) : 모사들 구름처럼 모여 들었어라.

 

天子曰(천자왈) : 천자께서

嘻命我張公(희명아장공) : '장공을 파견하라.'고 하셨어라.

公來自東(공래자동) : 장공께서 동에서 오셔

旗纛舒舒(기독서서) : 대독을 나부끼신다.

西人聚觀(서인취관) : 촉 지방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하는구나

于巷于塗(우항우도) : 거리가 온통 사람들 뿐이어라.

謂公曁曁(위공기기) : 모든 사람 장공께서 굳세고 용감하다고 말하였어라.

公來于于(공래우우) : 오실 때 모습 여유있어 보이는구나.

公謂西人(공위서인) : 장공께서 촉지방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여

安爾室家(안이실가) : "가정을 편하게 하고

無敢或訛(무감혹와) : 소문을 듣고 믿지 말지어라.

訛言不祥(와언불상) : 소문이란 상서롭지 못한 것이니

往卽爾常(왕즉이상) : 가서 평소 일 하시어라.

 

春爾條桑(춘이조상) : 봄에는 뽕나무 가지를 치고

秋爾滌場(추이척장) : 가을에는 사는 곳을 깨끗이 청소하여라.

西人稽首(서인계수) : 촉 지방 사람 머리를 조아리며

公我父兄(공아부형) : "공께서는 우리의 부형과 같으신 분이시어라.

公我西囿(공아서유) : 공께서 이곳 동산에 계시면

草木騈騈(초목병병) : 초목도 무성해지고

公宴其僚(공연기료) : 관리들에게 잔치를 베푸시니

伐鼓淵淵(벌고연연) : 북치는 소리도 평화롭구나.

西人來觀(서인래관) : 촉지방 사람들이 와서 뵙고는

祝公萬年(축공만년) : 공께 만수무강을 비는구나.

有女娟娟(유여연연) : 아름다운 여자들

閨闥閑閑(규달한한) : 규방에 한가롭고

有童哇哇(유동왜왜) : 말 배우는 어린아리들 소리

亦旣能言(역기능언) : 한 두 마디씩 울얼거리니다.

 

昔公未來(석공미래) : 장공이 오시기 전에는

期汝棄捐(기여기연) : 이런 여자들과 아이들은 길가에 버려졌어라.

禾麻芃芃(화마봉봉) : 벼와 삼 무성하여

倉庾崇崇(창유숭숭) : 창고가 가득하고

嗟我婦子(차아부자) : 아내와 자식들은

樂此歲豐(락차세풍) : 풍년을 누리는구나.

公在朝廷(공재조정) : 장공은 조정에 있고

天子股肱(천자고굉) : 천자깨서 가장 믿는 신하로다.

天子曰歸(천자왈귀) : 천자께서 조정으로 오라고 하니

公敢不承(공감불승) : 어찌 명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作堂嚴嚴(작당엄엄) : 촉 지방 사람들이 사당을 지으니

有廡有庭(유무유정) : 곁채와 정원도 있구나.

公像在中(공상재중) : 장공의 초상화에서

朝服冠纓(조복관영) : 조복과 조관을 입으셨구나.

西人相告(서인상고) : 촉 지방 사람들이 서로 권면하여

無敢逸荒(무감일황) : 감히 나태하거나 음란한 사람 없구나.

公歸京師(공귀경사) : 공께서 경성으로 돌아갔지만

公像在堂(공상재당) : 초상화는 아직 당상에 걸려 있구나.

 

 

5. 족보서(族譜) : 소순(蘇洵)

족보에 대한 글

 

蘇氏族譜(소씨족보): 소씨족보는

譜蘇之族也(보소지족야): 소씨 일족의 계보를 기록한 것이다.

蘇氏出於高陽(소씨출어고양)하여 : 소씨는 전욱에게서 나와

而蔓延於天下(이만연어천하): 온 천하로 뻗어나간 것이다.

唐神堯初(당신요초): 당나라 고조 초기에

長史味道刺眉州(장사미도자미주)라가 : 장사 소미도가 미주자사로 있다가

卒于官(졸우관)하고 :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졸하였는데

一子留于眉(일자유우미)하니 : 한 아들이 미주에 남아서

眉之有蘇氏(미지유소씨): 미주에 소씨가 있게된 것이

自此始(자차시): 여기서 비롯된다.

 

而譜不及者(이보부급자): 족보로서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親盡也(친진야): 친족관계가 다한 것이다.

親盡則曷爲不及(친진칙갈위불급): 친족관계가 없어지면 어째서 미치지 못하게 되는가?

譜爲親作也(보위친작야): 족보는 친족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凡子得書而孫不得書者(범자득서이손부득서자): 모든 자식들에 대해서는 기록하면서 손자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못하는 것은

何也(하야): 어째서인가?

著代也(저대야): 대를 드러낸 것이다.

 

自吾之父(자오지부): 나의 아버지로부터

以至吾之高祖(이지오지고조): 나의 고조에 이르기까지는

仕不仕(사부사): 벼슬을 하고 하지 않은 것과

娶某氏(취모씨): 어느 집안에 장가든 것과

享年幾(향년기): 몇 살까지 사신 것과

某日卒(모일졸): 어느 날 돌아가신 것을

皆書(개서)하고 : 모두 쓰면서

而它不書者(이타불서자): 다은 분들에 대하여는 쓰지 않는 것은

何也(하야): 어째서인가?

 

詳吾之所自出(상오지소자출야): 내가 나온 계보르 자세히 하기 위해서이다.

自吾之父(자오지부): 나의 아버지로부터

以至吾之高祖(이지오지고조): 나의 고조에 이르기까지는

皆曰諱某(개왈휘모): 모두 휘가 무엇이었다고 말하면서

而它則遂名之(이타칙수명지): 다른 분들은 모드 이름을 쓰는 것은

何也(하야): 어째서인가?

 

尊吾之所自出也(존오지소자출야): 나가 나온 계보를 존중하기 위해서다.

譜爲蘇氏作(보위소씨작)이어늘 : 족보는 소씨를 위하여 짓는 것이거늘

而獨吾之所自出(이독오지소자출): 오직 내가 나온 계보만을 자세히 하고

得詳與尊(득상여존): 존중하는 것은

何也(하야): 어째서인가?

譜吾作也(보오작야)일새라 : 족보는 내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嗚呼(오호): 아아!

觀吾之譜者(관오지보자): 나의 족보를 보는 사람들은

孝悌之心(효제지심): 효도를 하고 우애를 지니려는 마음이

可以油然而生矣(가이유연이생의)리라 : 구름이 피어나듯 생겨나게 될 것이다.

情見于親(정견우친)하고 : 정이 친족관계에 드러나고

親見于服(친견우복)이니 : 친족관계는 상복에 드러나는 것인데

服始于衰(복시우쇠)하여 : 상복은 최복에서 시작하여

而至于緦麻(이지우시마)하며 : 시마에 이르고

而至于無服(이지우무복) 이라: 또 상복을 입지 않는 관계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無服則親盡(무복칙친진)이오 : 상복을 입지 않는다면 친족관계는 없어진 것이며

親盡則情盡(친진칙정진)이오 : 친족관계가 없어지면 정도 없어지게 되고

情盡則喜不慶憂不弔(정진칙희부경우부조)하나니 : 정이 없어지면 기쁜 일에도 함께 경하하지 않고 걱정되는 일이 생겨도 함께 슬퍼하지 않게 되는데

喜不慶憂不弔(희부경우부조): 기쁜 일에도 함께 경하하지 않고 걱정되는 일에도 함께 슬퍼하지 않는다면

則塗人也(칙도인야): 곧 길거리의 남인 것이다.

吾所與相視如塗人者(오소여상시여도인자): 내가 길거리의 남처럼 서로 보고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其初兄弟也(기초형제야): 처음에는 모두 형제였고

兄弟其初(형제기초): 형제는 처음에

一人之身也(일인지신야): 한 사람의 몸이었던 것이다.

悲夫(비부): 슬프도다.

 

一人之身(일인지신): 한 사람의 몸이

分而至於塗人(분이지어도인)이니 : 분파하여 길거리의 남이 되기까지에 이르고 있으니

吾譜之所以作也(오보지소이작야): 내가 족보를 만들게 된 까닭인 것이다.

 

其意曰(기의왈) : 족보를 만든 그 뜻은 왈,

分而至於塗人者勢也(분이지어도인자세야)이니 : 한 사람이 분파되어 길거리의 남에 이르게 되는 것이 형세인데

勢吾無如之何也(세오무여지하야): 이 형세는 나로서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幸其未至於塗人也(행기미지어도인야): 다행이도 길거리의 남에 이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使其無致於忽忘焉可也(사기무치어홀망언가야): 소홀히 하고 있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만 되겠다는 것이다.

 

嗚呼(오호): 아아!

觀吾之譜者(관오지보자) : 나의 족보를 보는 사람들은

孝悌之心(효제지심) : 효도를 행하고 우애를 지니려는 마음이

可以油然而生矣(가이유연이생의) : 구름이 피어나듯 생겨나게 될 것이다.

 

系之以詩曰(계지이시왈) : 여기에 다음과 같은 시를 붙여 놓는 바이다.

吾父之子(오부지자) : 내 아버지 아들이

今爲吾兄(금위오형) : 지금은 나의 형이니

吾疾在身(오질재신) : 내게 몸에 병이 생기면

兄呻不寧(형신불령) : 형도 신음하며 편치않게 된다네.

數世之後(수세지후) : 그러나 몇 대 뒤에는

不知何人(부지하인) : 그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어

彼死而生(피사이생) : 그들이 죽거나 태어나나는 것을

不爲戚欣(불위척흔) : 슬퍼하거나 기뻐하지도 않게 된다네.

兄弟之情(형제지정) : 형제의 정이

如足如手(여족여수) : 자기 손발 같다고 하나

其能幾何(기능기하) : 그 정이 얼마나 갈 수가 있는가?

彼不相能(피불상능) : 저들이 서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할 수 없는 것은

彼獨何心(피독하심) : 저들이 홀로 어떤 마음을 지녔기 때문인가?

 

 

6. 목가산기(木假山記) : 소순(蘇洵)

목가산(木假山)에 관하여

 

木之生或蘖而殤(목지생혹얼이상) : 나무의 삶이란 혹은 움이 터서 자라다가 죽기도 하고

或拱而夭(혹공이요) : 혹은 한 줌 굵기에 죽기도 한다.

幸而至於任爲棟樑則伐(행이지어임위동량칙벌) : 다행이 기둥이나 들보가 될만하게 자라면 잘리게 된다.

不幸而爲風之所拔(불행이위풍지소발) : 불행한 경우에는 바람에 뽑히고

水之所漂(수지소표) : 물에 떠내려가고

或破折或腐(혹파절혹부) : 혹은 찢어지고 꺾여지고 혹은 썩어버린다.

幸而得不破折不腐(행이득불파절불부) : 다행히 찢어지고 꺾여지지 않고 썩지도 않으면

則爲人之所材(칙위인지소재) : 사람들이 재목이라 여겨지는 것이 되어

而有斧斤之患(이유부근지환) : 도끼에 찍히는 환란이 생기게 된다.

其最幸者(기최행자) : 그 중에서 가장 다행한 나무는

漂沈汨沒於湍沙之間(표침골몰어단사지간) : 여울물 모래 사이를 떠올랐다가 갈아앉았다하고 솟아올랐다 묻혀버리렸다하며

不知其幾百年(부지기기백년) : 몇 백 년이나 지나는지 알지 못하지마는

而其激射齧食之餘(이기격사설식지여) : 물에 씻기우고 모래에 부딪히며 뜯기고 먹히어 나간 나머지가

或髣髴於山者(혹방불어산자) : 간혹 산과 비슷하게 된 나무가 잇어서

則爲好事者取去(칙위호사자취거) : 호사가들이 그것을 가져다가

强之以爲山(강지이위산) : 억지로 산처럼 만들어놓은 것이다.

然後可以脫泥沙而遠斧斤(연후가이탈니사이원부근) : 그렇게 된 뒤에는 진흙고 모래에서 벗어나고 도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而荒江之濱(이황강지빈) : 그러나 거친 강 가에

如此者幾何(여차자기하) : 그렇게 되는 나무가 몇이나 될 것이며

不爲好事者所見(부위호사자소견) : 또 호사가들 눈에 발견되지 않고

而爲樵夫野人所薪者(이위초부야인소신자) : 나무꾼이나 들판 사람들의 땔 나무가 되어버리고 마는 나무도

何可勝數(하가승수) : 어찌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則其最幸者之中(칙기최행자지중) : 그러니 그 가장 다행스런 나무 중에도

又有不幸者焉(우유부행자언) : 또 불행한 것들이 있는 것이다.

 

予家有三峰(여가유삼봉) : 우리집에는 세 봉우리의 나무 산이 있는데

予每思之(여매사지) : 내가 이에 대하여 생각해볼 때마다

則疑其有數存乎其間(칙의기유수존호기간) : 그 사이에는 운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且其蘖而不殤(차기얼이부상) : 그 놈이 움이나서 자라다가 죽지 아니하고

拱而不夭(공이부요) : 한 줌 굵기가 되어서도 일찍 죽지 아니하고

任爲棟樑而不伐(임위동량이부벌) : 기둥이나 들보 감이 되어소도 잘리우지 아니하고

風拔水漂而不破折不腐(풍발수표이부파절부부) : 바람에 뽑히어 물에 떠내려 오면서도 깨어지거나 꺾여지지 아니하고 썩지도 아니하였으며

不破折不腐(부파절부부) : 깨어지거나 꺾여지지 아니하고

而不爲人所材以及於斧斤(이불위인소재이급어부근) : 사람들에게 재목이라 여겨져서 도끼질을 당하는 일이 없었고

出於湍沙之間(출어단사지간) : 여울물과 모래 사리를 뚫고 나와서도

而不爲樵夫野人之所薪而後(이부위초부야인지소신이후) : 나무꾼이나 들 사람들의 땔 나무가 되지 아니하고 그리고 나서야

得至乎此(득지호차) : 이곳으로 오게 되었으니

則其理似不偶然也(칙기리사불우연야) : 그 이치가 우연하지만 않은 듯하다.

然予之愛之(연여지애지) : 그러니 내가 이것을 사랑하는 것은

則非徒愛其似山(칙비도애기사산) : 곧 다만 그것이 산을 닮았서가 아니라

而又有所感焉(이우유소감언) : 여기에 감회가 있기 때문이며

非徒感之(비도감지) : 다만 아에 대하여 감회만이 있을 뿐만 아니라

而又有所敬焉(이우유소경언) : 또한 존경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予見中峰(여견중봉) : 내가 보건대 가운데 봉우리는

魁岸踞肆(괴안거사) : 장대한 언덕 모양으로 떡 웅크리고서

意氣端重(의기단중) : 의기도 장중하게 보이어

若有以服其旁之二峰(약유이복기방지이봉) : 마치 그 곁의 두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는 듯하다.

二峰者莊栗刻削(이봉자장률각삭) : 두 봉우리는 장엄하면서도 빼어나서

凜乎不可犯(늠호불가범) : 엄연히 범할 수 없는 형세이니

雖其勢服於中峰(수기세복어중봉) : 비록 그 형세가 가운데 봉우리에 복종하고 있으면서도

而岌然決無阿附意(이급연결무아부의) : 우뚝히 전혀 아부하는 뜻은 없는 것이다.

吁其可敬也夫(우기가경야부) : 아아 존경할만한 모양이 아닌가.

其可以有所感也夫(기가이유소감야부) : 그러니 감회가 있을 만하지 않겠는가?

 

 

7. 상전추밀서(上田樞密書) : 蘇洵(明允)

上田樞密書(전추밀서)는 소순(蘇洵)이 당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게 자신을 추천해 달라고 청하는 편지로, 가우가요 원년(1056) 전후로 추정되는 문서입니다.

 

天之所以與我者 夫豈偶然哉堯不得以與丹朱하시고 舜不得以與商均하시고 而瞽瞍不得奪諸舜하니 發於其心하여 出於其言하며 見於其事하여 確乎其不可易也聖人不得以與人하시고 父不得奪諸其子하니 於此見天之所以與我者 不偶然也夫其所以與我者必有以用我也我知之로되 不得行之하고 不以告人이면 天固用之어늘 我實置之其名曰棄天이요 自卑以求幸其言하고 自小以求用其道하면 天之所以與我者何如완대 而我如此也其名曰褻天이니 棄天我之罪也褻天亦我之罪也不棄不褻而人不我用不我用之罪也其名曰逆天이라 然則棄天褻天者其責在我하고 逆天者其責在人하나니 在我者吾將盡吾力之所能爲者하며 以塞夫天之所以與我之意하고 而求免夫天下後世之譏어니와 在人者吾何知焉이리오 吾求免夫一身之責之不暇어니 而暇爲人憂乎哉孔子孟軻之不遇老於道途하시되 而不倦 不慍 不怍 不沮者夫固知夫責之所在也시니라 衛靈 魯哀 齊宣 梁惠之徒 不足相與以有爲也我亦知之矣로되 抑將盡吾心焉耳吾心之不盡이면 吾恐天下後世無以責夫衛靈魯哀齊宣梁惠之徒而彼亦將有以辭其責也리니 然則孔子孟軻之目將不瞑於地下矣시리라 夫聖人賢人之用心也 固如此하니 如此而生하고 如此而死하며 如此而貧賤하고 如此而富貴升而爲天하고 沈而爲淵하며 流而爲川하고 止而爲山彼不預吾事吾事畢矣竊怪夫後之賢者 不能自處其身也하여 飢寒窮困之不勝而號於人하니 嗚呼使吾誠死於飢寒困窮耶인댄 則天下後世之責將必有在리니 彼其身之責不自任以爲憂어늘 而我取而加之吾身이면 不亦過乎今洵之不肖 何敢亦自列於聖賢이리오마는 然其心有所甚不自輕者러라 何則天下之學者 孰不欲一蹴而造聖人之域이리오 然及其不成也求一言之幾乎道而不可得也千金之子可以貧人이요 可以富人이로되 非天之所與雖以貧人富人之權으로도 求一言之幾乎道不可得也天子之宰相可以生人이요 可以殺人이로되 非天之所與雖以生人殺人之權으로도 求一言之幾乎道不可得也今洵用力於聖人賢人之術亦已久矣其言語其文章雖不識其果可以有用於今而傳於後與否獨怪夫得之之不勞하여 方其致思於心也若或起之하며 得之心而書之紙也若或相之하니 夫豈無一言之幾於道者乎千金之子天子之宰相求而不得者一旦在己其心得以自負하니 或者天其亦有以與我也로다 曩者見執事於益州하니 當時之文淺狹可笑飢寒窮困亂其心하고 而聲律記問又從而破壞其體하여 不足觀也已러니 數年來退居山野하여 自分永棄하여 與世俗日疏闊일새 得以大肆其力於文章하여 詩人之優游騷人之淸深孟韓之溫醇遷固之雄剛孫吳之簡切投之所向無不如意嘗試以爲董生得聖人之經이나 其失也流而爲迂하고 鼂錯得聖人之權이나 其失也流而爲詐하니 有二子之才而不流者其惟賈生乎인저 惜乎今之世愚未見其人也로라 作策二道하니 曰 審勢 審敵이요 作書十篇하니 曰 權書洵有山田一頃하니 非凶歲可以無飢力耕而節用이면 亦足以自老하니 不肖之身不足惜이로되 而天之所與者不忍棄且不敢褻也執事之名滿天下하니 天下之士用與不用在執事敢以所謂策二道 權書十篇으로 爲獻하노라 平生之文遠不可多致有洪範論史論十篇하여 近以獻內翰歐陽公하니 度執事與之朝夕相從하여 議天下之事하리니 則斯文也其亦庶乎得陳於前矣리라 若夫言之可用與其身之可貴與否者執事事也執事責也於洵何有哉리오

 

(1)

天之所以與我者夫豈偶然哉堯不得以與丹朱舜不得以與商均이요 而瞽瞍不得奪諸()이니 發於其心하여 出於其言하고 ()於其事하여 確乎其不可易也聖人不得以與人이요 父不得奪諸其子於此見天之所與我者不偶然也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 어찌 우연이겠습니까. 임금은 丹朱에게 주지 못하였고 임금은 商均에게 주지 못하였고 瞽瞍는 순임금에게서 빼앗지 못하였으니, 그 마음에서 나와 그 말에 표현되고 그 일에 드러나 확고하여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聖人이 남에게 줄 수 없고 아버지가 자식에게서 빼앗지 못하니, 여기에서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

夫其所以與我者必有以用我也我知之不得行之하며 不以告人이면 天固用之어늘 我實置之其名曰棄天이요 自卑以求幸其言하며 自小以求用其道인댄 天之所以與我者何如완대 而我如此也리오 其名曰褻天이라 棄天我之罪也褻天亦我之罪也不棄不褻而人不我用不我用之罪也其名曰逆天이라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은 반드시 이로써 나를 쓰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알고도 실행하지 못하며 남에게 고하지 못하면, 하늘은 진실로 쓰려고 하는데 내가 실로 내버려 두는 것이니 이를 하늘을버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낮추어 그 말을 <남이> 바라기를 구하며 자신을 작게 여겨 그 도를 <남이> 써주기를 구한다면,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 어떠한데 내가 이렇게 한단 말입니까. 이를 하늘을 업신여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늘을 버리는 것은 나의 죄이고 하늘을 업신여기는 것도 나의 죄이며, 버리지도 않고 업신여기지도 않았는데 남이 나를 쓰지 않는 것은 나를 쓰지 않는 <사람의> 죄이니 이를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3)

然則棄天褻天者其責在我하고 逆天者其責在人하나니 在我者吾將盡吾力之所能爲者하여 以塞夫天之所以與我之意하고 而求免夫天下後世之譏어니와 在人者吾何知焉이리오 吾求免夫一身之責之不暇어니 而暇爲人憂乎哉

 

그렇다면 하늘을 버리거나 하늘을 업신여기는 것은 그 책임이 나에게 있고, 하늘을 거스르는 것은 그 책임이 남에게 있습니다. 나에게 있는 것은 내가 장차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바를 다하여 하늘이 나에게 준 뜻에 답하고 천하 후세 사람들의 비판을 면하기를 구해야 하거니와, 남에게 있는 것은 내가 어찌 알겠습니까. 내가 내 한 몸의 책임을 면하려 하기에도 겨를이 없으니, 남을 위해 근심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4)

孔子孟軻之不遇老於道途호되 而不倦不慍不怍不沮者夫固知夫責之所在也일세라 衛靈魯哀齊宣梁惠之徒不足相與以有爲也我亦知之矣로되 抑將盡吾心焉耳吾心之不盡이면 吾恐天下後世無以責夫衛靈魯哀齊宣梁惠之徒而彼亦將有以辭其責也리니 然則孔子孟軻之目將不瞑於地下矣

 

孔子孟軻가 불우했을 때 길에서 늙었으나 게으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부끄러워 하지 않고 기운이 꺾이지 않았던 것은 진실로 책임의 소재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衛 靈公魯 哀公齊 宣王梁 惠王의 무리와 함께 큰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자신(공자와 맹가) 또한 알지만 장차 나의 마음을 다할 뿐이니, 나의 마음을 다하지 못하면 나는 천하 후세의 사람들이 저 위 영공과 노 애공과 제 선왕과 양 혜왕의 무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저들 또한 그 책임을 변명할 수 있을까 두려워하게 될 것이니, 그랬다면 공자와 맹가의 눈이 장차 지하에서 감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5)

夫聖人賢人之用心也固如此하니 如此以生하고 如此以死하며 如此以貧賤하고 如此以富貴하여 升而爲天하고 沈而爲淵하며 流而爲川하고 止而爲山하니 彼不預吾事吾事畢矣竊怪夫後之賢者不能自處其身也하여 飢寒窮困之不勝而號於人이라 嗚乎使吾誠死於飢寒困窮耶인댄 則天下後世之責將必有在리니 彼其身之責不自任以爲憂어늘 而我取而加之吾身不亦過乎

 

聖人賢人의 마음 씀이 진실로 이와 같으니, 이와 같이 하면서 살고 이와 같이 하면서 죽으며 이와 같이 하면서 貧賤하고 이와 같이 하면서 富貴합니다. 따라서 올라가서는 하늘이 되고 잠겨서는 연못이 되며 흘러서는 내가 되고 멈추어서는 산이 되니, 저들은 나의 일에 간여하지 못하니 내 할일은 그것으로 다 마친 것입니다.

후세에 賢者가 스스로 잘 처신하지 못하여 飢寒困窮을 이기지 못해 남에게 호소하는 것을 나는 마음속으로 괴이하게 여깁니다. , 만약 내가 진실로 기한과 곤궁에 죽는다면 천하 후세 사람들이 책임을 물을 대상이 반드시 따로 있을 터이니, 저들이 자신의 책임을 스스로 떠맡아 근심하지 않거늘 내가 취하여 내 자신에게 가하는 것이 또한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6)

今洵之不肖何敢亦自列於聖賢이리오마는 然其心有所甚不自輕者하니 何則天下之學者孰不欲一蹴而造聖人之域이리오마는 然及其不成也하여는 求一言之幾乎道인들 而不可得也千金之子可以貧人이며 可以富人이로되 非天之所與雖以貧人富人之權오로도 求一言之幾乎道인들 不可得也天子之宰相可以生人이며 可以殺人이로되 비天之所與雖以生人殺人之權으로도 求一言之幾乎道인들 不可得也

 

지금 불초한 제가 어찌 감히 스스로 聖賢의 대열에 끼겠습니까. 그러나 그 마음은 심히 스스로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바가 있으니 어째서입니까. 천하의 학자가 누군들 한번 뛰어올라 단번에 聖人의 경지에 나가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루지 못하였을 때에는 에 가까운 한 마디 말을 구한들 얻을 수 없고, 千金을 가진 집안의 자식은 남을 가난하게 할 수 있고 남을 부유하게 할 수 있지만 하늘이 준 것이 아니면 비록 남을 가난하게 하고 부유하게 하는 건력으로도 에 가까운 한마디 말을 구한들 얻을 수 없고, 천자의 宰相은 남을 살릴 수도 있고 남을 죽일 수도 있지만 하늘이 준 것이 아니면 비록 남을 살리고 남을 죽이는 권력으로도 에 가까운 한마디 말을 구한들 얻을 수 없습니다.

 

(7)

今洵用力於聖人賢人之術亦已久矣其言語其文章雖不識其果可以有用於今而傳於後與否로되 獨怪夫得之之不勞하여 方其致思於心也若或起之하며 得之心而書之紙也若或相之하니 夫豈無一言之幾於道者乎千金之子天子之宰相求而不得者一旦在己일새 其心得以自負하니 或者天其亦有以與我也로다

 

지금 제가 聖人賢人의 학술에 힘쓴 지가 또한 이미 오래입니다. 그 언어와 그 문장이 과연 지금 세상에 쓰이고 후세에 전해질 수 있을지 여부는 비록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유독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을 얻는 것이 수고롭지 않아 마음에 생각을 지극히 할 때 마치 누군가 일으켜주는 듯하며, 마음에서 얻어 종이에 쓸 때는 마치 누군가 도와주는 듯하니 어찌 에 가까운 한마디 말이 없겠습니까. 천금을 가진 집아의 자식과 천자의 재상이 구한들 얻지 못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저에게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자부할 수 있으니 어쩌면 하늘이 또한 저에게 주신 것이 있을 터입니다

 

(8)

曩者見執事於益州할새 當時之文淺狹可笑하니 飢寒窮困亂其心하고 而聲律記問又終而破壤其體不足觀也已러니 數年來退居山野하여 自分永棄하여 與世俗日疎闊일새 得以大肆其力於文章하여 詩人之優遊騷人之淸深孟韓之溫醇遷固之雄剛孫吳之簡切投之所向無不如意嘗試以爲董生得聖人之經하니 其失也流而爲迂하고 鼂錯得聖人之權하니 其失也流而爲詐하니 有二子之才而不流者其惟賈生乎인저 惜乎今之世愚未見其人也로라

 

지난번에 執事益州에서 뵈었을 적에 당시의 제 문장이 천근하고 협소하여 가소로웠으니, 기한과 곤궁이 그 마음을 어지럽히고 聲律記問이 또 따라서 그 체계를 파괴하여 볼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수년 이래로 山野에 물러나 살면서 영영 세상에서 버려졌다고 스스로 생각하여 세속과는 날로 멀어졌기에 문장에 크게 힘을 써서 詩人의 편안하고 한가함과 騷人의 맑고 깊음과 孟子韓子(韓愈)의 온후하고 순수함과 司馬遷班固의 웅건하고 굳셈과 孫子(孫武)吳子(吳起)簡要하고 切實함이 어디로 향한들 뜻대로 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일찍이 한번 생각해보건대 董生(董仲舒)은 서민의 經道를 얻었으니 그 잘못이 흘러가 오활함이 되었고, 鼂錯(晁錯)는 성인의 權道를 얻었으니 그 잘못이 흘러가 속임수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재주를 갗추고서도 잘못으로 흘러가지 않는 자는 賈生(賈誼)뿐입니다! 애석하게도 지금의 세상에서 어리석은 저는 그런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9)

作策二道하니 曰審勢審敵이요 作書十篇하니 曰權書洵有山田一頃하니 非凶歲可以無飢力耕而節用이면 亦足以自老하니 不肖之身不足惜이어니와 而天之所與者不忍棄且不敢褻也執事之名滿天下하고 天下之士用與不用在執事일새 敢以所謂策二道權書十篇으로 爲獻하노라 平生之文遠不可多致有洪範論史論十篇近以獻內翰歐陽公하니 ()執事與之朝夕相從하여 議天下之事하니 則斯文也其亦庶乎得陳於前矣리라 若夫言之可用與其身之可貴與否者執事事也執事責也於洵何有哉리오

 

두 편을 지었으니 <審勢><審敵>이요, 10편을 지었으니 <權書>입니다. 저는 山田 1(100)이 있으니 흉년이 아니면 굶주리지 않을 수 있고 힘써 밭 갈고 쓰임을 절약하면 또한 스스로 늙어갈 수 있으니, 不肖한 몸은 아까워할 것이 없거니와 하늘이 준 것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또 감히 업신여기지 못합니다. 執事의 명성이 천하에 가득하고 천하의 선비가 쓰이고 쓰이지 못하는 것이 집사에게 달려있으므로 감히 이른바 책 두 편과 <권서> 10편을 바칩니다. 평소 지은 글은 먼 곳이라 많이 보낼 수가 없습니다.

<洪範論><史論> 10편을 근간에 內翰 歐陽公(歐陽脩)께 바쳤으니, 헤아려보건대 집사께서는 그 분과 함께 밤낮으로 종유하며 천하의 일을 의론하실 터이니 그렇다면 이 글 또한 아마도 <집사> 앞에 펼쳐졌을 것입니다. 말이 쓸만한지와 그 몸이 귀해질 수 있을지의 여부는 집사의 일이요 집사의 책임이니,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8. 심술(心術) : 소순(蘇洵)

소순(蘇洵)은 병가의 이론을 종합해서 <心術>을 썼다. 글이 명쾌하고 논리적이어서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는 느낌을 준다.

 

 

爲將之道當先治心이니 泰山崩於前而色不變하고 麋鹿興於左而目不瞬하여 然後可以制利害하고 可以待敵이라. 凡兵上義이니 不義雖利勿動이라. 非一動之爲利害이나 而他日將有所不可措手足也. 夫惟義可以怒士이니 士以義怒可與百戰이라.

 

장수가 되는 도리는 의당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태산이 눈앞에서 무너져도 얼굴색이 변하지 않아야 하고, 사슴이 왼쪽에서 뛴다고 해도 눈도 깜박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이로움과 해로움을 제어할 수 있으며 적에 대항할 수 있다. 무릇 병사들에게 의를 숭상하게 하여, 의가 아니면 비록 이롭다고 해도 군대를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한 번 군대를 동원한다고 이롭거나 해롭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훗날에 장차 아주 곤란한 지경에 빠질 수가 있다. 대저 의로움만이 병사들을 격분하게 할 수 있나니, 병사가 의로움으로 격분하게 되면 백 번이라도 더불어 싸울 수 있다.

 

 

凡戰之道未戰養其財하고 將戰養其力하고 旣戰養其氣하고 旣勝養其心이라. 謹烽燧하고 嚴斥候하여 使耕者無所顧忌하면 所以養其財豐犒而優遊之하면 所以養其力이며 小勝益急하고 小挫益厲하면 所以養其氣이요 用人不盡其所欲爲하면 所以養其心이라.

 

무릇 전쟁의 도리는 전쟁 전에는 그 재물을 잘 증식시키고, 전쟁을 하려고 할 즈음에는 그 전투력을 기르며, 전쟁이 시작된 후에는 사기를 북돋워 주고, 이미 승리한 후에는 명예심을 길러야 한다. 봉화를 신중하게 하고, 척후병을 엄하게 하여 경작하는 자들로 염려함이 없게 하는 것이 그 재물을 기르는 방법이요, 군량을 넉넉하게 보내어 병사들을 여유롭게 하는 것이 그 전투력을 기르는 방법이요, 작은 승리에 더욱 매진하도록 독려하고 작은 실패에는 더욱 분발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그 사기를 기르는 방법이요, 사람을 씀에 그가 품고 있는 바를 다 채우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 마음을 기르는 방법이다.

 

 

士常蓄其怒하고 懷其欲而不盡이라. 怒不盡則有餘勇이요 欲不盡則有餘貪이라. 雖幷天下라도 而士不厭兵이니 黃帝之所以七十戰而兵不殆也. 不養其心이면 一戰而勝이라도 不可用矣.

 

고로 병사는 항상 그 적개심을 쌓게 되어 그 욕심을 품어도 만족하지 않게 된다. 분개하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아야 용기가 남게 되고, 욕심을 다 채우지 못해야 진취심이 넘치게 된다. 그리하여 비록 천하를 다 삼킨다고 해도 병사들은 전쟁을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황제가 일흔 번을 싸웠어도 병사들이 나태해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병사들의 마음을 기르지 않으면 한 번 싸워 승리한다고 해도 다시 싸울 수 없게 된다.

 

 

凡將欲智而嚴이요 凡士欲愚智則不可測하고 嚴則不可犯이라. 士皆委己而聽命하니 夫安得不愚리오. 夫惟士愚라야 而後可與之皆死하니

 

무릇 장수는 지혜롭고 위엄이 있어야 하며, 무릇 병사는 우직하게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지혜로우면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가 없고, 위엄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그를 거역하지 못한다. 그래서 병사들이 모두 자기 목숨을 맡겨 명을 따르게 되나니 어찌 우직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무릇 병사가 우직하여 복종해야 후에 함께 목숨을 바쳐 싸울 수 있다.

 

 

凡兵之動知敵之主知敵之將이면 而後可人於嶮이라. 鄧艾縋兵於蜀中할새 非劉禪之庸이면 則百萬之師라도 可以坐縛이런가 彼固有所侮而動也. 古之賢將能以兵嘗敵이요 而又以敵自嘗이니 去就可以決이라.

 

무릇 군대를 동원할 때에는 적장을 알아야 한다. 적의 장수를 안 이후에야 위험을 무릅쓰고 군대를 동원할 수 있다. 등애가 촉에서 병사들을 묶어서 이동하였는데, 유선이 어리석지 않았다면 백만의 대군이 쉽게 포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등애가 진실로 (유선을) 업신여겨 군대를 움직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의 현명한 장수는 자신의 군대로 적을 시험할 수도 있었고, 또한 적군으로써 아군을 시험해 보고서 거취를 결정하였다.

 

 

凡主將之道知理而後可以擧兵이요 知勢而後可以加兵이요 知節而後可以用兵이니 知理則不屈하고 知勢則不沮하며 知節則不窮이라. 見小利不動하고 見小患不避하니 小利小患不足以辱吾技也이니 夫然後有以支大利大患이라.

 

무릇 장수가 지켜야 할 도리는 군의 원리를 안 후에 군대를 움직이고, 형세를 안후에 공격하며, 절제를 안후에 군대를 쓸 수가 있는 법이다. 군사의 원리를 알면 굴욕스럽지 않게 되고, 형세를 알면 기세에 꺾이지 않으며, 절제를 알면 궁하지 않게 된다. 작은 이익을 보아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작은 어려움을 당해도 피하지 않나니, 작은 이익과 작은 어려움은 내 재주를 욕되게 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러한 연후에야 큰 이익과 큰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夫惟養技而自愛者無敵於天下하니 一忍可以支百勇이요 一靜可以制百動이라. 兵有長短하니 敵我一也. 敢問吾之所長吾出而用之彼將不與吾校吾之所短吾蔽而置之彼將强與吾角이러니 奈何리오. 曰吾之所短吾抗而暴之하여 使之疑而卻하고 吾之所長吾陰而養之하여 使之狎而墮其中이라. 用長短之術也이니라.

 

무릇 재주를 길러 스스로 자중하는 자만이 천하에 적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한 번 참음으로 백 명의 용사와 맞설 수 있고, 한 번의 침묵으로 백 번의 행동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이다. 병사들에게 장점은 단점이 있기는 적과 내가 일반이다. “아군의 장점을 내가 꺼내 이용하려는데 적은 장차 나와 싸우지 않으려 하고, 아군의 단점을 내가 가려서 숨게 두려는데 적이 장차 무리하게 나와 싸우려 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라고 물어 온다면, “아군의 단점을 내가 들어서 노출시켜 저들로 하여금 의심하여 물러가게 하고, 아군의 장점을 몰래 길러서 저들로 나를 업신여겨 계략에 빠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장점과 단점을 사용하는 기술인 것이다.”라고 대답하겠다.

 

 

善用兵者使之無所顧하고 有所恃. 無所顧하면 則知死之不足惜이요 有所恃하면 則知不至於必敗니라. 尺箠當猛虎하면 奮呼而操擊이나 徒手遇蜥蜴하면 變色而卻步人之情也니라. 知此者可以將矣. 袒裼而按劍하면 則烏獲不敢逼이요 冠冑衣甲하여 據兵而寢하면 則童子라도 彎弓殺之矣니라. 善用兵者以形固이니 夫能以形固하면 則力有餘矣니라.

 

병사를 잘 다스리는 자는 그들로 하여금 염려함이 없게 하고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염려하는 바가 없어야 죽음도 아까워할 것이 없음을 알 것이요, 믿을 수 있다면 절대 패배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한 자 길이의 채찍을 가지면 맹호를 만나도 분발하여 소리지르며 채찍을 잡아 공격할 것이요, 맨손으로 도마뱀을 만나도 안색이 변하여 뒤로 물러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이러한 도리를 알면 장수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웃통을 벗고 칼을 어루만지면 오획이라도 감히 대들지 못하나,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었어도 무기에 기대어 잠을 잔다면 어린아이라도 활을 당겨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병사를 잘 다스리는 자는 굳셈을 표현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니, 무릇 굳셈을 표현해 낼 수 있으면 힘이 남음이 있게 될 것이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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